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66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전투에서 한양 곳곳이 불태워지고 무너졌으니, 당연히 경복궁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가장 상징성이 높았던 공간인 만큼 도리어 그를 차지하기 위한 산발적인 전투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최전선이었다. 그 뒤로도 수양대군은 금성대군의 일파와 전쟁에 돌입했기에 한가로이 궁궐을 수리하는 데 들일 자원은 없었고.
그렇기에 내란의 와중에 반쯤은 불타고 무너진 경복궁의 모습에, 주상께서는 그닥 놀라지 않았다.
“수리가 필요하겠소.”
입성한 바로 그날 이렇게 이렇게 이야기했음에도 누구 하나 사치라든가, 공사를 벌인다든가 하는 문제에 별다른 이의 제기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물론 제대로 된 수리가 이뤄지는 날은 영영 오지 않았다.
수년간, 전 국토의 재건과 개발이 급선무가 되면서 주요한 업무 공간만 우선 수리를 마치고 그 외의 공간들은 방치되었다.
게다가 어느날 주상이 “아직도 궐내에 폐허가 많이 남았는데 그 공간은 낭비함은 옳지 않다.” 하시니.
급한 대로 콘크리트와 벽돌을 이용해 뚝딱뚝딱 지어 올라가면서 경복궁은 이전의 모습과는 영 딴판으로 변해 갔다.
그렇다 보니 원산식 건물이 2층, 3층씩 높아 가고, 조선식 건물들도 원산식 건물에 가려질 수 없으니 마찬가지로 높아져 간다.
점차 경복궁 내부로 온갖 관서들이 흡수되고 경복궁 자체가 마치 하나의 도시처럼 거대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급격하게 자라나던 건물이 바로 ‘한림원’이었다.
주상 전하의 거처인 내전(內殿)과 궐내의 여러 각사 사이에 끼어 있는 공간이다 보니 경복궁 내에서 근무하는 신하들과 전하께옵서 마주하기 좋은 공간.
그런 만큼 본디 그곳에는 집현전이 끼어 있었다. 세종대왕께서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그곳에 가장 신임하는 인재들을 모아다 두고 함께 학문과 국정을 논했다.
가장 신임하는 인재들… 신숙주, 정창손, 정인지… 흠.
이렇게만 보면 배신자의 산란장 같지만 나름 그때는 훌륭한 인재들이었으니.
아무튼, 현철한 군주와 숱한 명신들이 명치를 펼쳐 가던 공간이다. 그런 뜻깊은 장소가 두 대군의 난역에 의해 폐허가 되었으니 이 어찌 통탄하지 않을쏘냐?
그를 보다 못한 주상 전하께서 “내 의장 동지와 더불어 국정을 논의할 일이 잦으니 이곳에서 업무를 보시오.”라는 하교를 내리시니,
그렇게 트로츠키의 집무 공간이 세워진 것이 재건의 시초였던 것이다.
실상 외력을 빌어 복벽되었으므로 전하로서는 권위의 이분을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고,
더불어 트로츠키 역시 섭정으로서의 ‘충심’을 증명해 세간의 의심을 풀어야 했다.
고로, 명목상 통제와 감시가 편한 위치로 그의 사무실이 정해진 것.
“의장 동지, 내 오토 바우어의 ‘사회 민주주의와 민족 문제’를 읽어야겠소.”
“아하하, 전하. 죄송하지만 아직 보존 작업이 온전하지 못해 원산에도 원본은 3권 정도밖에….”
“읽어야겠소.”
“…한번 블레어를 통해 문화예술인민위원회에 문의를 넣어 보지요.”
…까지가 외부적 변명거리였고, 기실 트로츠키를 빌미로 주상이 원산의 온갖 고서들을 끌어모으는 빨대 같은 공간이었다.
그 내막이 어찌 되었건, 막 내란이 마무리된 직후였으므로 사치를 부릴 여유는 없었다.
급히 공간을 마련해야 했고 자원도 아껴야 했으니, 당연히 결과물은 대강 콘크리트를 부어 만들어진 검은콩 두부처럼 투박하고 거무튀튀한 건물.
누가 보아도 일국의 궁궐에 있을 만한, 일국의 지도자가 머물 만한 물건은 아니었기에 여유가 되는 대로 적벽돌 외장을 더하여 그나마 볼만하게 만들었다.
그 초라한 건물이 단초였다.
트로츠키가 섭정을 맡으면서 블레어와 함께 경연 역시 주관했던 바, 그가 물러나자 자연스레 빈 자리는 서장고 겸 회의 공간, 그리고 주상의 개인적인 연구 공간이 된다.
