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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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극―유자광 이야기
“…나으리, 정말로 저리로 가면 됩니까?”
“그래. 이리 장마가 심하니 밭이 다 상하지는 않겠느냐? 네가 어리고 몸이 날래니 다녀오거라.”
그러나 ‘나으리’의 말씀에도 불구, 아이가 보기에는 천지가 컴컴한 가운데 물살이 불어난 강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어 위험할 뿐이었다.
“너만 믿고 있으마.”
나으리는 곧 섬돌에 아이를 세워 둔 채 방문을 닫았고 바깥에 남겨진 아이는 처마 너머 비가 쏟아지는 세상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 강을 건너라고?
저렇게 강의 흐름이 거센데?
변변한 다리도 없으니 헤엄쳐 가야 하겠다만은, 지금 헤엄쳐서 이 쬐끄만 몸으로 저 강물에 떠내려가지 않을 추진력을 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갔다 오지 않는다면 강 너머의 밭농사가 다 망했을 때 어영부영 잘못을 다 덮어쓰고 온갖 핍박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그것도 아이 자신만이 아닌 어머니까지.
그것만은 안 돼. 그런 생각에 아이의 눈이 커진다.
아이는 자라서 그날 밤을 되새길 때마다 자신이 어떻게 강을 건넜는지를 알 수 없었다.
대강 썩어 가는 나무판자 몇 개를 낑낑 이고 가서 강 위에 띄우고 배처럼 타고 갔었다. 말로만 하면 쉽지만 그 강우량에 판자가 뒤집히기라도 했다면 아이는 그냥 익사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해냈다. 노를 젓기도 하고, 판자가 이리저리 흔들릴 때면 위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기도 하면서 겨우 강을 건넜다. 다행히 메밀들은 상하지 않은 채 잘 버텨 내고 있었다.
원래 농사가 잘되어야 할 곳은 물에 잠겨 상했으나, 척박하던 곳은 도리어 그 푸른빛이 싱싱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나으리에게 밭이 멀쩡하다고 그대로 고했을 때, 기묘하게도 나으리는 실망한 기색을 보이셨다.
그 또한 자라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된다.
괜히 마을 서당에서 나으리의 적자(嫡子)들보다 글공부를 앞서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
고을의 아이들끼리 활쏘기를 할 때 한 번쯤은 과녁을 빗나가게 쏴야 했고, 또 아이들이 이룬 무리에서 대장 노릇 하면서 두각을 드러내어서도 아니 되었던 것이다.
얼자가 적자보다 뛰어나면 문중에는 곤란한 일이 많아질 뿐이다.
얼자의 이름이 높아질수록 노비와 정을 통한 아버지의 흉이 드러나니 다른 자식들의 출세에 누를 끼치면 끼쳤지 득이 되지는 않을 터이다.
그래서 나으리… 아니, 아버지 유규(柳規)는 그날 어린 자신이 죽기를 바라셨던 것이리라.
유자광은 그 사실을 한참 자라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 * *
그 뒤로는 정말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살았다.
형님들이, 나으리의 아들들이 하나씩 서울에서 저마다 관직을 꿰차게 될 때까지 그저 유자광은 사고뭉치로만 살았다.
뻑하면 노름이요, 가축이나 과일을 서리해 먹는 것은 장난이고, 지나가던 양민은 흠씬 두들겨 패 주거나 남의 잔칫날 끼어서 술을 됫박으로 마시고서 행패 부리는 일도 잦았다.
보통은 이리 사나운 날라리가 나다니면 집안에서 면박을 주든, 자제를 시키든,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밖으로 싸돌아다니지 못하게 만들든 하겠지만 유자광에게는 아무 간섭도 없었다.
도리어 나으리는 노름 밑천으로 쓰일 자금이나 조금조금 부쳐 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집안과 유자광 사이에 맺어진 비밀스러운 합의였다.
