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69
“바뀐 세상에서 너의 그 생각은 반역이다.”
“빌어먹을!”
아무런 감정 없는 카간의 말투에 결국 울분을 참지 못한 칸이 일어선다. 여전히 밧줄이 그의 팔과 다리를 옥죄며, 그 끝은 우락부락한 병사들의 손에 잡혀 있다.
그들이 자신을 무릎 꿇리려 거칠게 밧줄 끝을 움켜쥐고 흔드나, 쿠춤 무함마드는 여전히 분노에 찬 눈으로 카간을 내다본다.
“오이라트 에센! 네놈이 어떻게 카간인가? 네가, 네가 보르지긴인가? 나는 보르지긴이다! 내가 차라리 제국의 카간이 될지언정 어떻게 내가 너 같은 종자의 신하가 되겠나!”
“하… 이미 이 땅이, 아니 이 세상이 내 것이거늘 나의 신하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냐? 여전히?”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제까지나 그러하였다.”
“그렇다면야. 세상에 네가 설 곳은 없다.”
에센의 팔뚝 근육에 힘이 들어가더니, 곧 섬광이 호선을 긋는다.
쿠춤 무함마드의 모가지를 관통하면서.
―털썩.
피가 쏟아지자 오래 방치된 천막처럼 그는 무너져 내린다.
에센은 팔뚝이 얼얼함을 느낀다.
본래 완전히 머리를 몸에서 완전히 분리해 낼 생각이었는데, 힘이 부쳐 고작 목 앞부분을 베어 내는 데 그쳤다.
내려다보니 칼을 쥔 손은 주름이 졌고, 턱수염 역시 흰빛이 돈다.
“….”
“폐하, 재촉하려는 것은 아니오나 지금 장수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파란왕(波蘭王, 폴란드 왕)의 말이 맞습니다. 지금 저들이 논공행상을 바라며 다투니 아버지께서 나서셔야 합니다.”
주인이 먹이를 나눠 주지 않으니 개들이 서로 물고 잡는다는 이야기다.
에센은 한숨을 쉬고, 옆의 병사에게 칼을 넘긴 뒤 잘 닦고 손질해 놓으라 일러두고 군막으로 돌아간다.
여기저기서 조선군의 기관총 소리가 대기를 흔들어 놓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전쟁은 이렇게 끝난다.
* * *
“폐하,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그대들의 공이 크다. 그대와 지휘관들에게는 무릎까지 쌓일 만큼의 금화를 내리겠다. 더하여 장차 조선에 답례 사절을 보낼 때 그대들의 군공을 언급하겠다.”
“하오나 저희가 죽인 군사들의 수는 보잘것없지 않습니까? 어찌 주군의 앞에 나아가 군공을 자랑하겠습니까?”
저 말대로 초반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은 전력이었다.
수레는 느리고, 기관총을 실은 수레는 더 느린데, 드넓고 막힘없는 초원에서 사방으로 나다니는 기병대는 피아를 가리지 않고 빨랐으니까.
루스 전역에서 기관총을 비롯한 조선산 총포의 위력을 이미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바 있는 주치인 울루스의 군세는 이들이 활약할 기회를 주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바로 그 노력.
그 노력이 수년은 더 끌었을지 모를 전쟁의 종막을 급격히 앞당겼다.
“사라이의 군세는 현명했고, 조심성 있었다. 그대들과 벌일지 모를 단 한 번의 전투가 모든 것의 종말을 이끌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무엇보다도 잘 알았다.”
한순간일지라도, 대규모의 전투가 기관총의 앞에서 펼쳐진다면 언제든 몰살의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조선과 원산의 군기가 보일 때마다 급히 말 머리를 틀었고, 한 번도 다수가 맞붙는 회전을 시도해 볼 수 없었다. 그들에게 그런 전략이 절실할 때조차도.
제약되는 움직임들, 제한되는 선택지들의 물결에 떠밀려 결국에 그들은 악수임을 알더라도 둘 수밖에 없었다.
만일 조선의 군기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것이 기만책일 뿐 아래 선 이들이 몽골의 기병대일 확률이 높더라도 그들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 조선군의 기관총과 야포가 그들을 맞이할지 모를 그 작은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서.
그런 이들과 전쟁을 벌이고 승리를 거두는 건 쉬운 일이었다. 훨씬 지난하고 지저분한 전쟁이 되리라던 많은 이들의 예상은 기분 좋게 빗나갔다.
