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85
“셈포알라에 온 것을 환영하오. 나는 셈포알라의 틀라토아니, 틀라카엘렐친이오.”
훗날의 경건공 틀라카엘렐친, 스페인어로는 틀라카엘렐이었다.
유럽인들은 틀라카엘렐친이 이 토토낙족의 땅, 토토나카판에서 가장 강대한 지배자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그의 폴리스 셈포알라가 토토낙족을 이끄는 중심임을 알고 있었다.
반대로 틀라카엘렐친은 이미 도시에 찾아오던 선교사 개개인이나 인접국과의 교류를 통하여 이들 유럽인들의 풍습과 신앙, 방문 목적에 대하여 파악한 바 있었다.
그렇기에 틀라카엘렐친은 이들이 금기시하는 인신 공양을 제외한 다른 모든 성대한 접대 방식으로 이들을 환영할 수 있었고,
토르마케다 역시 위대한 군주를 향한 예의를 적확히 따르며 젊은 왕에게 만족감을 안겨 줄 수 있었다.
허나 개종의 문제는 다른 얘기였다.
“…안타깝지만 우리에게는 우리의 신앙이 있소. 우리의 신들은 제 몸을 살라 태양이 되어 세상을 움직이오.”
“전하, 저희의 신은 가나안 땅의 왕들과 싸우는 여호수아를 위하여 태양을 머무르게 하고 달이 운행을 그치게 하였습니다. 본래 천체는 완전한 형상을 좇아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이니 자연이며, 그를 멈추게 함만이 곧 그 권능의 현현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턱을 쓰다듬던 왕은, 쓴웃음과 함께 답한다.
“그대의 말은… 공허하오. 천체의 운행이 어떻게 자연이라 할 수 있겠소? 태양 역시 신의 몸으로 이루어져 죽고 또 사라지는 존재요.”
“전하의 신은 태양이라 하나, 저희의 신은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그 어떤 형상에도 매이지 않습니다. 무한한 것은 유한한 것에 매일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우리의 신은 태양 그 자체보다도 우월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곧 아무것도 아닌 것이오. 우리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신이라면 곧 없는 것이나 다름없잖소?”
토르케마다는 틀라카엘렐친을 설복시키려 애썼으나 젊은 왕은 손님을 향한 예의를 잃지 않는 선에서 그의 말에 반박하고, 반박하지 못한다면 미소로 넘길 뿐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왕의 개종은 불가능했다.
며칠 동안의 체류가 끝나고, 데 라 쿠에바와 토르케마다는 고작해야 재물들을 바치고 왕의 환심을 산 것에 만족해야 하겠다는 결론만을 얻을 뿐이었다.
왕은 완고했다. 기존의 우상들에 대한 신앙을 여전히 버리지 않았고, 자신의 신학과 철학을 강론하며 토르케마다에게 맞서왔다.
초기 교회와 논쟁하던 그리스의 소피스트가 이와 같았을까?
아무튼 근방의 패권국이 끝내 개종을 거부했으니, 어느 정도 장벽이 생긴 것은 맞지만 선교 사업은 지속되었다.
한 사람이 밤사이 달려와 세례를 받거나, 일가족이 다가와 어린아이에게 이름을 붙여 달라 찾아오거나, 마을 전체가 개종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약간 바쁘고, 약간 정체된 듯 싶으면서도 꾸준히 이뤄지는 교세의 확장 속에서 한동안 베라크루스와 선교사들은 평화로웠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이 땅의 역사는 그 흐름을 멈추지 않았다.
새로운 제국은 기지개를 켜며 오랜 적수들을 정복하기 위해 일어났고. 그 적대자들 역시 날카로이 벼려진 흑요석 창날과 곤봉과 투석구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전쟁은 가까워왔고, 베라크루스에도 역시 이 신대륙에서 일어나는 델로스 동맹과 펠레폰네소스 동맹 사이의 전쟁에 촉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점차 병사들로 추정되는 이들과 마주칠 일이 잦아집니다.”