크게 탈이 나지 않을 정도로만 한심한 망나니로서 삶을 살아갈 터이니 그저 가만히만 내버려두어 달라는 유자광의 외침이었고, 거기에 영광 류씨 집안이 베풀어 준 하찮은 자비였다.
그렇게 구차한 것도 삶이라 부를 수 있다면, 유자광은 그렇게 스무 살이 된 오늘날까지 잘도 살아왔다.
비참한 처지에 가끔씩 구석진 데서 눈물 흘리지만, 이런 합의조차 깨져 버린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언제나 막막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리 빠르게 삶이 망가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 * *
“…그동안 무탈하게 잘 지냈느냐?”
“예, 나으리.”
대놓고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하는 유규에게 유자광은 너부죽이 고개를 숙였다.
당연히 기분이 편치 않으리라. 아들놈과 함께 역적 수양의 조정에서 일했다는 불명예를 입고 어쩔 수 없이 낙향하고 만 것이니.
심지어 유규의 적장자 유자황(柳子晃)은 수양의 조정에서 3등 공신까지 올랐으나 수양이 유규의 환심을 사려는 목적으로 책록했다는 점이 감안되어 역신 취급만은 면할 수 있었다.
물론 스스로 사직하고 가산 대부분을 나라에 바치는 등 알아서 설설 기고 나니 집안이 풍비박산 났지만.
이렇게 되면 죄인 취급받고 귀양 가는 것보다 아주 조금 상황이 나을 뿐이다.
“…아무튼 그렇게 된 고로 네게 빌려주었던 것들을 돌려받아야 하겠으니 그리 알 거라.”
“어찌 소인네가 별다른 말씀을 드리겠사옵니까? 나으리께서 시키시는 대로 할 뿐이지요.”
“그래, 이해해 주어 고맙구나.”
덕분에 어머니와 함께 분가해서 살던 집도, 거기에 딸려 있던 밭뙈기도 전부 다시 나으리께 회수되었다.
한순간에 양반댁 서얼에서 행랑채에 딸려 사는 군식구가 되었으니, 이제 이전의 놈팡이 짓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자광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그저 끼지 못한 노름판에 대한 아쉬움이나, 아직 가 보지 못한 해남의 명승지 따위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합의가 깨졌다. 나으리의 아들들이 출셋길이 막혔으니, 아니 그냥 집안 자체가 박살 났으니, 이제 유자광이 적당히 망나니짓을 할 필요도 없다. 집안에는 그 망나니짓을 지원해 줄 여유도 없다.
그러니 유자광은 살아 있을 이유도 없다.
산길을 산책하다 갑자기 바윗돌이 굴러 떨어지거나, 홀로 외딴길을 걸을 때 인기척을 느끼게 되는 것은 예사였고, 집안의 몸종들조차도 그를 업신여기기 일쑤였다.
“대체 자네는 뭐 하는 겐가? 어차피 얼자면서 그저 앉아서 탱자탱자 신선놀음이라도 하는 건가!”
특히 지난번에 싸움이 붙었을 때 유자광은 눈치챘다.
이거, 아버지가 날 보내 버리려고 하는구나.
마침내 종놈들이 그를 둘러싸고 두들겨 패다가 그중 한 명아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날렸을 때는 결심을 굳히고 만 것이다.
“…어머니, 저는 향민계로 알리러 갑니다.”
“뭘 알린다는 거냐?”
“이번에 향민청에서 ‘적서차별반대운동’을 여니, 핍박받는 서얼들은 나와서 고하라고 하였습니다.”
“안 된다.”
“어머니, 하지만….”
“절대로 안 된다.”
그 말에 어머니는 크게 충격을 받으셨다. 당연히 그렇게 향민계에 신고를 하고 나면 남원 땅에 발붙이고 있을 곳이 없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께서는 다른 고을로 떠난다는 일 자체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으리라.
하지만….
“…그 정말로 원산으로 가면 지원금은 주는 게냐?”
