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3
“어떻게든 석탄들을 옮겨 실어! 무게균형을 맞춰야 한다!”
“제발··· 제발··· 신이시여, 제발···.”
“자네, 무신론자라 하지 않았나?”
이 꼬라지는 무슨 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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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별것 아니었다.
“저길 봐! 지브롤터다!”
항해 후 5일 정도 지났을 때, 의용군을 태운 켈틱 1호와 2호, 그리고 게르마닉 호는 드디어 스페인 남단을 돌아 지중해로 접근해가고 있었다.
드디어 지중해로 진입한다는 일종의 기대감에 대부분의 승객들이 갑판으로 올라와 그들을 양옆으로 둘러싼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두 대륙의 웅장한 자태를 구경했고.
달뜬 축제 분위기에 선원들도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간만에 여유로이 항해를 즐겼다.
그러면 안 됐었다.
“어? 저기 파시스트들이 점령한 세우타 아냐?”
“어이, 프랑코! 네놈 모가지를 자르러 우리가 간다! 하하하하.”
태양이 남중하며 두 바다, 지중해와 대서양을 빛살로 가르고 있을 때.
영국인과 북 프랑스인, 그리고 독일인들이 남국의 따뜻함에 대해 재잘거리고 있을 때.
그들은 시커먼 잠수함들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적함, 3척, 발견.
-발포하라! (¡Dispara!)
쿵.
한가로이 햇살을 쬐던 SS 켈틱 1호의 승객들은 갑자기 느껴진 진동과 발 밑에서부터 울리는 둔중한 충격음을 들었다.
아주 짧은 순간 그 거대한 선박 전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마치 목 뒤 털을 서게 만드는 음산한 짐승이 모든 소리를 잡아먹은 것 같았다.
그 침묵은 한 마디의 외침으로 깨졌다.
“습격이다!”
그리고 그 경솔한 한 마디에 혼란이 들불처럼 자라났다.
“꺄아아아아악!”
“세상에 맙소사!”
“어···어서 경보를 울려! 다른 수송선에도 빨리 경고해!”
“하···함교 내에서 지금 수뇌부가 회의를 진행 중입니다!”
“그럼 지금 뭐하고 있나? 네··· 네가 빨리 가서 상황 보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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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약 2일에서 3일 후 바르셀로나에 도착한다 가정했을 때, 저는 최대한 현재의 조직구도를 반영하되 제대로 체계화된 편재를 짤 생각입니다. 우선 미국인들은 공산당 차원에서 나온 자원자가 많으니만큼···”
쿵.
바닥부터 천장까지, 마치 세상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압도감.
창밖을 보자 수많은 승객과 승무원들이 우왕좌왕하며 휩쓸려 다니고 있다.
그리고 문밖에서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선장님! 습격입니다!”
방금 전의 충격에 대한 설명이 제시되자 함교에 있던 모든 이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공격이라면? 현재 배의 파손 상태는?” 질문을 꺼낸 것은 선장이었다.
“현재 상태를 확인 중이지만 큰 피해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공격이 계속되면 위험합니다.”
“당장 회피기동하고 잠수함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승무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회의도 자연스레 해산되는 가운데 트로츠키를 포함한 지도부는 선원들의 인솔에 따라 구명보트와 가까운 곳으로 이동했다. 트로츠키는 초조함에 수염을 쓰다듬다가 이내 멈추었다.
머릿속이 너무도 복잡했다.
‘뭐지, 공격? 저항수단도 없는 바다에서?’
‘살아나갈 방법이 있는 건가? 물론 구명보트를 타면 대부분 살겠지만 죄다 스페인 반란군에 붙잡힐 텐데?’
‘지금, 말라가가 어느 쪽에 점령되었었지? 정부군 영역까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만일에··· 반란군에게 붙잡힌다면? 아니, 대부분이 익사한다면?’
절망적인 상황이다. 방금 전까지 세우던 모든 계획들이, 모든 대전략이 그저 지도 위에 흩뿌린 한낱 꿈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정신차려야 한다.