“그나마 유럽인의 생김새를 띤 이들은 비무장한 평화로운 선교자들이라고 생각하는지 해코지하지는 않습니다. 되레 길 잃은 선교사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현지인 선교사들은 협박을 당하거나 길잡이가 될 것을 강요받기도 합니다. 당분간 현지 인력들의 선교 참여는 제한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불붙은 지 오래된 폭탄의 심지가 끝까지 타들어 가니,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희 마을 사람들이 토토낙 전사들에게 몰살되었습니다!”
“메시카 병사들로부터 저희만 도망쳐 왔으니 받아 주신다면 개종이든 뭐든 하겠습니다! 예수크리스토(Jesucristo) 만세!”
“부디, 아이만은 받아 주십시오! 지금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 상태입니다. 이대로 가다간 이 아이의 누나처럼 죽어 버릴 테니….”
훗날 근대인들에 의해 아즈텍이라 불리우는 메시카인들의 도시 연합이, 토토낙인들에게 전쟁을 걸었다.
모테쿠소마, 카탈루냐인들이 부르기로는 몬테수마가 이끄는 테노치티클란과 텍스코코와 툴라코판이 자신들의 동맹국과 속국들의 군대를 데리고 언덕과 습지를 헤치고, 토토낙의 땅 토토나카판으로 전진했다.
이에 메시카인들의 확장에 제동을 걸기 위하여 틀락스칼텍과 틀라카엘렐친의 셈포알라는 동맹을 맺었고, 마찬가지로 군사를 일으켜 곳곳의 요충지에서 적들을 돌팔매와 투창으로 맞이했다.
그러나 전쟁이 터졌을 때 죽은 것은 양측의 전사들만이 아니었다.
두 세력 사이의 농민들, 수렵민들, 작고작은 마을부터 어느 정도 규모가 있던 중소 폴리스들까지.
“시민들을 죽이고 요새를 부숴라! 메시카인들이 한 알의 옥수수도 얻지 못하도록 소개해야 한다!”
“점령지의 저항이 심하다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도시의 틀라토아니는 죽이고 그 백성들은 사방으로 흩어 버려라. 거부하면, 죽여라.”
곤봉을 든 전사들보다도 더 많은 농민들이 죽었다.
죽음을 피하려던 이들이 몰려갈 곳은 한 곳밖에 없었으니.
“저곳에 가면 고기와 약과 붕대를 준다고 하더이다!”
“베라크루스? 동쪽 해안에?”
“지금 당장 떠나야 하니 짐들을 싸! 크리스티야노틀란(Christianoyotlan, 기독교인들의 땅)에 간다!”
이내 베라크루스의 성문 앞을 메운 이교도들의 무리.
혼란에 빠진 경비병들에게 명령이 내려오니,
저들을 성 안으로 들게 하라.
해가 지는 곳에서, 대성당의 시대가 밝아 온다.
해가 지는 대륙에서 (3)
“후, 걱정입니다. 이리도 병자들과 도망자들이 많아지다니.”
“지금 강대한 폴리스 연합들의 전쟁으로 상황들이 말이 아닙니다. 그나마 모든 폴리스가 중립 지대라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난민이 몰리는 게 당연하지요.”
“그게… 차라리 다행이라 봐야 하겠지요.”
토르케마다는 성호를 그으며 안타까움의 기도를 올렸다.
하기사, 선교사들이 갑자기 공격받거나 포로로 끌려가는 것보다야 모든 세력으로부터 대우받고 존중되는 지금의 상황이 나았다.
놀랍게도 그간의 의료 봉사와 구휼 사업의 명성이 퍼졌는지 상대적으로 유럽인들이 낯설 메시카인 전사들도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몇 번 그들의 지휘관에게 사절을 보내 중립을 확인한 이후로는 도리어 길을 트거나 보호해 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전염병으로 많은 이들이 앓고 있었는데, 전쟁으로 헐벗고 굶주리니 한 번 심하게 앓고 말 사람들이 쓰러져 죽어 가고 있습니다. 또….”
