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49
* * *
“…그래서 그대가 건의한 바가 무엇이었지?”
“폐하, 상인들을 키우고 세율을 낮춰야 하옵니다.
조정이 모든 것을 힘써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면 절로 백성들이 모이고 물산들이 자라나니 어찌 나라가 작아지더라도 부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 현상은 그만큼 양왕 주첨선이 주기옥에게 제기한 처방이 기묘해서도 있었지만.
굳아 사력을 다해 전국 모든 지방을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
남조의 정책과 차별화되고, 모두에게 이익이 될 법한 정책들을 내놓아 그들을 사로잡는다.
예를 들어….
“지금껏 높은 세율에 신음해 온 여러 주의 백성들을 위하야 세금을 크게 줄이겠다.”
“성주들 중 충성을 맹세하는 이에게는 지위와 재산을 보전해 줄 터이니 남경의 참칭자에게 목숨을 버리지 말고 올바른 주군에게 예를 갖추라.”
이렇게.
주첨선의 조언 아래 경태제는 하나둘씩 황제의 권력과 권한을 내려놓았다
어차피 석형 등 반역자 일당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복수 이후에는 경태제가 국정에 완전히 관심을 껐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오늘의 집무는 끝났느냐? 나머지는 양왕에게 맡기겠다.”
“폐, 폐하?”
“더 듣지 않겠다. 돌아가겠다.”
이런 식으로 조회 도중 갑자기 흥미를 잃고 일어서거나, 업무의 상당 부분을 양왕 주첨선에게 떠맡기는 식으로 주기옥은 옥좌에서 도망치려 하였다.
양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직전의 모든 한계선을 시험해 보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갑자기 직무 중에 말을 타고 궁 밖으로 달려 나가기, 높은 누각에서 뛰어내리기, 밤새도록 닭싸움 구경하고 국정 팽개치기 등등.
경태제의 이러한 행동은 곧 상대적으로 정통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을 주첨선에게 자연스레 제위가 이어지는 데도 큰 공헌을 하였다.
이미 대리청정에 가깝게 주첨선이 이미 세자 책봉 전부터 국정을 주도하니, 경태제 생전부터 차츰차츰 주첨선의 통치에 백관(百官)들이 익숙해질 수 있을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물론 그 덕분에 황제의 권위와 권력은 크게 축소되었다.
북경의 황제가 제남(濟南, 오늘날 중국의 지난시)의 아무개에게 명을 내린다 한들, 그것이 닿을지 말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만일 황제의 명 받잡는 아무개가 “현지 사정을 보건대 폐하께서 틀리셨습니다.”라고 한마디 하면 순식간에 황제의 칙서는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게 되는 황당무계한 일들도 많았다.
“세수가… 고작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느냐? 복벽 이전의 반의 반절도 아니 되지 않느냐?”
“세율을 크게 줄이니 어쩔 수가 없었사옵니다.”
뿐만 아니라 당장이라도 남경에서 군세를 모아 치고 들어올지 모를 상황인데, 지방을 최대한 쥐어짜기는커녕 세율을 대폭 낮췄으니 병졸을 모으고 먹이고 입힐 군량이 없다.
게다가 양자로 입적시킨 주첨선을 태자로 책봉하는 책봉식에도, 정기적으로 각종 제례를 지내는 데도 은자를 쏟는다.
황제라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끝없이 자원은 소모된다. 자금성 전체가 은자를 끊임없이 잡아먹는 걸신 들린 아귀였다.
그런데 장악한 지역이 중원의 반절로 줄었다? 게다가 세율도 줄였다?
결국 자금성이 자금난에 허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주첨선의 방법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생각해 보면, 새로 상국 행세를 하게 된 몽골이 북조의 무장을 두고 볼 리가 없으므로 어차피 대규모 군사력의 동원은 불가능하다 봐야 했다.
그렇게 생긴 미묘한 균형.
북경의 경태제는 에센에게 항복해 정통성을 잃었으나 호족들의 지지를 얻었고.