지금 이미, 예케 몽골 울루스의 깃발이 아스트라한(Астрахань, 카스피해 북쪽 인근의 도시. 앞서 언급한 사라이 바투와 가깝다.)에서 휘날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마땅한 보상을 거부하지 말라. 조선과의 우애는 짐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재보(財寶)이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리 인사를 올린 뒤 조선과 원산의 장수들은 궁정을 벗어난다.
동맹의 군세들이 이제 슬슬 귀국하고 있으니 할 일을 할 차례였다.
조선인들은 몰라도 특히 원산 쪽에서 이런 ‘후처리’에 거부감을 가지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사무들은 문제없이 처리되었다. 죽을 이들은 죽었고, 추방될 이들은 추방되었다.
당연히 칸의 직계와 방계는 몰살되었으며 항복하지 않은 모든 지도자들 역시 그러하였다.
하지만 이번에 취할 행동에는 에센의 ‘특별한’ 명령이 필요했다.
“이 땅의 인구는 모조리 제국 사방으로 흩어 놓겠다.”
에센의 선언에 궁정의 모두가 약간 의아한 듯한 눈빛을 보낸다.
이곳에서 반역의 여지 자체를 말소해 버리기 위해서 밟아 나가야 할 조치.
허나, 그는 본래 장인과 귀족들만을 대상으로 있어야 할 조치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곳은 이민족의 땅도 아니고 칭기즈 칸께서 이미 200년 전에 정복하신 곳이 아닌가?
우글거리는 제신들에게 카간은 다시 말한다.
“정주민들이든 유목민들이든 상관없다. 모조리, 자신의 고향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게끔 흩어 놓으라.”
“폐하! 하오나 들어가는 비용에 비하여 취할 수 있는 바가 극히 적습니다! 대체 어째서 그런 큰일을 벌이시는지 미신(微臣)으로서는 차마 짐작할 수조차 없사옵니다!”
“그렇사옵니다!”
“반역을 뿌리 뽑기 위함이다.”
대체 카간이 생각하는 반역이란 게 무엇이길래?
고작해 봐야 총관과 휘하 칸국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 것을 가지고 반역이라 주장하며 말달린 것이 이번 전쟁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전쟁의 끝에는 역시나 반역을 뿌리 뽑아야 한다면서 대규모 인구 이동을 강제하라고 요구하신다.
대체 뭘 위해서?
지금의 카간에게 반역이란 무엇이길래?
아직도 이 자리에는 왜 주치인 울루스가 반역의 땅인지, 왜 그 칸이 반역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 소소한 분쟁과 반항은 문제 삼을 수는 있더라도 반역이라 할 만큼 중죄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누구도 에센의 머릿속에서 규정된 ‘반역’이란 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면? 아무도 추측조차 해낼 수 없다면?
즉, 누구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반역자가 될 수 있고, 자신의 일상이 반역 행위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도대체 대명천지의 어떤 멍청이들이 언제 자신들의 목을 자르려 할지 모르는 독재자를 충직하게 뫼시고만 살겠냐는 말이다.
“폐, 폐하… 수저의 색깔이!”
“흠… 다시 떠와라.”
다행히도 소련이 지원해 준 것은 병력뿐만이 아니었다.
“돼지고기찜에서 독이 검출되었습니다.”
“어떤 종류인가?”
“비소입니다.”
군대와 함께 파견되어 온 의원들은 이미 조선에서도 이런 사태를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침착하게 카라코룸의 궁정에 자리 잡아 그를 보좌했다.
그들이 에센이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보좌들이었다. 허튼 욕망을 품지도 않으며, 매수되지도 않는 유일한 이들.
에센은 기꺼이 그들에게 목숨의 방벽이라 할 수 있는 상선(嘗膳) 작업을 일임하였으며, 그들은 신뢰를 배반하지 않고 목 너머에 들어오려던 아편과 비상(砒霜), 수은과 부자(附子), 석황(石黃)과 녹청(綠靑)을 걸러 주었다
마치 먼지를 막는 콧속의 코털처럼, 목구멍의 점액처럼 그의 신체 일부보다도 중했다.
그 외에도 다른 인력은 많았다.
“폐하… 앞에, 화살이 날아옵니다! 피하십시오!”
“제기랄! 암습이다! 폐하를 둘러싸고 사방을 경계하라!”
당연히 몸이 달은 몇몇은 독살이라는 ‘온건한’ 수단으로 만족하고 기다릴 수 없었기에 보다 직접적인 방안에 기대었다.
그가 거니는 사냥터도, 궁정의 구석 자리도, 카라코룸의 대로와 내전 깊숙한 곳의 침소까지도.