주상이 기꺼이 뭇 학식 있는 이들을 불러들이자 ‘조선 왕립 한림원’이라는 꽤나 그럴듯한 이름도 새로 붙었다.
드디어 조선이 자주적으로 국정 운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내심 뭇 사류들은 안심하였으되,
그들은 아직 알지 못했다.
“서장고에 공간이 부족하니 증축하겠다.”
“학술 회의를 열기에 너무도 협소하다. 인근의 전각 두어 채를 옮기고 새로 지음은 어떠한가?”
공간이 자란다.
주상이 집필하는 저서가 한 권, 한 질씩 늘 때마다, 책장과 서고 역시 하나씩 늘어난다.
한 번 돌아볼 때마다 방이 하나씩, 별채와 복도가 하나씩 추가된다.
“흠… 여름이 되니 장서에 습기가 차는구나. 한림원의 ‘정치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와 ‘경제학―철학 수고’는 1930년대 소련에서 발간하여 다시 얻으려야 얻을 수 없는 귀물들이 아닌가?”
“그는 지면에서 올라오는 습기 때문이오니 필히 복층으로 높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지반에는 회, 숯, 소금을 깔아 물기를 막아 내야만 합니다. 서책은 다른 재물과 비할 바가 되지 않는데, 하물며 성현의 서책은 어떻겠습니까?”
“예판의 말이 참으로 옳도다.”
신숙주의 부추김 덕에 해 봐야 2층 전각이던 경복궁에, 첫 5층 벽돌 건물이 들어선다.
지나친 사치가 아닌가 싶던 신료들도 군왕의 학구열과 공공 학술 기관의 증축에 관한 건이니 별생각 없이 넘어갔고.
그렇게 모두의 방관 속에서 단층 건물이 5층이 되고, 7층이 된다.
하여, 어느 날 저녁 때가 되어 근정전 건물을 나서던 하위지와 박팽년은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벌써 해가 졌나?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다 하더라도 아직 밤이 될 때는 아닌데….”
“…저길 보게나.”
근정전의 약 8배 크기로 거대하게 뻗은 어느 형체가 낙조를 가린다.
“저, 저, 전하! 지금 당장 한림원 건물을 허물….”
“불허한다. 그대들이 400년 뒤로 건너가 초판 자본론을 구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 귀한 걸 보관하는 장소에다 손끝도 대지 마라.
이미 주상은 한림원 건물의 증축과 유지 보수에 대한 지지 입장을 철회한 지 오래였다.
이미 한림원과 주상은 한 몸이었다.
“하오나 증축할 공간이 없다하여 경회루의 연못을 메움은 아니 될 일이옵니다! 태종대왕께서 넓히신 연못이온데….”
“그러한가? 어쩔 수 없지. 대신 근정전을 허물겠다.”
“…생각해 보니 연못은 연못일 뿐, 열성조께서 학문을 진흥하신 큰 뜻이 더 중한 듯하옵니다.”
한림원에 대한 공격은 모두 주상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되었다.
주상이 눈에 불을 켜고 한림원 건물에 누가 흠집이라도 내나 감시하는 사이, 종양처럼 자라나는 거대한 양옥(洋屋)을 보고 모두가 두려움에 떨었다.
또한 한림원 건물은 다층 양옥으로 공간의 밀도가 높아 조선 가옥보다 업무에 효율적이기도 했다.
즉, 새로운 관헌들이 입주하면서 주위의 사무 공간을 빨아들이기 좋았다는 뜻이었다.
관서과 관원을 빨아들이며 다시 증축의 명분이 생기고, 증축과 함께 다시 더 많은 관원을 끌어당기니….
“으어어어! 경복궁이!”
“경회루에 해가 들지 않는다!”
이제는 물러날 수 없다.
대책이 필요하다.
* * *
―“전하께서 고금의 양서들을 가까이하시니 이는 분명 나라의 흥복이며, 성인을 주군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문무 제신들의 기쁨입니다.”
주상에 대한 금칠로 가득한 문장.
대강, 이다음으로는 ‘하오나’가 나올 차례인데.
―“하오나,”
역시나.
―”하오나, 서책이 귀하다 한들 어찌 경복궁을 짓고 넓히신 열성조의 뜻보다 더 귀하고 밝은 것이겠습니까? 서책은 그저 그릇이며 그 속에 담긴 선현의 복된 말씀이 진정 아름답지 아니하겠습니까? 청컨대….”
이것으로 73번째 한림원 철거 상소문이었다.
