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72
대체, 어떻게?
“원래 주치인 울루스는 루스에서 영주들에게 지배를 맡기고 그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었소.”
“그렇습니다. 비효율적이고, 반농민적인….”
“그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소. 귀족들은 하나하나 제압함은 역량의 낭비요. 게다가 직접 부세와 징세를 맡는 일 자체가 광대한 칸국에는 그 자체로 비효율이었을 터이니.”
그런데 놀라운 수로 귀족들을 제압하였고, 농민들을 효과적으로 지배하면서, 반란을 성공적으로 억제하였다. 심지어 몽골군이 대규모로 파병되기 전부터!
만일 이들이 아니라 다른 몽골인을 총관으로 세웠더라면 쉼 없이 일어나는 반란을 진압하는 데 급급하여 결국 루스를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 잃고야 말았으리라.
“묻고 싶구려. 어찌 이 모든 일을 해낸 것인지 말이오.”
“그건….”
적당히 외교적 요인 접대를 생각하고 있던 듯한 에드워즈는 갑작스런 질문에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긴다.
조용히 자신의 배꼽께를 내려다보며 생각을 정리하던 그는 곧 입을 연다.
“저희의 방책을 예케 몽골 울루스가 따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런 목적이라면 단념하셔야 할 겁니다.”
“어찌 그리 이야기하시오? 나라의 대사를 어찌 시도해 보지도 않고 귀결을 알 수 있다는 말이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에드워즈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귀족들의 경제적 기반을 서서히 잠식할 수 있습니까? 러시아의 지주 귀족들은 서방에 곡물을 수출하며 돈을 법니다. 저희는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직할령의 토지 생산력을 높여 그들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 휘하 백성들을 회유할 수 있습니까? 압도적인 생활 조건과 더 나은 대우를 약속함으로써 귀족이 거느리는 백성들을 빼내 올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에드워즈는 잠시 멈칫하다가, 결국 셔츠 단추 몇 개를 풀어 쇄골을 내보인다.
가느다란 흉터.
“칼날이 왼쪽으로 5센티미터만 더 틀어졌어도 찔리는 건 제 목이었고 총관부는 머리를 잃었을 겁니다.
제가 죽어도 총관은 다시 파견할 수 있을 테지만, 카간 폐하께서 돌아가시면 모든 게 끝장 아니겠니까?”
“허면….”
“휘하에 문사를 거느리고 계실 겁니다. 또한 저희 쪽에서도 붙여 드릴 학자가 몇몇 있습니다. 서책과 학자를 보내 드릴 테니 한번 대화를 나눠 보십시오.
어째서 유목민 부족들이 다스리는 몽골이 러시아처럼 될 수 없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드릴 것입니다.”
그리 이야기한 뒤, 에드워즈는 다시 옷을 여민다. 그 뒤로도 다양한 주제에 관한 몇 가지 정중한 이야기가 오가니, 곧 하루 일과는 마무리된다.
비단으로 만든 휘장이 휘날리는 화려한 천막에서, 아락투무르는 다시금 홀로 앉아 생각한다.
에드워즈가 보내어 그의 앞에 산처럼 쌓인 이런저런 서책들을 살펴본다.
―’한역 자본론 제1권’
―’한역 임노동과 자본’
대체… 이게 뭐지?
* * *
/ 작가의 말
환단고기 정도 여섯 번 이상 정독하셨을 여러분은 이미 아시겠지만, 시시포스는 사실 김시습에서 유래했습니다. 시시포스가 밀었던 것은 바위가 아니라 비단 50필이었던 것입니다. 강단 사학자들에 의해 숨겨진 우리 민족의 진실, 이제는 밝혀낼 때입니다.
초원을 뒤덮는 숲 (5)
도르파트(Dorpat, 오늘날의 에스토니아 타르투 주) 주교구의 어느 수도원은, 유럽의 대부분의 지역과 다르지 않은 고즈넉한 시골이었다.
영지를 소유한 수도원을 중심으로 몇몇 저택과 주요 시설들이, 그리고 민가와 밭들이 뻗어 가는 작은 장원.
그렇기에 왜 에드워즈가 초라하고 조용한 이곳을 굳이 행선지로 추천했는지, 아락투무르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수도원 앞에 닿기 전까지는.