트로츠키는 얼굴을 굳혔다. 그는 동토의 땅에서 왔다. 사람들이 감정을 숨기고 단단하게 살아가는 러시아 땅에서 왔다.
선원은 그런 그를 조금씩 훔쳐보더니 이제는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듯했다.
저 눈빛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사령관 트로츠키는 결연하고 침착한 지도자로 남아야 한다.
“현재 상황은 어떻지? 계속 습격이 진행 중일 것 같나?”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우회기동을 진행 중일텐데. 함선 자체의 규모가 있으니 쉽게 좌초되진 않겠지만, 호위함이 없는 상태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고맙네···. 충분히 대답이 되었어.”
선원의 안내를 받아 갑판으로 나오니 방금 전의 혼란은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었다. 우왕좌왕하던 탑승객들은 이제 승무원들의 지시에 따라 구명정에 앞에 길게 늘어서 대기하고 있는 참이었다.
“여러분! 현재 선박의 파손 상황은 심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함선의 규모로 인해 한 두 군데의 파손으로는 쉽게 침몰하지 않을 것이니 크게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일 선박이 좌초하더라도 여러분은 모두 무사할 가능성이 높으니 승무원들을 믿고 대피 준비에 임해주시기 바랍···”
쿵.
으아아아악, 맙소사!
사람 살려요!
선장의 말이 끝나기 직전, 기가 막히는 순간에 다시 배가 흔들렸다.
트로츠키는 남몰래 어금니를 앙다물었다.
“···설마”
“무슨 일입니까, 트로츠키 동지?”
어느샌가 옆에 서 있던 올리버 로가 묻자, 트로츠키는 당황한 내색을 숨겼다.
“크흠, 아무것도 아닙니다. 로 동지, 제가 선장의 말을 영어로 통역할 테니 러시아 억양이 심한 저 대신 승객들에게 외쳐주십시오.”
그렇게 한 마디 한 마디씩 올리버 로에게 선장의 프랑스어를 통역해주면서 트로츠키는 방금 전 불현듯 지나간 생각에 다시 빠져들었다.
‘···설마’
만약에 스탈린이··· 원한 게 잔반처리가 아니라면?
그냥··· 꼴 보기 싫은 새끼들 다 치워버리고 싶었던 거였다면?
프랑코 쪽에 정보를 ‘살짝’ 흘려서 커다란 먹잇감으로 던져준 거라면?
‘살생부’를 꼼꼼히 정리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스탈린을, 다챠(러시아식 별장)에서 트로츠키의 부고라는 즐거운 소식만을 기다리는 스탈린을 상상하자 부아가 치밀었다.
“개자시···”
“정말 괜찮으신 것 맞습니까?”
다행히도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기 전에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았다. 그것도 러시아어로 중얼거려서 걱정에 찬 얼굴로 안부를 묻는 올리버 로 동지도, 저 근처의 노먼 베순도 알아듣지 못했다.
실제인지 아닌지도 모를 상상만으로도 이렇게 치가 떨리다니.
트로츠키는 분노를, 이 거지 같은 분노를 속으로 깊이 삭였다.
만약에 살아서 돌아가기만 하면, 스탈린을 반드시 갈아 마셔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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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젠장, 이게 뭐야···?”
블레어는 복도의 손잡이를 꼭 잡고 비틀거리며 갑판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트로츠키가 탄 켈틱 1호에 타지 못하고 2호에 탄 것이 아쉬워 선실에서의 독서로 소일하는 것이 지난 블레어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어느새 익숙해진 오후의 독서 시간을 방해한 것은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
“지금 객실밖으로 나와 갑판으로 대피하십시오! 안전 훈련이 아닙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의자에서 일어난 찰나 출렁, 하고 배가 흔들렸다.
허겁지겁 객실 밖으로 뛰쳐나왔더니 승무원들의 안내에 다들 도망치듯 복도를 달리는 것이 아닌가?
물론 진정하라는 안내를 무시하고 무작정 내달리던 이들은 배가 다시 요동치자 비틀거리다 넘어지는 벌을 받았지만. 아무튼 다들 다급한 마음은 여전했다.
