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99
“예, 각하.”
토르케마다는 한숨을 내쉰 뒤, 자신이 쓴 원고를 찬찬히 살핀다. 개중 마음에 들지 않는 구절마다 밑줄을 긋고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차는?”
“이쪽입니다.”
그렇게 오른 마차 위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신작로를 벗어나자, 곧 광장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건설된 여러 궁전이 마차를 내려다보았다.
개중 유일하게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에 토르케마다는 진입했다. 하인들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에는 대공뿐이었다.
“전하.”
“베라크루스 주교, 왔구려.”
미리 준비되어 있던 유리잔에는 꿀과 바닐라를 섞은 초콜릿 음료가 담겨 있었다. 잔은 두 개뿐이었다.
“알부케르케 공작과 셈포알라 공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직 부르지 않았소. 나는 주교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소.”
그리 말하고 난 뒤, 아샤야카틀은 초콜릿을 한 모금 들이켰다. 몸에 각성 효과가 퍼지는지 어딘가 멍해 보이던 아샤야카틀의 눈이 약간 또렷해진다.
“소련의 틀라토아니와 협약을 맺고 있소.”
“압니다. 얼마 전에 세뇨르 트로츠키의 재방문을 위한 환영식도 열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아샤야카틀은 유리잔을 내려놓고 그 끝부분을 손으로 튕기며 맑은 소리를 낸다. 마치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듯하다.
“논의는 어느 정도 합의에 다다랐소. 우리에게 강철과 면직물과 모직물을 카스티야가 제공하는 것보다 염가에 제공해 주겠다 장담하였소. 사실 그냥 카스티야에서 들여오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오.”
“참으로 잘되었습니다, 전하! 그렇다면 대금으로 지불할 담배가 훨씬 아껴지겠습니다!”
“어… 담배가 아니오. 저들은 고무나무 수액을 요구하였소.”
“고무, 말입니까?”
“그렇소. 그것도 꽤나 대량으로.
“당장 저희에게 필요한 작물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담배보다 더 나을 수도 있지요. 다행입니다. 국고에 가는 부담이 크게 경감되겠습니다.”
그냥 단순히 이전보다 더 싼 가격으로 물자들을 공급하는 게 아니라, 고무나무 목재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산물을 팔아넘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물론 담배는 대량으로 팔아넘기면 돈이 되기는 한다만, 지력을 많이 소모하고 땅에 해로운 성분을 남기니 다량 재배는 무리를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 기뻐하는 토르케마다에게 의외의 답변이 돌아온다.
“다만 거절할 생각이오.”
“…네?”
“세뇨르 트로츠키에게는 일단 ‘생각해 보겠다’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왔소. 아직 소련에서 온 이들이 테노치티틀란을 떠난 것은 아니오. 하지만 저들도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오.”
“어째서입니까? 전하, 아무리 보아도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이 아닙니까?”
토마스 데 토르케마다가 대답하자, 아샤야카틀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저들의 마지막 요구 사항 때문이오.”
그제야 토르케마다는 그와 대화하는 내내 아샤야카틀의 표정이 밝지 않았음을 생각한다.
“세뇨르 트로츠키가… 땅을 요구하였소.”
* * *
메시카가 당장 끊임없는 정복 전쟁에 몰두하는 이유는 크게 몇 가지로 나뉜다.
우선, 서방 세력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
유럽 각국의 지원과 헌금은 생각보다 적지 않은 액수였고, 메시카가 도시들을 확장하고 기마대를 육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모테쿠소마와 아샤야카틀은 이런 기독교 세계의 흥분과 관심이 이어질 때 최대한 확장 사업을 위한 자원을 끌어모아야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부차적인 이유일 뿐.
메시카 대공국이라는 거대한 정치체가 이재 고작 10년이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정복 사업의 이유는 간단했다.
“꽤나 완고하게 나오는군. 대공이 우리를 믿지 못하고 있네.”
“아마도… 자신의 권위가 손상될까 봐 걱정하는 듯싶습니다.”
“그 말이 맞네, 로밀리. 아샤야카틀 개인이 아니라 정확히는 ‘테노치티틀란 대공위’ 자체의 권위겠지만.”
회담의 결렬 이후 선왕 모테쿠소마의 궁전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그렇게 분석을 내렸다.