“십자가가 너무 무겁습니다. 조각낼까요?”
“시시포스 동지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비록 허위를 빚어낸 상일지라도 인류의 장엄한 산물일세. 부수지 말고 성모상과 함께 옮기게.”
“예, 알겠습니다. 동지.”
조각내?
아락투무르로서는 경교(景敎, 기독교의 분파인 네스토리우스파)를 신앙하는 귀족들도 여럿 보았고, 오이라트 내에서도 그 신자들은 꽤나 수효가 컸으니 아예 기독교가 낯설지는 않았다.
물론 이곳의 카톨릭과는 뭔가 복잡미묘한 차이가 있다고는 하나 결국에는 흠숭하는 바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알았다.
그런데 십자가를 조각내느니 하는 소리가 무려 수도원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그것도 사제의 수단을 걸친 이들의 입에서.
사제의 수단(Soutane)을 걸치고 있으나, 온통 붉은색 천을 두르고 있어 계급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곧 개중에 나이 든 남성이 걸어 나와 그에게 먼저 꾸벅 고개 숙이니 아마 이자가 우두머리인 듯하였다.
“폴란드의 군주를 뵈옵나이다. 수도원장인 페테리스(Peteris)입니다.”
“수도원장이라고? 어찌 다른 수도사들과 같은 의복을 입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뭘 하는 건가?”
“보시다시피, 옛 시대의 잔재들을 쓸어 내고 있습니다.”
자신을 수도원장이라고 일컬은 노인은 깡마른 손가락을 들어 저 도금되고 보석이 씌워져 반짝이는 성상들을 가리킨다.
“옛… 시대의 잔재라니?”
“저희가 이곳을 떠나온 지 벌써 7년은 지났습니다. 카간 폐하의 군세가 이곳을 수복하여 다시 돌아왔으니 이제 수도원은 인민의 것이 될 준비를 해야 하겠지요.”
노인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기품 있고 인자한 인상의 성직자다.
아마도 귀족 출신일 것이기에 유럽인들이 ‘예의 바르다’라고 생각할 만한 말투와 몸짓을 취하는 데 능숙한, 그런 성직자.
허나 통상의 수도원장과는 단 한 가지 차이가 있었을 뿐.
눈.
눈이 뭔가에 사로잡힌 듯 타오르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태우는 듯 그 열기가 일순간 아락투무르를 압도했다. 통역 역시 그의 말을 옮길 때마다 눈을 마주하며 움찔거렸다.
“허나 저것들은 그대가 섬기는 대상이 아닌가?”
“섬김의 대상이라… 이제 아닙니다. 저것들은 ‘억압받는 피조물들의 한숨이고, 심장 없는 세계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조건의 영혼’이지요.”
무언가 시처럼 읊어 낸 노인은, 잠시 눈을 감는다.
“정부 수반 동지께서 저에게 먼저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전하께 제 미약한 깨우침에 관하여 말씀드리라 전해 들었사오니 이 노인의 신변잡기를 부디 지루해 말고 들어 주소서.”
“루스 총관… 아니, 러시아 수반이 그리 이야기했다면 듣겠다.”
노인은 다시 눈을 뜬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현재를 보지 않는다.
“수년 전, 전화(戰火)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던 나날이었습니다.”
* * *
몇 줄기 연기들이 하늘로 솟는다. 위대한 카지미에시가 용사들을 이끌고 이교도 군주를 무찌르러 향한다는 소식에 모두가 기도를 올렸다.
그 기도에는 신실함이 담겨 있었고, 이곳을 중간지로 삼아 오가던 기사들의 눈에도 역시 용맹이 실려 있었기에 그들은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갈갈이 찢긴 깃발과 반쯤 잘려 나간 사지를 안고 돌아오는 패잔병 무리들을 보기 전까지는.
모두가 겁에 질려 피난을 떠나야 한다고 할 때, 단호히 막아선 것은 수도원장이었다.
그저 농노와 수도사들일 뿐인 무리가, 들판을 넘어가다가 몽골군을 마주쳐 살아남을 리가 없다.
‘요새화된 수도원에 식량을 비축하라.’ ‘무기를 들어라.’ ‘영민들은 모두 집결하라.’