남경의 천순제는 강력한 정통성을 지녔으되 호족들의 지지가 없어 세력이 일정 이상으로 자라나지 못했다.
양측의 세력 확장은 두 황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약점들로 말미암아 어느 순간 멈출 수밖에 없었으니, 제위가 날아갈지도 모를 상황에서 섣불리 상대에 대한 공격에 치중할 수도 없었다.
절묘하게 중원이 반으로 갈라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 굳어져 가던 남북조의 체제를 완전히 확정 짓는 사건이 일어나니,
“황위는… 태자에게… 반드시 주기진을 죽여….”
“폐하께서 쓰러지셨다! 어서, 어서 의원을…!”
무리한 국정 운영으로 심신을 갉아먹히고, 에센에게 치욕적인 항복을 바치는 등으로 속이 문드러져만 가던 북경의 경태제가 마침내 숨이 끊어진 것이다.
우연한 경위로 보위에 올라, 그 뒤로 평생토록 불행한 삶을 살았던 경태제는 그 끝도 쓰라리고 비극적이었다.
장례와 능묘조차도 황제의 것이라고는 하기 어려울 만큼 단출하고 소박하였으니 곧 주첨선을 둘러싸고 선제(先帝)를 추모하는 일에도 돈을 아끼는 수전노니, 양부를 버린 불초자식이니 하는 소리가 돌았다.
거기에 주첨선은 커다란 강수를 두게 되니.
“천조의 역적들이 중국의 반을 도둑질해 갔고, 자금이 모자라 선제의 장례조차 조촐히 치렀으니 어찌 짐이 내탕금을 함부로 낭비하겠는가?
한시라도 빨리 선제의 원한을 풀고 강역을 회복하는 일이 바쁘니 즉위식은 거행하지 않겠다.”
“천자는 나라의 어버이로서 그 위엄을 보여야 하거늘 어찌 문무백관의 배례를 받지 않고 보위에 오르려 하십니까?”
“짐은 이미 칙령을 내렸고 그를 거두지 않겠다. 짐이 사치를 좋아하여 부제(父帝)의 장례에도 돈을 아낀다는 이야기가 나도는데, 이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나라가 어떻게 망가지겠는가?”
즉위식이라는, 정통성에 크나큰 영향을 미칠 행사를 취소한다는 결정을 내릴 정도로 북조의 자금 사정과 권위 문제는 절박한 것이었다.
“즉위식을 하셔야 합니다!”
“그렇사옵니다. 내각의 대학사로서 감히 말씀 올리오니, 즉위식을 올리지 않으면 저 반적들이 천조의 위엄을 더욱 우습게 알 것입니다.
폐하께서 오랑캐를 흠숭하여 황제의 위엄을 보이지 않는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려 비웃을 것이옵니다. 부디 미신(微臣)들의 주청을 들어주소서….”
이런 실랑이는 뜻밖에도 황제의 명분과 권위를 낳았고, 또한 주첨선이 즉위식을 올릴 명분이 되기도 하였다.
“…좋다. 허나 임금이 정치를 잘하면 그가 초립에 다 뜯어진 솜옷을 입더라도 위엄이 살아나는 법이다. 그러니 즉위식을 거행하되 최대한 검소하게 치르라.”
그 명이 과연 겉치레가 아니었는지, 즉위식에 동원된 인력은 평시에 비하여 훨씬 적었고, 그 절차와 소요 시간 역시 크게 줄여 버렸다.
또한 즉위한 뒤로도 새 황상이 걸친 용포에는 가슴과 어깨의 용보(龍補) 외에는 아무 무늬도 새겨 넣지 않았으니 전대의 용포들에 비해서 크게 간소화된 것이었다.
제신(諸臣)들에게도 또한 관복을 지급하지 않으니 각자가 시장에서 천과 실을 사다가 직접 만들어 입어야 했고, 각종 행사와 제사에서 나온 차려진 음식들 역시 술과 과일, 간단한 생선 외에는 모두 생략되었다.