그 흐름에 휩쓸려 저도 모르게 블레어와 아내 또한 이렇게 대피경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무슨 날벼락···”
쿠구구구궁!
아하.
문득 바라본 선창 바깥에서 솟구친 물기둥은 그의 의문을 단숨에 해소해주었다.
스페인 땅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죽으려나?
어느덧 갑판을 밟고 선 블레어는 사방을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다. 이 혼란에 그냥 정신머리를 내맡겨버린다면 공포와 긴장감에 죽어버릴 것 같았기에.
“저기! 블레어 씨! 도와주십시오!”
그러다 뭔지 모를 상자들을 허겁지겁 옮기는 바빌로프 박사를 발견했다.
연구원들과 함께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대피 행렬에 휩쓸리지 않도록 애쓰는 모습이었다.
“조신력, 곡량도는 3번 상자에 나눠 담으세요! 안돼애애! 다다조랑 조동지는 7번 상자랑 같이 놔야합니다!”
“아니 저게 다 뭐랍니까?”
“하하··· 저의 피땀이죠.”
블레어가 뭔 소린가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바빌로프는 덧붙였다.
“제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모은 종자들입니다. 스페인의 환경에서 실험적으로 재배해보든, 교잡해보든 재미있을 것 같은 것들만 추려서 와봤죠.”
“참··· 인상적이군요···.”
“인력이 정말 끔찍하게 부족합니다. 갑자기 이런 난리라니, 만약에 배를 버리기라도 해야 한다면 이 많은 연구 장비와 종자들은···.” 바빌로프의 얼굴이 갑자기 침울해졌다.
그가 든 짐과 흙이 여기저기 묻은 꼴 때문에 바빌로프는 실의에 빠진 과학자라기보단 꼭 밭 갈아엎고 농사 망친 농부 같았다. 물론 블레어가 이런 감상을 막 뱉을 정도의 무뢰한은 아니었지만.
“걱정 마십시오, 괜찮을 겁니다. 제가 짐을 나르는 것을 돕죠.”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블레어 씨. 정말 당신께는 신세만 지는군요.”
“감사 인사는 이 아수라장을 빠져나가서 해도 좋습니다! 우선 이 상자부터 옮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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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모르게 분노를 삭이던 트로츠키는 그래도 이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조금만 더 가도 정부군 점령지다···. 바르셀로나로 못 가서 계획이 틀어질 순 있더라도, 적어도 말라가까지만 닿을 수 있다면 안전하게 정부군에 합류할 수 있다···.
쿠쿵!
아, 미치겠군. 이가 갈릴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심정을 달래 볼 때마다 들리는 폭발음과 솟구치는 물기둥이 끊임없이 트로츠키의 속을 긁어 놓고 있다.
이대로 몇 시간만 더 있으면 정말 사람 하나 정신 나가는 건 일도 아닐 것 같다.
정말,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처럼 힘겹게 트로츠키는 정신을 부여잡고 있었다.
만일 저 어뢰 한 발이 직격한다면, 배가 우연히 반란군 점령 지역으로 향하게 된다면, 트로츠키는 정치적으로 완전히 끝장난다. 제대로 저항할 수는 있을까? 대부분이 프랑스에서 아주 기초적인 군사훈련만 받은 이 인력을 가지고?
전차와 야포의 지원을 극소수만 빼고 이후로 미루었던 그 자신의 판단이 사무치게 후회되었다. 어차피 자신이 데려가는 인력은 보병 위주니까 본격적 장비 지원은 훈련이 이뤄지는 몇 주 뒤로 미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으니···.
지금은 그 판단이 파멸로 가는 고속도로를 열어주고 있었다.
“후우···”
한숨을 내쉰 뒤 트로츠키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했다. 반란군과 해안에서 마주할 가능성을 고려해 군 편제를 급하게라도 짜 둬야 한다. 현재 대피를 지휘하는 인사들, 그리고 각 정당과 노조 조직들 간의 관계를 고려해서. 프랑스군 출신들은 걱정할 것 없고··· 나머지는···.
