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6
“제국주의 타파하라! 조선반도 해방하라!”
누군가는 즉석에서 구호를 짓고,
“민중의 기는 가장 짙은 붉은 색이고~! 순교자의 시신을 감싼다~!”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와아아아아아! 일본놈들한테 본때를 보여주자!”
누군가는 그냥 아무렇게나 소리 질렀는데 이쪽의 인원수가 제일 많았다.
그렇게 모자와 손수건을 내던지며 악을 쓰는 군중들 덕에 빵과 수프와 그릇이 사방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조리사들은 눈물을 머금었으며 식당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이 소식이 들어가자 또 다시 트로츠키는 무한 회의의 굴레로 빠져야만 했다.
“이 여론을···어쩝니까?”
트로츠키가 한숨을 쉬며 포문을 열자 다들 입을 떼기 힘들어 하고 있었다.
지금 이 분기탱천한 분위기가 계속되면 자칫하다간 폭동이다. 어떻게든 이 화를 풀고 승객들을 진정시켜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아무도 대답이 없자 트로츠키가 다시 말했다.
“일단, 저와 몇몇 지도부가 대표로 육지에 올라 담판을 짓고 올 수도 있습니다.”
“절대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저도 반대합니다! 일반 병사들에게도 화살을 쏴대는 데 동지가 몇 안 되는 인원들과 다시 갔다가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역시나 쏟아지는 반대.
“허···그럼 어쩌겠습니까? 여기서 식량이나 축내다가 그냥 굶을 수는 없잖소.
무선통신도 먹통이고, 블라디보스토크 쪽이든 일본이든 어디든 연락이 되는 곳이 없는데! 다른 방법이 없는 이상 우리는 반드시 육지와 접촉해야 합니다!”
“···젠장.”
“별 수가 없나···.”
그렇게 침묵 속에서 다시 골머리를 썩히길 몇 분째,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메리먼 동지? 발언권 요청 받아들이겠습니다.”
“이건 제 사견입니다만, 아예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병력을 대동하고 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지루한 교착상태를 뚫고 나온 메리먼의 제안에 다들 귀를 기울였다.
“그렇다면 수뇌 몇몇이 가는 것보다는 훨씬 안전할테고 저들도 쉽사리 공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흠, 그렇지만 대규모 거병은 오히려 저들을 자극할 수 있지 않겠소? 일본 정부 측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어떻게 변명할 수 있겠소?”
“하지만 이미 우리에게는 구실이 있습니다. 이미 승객 중 한 명이 일본 정부의 과실로 상해를 입었잖습니까? 게다가 우리가 비록 ‘빨갱이’일지라도 전세계에 민주주의의 십자군이라 선전했으니 저들 또한 섣불리 우리를 겁박할 수 없을 겁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오히려 큰 규모로 움직이면 저들 또한 우리를 유랑민이나 불법 난민 취급하지 않고 제대로 대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역시 위험부담이 큽니다! 우리는 결국 비국가 군사조직이고, 결국 저들에겐 군벌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해보죠.”
이번에 다시 말을 꺼낸 것은 올리버 로였다.
“우리가 체류하고 있는 섬 주민들 몇몇을 함께 데려가는 겁니다. 만난 기간은 짧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보장해줄 수 있을 겁니다. 또, 저들도 자국민이 탄 배에 쉽게 공격을 감행할 것 같지는 않군요.”
“그 제안을 받아들이자면,”
트로츠키가 손을 들어 주의를 집중시켰다.
“일단 섬 주민들을 포섭하는 것부터가 문제겠군요.”
“그 부분은 저와 베순 동지, 그리고 블레어 동지가 아까까지 대민 활동을 진행했으니 저희가 진행해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쯤 마무리해두고.”
트로츠키는 올리버 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저 미국인을, 주목해두겠다는 생각으로.
“메리먼 동지와 로 동지의 의견에 관해 표결을 붙이도록 하죠. 찬성자는 손을 들어주십시오.”
거의 대부분이 손을 들었다. 숫자를 헤아릴 필요도 없었다.
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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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호장 나으리! 나으리! 큰일입니다요!”
“아니 대체 왜 또 소란이더냐!”