주상은 잠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나 학문을 연구하는 데 반발이 커서야 어찌 성현의 말씀을 존숭한다는 군자국이라 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수치다.
그렇다면, 이번에 이런 되어 먹지 못한 상소문을 올린 것은 누군가, 살펴보니….
―“호조판서 성삼문.”
잘 걸렸다.
그렇게 신숙주와 박팽년과 김종직이 한림원 1층으로 불려 가던 그때, 73번째 한림원 철거 상소문을 올리던 성삼문은 이미 5층 열람실에 끌려와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다다음 날에는,
“저, 저, 전하… 소신을 어쩐 일로….”
“공판.”
“…예.”
“내 한림원 건물을 옮길 수는 없겠네.”
“요사이 말이 많았사오나 소신 또한 그리 생각하옵니다. 다만 한림원 건물의 증축이 극심하여 법궁(法宮)의 정도(正道)를 훼손하는 바가 아닌가, 하는 제신들의 불만이 있사오니….”
“그런가?
허면 법궁을 옮기세나.”
“…네?”
“호판.”
이명민이 고개를 들자 저 멀리서 볼이 움푹 팬 체 비척비척 걸어 들어오는 성삼문의 모습이 보인다.
“주게나.”
성삼문은 마치 주문이 걸린 꼭두각시처럼 영혼 없는 움직임으로 주상에게 얇은 책자 하나를 건네고, 주상은 그를 잠시 훑다가 다시 이명민에게 건넨다.
“가용한 예산일세. 호판이 크게 수고해 주었어.
…연구를 위한 자료 정리, 심층 면접과 겸사겸사로 처리해 주었네.”
저게, 한 사람에게 겸사겸사로 시킬 일인가?
이명민은 생각해 보다가 성삼문이 며칠 전 관련 상소문을 올렸던 사실을 깨닫고 경악했다.
바로 그 전에 상소를 올린 게 난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원산의 전문 건축가들과 협업하고 동료로서 마이어를 사사한 그에게 지금 경복궁의 꼴은 미관상으로도 기능상으로도 재앙에 가까웠다.
“경에게 보다 가중되어 가는 아조의 행정 부담을 최대한 감내하고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새 법궁의 설계를 맡기겠네.
경복궁은 이미 제각각으로 난개발이 너무 심하여 조신들의 말마따나 외관의 위엄을 잃어버렸고, 동선과 공간 구성의 낭비가 너무도 크네.
허나 어찌 태조대왕께서 지으신 이 궁을 허물겠는가? 경이 말한 바와 같이 ‘건축학적 테러리즘’에 가깝다 할지라도 말일세.”
끝장이군.
성삼문과 더불어 본보기로 감금당하며, 이명민은 상소문 올린 바를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 두 대신의 소식 끊김에 뭇 조신들이 두려움에 떨었다더라.
* * *
전하께옵서 다른 불운한 공조 관원들을 이곳 한림원 건물 내부로 배달해 주셨기에 비록 반쯤 감금당한 상태라 할지라도 이명민의 업무에는 차질이 없었다.
그리고 전하께서는 (마치 과시하시듯) 한림원 내부를 속속들이 구경토록 허락하셨기에,
평소 신료들로서는 감히 들어갈 수 없던 서고들까지도 돌아다니며 전하의 놀라운 수집품들을 살펴보았다.
이곳에 진입할 수 있을 만한 학식을 쌓았다 인정받은, 그 또한 논문을 읽어 본 바 있는 한림원 회원들이 노소를 가리지 않고 심지어 음양을 가리지 않고도 출입하고 있었다.
그 수가 아무리 안되어도 200명, 그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수까지 어림한다면 500명은 넘어 보였다.
이제 이들의 활동은 원산의 성과를 번역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원산 문화예술인민위원회와 긴밀히 교류하며 되레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보다 우월한 연구들을 원산에 쏘아 보내는 학문의 요람이 되었다.
이들이 써낸 논문들이 전국으로 퍼지고, 다시 그렇게 뿌려 놓은 앎의 씨앗이 거두어져 이 한림원 서고로 모인다.
―‘영남 지역 농업 협동조합 내부의 위계 관계에 대한 연구―참여 관찰법을 통하여’
―‘주자학과 과학적 사회주의의 관계 맺음을 위한 시론’
―’고려와 일본의 무역사 연구’
서고 곳곳에 유복(儒服, 유생들이 입던 의복)을 입은 이들이 눈에 띄니, 개중에는 문묘에서 보던 성균관 유생들의 얼굴도 눈에 밟혔다.