“그만, 이제 덥군요.”
데 라 쿠에바 공작은 고개를 저으며 토르케마다의 넋두리를 끊었다. 실례될 정도로 감정을 쏟아 냈음을 알게 된 토르케마다는 목례로 가볍게 사과의 뜻을 전했고 별거 아니라는 듯 공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닙니다. 저희에게 달려들어 오는 아픈 자들을 치유하고 굶주린 자들을 먹이는 일에만 집중합시다.
그리고 방금 말씀드렸듯 이제 더워지니 밖으로 나갑시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벌겋게 달아오른 몸뚱어리를 일으켜 걸어 나왔다. 온몸에서 열기와 증기가 피어올랐고 공기 중에는 아지랑이가 피어 나왔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욕탕이 나온다. 몸에 물을 끼얹으며 토르케마다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낀다.
이런 사치라니. 병자들을 입히고 재울 공간이 더 필요할 텐데.
청렴함으로 이름이 높았던 토르케마다는 다른 귀족들처럼 매일 몇 번씩 목욕을 하기를 꺼렸다.
그 깨끗한 물을 마련하고 몸에 향유를 바르는 과정이 모두 일신의 쾌락을 추구하여 부를 헛되이 낭비함이 아니던가? 주님의 종이 그리해도 되겠는가?
…라는 신념을 이어 가기에는, 그러나 너무 더운 날씨였다.
아무리 익숙해지더라도 지중해의 건조한 여름에 익숙하던 토르케마다가 아열대의 기후를 맞이하니 배길 수 있을 리가.
데 라 쿠에바는 그런 자각도 없이 이 먼 땅에 목욕탕을 짓고 흥청거리는 데 여념이 없는 듯했으나, 토르케마다는 세신사가 칼날로 때를 벗겨 갈 때마다 조용히 묵상 기도를 올렸다.
…시원하다.
* * *
본래 중부 신세계에 발디딘 스페인 정복자들은 선원과 용병들이었다.
즉, 가장 위생과 담쌓은 이들이다.
본래 스페인은 700년동안 무어인들의 지배를 받으며 그들의 목욕 문화와 청결 문화를 받아들였다.
곳곳에 사우나와 목욕탕이 설치되어 있었고, 귀족들 역시 목욕 후에 몸에 향유를 발라 마사지 받기를 즐겼다.
증기로 몸의 노폐물을 빼고, 각자 몸에 물을 끼얹어 닦아 낸 뒤, 때를 벗기고 항균 작용을 하는 향유를 피부에 바른다.
로마인들의 혼욕탕은 전염병의 온상이 되었지만 이렇게 개별적으로 씻는다면 훨씬 안전하고 깨끗한 목욕을 즐길 수 있었다.
이러한 문화가 이교도의 것으로 여겨져 본격적으로 사라진 때는 무어인들과의 전쟁이 다시금 본격화되는 레콩키스타의 완성기, 곧 이사벨 1세의 즉위기다.
아직 이 카스티야의 귀족들에게 목욕은 일상의 일부이고 습관이었다.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운하를 건설하고 수원을 끌어 오니, 목욕탕은 곧바로 건설되었다.
평소 오물 속에서 살아가는 16세기 콩키스타도르들과 정착하자마자 욕탕을 건설한 15세기의 선교사들.
둘 중 누가 신대륙의 선주민들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퍼뜨릴지는 뻔하다.
물론, 신대륙인들이 선교사들을 만난 뒤 크게 앓거나 심하면 죽는 일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 고통은 그나마 적었다.
어느 외부 정복자들의 침공으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병자들을 구제하고 통제할 도시 국가들이 무너지지도 않았으며, 그에 따라 농업 기반이 무너져 기아가 창궐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전염병은 고통스러울망정 이겨 내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틀라토아니시여, 지금 병사들이 원인 모를 병으로 쓰러지고 있습니다!”
“시체들 가까이로 가지 마라! 매장할 여유는 없더라도 우선 피하기는 해야 한다!”
