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으악, 아악, 크아악…….
십여 명의 적병이 비명을 지르고, 피를 뿌려대며 짚단처럼 우수수 쓰러졌다.
그사이 야엘은 남은 적들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창, 차창, 서걱! 차창, 썩! 창창창, 철썩!
어두운 밤에 주홍빛으로 번쩍거리는 그녀의 칼날은 망나니의 춤과 같았다.
롱 소드가 휘둘러질 때마다 여지없이 피가 터지고 살이 베이고 비명이 터졌다.
몸이 아직 온전한 상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야엘의 활약은 눈부셨다.
근력이 부족해도 오러의 힘을 적절히 이용해 치명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물론 간간이 스치는 창칼도 있었다.
하지만 카시오페라 왕국 기사단이 착용하는 극상품의 풀 플레이트 아머가 진가를 발휘했다.
대 물리·마법 방어진, 강화 마법진, 무게 감소 마법진 등 각종 유용한 마법진으로 도배를 한 전신 갑주의 방어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또한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 그렌이 걸어준 실드는 일반적인 실드 마법과는 그 궤를 달리했다.
마치 생체 실드나 호신강기처럼 그녀의 몸 표면을 따라 곡선의 실드가 생성되었다.
그래서 적의 창칼과 화살 및 도끼 등에 찔리고 베이고 긁혀도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다.
어쨌든 잘 먹고 푹 잔 야엘은 오늘 그렌의 비호 아래 마음껏 날뛸 수 있었다.
그렌도 야엘이 마치 탱커처럼 앞을 잘 막아줘서 그 틈에 신나게 마법을 날려댈 수 있었다.
어두운 밤, 경계의 빈틈을 노리고 야습을 한 적들!
지금은 반대로 어둠을 틈탄 반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쏴아아아아!
그때 협곡 위에서 불화살이 날아들었다.
처음에 당한 공격이 아마 이 불화살이었던 모양이다.
“불화살이 날아온다!”
“피해라!”
당황한 병사들의 반응이 더욱 혼란을 부추겼다.
“협곡 위에서 불화살을 날리고 있다.”
누군가 적을 발견하고 협곡 위를 가리켰다.
마침 위르겐이 나타나 천둥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협곡 안으로 침입한 적은 얼마 되지 않는다. 모두 침착하게 막사에 붙은 불부터 꺼라.”
“충!”
병사들은 그제야 일사불란하게 불을 끄기 시작했다.
“라이트! 라이트! 라이트!”
그제야 다른 마법사들이 일제히 라이트 마법을 쏘아 올려 야영지 일대를 대낮처럼 환하게 밝혔다.
그러자 대번에 침입한 적들의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입고 있는 복장만 봐도 정체는 금방 밝혀졌다.
코티아르 왕국의 정예병들이다.
“말을 흩어버려라!”
“막아라! 놈들이 말을 노린다.”
적의 일차적인 야습 목표는 막사에 불을 붙이는 것 같았다.
부수적으로 말들을 흩어버려 혼란을 가중시키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그들의 작전은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갔다.
군마를 담당하는 병사들이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말들은 모두 물가 한쪽에 몰아놓았다.
또한 그 주변에 나무로 간이 울타리까지 쳐서 보호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적들의 의도와는 달리 작전은 쉽게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마법사들까지 나서서 주변을 환하게 밝히자 상황은 급반전됐다.
혼란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자신들의 모습이 드러난 적들!
쏟아지는 창칼과 화살로 고슴도치로 변해 참살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협곡의 입구는 어떠한가?”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럼 기사와 병사들을 보내서 지원해 줘!”
“예, 부단장님.”
위르겐이 본격적으로 지휘하기 시작하자 본대와 중앙군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협곡 위에서 불화살을 날리는 놈들부터 처단해야 합니다.”
“맞아. 기사단과 병사들을 보내서 정리해라!”
“예, 부단장님.”
“충!”
장내가 대충 정리되자 갑옷이 붉은 피로 물든 야엘이 다가왔다.
그렌은 그녀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엘! 뭔가 이상하지 않아?”
“뭐가 말입니까?”
“야습이 위험하긴 하지만 겨우 이 정도로 끝낼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야. 마법사라도 데려와 협곡 위에서 광역 마법을 썼다면 우린 아주 큰 피해를 봤을 거야.”
“그것도 그렇군요.”
야엘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협곡 위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거대한 마나의 유동이 일어났다.
“헉! 인페르노다. 적의 마법이 날아오기 전에 중간에 저격해야 돼!”
놀란 라울이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인페르노 마법은 5서클의 광역 마법이다.
저 마법이 아군의 야영지로 떨어지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대뜸 위르겐이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기사들도 일제히 협곡 위를 향해 질주했다.
