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75
물론 그 깊이와 세부사항은 ‘많이’ 차이가 날 수도 있겠지만.
“더하여 에드워즈 수반이 전하건대, 조선과 원산에 이러한 사상이 흥기하니 곧 문물의 기틀이 되었다 하였사옵니다.”
“허면, 만주국에서 넘어오던 그 이상한 작자들 역시….”
“아마 이들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옵니다. 저 또한 만주국 건국 과정에서 직책은 인계하며 이런 이들을 조금 보았사온데….”
“저자들과 비슷하게 붉은 적삼을 걸친 왜인들도 있지 않던가?”
“그렇사옵니다. 아마 조선을 흠숭하는 이들일 것이옵니다.”
사제들을 홧김에 잡아 가두었으나, 사서 수찬에 소소한 요구를 하였다 해서 이리 오래 수감해 둘 수는 없다.
제대로 된 명분도 없는데 그런 짓을 계속하다간 정치적 역량만 소모할 뿐.
“미안하군. 계속 얘기해 보게나. 그 ‘종교’라는 것에 불교도 포함되는 건가?”
“물론입니다! 불교는 물론 기독교, 이슬람교 등등 모든 비과학적인 믿음이 포함됩니다!”
어디까지나 ‘제대로 된 명분’이 없다면 말이다.
없으면 제대로 된 것을 수입해 오면 되고.
마치 갈증에 차 있던 이에게 물주머니를 안겨 준 듯 에센의 눈이 빛난다.
아락투무르도, 그가 데려온 나머지 학자들도, 열변을 토하는 롤랑인지 헤럴드인지 하는 작자들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에센의 머릿속에서 어떤 발상이 들었는지, 자신들이 그 발상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말이다.
“그래서 원사의 수찬에 고승전을 뺀 바에 대해서는….”
“모두 인민을 현혹하는 자들일 뿐입니다! 무엇이 본받을 게 있다고 그를 굳이 기록하여 남기겠습니까?”
오직 아락투무르만이 불길한 예감에 이마의 땀을 찍어 낼 뿐.
* * *
초원을 뒤덮는 숲 (8)
경의선이 건설되고, 요동을 건너는 몽골 상인들은 굉음을 내며 달려오는 조선의 물자들에 경악을 표하는 일이 잦았다.
허나 조선의 문물이 괴악한 것이 한두 번인가?
저 나라는 강철도 기묘하게 만들고, 옷감도 밭에서 캐내는 양 막대한 분량을 뽑아내고, 무슨 강철로 만든 배도 나다니는데, 강철로 만든 길에 강철로 만든 뱀 꼬리가 기어 다녀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몽골을 한동안 뜨겁게 달구었던 조선과 만주의 이런저런 소식들은 이내 관심에서 사그라든다.
대신 시장에 급작스레 대량으로 풀린 조선산 목면이 가져다줄 이익만 화제로 나돌아 다녔다.
몇몇 상인들이 잠시 이를 심상찮다 싶어 눈여겨보았으나, 제가 뭐 할 수 있는 일도, 눈여겨봐서 좋을 일도 없으니 곧 개개인의 소소한 호기심도 한풀 꺾였다.
허나, 유럽 전선에서 마주한 기관총은 이야기가 달랐다.
군사의 일이니 나라의 내로라하는 장수들이 모여 그 위용에 감탄도 하고, 충격도 받고, 정보와 자원을 캐내려 온갖 수를 다 써 보았으나 결론은 똑같았다.
‘만들 수 없음.’
“복제할 수조차 없다 이 말인가? 버려진 총기는 십수 정이나 주지 않았나?”
“하오나 폐하, 저 화약이든 저 강철이든 어떻게 저희로서는 따라잡을 수가 없사옵니다!”
철로든, 광목이든, 곡식이든, 그런 것들을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몽골은 약탈자이자 무역상의 입장이니까. 정주민들에게서 ‘수확’하면 되니까.