만주와의 협상을 통해 겨우겨우 흘러 나가는 은자를 줄이고, 그러면서도 상인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또한 정부 지출을 너무 과도하게 줄여 남조에 밀려나지 않을 정도로는 영향력 투사를 하고….
개중 지금의 군사력과 행정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국경 봉쇄 따위를 운운하며 만주와의 무역 협상에서 중요한 패로 써먹는 등 다양한 꼼수와 도박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매순간 위태롭던 정국의 안정을 잡아 나갔다.
수많은 목표들 사이에서 균형점을 잡아야 했으나, 그 목표들 중 하나라도 놓치면 이 나라는 끝장이다.
차라리 이리저리 흔들리는 줄 위에서 균형을 잡는 광대가 그보다 더 마음이 편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도 제국은 굴러갔다.
굴러가야만 했다.
주첨선은 눈코 뜰 새 없이 뛰어다니며 조각조각 난 제국에 기름칠을 하고, 나사를 조이고, 하루하루 연료를 넣어 주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거인은 심장이 꺼지지 않았을 뿐 되살아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 * *
/ 작가의 말
본래 이러한 묘사들이 다양하게 담겨 있던 비축분이 있었지만, 전개의 속도감을 위하여 가지치기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비축분을 폐기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배경 묘사가 없다면 앞으로의 내용 전개가 어색할 듯하여 이렇게 외전 격으로 간단하게 풀어 봅니다.
외전―명나라 (2)
두 조정, 두 황제는 그렇게 다른 길을 걷기로 하였다.
남조의 황제, 천순제 주기진은 언젠가 북경으로 돌아가기 위해 칼을 갈았고, 지방에서 일어나는 호족들을 찍어 눌러 가면서 옛 권위를 회복하고자 했다.
그를 위해서는 더 강력한 군대가 필요했고, 더 강력한 명분과 정통성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북조는 몽골의 눈치를 보느라 다시 군대를 무장시킬 수 없었다.
그리하여 양왕, 아니 황제 주첨선의 지도 아래 조정의 권한은 축소되었고, 그 역량 또한 쪼그라들었다.
허나 언뜻 보면 초라해 보이는 북조의 길, 그리고 주첨선의 선택은 다른 효과 또한 내게 된다.
“세금을… 덜 걷는다고 했나?”
“그래! 이제 이곳 제남(濟南, 오늘날의 중국 지난시)도 딱 다른 지역에서 바치는 만큼만 바치면 된다고 하네!”
본래 토지가 비옥하고 수자원의 공급이 원활한 곡창지들.
중화에서 장기 지속한 통일 왕조들은 전통적으로 이러한 곡창지들의 세금을 크게 높였다.
―“젠장, 다른 곳보다 소출은 두 배로 거두는데 내는 게 몇 배나 돼서 그걸 다 까먹는다고?”
―“나는 치박(淄博, 오늘날의 중국 쯔보시)으로 가려네. 자네도 따라오려면 오고, 말려면 말게나.”
―“여기보다야 어디든 낫겠지.”
결국 농민들이 타지로 이주하거나 노동 의욕이 떨어져 태업을 지속하게 되니 해당 지역의 생산성은 점차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기 재산을 제대로 쌓지 못한다면 누가 굳이 힘들여 노동을 하겠는가?
그러나 주첨선의 세제 개혁 이후로 변화가 일어난다.
“저 지역에서 가져가는 세금이 옛적의 반으로 줄었다고 하는데? 자네 본래 제남 사람 아닌가?”
“그, 그렇지…. 아직도 그때 버리고 간 땅이 아직도 주인 없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럼 뭐 하나? 지금 당장 뛰쳐 가야 그 땅이 남아 있을 확률이 높지 않겠나!”
곡창지의 높은 세율을 피해 떠났던 농민들이 다시금 돌아온다.
“이거, 안 써서 그런지 흙으로 물길이 막혀 있었구먼?”