그들은 성호를 그으며 이교도의 말발굽 소리만을 기다렸다. 기다리면서도, 그것이 영영 오지 않기를 바랐다.
허나 정작 찾아온 것은 백기를 든 채 찾아온, 붉은 수단을 걸친 폴란드인과 리투아니아인 몇몇이었다. 기묘하게도 무리의 수장은 타타르인이었고.
그들은 무장을 해제하라 하였다. 가당찮은 소리에 그들의 목을 잘라 내걸겠다고 협박했음에도 그들은 꿋꿋이 서서 자비를 베풀어 주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만일 거기서 그쳤다면 그들의 용기를 칭찬하고 나서 도륙했으리라.
허나 그들은 다른 협상 무기 역시 가지고 있었다.
“말해 보십시오. 당신들의 주군이라던 카지미에시는 당신들에게 무얼 해 주었습니까? 요새의 식량 상황은 비참하군요. 아마 오고 가던 병사들이 털어 갔을 겁니다. 아닙니까?”
“마치 식량을 내줄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이틀, 이틀만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이틀 뒤, 다시 백기를 든 일행이 일전의 사절들에 합류하러 왔다.
호밀과 이상한 작물들이 가득한 수레를 끌고서.
모두 굶주린 농민들을 먹이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다시 말해 보십시오. 카지미에시는 무얼 해 주었습니까? 그를 부추긴 교회는 무얼 해 주었습니까? 교황은 어떻습니까?”
“베드로의 후계를 망령되이 언급하지 마시오!”
“당신이야말로 인민의 목숨을 함부로 버리지 마십시오!”
타타르인은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귀신을 좇아 산 사람을 죽이니 이는 폭군이요,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없던 이에게 싸움을 걸어 다시 백성의 배를 주리게 하니 이는 구제할 길 없는 잔적(殘賊)들이라! 이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교황이라는 작자는 또 무슨 요승이란 말입니까!”
“….”
이교도의 말에 반박조차 할 수 없었으니, 그 무엇보다도 참담한 기분이었다.
“하아… 항복하지 못하겠다면 좋습니다. 식량은 그냥 내드리겠습니다.”
“무슨….”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책 몇 권만 읽어 주십시오. 그리고 대화만 좀 나누어 주십시오.”
수도원장은 그 하찮고도 기묘한 제안에 불신을 보이면서도 결국 응했다.
그가 만일 대화 상대에 대해 잘 알았더라도 응했을까?
상대가 세 살 적에 시를 짓고, 다섯 살 때 중용을 익혔던 김시습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아마 응했으리라.
“전하, 저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뚫고 가장 귀중한 것을 얻었습니다.
바로 진실입니다.”
의심 속에 파고든 새로운 논리와 믿음.
수도원의 모두가 전향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영민들을 이끌고 전장이 될지 모르던 도르파트를 떠나갔다가, 일진일퇴를 거듭한 끝에 이곳이 완전한 후방이 되자 다시 돌아왔다.
폐허가 된 마을에 벽돌과 시멘트로 집을 짓고, 수도원을 개조하여 협동조합 회관 삼았다.
그렇게 ‘붉은 사제들’의 거점지가 하나 더 건설되었다.
“전하께서 바라시던 바를 드리겠습니다. 저희 수도사들은 모두 이곳을 가꾸는 데 열심이나, 몇몇 새로 들어온 이들이 세상 구경하기를 바라니 전하의 무리에 딸려 보내겠습니다.”
“….”
잠시 아락투무르는 노인의 열정과 이야기에 압도되었다가, 자리를 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두 사람이 그의 천막으로 초대되는데….
* * *
“아아! 주군, 보십시오! 진리는 언제나 간명합니다!”
“자본주의의 승리와 그 발전적 해체가 너무도 자명하지 않사옵니까? 너무도 명확하지 않습니까?”
“…자네들이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했나?”
“저는 버크셔(Berkshire) 출신의 헤럴드입니다, 전하.”
“저는 브르타뉴(Bretagne)의 롤랑이옵니다.”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저희 모두 동방의 위대한 나라 ‘티오손(Tioson)’을 이념의 조국으로 삼고, 현명왕 혼위우스 1세(Honuius Sensatus)를 마음의 주군으로 섬기며, 현자들의 가르침을 벗 삼아 살아가고 있으니 누가 저희를 배교자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이교도와의 전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에 헐레벌떡 달려온 숭고한 기독교인들.