모든 곳에 칼날이 드리우고 카간이 피 흘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데서 의원은 쓸모없다. 필요한 것은 칼 찬 이들뿐.
아락투무르는 누구보다도 그의 치세하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보았던 이다.
주르첸에 대한 통치권을 위임받았을 시절에는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교역로인 대(對)조선, 대(對)원산 교역로를 보호하는 역할로써 막대한 부를 벌어들였고, 이후 만주국의 성립과 함께 퇴임할 때도 조선과 원산으로부터 받은 위로금이 대단했다.
주치인 울루스의 반란 이전 십수 년 동안 전쟁을 치르지 못했으나 그가 전혀 불만을 가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였다.
이렇듯 새로운 체제 하에서 이득을 보는 아락투무르에게 모든 보수적 귀족들의 불만이 향하게 되니 그로서는 카간을 온몸을 다해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는 카간이 일부러 그를 총애하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서 유도한 바이기는 하지만.
그는 이제 폴란드로 봉해져 유럽 전선에서의 단물을 얻기 위해 떠났으나, 그가 남기고 간 충직한 병력들과 그의 자식들만이 에센을 지키는 가장 신뢰할 만한 방패로서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몽골의 지배자가, 세계에서 가장 광대한 제국의 카간이 의지할 바가 고작 외국의 의원들과 신뢰하는 장수(그는 몰랐지만 본래 역사에서 그에게 반역을 일으키는)의 친위 부대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 외에는 무엇도 그를 죽음으로부터 지켜 줄 수 없었다.
오직 에센만이 조선으로부터 막대한 무력을 빌려 올 수 있기에, 그 결과 주치인 울루스를 처참할 정도로 지르밟아 놓는 광경을 모두가 보았기에 대대적 반란이 일어나지 않을 뿐.
그 상황도 언제 바뀔지 모른다.
그러니 에센으로서는 쿠춤 무함마드의 유언을 떠올릴 수밖에.
―“네가 보르지긴인가?”
아니다.
―“내가 너 같은 종자의 신하가 되겠나?”
그 역시, 아니었다.
아주 기본적인 신뢰 관계, ‘난 네 가족이니 안전하다’, ‘난 널 어릴 적부터 알아 왔기에 믿을 수 있다’라는 원초적인 기반.
칭기즈 칸과 그 후예 보르지긴들이 세계를 정복한 뒤, 20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 혈족에 쌓인 신뢰와 기반은 두터워져 갔다.
그리고 그 혈통과 신뢰와 기반을 모조리 부숴 버리고 권좌에 오른 에센.
수백의 독살자들을 목조르고, 수천의 암습자들을 베어 버려도, 그 200년 세월을 그 홀로 이길 수는 없다. 칭기즈 칸의 이름을 이길 수는 없다.
그의 추종자들이 그를 칭기즈 칸의 재림이라며 금칠하지만, 여전히 보르지긴 테무친(칭기즈 칸의 휘)의 후예들은 그를 적대하리라.
그의 제위가 이어지는 한 영원히 겪어야 할 투쟁과 불안정, 죽음의 위협.
이것이 단지 세월에 따라 잦아들 잔바람인가? 아니면 젊은 제국을 꺾어 버릴 폭풍인가?
“만일 짐이 죽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
사석에서조차 ‘나’가 아니라 ‘짐(朕)’으로 스스로를 호칭하는 아버지에게 호루크다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무릎 꿇을 뿐이었다.
에센의 목숨이 다함과 함께 수명이 끝날 제국이 아닌가?
그가 가진 유일한 정통성, ‘위대한 정복자’라는 업적이 없는 자손들이 권좌를 이어받는다면.
그때부터 이어질 것은 이제 암살 시도가 아니라 반란과 내전이다.
“짐은 고작 수십 년을 갈 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발버둥친 것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소자 또한 뼈와 살을 바쳐 아버지를 돕겠습니다!”
“…아락투무르를 다시금 불러오라. 앞으로의 대계를 위해서는 그가 필요할 터이니.”
저들이 짐을 의심하고 짐의 제국을 찢으려 한다면,
짐과 짐의 혈족을 따르지 아니한다면,
나 역시 그들을 따르지 않겠다.
몽골을 바꾸고 길들여 놓겠다.
* * *
/ 작가의 말
아락투무르는 폴란드 왕(파란왕)에 봉해졌습니다. 문맥상으로만 파악하기 어려울 듯하여 첨부합니다.
초원을 뒤덮는 숲 (2)
“명국의 ‘원사(元史)’는 그 내용이 어떤가?”