“막힌 지 꽤 되어 뵈는 모양인데? 일단 내가 동리 사람들을 불러오겠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치수 시설들이, 토지가 다시금 사람의 손을 타며 관리되기 시작한다.
거칠게 뭉쳐 있던 흙더미가 깨지고, 이랑과 고랑이 갈리며, 그 사이로 부드러운 습기가 스미기 시작한다.
파종된 씨앗들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
당장 주첨선의 손에 잡히는 세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몇 년이 지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를 일이다.
허나 그건 ‘몇 년이 지나면’의 일이고, 당장 주첨선은 돈이 없다.
“황실에서 사용하는 그릇에는 무늬를 넣지 말라.”
“관복의 소맷자락 넓이를 제한한다.”
본래 명나라의 사치품 수요를 대부분 충당하던 것은 자금성과 그 관료들.
그들의 옷에 들어가던 색색의 자수가 사라지고, 먹는 음식과 쓰는 기물 또한 보다 소박하고 담백한 형상으로 변해 가기 시작한다.
허면 갑자기 판로가 막힌 장인들은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황제가 직접 사족들에게 상업을 장려하고, 또 상공인들에게 매기는 세금을 크게 감면하니 갑작스레 상업이 융성하기 시작한다.
어차피 몽골이나 그 동맹국들과의 자유로운 무역이 강제되기도 하였고, 또한 새로운 황제 주첨선이 소련에서 받아 온 책들의 면면을 보면….
‘자본론’, ‘국부론’, ‘자본의 축적’.
“시장이 그 스스로를 조율케 하고, 모두가 이익을 좇으면 자연히 나라가 부강해진다.”
그러니 이런 뜻 모를 말과 함께 황제 폐하가 상공업자들을 들어서 쓰게 되신 것 아니겠는가.
상인들은 원산이나 조선으로서도 그 생산 과정을 자동화하지 못한, 일일이 수작업을 맡겨서는 결코 수요를 충당 가능할 수 없을 비단 생사(生絲) 같은 원료들을 팔았다.
또한 조선의 생활 수준이 크게 올라 감초나 녹용 같은 약재 수요가 늘었으니 만주에서 잘 팔리는 품모 또한 그런 것이었다.
물론 그 돈으로 들여오는 것은 대부분 사치품들이었으나, 황제는 국내의 은자가 증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량의 물품 수출을 강제했다.
더 많은 생사를, 약재를 생산하고 수출하는 이에게 더 많은 수입권을.
오직 나라를 살찌우는 만큼만, 나라의 부를 유출시킬 권리를.
황제의 칙명은 그러하였다.
물론 이 또한 국가의 강제에 의한 것이기는 했으나, 아예 무역을 막아 버리던 옛적에 비하면 진보된 형태였다.
물론 그러한 강제 또한 곧 쓸모가 사라지게 되는데,
“명나라에서 들여온 족제비 털 붓에, 녹차를… 100근, 100근 사 가도록 하지.”
“이보시게. 내게 녹차 200근 팔게나. 저놈이 준다는 은자의 두 배로 쳐줌세!”
“빌어먹을, 어이 박 처사? 자네 내게 이러기 있나? 그냥 내가 거기 있는 거 다 쓸어 가겠네. 아까 말한 값의 세 배로 주겠네!”
이는 배부르고 몸이 편안해진 조선인들이 사치를 좇기 시작했기 때문이라.
반대로 사치를 피하는 조정의 풍조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한 명의 사족과 호족들은 다른 선택을 한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북방에서 들여오는 물자들이 대부분 사치한 것들이라 하나, 상당부분이 옷감과 같이 생필품에 속하는 것들이다.
“저기, 요새 값싼 것이 조선산 면포라 하지 않았나?”
“예, 물론입니다. 저기 산동성에서 밀고 들어오는 면포만 하더라도 동리 아낙들이 파는 것보다 2할에서 3할 정도는 쌉니다.”
“그럼 그걸로 10필 주게.”
“최금옥표 갖신은 안 사가십니까?”
“허… 갖신이라?”