그 기묘한 왜구(?) 소동이 바로 어제였다. 상부로 왜적을 퇴치했다는 보고를 올리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나 싶더니만···
“그 왜놈들이 이번엔 떼로 몰려왔습니다!”
“이런 젠장!”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은 김밀은 가죽신을 대강 꿰어 신고 허겁지겁 뛰쳐나갔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어제 어민들이 지껄이던 헛소리들을 대강대강 넘기긴 했으나···
-‘아니 무슨 집채만 한 배가 몇 척이나 있더랍쇼! 시커멓고 무쇠로 만든 것처럼 생겼더니 이상한 불 같은 것을 내뿜고는···’
무지렁이 특유의 미신과 과장이라 여기고 넘겼지만, 허튼 소리만 제외하고 보면 커다란 배 정도는 있을 수는 있지 않은가!
어제의 해안 쪽으로 급히 달려간 김밀은 눈앞의 광경을 믿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어제와 같은 배에, 어제와 같은 사람이 타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수십 척이었다.
“아···아니···”
김밀의 반응이 유독 극적이기는 했지만 해안에 모인 사람들 모두의 반응이 대동소이했다.
겁에 질려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저 경악에 찬 표정으로 굳어 있다는 점에서.
사실, 이미 저렇게까지 가까이 왔다면 도망치는 것도 무리일테다.
김밀은 ‘항복’ 두 글자를 일단 가슴에 품고 자신과 함께 온 몸종들의 무장을 확인해보았다.
끽해봐야 쇠스랑에, 낫에, 급조한 죽창에···안쓰러울 정도로 허섭한 장비들이다.
“이 목숨도 여기까지인가···.”
허망한 마음에 김밀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심하게도 푸르다. 여태까지 호장으로서 이권을 지키려고 그렇게 아등바등했는데···이제 와서 보니 다 필요 없는 몸부림이었나···.
그런데 이렇게 호장께서 생각에 잠겨 계시는데 아랫것들이 소란소란한 것이 마음이 편치 않다.
한번 휙 노려봐줄까 싶어 고개를 돌리니 대화내용에 자신도 놀라 급하게 왜적들의 선박을 다시 살펴봤다.
“저···저기 말식이 아냐!”
“신도(薪島) 사람들은 다 오고 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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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박.
오랜만에 밟는 육지의 감각에 발끝이 떨려오는 것 같다.
옆으로 함께 늘어선 수백 명이 이 모래사장을 밟으며 그와 똑같은 안정감을 느끼고 있으리라.
트로츠키는 옆에 선 바빌로프 박사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일본어 통역에게 말했다.
“우선, 우리에게는 공격할 의사도, 적대할 이유도 없다고 전해주게. 우리는 우연히 여기에 닿았고 다만 상부와의 연락을 바랄 뿐이라고.”
“네, 알겠습니다. ···私たちはあなたたちを脅かすつもりはありません!”
역시나 알아듣는 이가 없다. 식민모국과 교류가 적은 궁벽한 어촌에서 일본어가 통하길 기대하는 것이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 편한 길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좌절되자 몇몇 이들은 신음소리를 냈고 트로츠키 또한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이제 올리버 로 동지의 제안대로 섬의 주민들을 내보내야겠소.”
“옙, 알겠습니다!”
약간 두려움에 질려 있던 섬사람들은 그나마 친숙한 바빌로프나 블레어의 안내를 받아 배에서 내렸다. 이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다, 먼저 도망쳤던 동네사람들에게 가서 이야기를 붙였다.
“이제 어떻게 될지는 운에 맡기는 수밖에···.”
트로츠키는 초조하게 원산의 백사장을 내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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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이래니까! 저 귀신 같은 사람들이 와서는 말순이도 치료해줬다고!”
“그것이 참말로 사실이네?”
“설명하고 자시고 할 게 뭐 있겄소. 말순아, 와봐라!”
뒤뚱뒤뚱 어린 여자아이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나오자 신도(薪島) 사람들은 탄식했다.
“아니, 며칠 전까지 열이 올라 죽어가던 애가 살아났고만···.”
“저 치들은 내게는 은인이오! 뭐 하나 삐끗했다간 내가 그놈 목을 베어버리겄소!”