이교도들을 개종시키고 주님의 말씀 아래 순종하는 새 삶을 살게 만들겠다며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던 젊은이들.
그런데 짠 하고 종군 사제로서 도착해 보니, 짜잔 하고 부대가 몰살당해 있었다.
―“끄, 끄아아악! 그냥 목을 잘라! 그냥 목을 잘라 달란 말야!”
―“이 친구도 고약하군. 우리는 땅에 피를 흘리는 모욕을 자네에게 겪게 하는 야만인이 아닐세. 자애롭게 목 졸라 죽여 주겠네.”
―“시발! 제발 빨리 끝내애액, 켁, 케큭….”
와우.
그 꼬라지를 보고 허겁지겁 도망가려다 보니 사람의 발이 말보다 빠르지 못하다는 하느님의 설계 오류로 인하여 붙잡히고 말았다.
수상한 마차에 강제로 올라타 와들와들 떨면서 식인 장군 고르바초프의 악명을 되새기고.
기묘할 정도로 건더기가 많은 수프를 먹으며 이교도들의 온갖 잔인한 처형법을 상상했다.
그리고 따뜻한 천막 안에서 모포 덮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다음부터는 뒤늦게 드는 생각.
“왜 이렇게 잘해 주지?”
그리고 마주한 것이 바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귀, 귀인은 누구시기에 타타르인이면서 라틴어에 그리 유창하십니까?”
“하하, 배우고 익히면 뭔들 깨치지 못하겠습니까?”
시시포스라는 이름의 구세주였다.
힘들고 공포에 찌들었던 지난 날, 갑작스레 잘해 주는 의외의 인물 인물 등장, 갑자기 풀어지는 긴장감.
흠….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세뇌의 필수 요건이 완벽하게 충족된 상황이었다.
해럴드와 롤랑은 그렇게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폴란드의 국왕 전하! 저희의 눈에는 이제 좀 더 명확하게 보입니다. 아주, 아주 명확하게 보입니다! 아아!”
“아아아아!”
“…자네들은 왜 그러나?”
“전하께서는 보이지 않으십니까?”
뭐지? 대체 뭐가 보인다는 거지?
에드워즈의 조언에 따라 같이 이야기 좀 나눠 보라고 데려왔던 문사들도 갑자기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뭔가 기이한 말들을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이해가 될 듯 말 듯 아리송한 소리들이 그의 앞에서 오간다. 노동과 자본의 상호 발전, 자본가 계급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는 과정, 그리고 어쩌고저쩌고….
대강 나라를 융성하게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는 요인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듯싶기는 한데….
“아무튼 자네들 역시 카라코룸으로 와 줄 수 있겠나?”
“그, 저희의 큰 스승님이신 시시포스 동지와 라무스 동지께서 허락해 주셔야만 하옵니다만….”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할 터이니 한번 생각해 보게.
방금 그 이야기들을 예케 몽골 울루스의 카간 폐하 앞에서 할 수 있는 기회일세.”
유념해 두어야 할 것은, 이들이 애초에 목숨 따위 내던질 각오를 하고 이 동유럽에 달려왔다는 것이다.
“가, 가겠습니다!”
“저도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신념의 방향성이 ‘조금’ 달라지긴 했으나 이들의 용기가 어디로 가겠는가?
다시 이들의 찬사와 감사 기도에 시달리느라 한 대여섯 시간을 기진맥진하게 보낸 아락투무르는 곧 지친 몸을 이끌고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온다.
서기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에게 지필묵을 들게 시킨다.
“명단에 추가할 사람이 둘 더 생겼네.”
“철학자이옵니까? 아니면 신학자이옵니까?”
“아랍인은 아닐세. 적어 두게. 헤럴드, 롤랑….”
그렇게 아락투무르의 천막 무리에 뒤따르는 학자가 두 사람 더 늘었다.
레닌그라드로 향하여 도르파트의 수도사들이 정리하던 성상들을 전달하니, 원산인들이 싱글벙글 웃으며 받아 든다.
“아, 이 귀한 것을! 전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건 어쩌려고 하나? 녹여서 팔 거라면 알겠지만 그대로 두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