문묘에 마르크스를 모시더라도 유생들에 대한 교육은 그리 변하지 않았다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이 사회주의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이유 또한 짐작할 수 있었다.
집현전과 같이 학식 뛰어난 이들을 모아 강론과 연구와 자문을 맡았으되, 경학을 넘어 건축, 문화, 자연 과학, 사회 과학 등등을 총망한다.
관원 아닌 이들도 이곳에 모여들어 자신이 가진 지식의 편린들을 나눈다.
이들이 모두 전하의 두뇌가 된다.
조선의 두뇌가 된다.
“전하께서는 경복궁과, 특히 이 한림원 건물과 연결성을 고려하길 바라시오.”
“그는 가능할 것입니다. 이곳에다 짓는다면.”
“돈의문 근처, 사직 남쪽, 운종가 서쪽 끝이라….”
“이곳이라면 경복궁 영추문에서 나와 금방 연결될 수 있습니다.”
“아예 길을 직통으로 뚫어 버리는 것도 방법이겠소.”
또한 이명민이 새로운 법궁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어 주기도 하였고.
“…이보시오, 지지당(이명민의 호)”
“왜 그러시오, 호판?”
“한양 서쪽을 정말 싹 다 궁궐로 만들어 버릴 것이오?”
“그건….”
“그대의 약점을 잘 생각해 보시오.”
쓸데없는 공사에 앞장섰다고 세종대부터 공격받았던 이명민이다. 성삼문의 충고에 고민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
실제로, 법궁을 새로 지을 필요까지는 없다. 증축만 하더라도….
이명민은 나름 창조의 열정으로 불타오른다.
그리하여 드디어 자유의 공기를 마시며 문무백관 앞에 나아가 자신의 설계도를 펼쳐 보였을 때, 그 얼굴만큼은 환희가 넘쳤다.
다른 신료들은 감금 생활 끝에 드디어 미쳤나 싶었겠지만 말이다.
“전하, 소신이 보건대 경복궁 서편으로 증축하여 그 규모를 키움이 더 나을 듯하옵니다.
새로 궁으로 들어올 관청들을 고려하더라도 원산식으로 지어 그 밀도를 높여 헐리는 민가를 줄인다면 낭비를 최소로 줄일 수 있사옵니다.”
“그런가? 허면 그 규모는 어찌 되는가?”
주상의 물음에 이명민은 속으로 셈을 하며 헤아려 본다.
“현 경복궁의 두 배 크기가 될 터입니다.”
“…뭐라? 허면 그냥 법궁 하나를 더 짓는 것이”
“그리하면 궁으로 한성을 다 채워도 모자랄 것입니다.”
주상은 머리가 아파 오는 듯, 관자놀이를 부여잡았다.
반대로 이명민의 가슴은 한성을 다 채우는 궁을 상상하며 부풀어 오른다. 마치 게르마니아를 설계하는 히틀러처럼 행복하게 작업에 임할 수도 있으리라.
거대한 도로, 거대한 전각, 거대한 궁궐.
지난날 거선을 진수할 때 느꼈던 짜릿한 쾌감이 이명민의 뒤통수를 타고 올라온다.
기억의 재현 (2)
호랑이는 자식을 절벽에서 떨어뜨린 뒤에 살아서 올라오는 놈들만 키운다고 하던가?
물론 낭설이지만, 지금의 신숙주에게는 꽤나 심금을 울리는 바가 있는 소리였다.
작금에 온 원산이 혼란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누구도 그를 도와줄 이 없다.
아아, 결국 주상 전하와 트로츠키 동지의 품에서 떠나 이제 홀로 단단한 마음을 품고서 떠나야만 하는 것이다!
뒤돌아보지 않고 굳세게 나아간다! 이제 그는 세상 풍파에 맞서 싸우는 한 마리 외로운 새끼 호랑이….
물론 이명민 동지와 그 외 기타 등등들이 있기야 하지만, 친소파라는 진영은 본래 신숙주의 독무대.
이명민 동지는 토목 건설에 비틀린 욕망을 느끼는 양반이고, 권람 동지는 저 멀리 러시아 벌판에서 와들와들 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책임감과 무게감, 그리고 자신감을 갖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바로 신숙주의 사정이었다.
그동안 파당의 머릿수가 적고 조직의 실속 없는 것이 탄로 날까 봐 미뤄 왔으나, 이제는 진검승부를 펼칠 때.
“여러분! 당명은 마르크스 동지의 ‘공산당 선언’에서 따와 공산당으로 결정되었소!”
“공산당 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