그 분석은 옳았다. 같은 시각, 아샤야카틀과 토르케마다가 나누는 대화만 보아도 그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전하께서 이 나라의 유일하고 적법한 군주로서 군림하고자 하심은 알고 있사오나… 저들이 요구한 바가 고작 저 북단의 작은 개척지라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절대 허용될 수 없소.”
토르케마다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아샤야카틀은 딱 잘라 말한다.
“이 땅에는 오직 메시카와 테노치티틀란의 권위만이 바로 서야 하오. 그런데 소련? 아니면 해적 떼? 이들이 인근에서 세력을 키운다면 우리의 대공국은 모래성처럼 힘없이 바스러지고 말지 않겠소?”
“….”
토르케마다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대공이 염려하는 바에 대하여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역사에서, 코르테스는 메시카인들의 광대한 제국을 단 2년 만에 무너뜨렸다. 그런 위업이 가능했던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제국의 취약한 구조였다.
후대인들이 ‘아즈텍(Aztec)’이라 부르던 제국은, 어디까지나 도시들의 느슨한 연합체였다. 테노치티틀란을 벗어나면 여전히 틀라토아니의 권위는 그리 강하지 않았으며, 자신들과 가까이 영토를 맞대고 있던 틀락스칼텍 연합조차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메시카인들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부족들이 코르테스와 연합하니 제국은 그 강역이 형성된 지 수년도 지나지 않아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 존재하지 않게 된 미래의 메시카와 현재의 메시카를 비교한다면 어떠한가?
수십 년에 걸쳐 이어진 정복 사업으로 얻어진 힘과, 단 수년 만에 외부에서 급히 위광을 빌려와 쌓아 올린 권위를 생각한다면?
과연 아샤야카틀의 대공국은 오랜 세월을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토르케마다에게는 한 가지 기대감이 있었다.
만일 자신의 조언을 무시하려고만 했다면, 그의 말마따나 ‘절대 허용될 수 없’는 문재였다면 대공이 자신을 독대하려 하지도 않았으리라.
정말로, 아샤야카틀은 토르케마다의 침묵을 깨고 말을 걸어왔다.
“베라크루스 주교.”
“예, 전하.”
“그대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바가 있소.”
“말씀하소서.”
아샤야카틀은 이런저런 생각을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정리하듯 가만히 창밖을 쳐다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가 내게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를 가르쳤소. 내가 좋은 학생이었는지는 몰라도 이제 내가 카이사르를, 술라를, 페리클레스와 솔론과 그라쿠스의 이름을 모른다 할 수는 없을 것이오.”
“전하와 제 사소한 지식을 나눌 수 있었기에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자질구레한 미사여구는 치우셔도 좋소.”
아샤야카틀은 토르케마다에게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말해 보시오. 그대는 언제나 이곳을 로마, 또는 스파르타와 같다고 말하였소. 그렇다면 이 대공국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소? 그대가 늘상 말한 바와 같이 언젠가 로마 제국처럼 웅비하겠소? 아니면 스파르타처럼 세월에 부딪혀 무너지겠소?
나는, 대공국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겠소?”
이것이 대공이 그를 부른 이유였다.
토르케마다는 아샤야카틀의 눈빛에서 해답을 요구하는 간절함을 읽었다.
“어려운… 질문입니다.”
“답하지 않으면 안 될 질문이기도 하오. 부디 조심스럽게 숙고하여 답해 주시오.”
“….”
토르케마다는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휘젓는다. 무언가를 허공 속에 메모하듯이 곡선을 그으며 빠르게.
그렇게 대공이 요구한 대로 ‘조심스럽게 숙고한’ 그는 답한다.
“전하, 전하의 나라는 위대한 제국의 씨앗이 맞습니다.”
아샤야카틀이 토르케마다를 바라본다. 그의 말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조심스럽다.
“스파르타는 동맹 도시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으나, 로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카이사르는 동맹 시민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였으니 작고 하찮은 도시 국가에서 거대한 제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지금 메시카의 재상이 누구입니까? 토토나카판 출신이신 틀라카엘렐 데 셈포알라 공작 각하가 아닙니까? 대공 전하를 지키는 기사들은 메시카인들뿐 아니라 수많은 족속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전하는 그들 모두의 주군이십니다.”
“하지만 각지의 저항이 아직도 심하지 않은가? 게다가 해적들이 우리를 침공하는데 저들이 우리의 적들과 손을 잡기라도 한다면….”