그렇게 술렁술렁하는 것이 이미 현민들은 싸울 의지가 사라진 것만 같다. 김밀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트로츠키와 그 일행들을 쭉 둘러보았다.
얼굴은 울긋불긋한 것부터 거무죽죽한 것까지 다양하고, 머리빛깔도 그냥 검은색부터 지푸라기색까지 천양지차다.
하지만 다들 손에 든 것은 똑같이 길쭉하고 시커먼 쇠막대다. 일종의 둔기인가? 손잡이 생긴 것도 요상하구만.
아무튼 간에 말도 안 통하니 저 색목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수효라도 적으면 어디다 가둬놓고 저기 도호부사께 보내면 됐겠지만, 이 정도 수라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뭣보다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색목인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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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를 못 알아들으니, 아마 저 관리도 조선인인 것 같습니다.”
올리버 로가 속삭이자 트로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트로츠키뿐만 아니라 모두가 경멸 어린 시선으로 저 관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 민족을 배반하고 제국주의의 하수인이 되길 자청하다니. 심지어 이 가난한 어촌에서 저 자신만 홀로 부유하게 살아가는 꼴이라니. 어떻게 저런 작자를 혐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작자는 어색한 미소를 띠고서 트로츠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 지시가 오가는 것을 보고 어디가 지도자인지 대강 짐작한 듯싶었다.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고 트로츠키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런데 상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 손을 멀뚱히 보고만 있을 뿐이다. 그 상태가 이어지자 트로츠키는 어색해진 손을 내린 다음 상대의 말을 기다렸다.
“져기, 엇더한 연유로 여긔까지 오시엇소?”
역시나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한숨나오는 상황에 그냥 자신의 의도를 먼저 설명하는 게 낫겠다 싶어 트로츠키는 손짓 발짓을 동원해 대화를 시도했다.
“당신, 상관, 연락, 가능한가?”
역시 묵묵부답.
“이거 어쩔 수 없습니다. 일단 이 근처의 지방 관청으로 가는 게 급선무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보면 저기 있는 건물이 유일하게 기와지붕이 올라가 있고 공간도 넓습니다. 저게 아마 행정사무소쯤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사람들이 가리키는 곳을 보자 과연 초가지붕 가운데 유일하게 번듯한 건물이 있다.
“좋소. 못 알아듣겠다면 저쪽의 관청 같은 건물로 가겠으니 안내해주시오.”
트로츠키는 그렇게 말하고 일행들과 함께 기와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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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안 된다! 이놈들아!”
당연하지만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쌍욕을 내뱉든 악을 쓰든 소용이 없다.
곤봉 같은 걸 든 수백 명은 해안가에 남고 그 중 우두머리 같은 열댓은 갑자기 김밀의 집으로 곧장 걸어가고 있다. 그것도 아까와 같이 살기등등한 얼굴이다. 김밀은 식겁하여 급하게 그들을 뒤따랐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저놈들을 집안에 들이겠는가?
사정사정을 해도 뭔가 곤란하단 표정만 짓고선 묵묵부답. 길을 막고 뭐하냐고 해도 어리둥절한 표정뿐, 무시하고 지나간다. 이대로 가면 정말 뭔 일이든 일어날 것만 같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김밀의 머리에 천재적인 발상이 스쳐 지나간다.
‘잠깐, 그냥 확 칠까?’
자세히 보니 김밀의 집으로 향하는 이들은 무장도 별 게 없고 인원수도 데려온 몸종들이 좀 더 많은 상태.
이 놈들을 제압한 뒤에 대장을 볼모로 삼아 나머지도 무장해제한 뒤에 도호부사에게 지원병력을 요청하면?
자신은 일당백으로 도적떼를 잡았으니 충신이고 영웅이요. 저 시끄러운 놈들은 그냥 모가지다. 실패한다면···그건 생각하지 말자.
결심을 굳힌 김밀은 근처의 몸종들을 불러 모았다.
그의 일생을 건 도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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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정리 (1)
“저기···아까부터 저놈들 거동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괜히 무리지어 속닥거리는 꼴 하고는···”
“일단 두고 봅세. 우리가 권총까지 이렇게 감추지 않고 차고 있는데, 바보도 아니고 감히 덤비기나 하겠나? 그래도 자네의 말도 일리가 있으니 사방경계는 해두는 게 좋겠네.”