아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선 뒤로는 어머니도 별수가 없었다.
그렇게 모자는 유향소(留鄕所) 있던 자리에 현판만 바꿔 들어앉은 향민소(向民所)로 향했다.
향민소 대문을 넘으니 과연 시끌시끌하다.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땅을 담당시키느니, 누구에게 며칠간 농기구를 대여하느니… 온갖 말소리와 걸음 소리로 시끌시끌하다.
“…민원 신고하러 오셨소? 향민소 서기요.”
“아, 저기….”
“자네, 우후(于後) 아닌가! 읍내에서 만나는 게 얼마 만인가!”
“어, 어어? 자네 정길이 아닌가? 왜 여기에….”
“으흐하핫! 이 지역 선비들이 머뭇거릴 때 1년은 먼저 내 향민계에 가입하였지. 그랬더니 이제는 어엿한 서리가 아닌가?”
해가 지나가면서 남원 땅에도 향민계가 들어왔다. 오랑캐의 당파라 하여 무시하던 사족들도 결국 지주 노릇 하기가 어려워지니 협동조합을 만들었으나 이미 소작인들이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향민계에 가입한 이들이 대부분 사족이라, 나으리와 친한 이에게 걸렸다가는 큰일이 나겠다 생각했더니만….
도리어 이런 행운도 찾아온다.
마음 놓고, 유자광은 정길에게 자신의 한과 고통을 털어놓는다. 곧 그의 말은 몇 장 필기되어 한 부는 서울로 발송되었다.
그리고 곧 향민계에서 조사원이 나온다.
이런저런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가나 이런저런 증언들을 마을에서 이미 확보했는지 가족들의 말은 조사원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으리… 아니, ‘아버지’와 ‘형님’들은 죽일듯이 모자를 노려보았으나 유자광은 더 개의치 않았다.
유규는 없는 살림에 또 밭을 쪼개 팔아 그에게 ‘위자금’이라는 것을 물어 주어야 했으니 말이다.
우습게도, 그 밭이 옛날의 그 강 건너 메밀밭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안의 돈을 받아 챙기고 새살림 마련할 생각에 신이 났었다.
원산으로 가서 근처에 신기하게 생긴 집을 짓고 주민으로 등록하였을 때까지만 해도 집안에 한 방 먹여 줬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그런데 일거리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유자광이 할 일이 없다.
이미 직업소개소에는 일을 찾아 헤메는 농군들이 넘쳐 나니 농업공장과 협동조합 농장은 사람으로 꽉꽉 차 있다.
또 어차피 면포와 쌀을 공짜로 나눠 주어 당장 일 없이도 먹고는 살 수 있으니 사람이 팔자 좋게 늘어지게 된다.
어머니는 손을 놀리기가 뭣하여 근처 여인네들을 모아 삯바느질을 하니 그것으로 벌이가 조금 채워지고 생활에 활력이 생기는 듯싶었다.
분명히 “면포가 이리 많으니 삯바느질 찾는 수효도 많지 않겠느냐?” 하고 당당히 외쳤던 어머니는 밀려들어 오는 수선 업무를 일꾼을 배로 늘려 가며 감당하느라 완전히 탈진 상태에 빠진 듯했다.
당연하다. 인근의 농업공장에서는 면화가 쏟아지고, 면직 공장에서 직조된 면포기 의류 공장을 거쳐 수백수천 벌의 옷으로 다시 태어난다.
본래 그를 수선할 아낙들이 바로 그 의료공장에서 자리잡고 앉아 천을 접고 바느질을 하고 소매를 매만지며 옷을 만들고 있으니,
그 옷들이 망가질 때마다 수선을 맡을 사람이 없어 삯바느질 찾는 집이 늘어가는 추세였다.
“이대로 가면 우리도 돈을 깨나 모아 인근에 땅을 살 수 있겠구나!”