허나 몽골의 밥줄인 무역 우위를 끊어 낼 ‘기관총’이라는 변수는?
제아무리 조선이 최우방국이라 할지라도 그 존재가 가져다준 충격은 막대했다.
다만, 더 어찌할 수가 없으니 외면할 뿐.
조선은, 원산이라는 동맹을 끼고서 이제 만주에까지 발을 뻗쳤으니 막을 수 없다.
그 ‘친절한 거인’이 언젠가 몽골과의 동맹이 타산에 맞지 않는다 판단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저들이 어떻게 명의 작은 번국에서 저렇게 성장했는지, 불과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칭신(稱臣)해 오던 땅이 어떻게 저런 별천지가 되었는지 궁금해할 뿐이었는데….
“그래서, 노예 노동은 결국 그 끝에 다다른다는 것이로군. 채찍질하여 억지로 말을 굶겨 가며 일 시키는 것보다는 먹이를 주고 상벌을 엄격히 해야 잘 달리는 것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노예도 그리 강권으로 일하게 하며 제대로 된 몫을 주지 않으면 ‘생산성’이란 게 떨어질 수밖에.”
“바로 보셨습니다! 몽골 제국 치하에서 약탈당하는 이들의 생산성 역시 그리하여 떨어지는 것이죠!”
“몽 듀(Mon Dieu, 맙소사)! 카간 폐하께서 그 영묘함으로 역사의 진실을 꿰뚫어 보시니 저희로서도 놀라움을 감출 길이 없사옵니다!”
…그 전말이 곧 에센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물론 꽤나 부족한 스승들이었지만, 이들이 제공하는 이익은 충분했다.
“그대들이 말해 보게. 미신은 어떻다고 하였나?”
“종교는 구체제의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니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습니다!”
“그래, 그렇게 조회에서도 이야기하게.”
에센은 마치 말 잘 따라 하는 앵무새처럼 두 사제를 다루었다.
“그렇다면 종교라는 것이 국정에 끼어든다면 나라가 어찌 되겠는가? 우리 예케 몽골 울루스도 조선과 같이 단단한 강철을 제련하고 러시아처럼 많은 백성을 너끈히 먹일 수 있게 될 수 있겠는가?”
“물론 불가능할 것입니다, 카간 폐하!”
옳지.
이 말이 몽골의 조정에 불러일으킨 뜨거운 반응은….
“폐하, 하오나 강경한 대응은 경교도들의 무수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나아가 티베트의 라마승(喇嘛僧)들 역시 이반할 것이 분명하여….”
“그대는 몽골의 신하가 맞소? 방금도 이야기하지 않았소? 몽골은 이대로 가다가는 훗날에 반드시 패망한다 하지 않소? 그대는 입도완(立陶宛, 리투아니아)에서 조선군의 위세를 보지 못했소?”
“맞습니다! 문선왕(文宣王, 공자에게 원나라가 올린 존호)께서도 군자는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는다 하셨거늘! 이를 어긴다면 가르쳐 일깨울 뿐이지 어찌 반발이 두려워 허물을 두둔하겠습니까?”
뭐, 굳이 말로 다 하지 않아도 되리라.
조정의 대신들은 대경하였다.
우리와 상관없는바, 알 필요 없는 바라 여겼던 조선국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는 일부터가 충격이었을 텐데.
더하여 그로써 유목 제국이 망하느니, 종교가 어떻느니, 하는 소리가 나오니.
이 감정은 마치 외계인으로부터 미국의 멸망을 전해 듣는 현대인의 충격 같을까.
물론 이 모든 소동의 원인이 된 두 사제는 막상 지식이 일천해 같은 소리만 반복하였다.
종교는 나쁘다, 카간은 좋다, 종교는 미개하다, 조선은 위대하다, 종교는 야만이다, 유목민은 망한다….