수년 전의 어느 날, 카간이 물으니 어느 문관이 앞으로 나서서 무릎을 꿇었다.
“폐하, 명을 건국한 도적 주중팔(홍무제 주원장의 초명)은 아직 대원(大元)의 황통이 끊어지지 않았음에도 마치 대원이 멸해진 것인 양 사서를 집필하였사옵니다.
이는 천하를 찬탈한 도적 떼가 스스로 부끄러워하니, 대원의 이름에 먹칠이라도 하여 제 이름에 묻은 오물을 가리려 한 것이옵니다.”
고작해야 두세 해 정도 되는 기간 만에 몽골 제국 200여 년의 이야기를 모두 담은 사서를 집필해 냈다?
역사를 잘 모르는 이들 또한, 듣기만 하더라도 원사의 집필 과정에 뭔가 석연찮은 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으리라.
중화의 전통에 따라 새로 개창된 왕조는 멸망한 전조(前朝)의 사서를 집필하니, 원사의 집필 역시 문관이 언급했듯 멀쩡히 북쪽으로 도망쳐 간 원을 마치 멸망한 것처럼 치부하기 위한 일종의 사기였다.
유창한 답, 예상 그대로의 답이 나왔고 에센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더 말을 덧붙일 필요도 없겠군.”
다시 집필하라.
그 하나의 명령이 예케 몽골 울루스 전역으로 퍼져 나간다.
위대한 제국에 대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라는.
* * *
에센의 의도는 간명했다.
‘원의 몰락은 무엇 때문인가?’
옛 황금씨족의 몽골은 어째서 몰락했는가?
동쪽의 고려부터 서쪽의 독일인들까지 무릎 꿇렸던 대제국은 어떻게 바스러져 갔는가?
‘결국에는 후계 구도 때문이 아닌가?’
에센은 그렇게 생각을 굳혀 나갔다.
쿠릴타이(Quriltai)를 통하여 칸을 선출하기에, 그를 둘러싼 암투와 분열이 끊임없이 제국을 좀먹었다.
황위를 향한 권력 투쟁을 위해 각 후계자를 주축으로 모인 세력들은 카간위의 공백기부터 정치적 역량을 크게 소모하면서 새로운 카간을 옹립하였다.
그 과정에서 숱한 정치적 채무를 지고, 무수한 밀약을 맺은 카간이 제대로 된 통치를 펴기에는 어려웠을 터이고.
특히 원 세조(世祖) 쿠빌라이가 자신의 지지자들만 모인 쿠릴타이를 소집해 카간이 되었을 때, 그 정통성 없는 즉위 과정 때문에 제국의 분열이 가속되지 않았던가?
‘결국에는 확고한 후계 구도가 주는 정통성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카간의 권위가 에센 개인의 위업에만 달려 있는 상황이라면… 그의 아들대에 이르자마자 제국은 붕괴하리라.
적장자에게서 적장자에게로 이어지는, 권위의 축적.
에센이 바라 마지않는 강력한 왕조를 위한 선제 조건이었다.
아들들 역시 이러한 기조에 반발하지 못했다. 아버지 역시 무수한 암살 위협을 겪는데, 만일 자신들끼리 분열된다면 그중 누가 살아남을 수는 있겠는가?
그렇기에 호루크다슨에게 황통이 이어져야 한다는 황실 내부에서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허나 어디까지나 이는 내부에서의 합의.
에센에게는 더 넓은 영역에서의 확고한 동의가 필요했다.
제국은 적장자에게 물려져야 한다는 모두의 공감대가 있어야지만 호루크다슨이 장차 자신의 지위를 물려받고 나서도 말썽이 없으리라.
원사 재집필의 명이 내려지고 수년.
제국 곳곳에서 명망 높은 학자들이 카라코룸으로 모여들기까지만 하더라도 수년이 걸렸다.
동서로 뻗은 광대한 영토에서 한 사람 한 사람씩, 가마로, 마차로, 필마로 움직이며 그들은 속속들이 에센의 궁정으로 모여들었다.
그들 모두가 잘 정비된 도로 위를, 해 지는 곳부터 해 뜨는 곳까지 이어진 도로 위를 내달리며 새로운 세계 제국의 도래를 실감하였다.
에센이 내심 그들에게 내비친 요구는 한 가지.
“몽골의 몰락에 관한 전모를 세세히 밝혀 내라.”
그것이 어떻게 황족들 간의 쟁투로서 얼룩지고 쪼개졌는지, 얼마나 비참하고 바보 같은 정쟁이 제국의 사지를 마비시켰는지 적확하게 적어 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