메리먼의 조언에 트로츠키도 심상찮은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마치 빈틈을 노리듯 그 조선인 악덕관리와 하인들이 조금씩 이쪽을 훔쳐보는데 못 알아채는 것이 더 이상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트로츠키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저들의 무장상태는 딱 봐도 형편없고, 아주 적은 확률이지만 공격이 들어와도 일행들 각자가 권총 조금만 쏴주면 제압되지 않겠는가? 뭐, 총 든 사람에게 감히 덤비는 미친놈이 세상 어디 있겠냐만은···.
또, 저 악덕관리도 갑자기 태도를 바꿔 이제 관청으로 가는 길을 앞서서 안내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이제 별 걱정도 없겠다 싶었는데···.
“쳐라!”
“와아아아!”
있었다. 그런 미친놈이.
-탕.
가장 먼저 낫을 빼 들고 달려오던 하인이 푹하고 고꾸라졌다. 그러자 습격 태세를 취하던 이들이 황망한 표정으로 굳어버린다.
“으···으아아아악!”
“사···살려···.”
몇몇은 도망치고, 몇몇은 무모하게 덤벼들다 제압되었다.
그리고 남아있는 한 명.
아직도 그 악덕관리는 두려움에 굳어 있었다.
“항복하시오. 지금 당장 당신에게 죄를 묻지는 않겠소.” 트로츠키가 그의 상태를 보고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눈에 보이는 무기도 없고 옷도 치렁치렁한 비단옷이라 위협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바들바들 몸을 떨다가 체념했는지 팔을 축 늘어뜨렸고···곧 작은 단도를 뽑아 휘둘렀다.
탕! 메리먼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잠깐! 쏘지 말고 제압해야 하오!”
그러나 트로츠키의 지시가 전달되기에 김밀의 행동은 너무나 빨랐고 일행들의 대응도 한발 앞서 있었다.
-탕! 탕! 탕!
-털썩.
자신의 민족을 배반한 제국주의의 앞잡이는 그렇게 싸늘한 바닥에 엎어져 죽어갔다.
“저 기생충 같은 놈에게 어울리는 최후로군요···.”
올리버 로는 그를 내려다보고 중얼거리다 다시 관청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김밀, 도박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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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청에 도착해보니 별 건 없었다. 관리와 그 식솔들의 생활공간으로 추정되는 곳과 개인적 사무실 같은 작은 방뿐.
관리의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은 일단 안전문제로 억류해 놓고 비상회의를 진행했다.
“어쩌려 하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타국 공무원을 살해하다니!” 바빌로프가 울먹이며 말하자 올리버 로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트로츠키 동지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놔뒀어야 했습니까? 그 귀족 놈이 비겁하게 단도를 숨겨 놨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어느새 악덕관료는 귀족이 되어있었다. 생각보다 넓고 호화로웠던 그의 집과 딸린 식솔들의 규모를 보고서 나온 말이었다. 물론 조선에 유럽적인 혈통귀족은 없었지만. 그리고 은장도도 조선의 일상 용품이었으니 비겁하다 말하기 힘들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은 나중으로 미뤄두겠소. 우선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과 그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 것이 급선무요. 알겠소?”
트로츠키가 손을 내저으며 격화되는 논쟁을 제지하자 커가던 목소리들도 수그러졌다. 마침내 방 안이 조용해졌을 무렵 트로츠키는 한 무더기의 종이를 꺼내 바닥에 턱하고 내려놓았다.
탁자도 의자도 없는 낯선 환경에서 회의를 진행하느라 둥글게 둘러 앉은 회의 참가자들은 서류를 살펴보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물론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자네, 읽을 수 있겠나?”
트로츠키가 대동하고 온 통역에게 묻자 통역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일본어가 아닙니다. 중국 문어(文語)라고 하는 게 맞겠군요.”
“음? 그렇다면, 해석은 불가능한가?”
“일본어도 칸지(한자)를 쓰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준으로는 해독할 수 있습니다.
이건 이 지역 지방관에게 올리는 보고서로군요. 일본어를 쓰는···도적떼가 출몰해 제압했다는 내용입니다. 아마 우리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