“지금 오셀로틀(ocēlōtl, 재규어 전사, 아즈텍의 고위 전사들)의 반 이상이 몸져누웠습니다. 지휘관이 없으니 병졸들을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틀락스칼라를 무릎 꿇려야….”
“지금 점령지 몇 곳을 물리지 않으면 전사들에게 남은 운명은 죽음뿐입니다. 전사들의 죽음은 우리 동맹군의 패배이며 멸망입니다!”
“하….”
메시카인들이 몸져눕기 시작한다.
“메시카인들이 물러갑니다! 천만다행입니다!”
“지금 쓰러진 병사들의 수는?”
“입에서 피 섞인 침을 뱉고 기침을 하는 이들이 세 명 중 하나는 넘습니다. 이들을 격리할까요?”
“그렇게 많은 이들을 어떻게 격리한다는 말이더냐? …우선 기독교인들의 땅으로 보내 구원을 요청하라. 그들이 환자를 거부하지는 않을 터이니.”
마찬가지로 토토낙인들도 쓰러져 간다.
대규모 전염병이란 게 희박하던 신세계에서, 전쟁 중에 갑작스레 일어나는 죽음이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적들의 창칼보다도 더 많은 적들을 죽이는 침묵의 악마가 있다.
그것은 병사들의 이마에서 열이 끓게 하고, 가장 강한 전사들로 하여금 조약돌 하나도 들지 못할 정도로 탈진케 만든다.
지휘관은 귀신이 들린 듯 정신을 잃고 식은땀을 흘리며, 순식간에 촘촘히 짜여 있던 대오와 진이 무너져 내린다.
그 악마는 피아를 식별하지도 않았다.
그저 인간과 세계를 증오하는 듯, 모든 삶을 박멸하려는 듯 살육을 즐겼다.
그런 와중에 당황하여 전투를 멈추지 않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양 세력의 수장들은 서로 사절조차 보내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군대를 물리고 서로를 추슬렀다.
암묵적 휴전기가 찾아왔음은 제아무리 어리석은 이라도 알 수 있었다.
”….”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
지금 전우들을 잃고 슬픈 눈을 하는 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결국 지금의 전염병은 그에게 호재였다.
상대적으로 역량이 부족한 토토낙의 군대에 시간을 벌어 줄 수 있었다. 어쩌면 도시의 패망으로도 이어질 수 있던 전쟁에 소강상태를 불러왔다.
부덕한 안도감이 틀라카엘렐친의 가슴에 자리 잡았다.
허나 이를 이야기할 수 없기에, 틀라카엘렐친은 그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처연한 눈빛을 가장할 뿐.
운 좋게 태워지거나 매장된 시신들은 조용히 재와 흙이 되어 사라졌으나, 그러지 못한 이들은 짐승과 벌레에게 뜯어 먹혀 삶 그 자체를 모욕하는 듯한 처참한 형상으로 변해 갔다.
그것들로부터 다시 질병과 죽음이 퍼져 가니, 한때 누군가의 가족이자 동지였던 자들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는 괴물이 되었다.
“병사들 중 3할이 앓고 있다. 1할은 죽었고, 나머지는 혼란에 빠져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 구덩이를 파라.”
틀라카엘렐친은 한숨과 근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한 가지 첩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주군이시여, 지금 적들은 6할이 병으로 앓아누우며, 2할이 죽었습니다. 저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 곧 전쟁이 끝날 듯합니다!”
“…뭐?”
“모테쿠소마 역시 고통으로 몸져누워 사경을 헤매다 며칠 전에 겨우 의식을 차리고 깨어났습니다. 지휘관 중 대부분이 그렇게 죽거나 고통받았던 듯합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틀라카엘렐친은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본다.
지휘관 열 명 중 한두 명 정도만이 병상에 누웠을 뿐, 나머지는 모두 회의를 위해 모여 앉은 상태다.
“우리보다 적들의 수효가 더 많았으니 사망자 수가 많은 것은 이해하겠다.