소련 안에서야 개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없으나 조선 땅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땅을 야금야금 사서 소작을 주고 세간살이를 키워 간다면 지금 남원에서 골골대고 있는 본가쯤은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리 꿈을 키우는 어머니와, 어머니를 곁에서 물심양면으로 유자광은 머지않아 깨닫게 된다.
그렇게나 많이들 옷이 쏟아진다면….
굳이 고쳐 입을 필요 없이 새로 사면 되지 않는가?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솜옷, 면옷 귀히 여기던 습관이 남아 이리 삯바느질을 맡기지만 앞으로 더 싸고 많은 옷가지가 쏟아진다면 누가 굳이 수선하여 입으려고 할까?
그렇다면… 그렇다면….
유자광이 찾아낸 해답은 간단했다.
“어머니, 신을 만듭시다.”
“짚신을 삼자는 말이냐? 하지만 원산에 짚신 신고 다니는 이가 얼마나 된다고 그리 말하느냐?”
“짚신을 만들자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어머니께서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소련에는 짚신을 신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소련에서 나눠 준 작업용 장화를 신고 다니는 이들이 많지요.”
대부분 통짜 고무로 만든 장화이거나, 가죽에 고무 밑창이 들어간 것이지만 유자광이 고무가 무엇인지 알 리는 없다. 그저 뭔가 짐승의 가죽인가 싶을 뿐.
“헌데, 그 또한 햇수가 지나가니 점점 닳아 가지 않습니까? 게다가 신발은 재료가 여럿 들어가서 그런지 옷가지처럼 공장에서 찍어 내지도 않습니다.”
이 부분도 정답이다. 복합 소재로 만드는 신발을 굳이 대량 생산 하기에는 소련의 기술력도, 인력도 아직 부족하다.
하지만 대량 생산이 아니라면?
조금만 재료를 바꿔서 수공업 공장을 돌려 본다면?
“면포에 기름을 먹여 신을 짜고, 밑창에 나무를 덧대면 그럭저럭 튼튼하여 광부들이든 공장 노동자들이든 신기에 좋지 않겠습니까?
지금 당장 신을 만들려 하는 이들도 없고, 짚신은 작업용으로 신기에는 위험하니 여기에 뛰어듦에 장래가 있을 듯합니다!”
아들의 말에 어머니는 잠시 고민하듯 고개를 숙인다.
항상 총명하던 아들이다. 저 혼자 살길을 찾아 떠날 수도 있던 것을 구태여 어미를 데리고 함께 원산까지 온 지극한 아들이다.
그 말을… 한 번쯤은 따라도 괜찮으리라.
“좋다. 네 말대로 한번 해 보마.”
“어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광장에서 토론하며 알게 된 노바크 씨가 있는데 그분이 벌목을 하시니 나무를 어떻게 잘 구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면포는 정부에서 나눠 주는 게 있지만 훨씬 많이 필요할 테니 지금 옷감으로 쓰는 걸….”
어머니가 허락하자마자 유자광은 속사포처럼 생각해 두었던 ‘사업 계획’이란 것을 마구 풀어놓는다.
만드는 것은 어떻게 만들고, 파는 것은 어디서 팔고 하는 계획들이 마치 오래전부터 고민해 온 것인 양 거침없이 튀어나온다.
어머니는 그 모습이 장하기도, 안쓰럽기도 하여 아들의 말을 한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들었다.
곧 옷수선 의뢰받기를 관두고, 아낙들에게 함께 신 만들기를 청하니 반수 이상이 떠나갔다. 그럼에도 아들놈의 말 한번 믿어 보자는 생각에 밀어붙여 보았다.
그리고 한두 해가 지난다.
“오늘까지 700켤레 주문 맞춰 주시오.”
“예, 알겠습니다. 공장장 동지.”
“그리고 아들놈이 이야기하기로는 강원도 쪽에 요새 인력들이 논다고 하던데, 그쪽에 공장을 두 곳만 더 지으면 괜찮지 않겠소?”