허나 일단 동녕총관부에 부임해 있던 아락투무르가 두 사람의 지식을 공인하기도 했고, 실제로 조선군과 함께 주치인 울루스나 폴란드를 정벌해 본 이들 입장에서는 경악스러운 한마디 한마디였다.
오히려 저렇게 단순한 말들이나 자극적으로 반복하니 더욱 효과가 크기도 했고.
몽골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앞으로 ‘필연적’이라는 역사의 발전에 밀려 마치 얼룩이 씻겨 나가듯 사라지지는 않을까?
사실 에센에게도 예상 이상으로 이들의 지식이 충격적이었던 만큼, 제신들 역시 크게 동요되고 휩쓸리기도 하였다.
“허, 허나 지금의 카간 폐하께서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동유럽의 세폐를 크게 거두어 들이시고 있으니 지금 간접적으로나마 몽골은 진보의 혜택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가 봤을 때는 카간께서 몽골을 이끄시면서 몽골은 몇 세기는 더 발전을 거듭한 듯합니다!”
물론, 이들을 살살 구슬려 입맛에 맞는 말들을 내뱉게 한 것은 에센이었지만.
아락투무르를 시켜 만주나 조선에서 ‘제대로 된’ 정보통을 몰래 소개받으려 애쓰고 있으니 이들은 스피커로서 충실히 작동해 주다 돌아가면 그만이다.
일단 그렇게 종교인들을 궁중에 ‘모셔 놓는’ 일이 무기한으로 연장되고 나니, 일은 간편해졌다.
다시금, 사서 편찬의 문제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 * *
명나라가 집필한 ‘원사’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카간은 명의 추적에도 살아서 북쪽으로 천도했는데 마치 왕조가 멸망한 마냥 사서를 집필한 것이나,
장장 200년에 가까운 기간에 걸쳐 역사상 가장 거대한 강역을 이룩한 왕조의 사서를 고작 2년 만에 편찬한 것이나,
한족 관료들이 방대한 몽골어 사료는 팽개치고 한문으로 된 사료만 대부분 인용한 것 등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흠… 이미 차고 넘치는 것 같기는 한데, 놀랍게도 남아 있는 바가 있다.
“폐하, 명조는 여러 울루스로 나누어진 예케 몽골 울루스의 국체를 생각지 않아 제왕전(諸王傳)이나 제후전을 따로 편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카안 울루스 바깥의 칸들 역시 그 왕사(王史)가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朱, 명나라의 국성)씨 도적 떼가 저들이 차지한 강역에 갇혀 마음을 편벽되이 먹었으니 서방의 숱한 영토들의 이야기가 잊혀졌사옵니다.”
즉, 세계 제국인 예케 몽골 울루스를, 중원만의 왕조로서 묘사했다는 것.
명으로서는 자신들이 ‘멸망시킨’ 왕조로부터 적법하게 중화의 천명이 옯겨 왔음을 보여 줘야 했던 만큼, 세계 제국으로서의 예케 몽골 울루스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거기에 대해 에센은 잠시 이런저런 방식으로 머리를 굴려 본다.
“허면 그는 마땅히 교정되어야 할 터, 카안 울루스(원나라)와 주치인 울루스, 차가타인 울루스, 훌레구인 울루스의 칸을 모두 본기로 포함하여 쓰라.”
“예? 하, 하오나 폐하… 그는….”
에센의 칙명은, 단지 명의 오류에 대한 ‘교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폐하! 에케 몽골 울루스의 카간은 카안 울루스의 칸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울루스의 칸들을 본기로 적을 수는 없사옵니다. 그들은 마땅히 제후이거늘….”
“어느 제후가 임금을 뽑고 세운다는 말이더냐?”
황제들의 전기를 묶은 본기(本紀)와, 나머지 역사적 인물들의 행적을 엮어 낸 열전(列傳).
소위 ‘기전체(紀傳體)’라는 사서 편찬 방식은 저 둘에 다양한 표와 자연 기후와 사회적 기록을 더하여 완성된다.