“메리먼 동지! 로 동지!”
“예···? 무슨 일입니까?”
피난민들을 인솔하다 급하게 달려오는 두 사람은 왜 자신들을 불렀는지 아리송해 보였다.
“앞으로 있을지 모를 비상상황에 대비하여 여러분 둘을, 미국인들의 임시 지휘관으로 삼으려 하오.”
프랑스군을 빼고 자원병 지도자들 중 유일하게 장교 경험이 있는 사람. 거기에 흑인 미국인들의 신임을 받는 지도자.
두 사람 모두를 불러야 한다. 올리버 로를 지도부에서 빼면 흑인 자원자들의 신뢰는 얻을 수 없다.
그렇게 트로츠키가 두 사람에게 대강 자신이 염려하는 바들을 하나씩 설명하자 그들도 트로츠키에게 방금 전의 수뇌부 회의에서 못 다한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었다.
“···현재 각 노조원들의 인원 수와 구성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미국 공산당 내의 조직 구도는 대강 이 수첩에 적어 놓은 식입니다. 그러나 당연히 군사적으로 판단하자면 이 구도는 참고만 해두는 것이 좋겠죠.”
여기에 어느덧 여타 노조위원장, 모 조직 서기장 같은 이들이 조금씩 모여 이 약식 회의에 참여했다.
“그래도 승선 전에 프랑스제 총기를 다루는 법을 대강 배워서 다행이지만, 독일인들은 훈련 때도 언어 문제 때문에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서···”
“저희 아일랜드인들은 웬만하면 영국인들과 편제를 분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트로츠키가 대강의 상황 파악과 지시 사항 전달을 마쳐갈 때쯤 뱃머리에서부터 어떤 외침들이 메아리처럼 희미하게 들려왔다. 선원들의 외침이었다.
그리고 그 외침이 점차 갑판 전체로 퍼져 오며, 내용을 트로츠키가 알아들었을 때는,
“안개가···안개가 나타났다!”
이미 배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이런 맙소사.”
“Scheiße! (젠장!)”
“돌겠군···.”
시계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이 수송함들은 잠수함보다 더욱더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정말 눈이 가려진 거대한 표적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일단 서북향으로 계속 전진한다! 방향을 유지해!”
“어떻게든 여길 벗어나는 걸 목표로 한다!”
이 불길한 바다 안개. 짠 냄새에 옷소매와 피부가 젖어 들고 폐 속까지 소금기가 침투해 온다.
“으아아아앙!” 어느 어린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부모는 아이를 들쳐 업고 어떻게든 진정시키려 애쓴다.
그러나 어른들조차 겁을 먹었는데, 누가 누구를 진정시킬 수 있을까?
갑자기 주위의 소리마저 지워지고, 모두의 시야가 백지장처럼 하얗게 물들었다.
아까까지 그들의 목덜미를 노리는 것만 같던 잠수함마저도, 저 멀리 하늘의 은하수만큼 멀게만 느껴진다. 우주에 처음부터 오직 자기자신과 이 거대한 안개만이 있었던 것 같았던 기분.
트로츠키는 그 아찔한 압도감에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자 안개는 걷혀 있었다.
모두가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피부로 낯선 공기, 낯선 냄새가 느껴져 왔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곳은 우리가 알던 곳이 아니다.
소나무가 자라는 저 섬들, 기묘한 해안선, 고요하고 잔잔한, 그러나 두려울 정도로 푸르고 깊은 바다. 이곳을 지중해라고 착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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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라는 곳 (1)
어쩐 일인지 모르겠지만, 잠수함들의 공격도,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의 모로코도 모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건 이 몹시나 ‘이국적인’ 풍경뿐.
‘어디 지중해 깊숙한 곳인가···?’ 트로츠키는 그렇게도 생각했지만 역시 석연찮은 점이 있다.
우선 이 바다가 주는 기묘한 이질감도 그랬지만, 저 멀리 보이는 해안은 아무리 봐도 북아프리카나 유럽으로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