“아, 총무 동지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그렇소.”
…일이 조금 잘 풀리는 모양이다.
남원의 노비 나주 최씨가 공장장 소리를 들을 만큼은.
* * *
/ 작가의 말
작중 유자광과 그 가족들 간의 관계는 야사의 내용을 많이 따랐습니다. 특히 이번 화 서두에서 유구가 유자광을 물에 빠뜨려 죽이려 했다는 이야기 또한 야사입니다.
실제로는 어머니 나주 최씨를 유구의 적장자가 계모로 모셨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아마 가족 간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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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묻어 버리겠다 (1)
“유목 민족이 싸움밖에 모른다는 말에는 정주 민족의 편견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소? 내가 우크라이나 출신이라 이른바 ‘타타르의 멍에’에 대해서는 잘 배웠소. 몽골의 지배 기간 동안 루스 쪽은 쇠퇴일로를 겪지 않았소?
마르크스도 러시아의 봉건제가 파괴되고 야만적인 동양 전제주의가 이식되었다고….”
“트로츠키 동지, 고려를 생각해 보십시오. 몽골 제국이 열어젖힌 교역로의 한쪽 끝에서 얼마나 고도의 문화적, 경제적 발전을 이뤘습니까?”
조선의 임금은 철인군주(哲人君主)로서, 당연히 경연이라는 철학, 정치학, 역사학 수업을 들으며 신하들과 다양한 현안들에 대해 안목을 넓혀 가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즉위해 내전기와 그 이후의 재건기 동안 기나긴 공백을 거쳤던 금상 전하께서는 그 현명함에도 불구, 경세(經世)의 도리에 아직 밝지 못하시다.
그런 만큼 이러한 배움의 시간, 고금의 현인들이 말씀하신 바를 되새기고 오늘날의 세계를 조망하는 이러한 시간이 어찌 귀중하지 아니할까?
…문제는 지금 영경연사(領經筵事)를 영의정이 겸직한다는 것.
작금의 영의정은 바로 에릭 ‘조지월’ 블레어.
마르크스주의자이고, 20세기 영국인 중산층이자, 트로츠키의 따까리.
그런 자가 기획한, 그것도 강사로 에티앙블이 초청된 경연이라면….
“옛 몽골 제국에서도 프랑스 왕국부터 무함마드의 흥기, 중국의 여러 왕조들의 흥망성쇠까지 다룬 종합 세계사가 편찬되는 등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교잡하고, 화려하게 융성했습니다!”
“이의 있소! 그들의 원시적인 통치 체제로 인해 피지배 민족들의 역사적 발전은 심히 후퇴되지 않았소?”
“그렇게만 볼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편향적인 러시아 민족주의 교육을 좀 내던지십시오!”
“난 우크라이나 출신일세.”
“어쨌건….”
신료들은 눈앞에서 트로츠키와 에티앙블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것을 직관하며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놓고 펼쳐지는 하극상에 이미 익숙한 6조의 판서들은 그를 즐거운 구경거리처럼 여겼지만.
애초에 원산에서 잘 쉬고 있던 에티앙블을 트로츠키가 억지로 끌고 와서 ‘특강’을 시켰을 때부터 파국은 예정된 바였다.
이딴 게… 유교 국가의 경연?
하지만 별수 있겠는가? 주상 전하, 트로츠키 섭정 전하, 블레어 대감이 모두 “앞으로 우방이 될 몽골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다.”라고 한목소리로 외치니 그 누가 부정할 수 있었으리오?
“…아무튼! 유목 민족, 그중에서도 특히 몽골 제국은 그 자체로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다양한 문명과 문화를 연결하는 이른바 ‘문화의 교차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안타까운 오해가 빚어지는 것은 모두 정주 민족들의 유목민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유목 민족들의 거주지는 생산력이 매우 떨어지며, 인구 밀도 또한 희박합니다. 이런 땅에서 부를 축적하고 세력을 키우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