고로 지금 에센의 말은 네 개의 울루스를 각각 황제국으로서 동등히 취급하라는 이야기.
“오고타이 칸이 막냇동생에게서 카간위를 찬탈하여 네 개의 울루스가 형제끼리 다투어 갈라졌으니 네 나라의 칸은 모두 군신의 관계가 아니라 형제의 관계가 아니겠는가?”
즉, 몽골 제국이 통일되어 있던 것은 칭기즈 칸 이후 잠시뿐이고, 쿠빌라이 칸 이후에 모두 분열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하오나 그리하면 예케 몽골 울루스의 역사가 50여 년으로 극히 짧아지게 되옵니다!”
학사들은 몰랐겠으나, 그게 정확히 에센이 의도한 바였다.
‘보르지긴이 다스리던 제국은 결국 수십 년을 못 가 갈기갈기 쪼개지고 말았다.’
‘칭기즈 칸의 사후 형제들이 다투어 제국을 분할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를 담아 새로운 정사(正史)를 만방에 공표하는 것이다.
“그대로 쓰라.”
이로써 우선 에센이 바라 마지않던 대로 후계 구도를 공고화할 명분이 생긴다. 적장자에게로, 제국이 쪼개지지 않고 통일체로서 유지되어야만 한다는 훈시를 후대에 남길 수 있다.
그다음으로는….
“보르지긴끼리 서로 다투어 칭기즈 칸의 유산을 망쳤으니 어찌 개탄스럽지 않겠는가?”
황금씨족에 대한 깎아내리기.
‘진정한 제국은 오로지 칭기즈 칸이 살아생전에만 존속했으니, 너희 무능한 보르지긴 씨족이 모든 것을 망쳐 놓았다.’
보르지긴.
그 이름이 여지껏 에센의 발목을 부여잡고 있다.
쥐새끼처럼 숨어 있던 보르지긴의 혈통들을 하나하나 회유하거나 제거하는 지난한 과정 속에서도 결국 이들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권위가 너무도 강했다.
이들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그의 제국은 추후 찬탈자의 나라로 역사에 남을 수밖에 없으리라.
제국은 칭기즈 칸과 함께 태어나고 죽었다.
그리고 오이라트 에센이 바로 정복자 칭기즈 칸의 정신적 후계다.
보르지긴이라며 스스로의 혈통을 자랑하는 이들은 결국 그가 남긴 제국을 이전투구 속에서 망가뜨린 작자들이다!
더 이상 시간을 끌 것도 없다. 이런 거대한 역사 왜곡에는 반발이 클 터. 지금 조정이 붉은 사제들의 말에 흔들리는 틈을 타 빠르게 일을 진행해야 한다.
에센은 이런저런 말을 화살처럼 쏘아 낸 뒤, 사국(史局)의 각사를 나와 내전으로 향했다.
색색의 벽돌로 꾸민 바닥 위로 페르시아의 양탄자가 깔렸고, 그 위로 일본산 향목이 타오르는 그런 내실.
에센은 침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았다.
어제보다 오늘 주름이 늘었다. 아마 내일은 더 늘어날 것이다. 수염은 더 하얘지고 머리털은 빠지며 어깨가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죽어서 어딘가에 조용히 묻혀 사라지리라.
마치 누구도 그 위치를 모르는 칭기즈 칸의 능묘처럼.
썩어서 흙이 되고….
사람은 누구나 늙고, 죽고, 썩는다.
그러나 제국은 늙지 않는다.
제국은 주름이 가지도, 털이 새지도, 근육이 줄어들지도 않는다. 그 뼈와 살이 썩어 사라지지도 않는다.
나는 칭기즈 칸의 나라를 죽일 것이다.
보르지긴 따위 잊혀지도록 만들 것이다.
오랫동안, 아버지의 대부터 서려온 어떤 원한, 집념이 에센의 뇌리를 덮친다.