“결국 해적은 바다에 속합니다. 언젠가 메시카가 힘을 키워 바다를 장악하면 저 해적이 들끓는 서지중해는 곧 메시카인들의 젖줄이 될 것입니다.”
“….”
토르케마다의 말에 아샤야카틀은 잠시 고민한다.
고민하더니,
“일단… 물러가도 좋소.”
“감사합니다.”
토르케마다를 내보낸다.
로마라.
빠르게 영토 확장을 펼치고, 그 드넓은 땅에 제각각으로 흩어진 시민들에게 시신이 로마인이라는 자각을 심어 준 놀라운 제국.
로마도, 메시카도 한낱 늪지 위의 초라한 도시로 시작했다. 또한 그들을 둘러싸던 습지를 매운 뒤 중심 도시는 거대한 세계의 수도가 된다.
느슨한 연맹은 제국이 되고, 초라하던 변방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다.
그것이 로마의 길이었다.
지중해를 모조리 삼킨 뒤에 그들은 그 바다에 ‘우리들의 바다(Mare Nostrum)’이라는 애칭을 붙이고 세계를 정복했다. 해적을 붙잡았고 교역을 안정시켰다.
마침 우리에게도 지중해가 있다.
우리 역시 저들을 따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해적과 경쟁 세력들을 내몰고 하나의 바다를 지배하는 단 하나의 제국으로..
그렇다면, 서지중해와 닿지도 않는 북쪽 바깥의 작은 땅덩어리 하나 넘긴다고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장차 훨씬 중요한 상징을 얻게 될 텐데….
마음을 굳힌 아샤야카틀은 결단을 내린다.
―메시카 대공 아샤야카틀 데 테노치티틀란, 소련 인민 위원장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장의 문서에 두 사람의 서명이 들어가니, 한낱 낙서가 두 나라의 신성한 조약문이 된다.
아메리카에 소련이 한 걸음 크게 나아가는 순간이었다.
* * *
“메시카 서북면의 정착지들을 사들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드디어 아메리카 본토에 소련 영토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북쪽까지 진출한 상태였군요? 샌디에이고 근처까지 북상했다니….”
“당연하지. 거짓말일 테니. 나 같아도 지도에서 최대한 북쪽 멀리까지 찍어 두고서 우리 식민지라고 주장했을 걸세.”
“어… 항의하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괜찮네. 나는 관대하니까. 게다가 영토 분쟁이 원천까지 차단되지 않았나?”
오랜 시간 아메리카에 체류한 결과 이뤄 낸 성과였다.
소련의 아메리카 진출이라니, 감개가 무량하다.
“심지어 고무도 얻어 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고무줄이란 게 얼마나 귀했는지.”
“그것도 그냥 미끼일세. 메시카에서 원시적으로 채취할 고무가 뭐 얼마나 채산성 있겠나? 우리에게 수출할 고무를 구하러 남쪽으로 진출해 주면 우리와 영토가 충돌할 일이 줄어들겠지.”
더 중요하게는, 이 세계에서 고무를 수입하는 나라는 소련밖에 없을 테니 메시카 경제가 소련에 심히 의존하게 되겠고.
“담배가 남으면? 유럽에 팔면 되네. 그런데 고무가 남으면 뭐, 축구공이라도 만들 건가? 허허허!”
참… 소소한 부분까지도 악마적이라 생각했지만, 로밀리는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이미 트로츠키가 그런 자신의 생각까지 훤히 들여다보고 있을 것을 알았기에.
해적을 날뛰게 하고, 심지어 그들이 곳곳에 정착지도 건설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메시카 경제를 은근히 소련에 종속시키기까지.
“이래도 괜찮은 겁니까?”
“그래. 그 덕에 소련은 아메리카에 진출할 것이고, 더 많은 북미 원주민들이 메시카든, 유럽이든 정착민들이 들어와 쏴 대는 총알과 전염병에 쓰러지는 대신 우리의 보호 아래 놓일 테니.”
“…정말로 괜찮은 게 맞습니까? 도덕적으로 말입니다.”
“자네, 조선과 원산을 믿지 못하나? 소련을 의심하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그럼 다 괜찮겠군.”
트로츠키는 웃으며 로밀리의 말을 잘랐다.
“자, 이제 나는 귀국할 시간일세.