자신의 검소함을 자랑하기 위하여, 또는 그저 따뜻하고 질 좋은 천이 싼값에 파니 별생각 없이 사족들이 조선산 면포로 옷을 해 입거나, 아예 조선에서 나온 완제품 옷을 사 입을 때도 있었다.
“요사이 소매 좁은 옷이 유행을 하는군. 그러고 보니 자네 목에 달린 그건 뭔가?”
“크라바트(Cravate, 넥타이)라고 하던데. 만주에 가면 이러고 있는 신사들 천지더군.”
그렇게 주첨선의 머리를 아프게 하던 무역 수지의 균형 역시 어느 정도 맞추어지고, 걱정과 달리 조선이나 몽골과의 무역이 크나큰 흑자를 안겨 주는 황금알 낳는 거위로 변하기 시작한다.
몇몇 지역에서는 이미 조세가 은으로 납부될 정도였다.
더하여 이러한 상인들의 성장은 생각지도 못한 다른 이점을 낳기도 하는데,
“아니, 분명 성상께서 정하신 세율은 훨씬 낮은데 여기는 왜 이리 잡세니 특별세니 거두는 게 많습니까? 이는 장군께서 사사로이 거둬들이시는 게 아닙니까!”
당연히 중앙 정부가 명목상 세율을 낮추게 되고 지방 장악력이 떨어지면, 그만큼 각지의 토호들이 중간에서 떼어먹는 몫이 많아져 세율 인하가 도루묵이 된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납득할 수 없습니다! 다른 곳보다 훨씬 높은 세율이라니!”
허나 조세 부담에 저항할 세력이 있다면?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가?”
“당연히 우리 동맹회로서는 납세를 거부하고 황상께 이를 고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상인들의 집단적인 납세 거부.
물론 호족들은 코웃음을 친다.
제깟 것들이 범 무서운 줄도 모르고. 병사 몇몇만 움직여도 저들의 동맹이니 뭐니 하는 것은 일순간에 파훼되고 살려 달라고 싹싹 빌지 않겠는가?
그리 생각하고 대부분의 호족들은 상인들의 세금 인하 요구에 문전 박대로 화답했고.
곧, 의외의 결과를 보게 된다.
“뭐…? 세입이 반으로 줄다니 그게 말이나 되나? 장사치들 머릿수가 뭐 얼마나 한다고?”
“저, 장군. 말씀대로 장사치들이 직접 내는 세금은 적으나 저들이 동원하는 인원들이 있습니다.”
“동원하는 인원이라니?”
“그야….”
나으리의 말에 징세 담당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한다.
“저들이 부리는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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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지금 뭣들 하는 겐가? 여기만 주문된 양을 못 맞춰서 지금 다들 망하게 생겼다는 말이네!”
“지, 지금 잠사(蠶絲)가 120근 정도 완성되었습니다! 지금 실뽑기에 쓰는 솥이 쪼개져서 그러니 잠시만 여유를…!”
“당장 사흘 뒤까지 200근을 안 채워 오면 죄다 죽은 목숨인 줄 알게나!
…지난번의 팔중이가 손목 하나 날아갔던 건 다들 기억하겠지?”
엄포를 놓는 나으리의 말에 멀리 손목 하나가 뭉툭해진 팔중이 바들바들 몸을 떤다. 인부들은 더 가열하게 움직이고 그제야 나으리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리고, 자네들 말일세? 징세한답시고 오는 놈들은 모두 고간을 발로 차 버리게! 알겠나?
내 공장에서 일하는 놈들은 당분간 세금따위 안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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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동원되는 인력들 말이다.
급증한 해외 수요를 맞추기 위해, 상인들은 집집이 일하던 농민들을 조직해 공방을 차린다. 그리고 그들에게 일감과 재료를 던져 준 뒤 다시 완성된 물자를 값을 치르고 받아 간다.
자연스레, 또는 상인들의 세세한 지시에 따라 공방 내 분업화가 일어나 마을마다 수공업 공장이 서서히 발전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