그런데 빈도가 이상하다. 저들이 우리의 두 배 정도 되는 병력을 동원했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째서 세 배는 되는 병사들이 죽어 나가고, 또 병에 걸린다는 말인가?
우리는 대부분의 지휘관이 잠시 앓았을 뿐 병을 털고 일어나는데, 어떻게 저들은 수뇌부가 마비되다시피 하는가?
왜 나는 이리도 건강한데 테노치티클란의 모테쿠소마는 죽을 뻔한 위기를 겪는가?”
당연하지만,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저 덧없이 축복이니, 행운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오갈 뿐. 허나 그런 빈말은 발언자 본인조차 납득시키지 못했다.
누군가는 이 틈에 메시카인들을 공격해야 한다는 바보 같은 주장을 소리 높여 외친다.
어림없는 소리. 이런 상황에서도 저들의 수적 우위는 여전한데, 몇 안 되는 방어자로서의 우세도 버리고 위험 부담을 감수하라니. 만일 이 상황에서 전투를 이어 간다면 최소한 두 세력 중 하나는 완전히 몰락한다.
그리고 지금의 추세를 바라봤을 때, 아마 양 세력의 공멸이 가장 설득력 있는 결말이리라.
소득 없는 회의가 끝난 뒤, 틀라카엘렐친은 군영을 돌아다녔다. 각 도시의 병력을 살피고, 부상자들이 모여 있는 구역을 탐방하면서 전체적인 형세를 둘러보았다.
어릴 적 보았던 전쟁은 이렇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적들을 정복하고 포로들의 심장을 바칠 때, 그곳에는 오로지 영광뿐이었다. 죽음은 영광을 위한 계단이었으며, 살육은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값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저 비참뿐이다.
승자가 되어 그를 무릎 꿇릴 것만 같던 메시카인들의 꼴을 보라. 그들이 쟁취할 광명은 이제 없다. 헛되이 쏟아 버린 목숨들로 비탄에 잠길 뿐.
틀라카엘렐친의 발걸음은, 소개되어 병영으로 쓰이는 한 오두막 앞에서 멈춘다.
그 안에서 웅성임이 일다가, 곧 바깥의 인기척을 감지했는지 정적이 퍼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무언가 과하게 딱딱한 자세로 도열한 병사들이 있었다.
“주군이시여.”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틀라카엘렐친은 지휘관을 맡은 전사에게 다가간다. 오두막 벽 한쪽에 어설프게 둘러진 천을 흘깃 바라본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만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들었다. 다행인 일이다.”
“모두 주군의 지휘 덕입니다.”
“그 이야기가 아니란 것을 알지 않느냐?
이곳에서만 질병으로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 기침하는 이들은… 없군.
이유를 밝히라.”
“…신과 우연의 장난을 저희가 어떻게 해명하겠습니까?”
“아니, 해명할 수 있다.”
틀라카엘렐친은 한 발짝 다가가 대장의 앞에 선다. 머리 반 개만큼은 더 큰 키를 이용해 그에게 위압감을 준다.
“나는 베라크루스의 지배자들에게 맹세했다. 나는 너희를 해치지 않는다.
그러니 말하라.”
여전히 지휘관이 우물쭈물하자, 틀라카엘렐친은 아까부터 병사들이 힐끔거리며 신경 쓰던 천이 둘러진 벽을 향하여 간다. 더 이상 아무것도 숨길 수 없게 됨을 깨달은 지휘관 역시 그 천의 끝을 잡아당기니….
그러난 것은 하나의 목상(木像)이다.
십자가 모양으로 뻗은 형틀에 한 깡마른 사내가 매달려 죽음을 맞이하는 형상.
그것이 드러나자 어정쩡하게 서 있던 병사들은 순식간에 형상 앞에 무릎을 꿇고 양손을 모은다.
“예수 크리스토….”
그때 베라크루스에게서 들었던 한 이름을, 틀라카엘렐친은 읊조린다.
“맞습니다. 저분이 저희의 신입니다.”
“너희들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저 신을 찬송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