소련의 아메리카 진출이라는 위업을 이룬 위대한 지도자에게 소련 인민들이 무슨 영예를 안겨 줄지 궁금하군. 잘 있게, 로밀리. 이징옥 동지에게도 안부나 전해 주게나. 나는 나를 기다리는 원산의 인민들이 있어서 말이네!”
그렇게 트로츠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귀국의 여로를 밟았다.
떠나왔던 때와 정반대로, 세인트헬레나에서 잔지바르로, 잔지바르에서 디에고 가르시아, 드막… 원산.
아, 너무도 그리운 땅이다. 공기 중에 파와 마늘 냄새가 나지 않으니 얼마나 심심하고 지루했던가. 이제 고향과도 같은 땅에 돌아왔으니 푹 쉴 때가 되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스피리도노바 동지께서 호주 진출의 성과를 발표하셨소이다! 벌써 450여 호의 조선 농민들이 저 드넓은 호주의 벌판에 정착촌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종사와 인민에 참으로 커다란 기쁨이오!”
“과찬이네. 이념의 조국을 위하는 마음으로 멸사봉공했을 뿐. 그런데 료바는 어디서 뭘 하는지… 지도자가 떠난 원산의 처지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
“참으로 훌륭한 마음가짐이오! 트로츠키 동지는 본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해외로 도망치듯 나섰으니 이게 무어란 말이오?
이 신숙주! 트로츠키 동지를 믿고 아메리카 진출의 대업을 맡겼으나 이리도 진행이 지지부진하니 어떻게 그를 지도자로 계속 세울 수 있겠소? 공명이 읍하며 마속을 베었던 바와 같이 본인 역시 트로츠키 동지를 원산 공산당 지도자 직위에서 해임하는 안을….”
“자네 뭐 하나?”
“…상정할 리가 있겠소? 언제나 믿고 있던 트로츠키 동지께서 아메리카의 선주민 제국과 성공적인 회담을 마쳤으니 이제 소련에는 아메리카를 향해 떠나는 길밖에 남지 않았소!
아아, 소인의 조언을 받고서 한 줌 망설임도 없이 혈혈단신 나라를 떠나 이리 당당하게 외교적 과실을 거두어 왔소이다! 모두들 트로츠키 동지에게 힘찬 박수 부탁드리오!”
“트로츠키 동지 우라!”
“소련 우라!”
음, 방금 분명 쿠데타 시도가 있던 것 같은데.
신숙주의 눈은 초점을 잃어 있고, 스피리도노바는 243번째 집권 실패로 망연자실한 얼굴이다. 실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곧바로 이홍위에게 신숙주의 좌의정직 임명에 대한 ‘소소한 제언’을 찔러 주었으니.
신숙주 동지가 나이 들어 괜히 더 많은 업무에 시달리지 않게끔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 씀씀이에서 우러나온 트로츠키의 배려였다.
핫하, 죽어라.
아무튼 트로츠키의 해외 순방은 성공적이었다.
북아메리카는 이제 소련의 것이다.
막간극―후아나
―오도도도도도도.
대리석 타일이 깔린 바닥 위에 작고 빠른 발걸음 소리가 울린다.
―두두두두두두.
그다음으로는 다소 둔탁하고, 느리고, 커다란 발소리가 여럿 이어진다.
그리고 그 두 소리 사이의 공간적 격차는 점차 좁아지고 있었다.
“잡아라!”
“어서, 어서 쫓아가!”
“뭐가 이리 재빨라!”
“헉, 허억….”
소녀는 추격자들의 눈을 피해 정원으로 숨어든다. 마찬가지로 저택의 다른 모든 곳을 확인한 추격자들은 소녀가 숨은 곳이 정원임을 확신하고 모여든다.
그들은 모두 매서운 눈으로, 소녀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수풀 곳곳을 뒤지고 있다. 소녀는 그들의 눈을 피해 정원의 한가운데 가장 깊숙한 곳으로 숨어든다.
소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들의 손에 붙잡힌다면 결코 그 자신이 무사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소녀는 엉금엉금 기어간다. 팔다리에 흙이 묻고 무릎이 나무뿌리의 잔가시에 긁혀도 신경 쓰지 않고.
가장 수풀들이 무성히 자라나는 곳으로. 그가 타고 넘기 좋아하는 나무 그루들이 있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