영원토록 이어지는 제국. 그 창건자로서 길이 칭송될 오이라트 에센의 이름.
이전의 모든 제왕들이 초라해 보일 만한 위업을 쌓고 말리라.
나의 후대에도 빛을 잃지 않고 이어질 그런 위업.
에센은 그리 생각하며 자리에 눕는다.
노약한 몸이 격정을 이기지 못하니, 카간의 눈이 감긴다.
그는 제국의 꿈을 꾸며 잠에 들었다.
* * *
“폴란드의 국왕 전하! 카간 폐하께서 저희의 말을 들어 주시니 진정 역사가 바뀔 듯합니다! 이 나라가 거대한 역사의 진전을 이끌어 낼 듯하옵니다!”
“허허허, 진정들 하시게. 진정들….”
미친놈들.
광증 걸린 수캐마냥 방방 날뛰며 “유목 제국은 언젠가 망한다!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소리치고 다니면 어쩌라는 말인가?
물론 그 말을 들은 이들은 말세의 예언이라도 들은 양 겁에 질려 얼굴이 파래지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이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는다면 카간의 심중에도 짜증이 일 것이고, 그 책임을 질 것은 이들을 데려온 아락투무르 바로 그 자신이다.
수도원장이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자신의 영민들을 위하여 품위 있게 전향한 노인에게서 뿜어지는 카리스마는, 지금 눈앞의 어수룩하게 열광적인 청년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하기사, 직접 노구를 이끌고 카라코룸으로 향할 순 없었을 테니 이게 최선이었겠지만.
“그대들이 내일 당장 종말이 올 것처럼 떠들면 처음에야 사람들이 주목하겠으나, 인심이란 쉽게 모이고 떠나는 것이니 저들 또한 질리지 않겠는가? 필요한 말만 두어 번 해 주면 그만일세.”
“알겠습니다! 폴란드 국왕 전하께옵서 저희에게 이런 영광을 안겨 주셨으니, 누를 끼치는 일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휴, 적어도 말은 잘 들어서 다행이다.
요동 근교에서 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누구 괜찮아 보이는 학자 하나만 골라잡으면 이들에게 이런 중책을 맡길 일도 곧 안녕이다.
그럭저럭 자신의 역할을 다해 주었으니, 머지않아 이들은 라트비아로 몸 성히 돌려보내기만 하면 그만.
그리 생각하니 아락투무르의 마음 또한 편안해진다.
그러면서도 한쪽에는 저들의 외침이 계속 가슴에 남기도 하고.
―“착취적인 소유 양식 때문에 결국 유목 제국은 망한다!”
―“정주민들의 손에 강력한 무기만 주어진다면 쉬이 쓸려 나갈 것이다!”
이미 그 ‘강력한 무기’는 조선인들의 손에 쥐여졌다.
그들은 순전히 ‘그럴 필요를 못 느껴서’ 그들을 살려 두고 있다.
아락투무르는 등 뒤로 소름이 돋아 오는 것을 느낀다. 이 위대한 나라가, 성세를 누리는 듯한 젊은 패권국이 고작 동맹의 ‘자비로움’ 덕에 살아 있는 것이었다니.
그래, 그것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하겠다. 이들의 말에는 울림이 있다.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울림이.
그 공포가 제신들의 집단적인 신앙 포기를 낳았고, 승려와 사제들의 개심과 카간을 향한 무조건적인 충성 맹세를 낳았다.
물론 이번에 카간께 앙심을 품은 듯 보이는 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불온한 움직임을 조직하는 듯 보이지만. 거기에 대해서도 카간께서는 대응책을 마련하고 계시니.
이제 국정에 어떤 사제도 끼어들지 못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누구의 반대도 없었으니 이들의 묵시록이 가진 힘은 그러하였다.
‘살아남으려면, 몽골은 변해야 한다. 발버둥 쳐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