거의 동시에 라울을 비롯한 마법사들이 차례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지? 5서클의 인페르노 마법을 막으려면 큰 거 한 방이 필요한데… 그럴 만한 방어 마법이 뭐가 있지? 아니 과연 방어 마법으로 막을 수는 있는 건가? 역시 라울의 말대로 저격밖에 없나? 그럼 저격은 어떤 마법을 쓰지? 인페르노 마법을 깨려면 최소한 4서클은 돼야 하는데…….’
제일 먼저 3서클의 파이어볼을 생각했지만 충분하지 않다.
5서클의 인페르노가 날아오면 파이어볼쯤은 그냥 먹혀버릴 것이다.
그렌은 빠르게 고민을 끝내고 3서클 마법인 쇼크 웨이브를 쓰기로 했다.
‘쇼크 웨이브다. 여기에 마나의 양을 대폭 늘려서 4서클에 가깝게 맞추면 인페르노 마법을 날아오는 도중에 깨뜨릴 수 있을 거야.’
그렌은 지팡이를 들고 쇼크 웨이브 마법을 펼쳤다.
허공의 한 점에 쇼크 웨이브가 생성되자 전력으로 카오스 볼을 돌려 마나를 채웠다.
하지만 4서클의 마나양을 꽉 채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는 할 수 없이 마법 주머니에서 마정석 하나를 꺼내 왼손에 쥐었다.
‘업소브(Absorb)!’
업소브 마법을 쓰자 마정석의 거친 마나가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렌은 거친 마나의 흐름을 카오스 볼로 인도했다.
카오스 볼을 거쳐 정제된 마나가 쇼크 웨이브로 빠르게 들어가 덩치를 불렸다.
설명은 길지만 이 모든 일은 단 몇 초 사이에 벌어지고 있었다.
“온다! 막아라!”
라울이 다시 한번 외쳤다.
그렌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지팡이를 든 손을 앞으로 쭉 내뻗었다.
자신의 계산이 맞는다면 분명 인페르노 마법은 깨질 것이다.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말이다.
슉, 슈우욱, 슉슉!
각종 마법이 협곡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인페르노 마법을 향해 날아갔다.
다른 마법사들도 방어 마법만으로는 온전히 막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던 모양이다.
슈우웅!
맨 마지막으로 그렌의 쇼크 웨이브가 그들의 마법을 뒤쫓아 날아갔다.
5서클의 고위 마법사답게, 라울의 에어 블래스트 마법이 제일 먼저 인페르노를 덮쳤다.
급하게 마법을 시전하느라 위력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5서클 마법답게 인페르노의 경로를 위쪽으로 확 틀어버렸다.
흐름 자체를 뒤틀어 버리는 놀라운 위력!
그러나 그건 잠시의 기쁨에 불과했다.
위로 붕 떠오르던 인페르노가 뭔가에 영향을 받았는지 다시 아래로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안 돼!”
라울은 절망에 찬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뒤이어 멀핀의 플레임 버스터 마법이 인페르노 마법을 강타했다.
쾅!
인페르노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플레임 버스터를 먹어치우며 오히려 덩치를 더 키워버렸다.
이번에는 라비의 워터 스트라이크가 인페르노 마법을 후려쳤다.
그러나 4분의 1 정도의 화염만 먹어치운 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사나, 벨로, 지나!
3서클 견습 마법사 3인방의 마법도 차례로 인페르노 마법을 공격했다.
허나 5서클의 고위 마법사인 라울도 못한 일을 3서클의 마법사들이 해낼 리 없었다.
“아!”
“이런!”
“이럴 수가!”
“우린 다 죽었어.”
협곡 아래 카시오페라 왕국 중앙군 병사들이 절망의 탄식을 흘려댔다.
순간 그들의 머리 위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쾅, 파아아앙!
인페르노 마법과 정면으로 부딪친 쇼크 웨이브 마법!
공중에서 폭발하며 강력한 물리력을 동반한 파동을 만들어 냈다.
인페르노는 그 충격에도 불구하고 별로 대수롭지 않은 듯 고개를 아래로 내밀고 꾸역꾸역 내려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허리가 싹둑 잘리듯 둘로 나누어졌다.
“어어!”
“저게 어떻게…….”
라울을 비롯한 마법사들은 눈으로 보면서도 도저히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5서클의 강력한 광역 마법, 인페르노!
결국 형태가 일그러지며 허공에서 찬란하게 폭발하고 말았다.
꽝, 화르륵!
순간적으로 하늘이 온통 붉은 화염으로 뒤덮였다.
게걸스럽게 주변의 산소를 먹어치운 인페르노는 최후의 힘을 쥐어짜 사방으로 불똥을 쏟아냈다.
후폭풍으로 강한 바람이 야영지를 휩쓸었다.
쏟아지는 불똥으로 인해 일부 병사들이 화상을 입고 몇 개의 막사가 전소됐다.
그렇지만 그 모든 피해를 감수하고도 카스 기사단 본대와 중앙군 병사들은 대량 살상의 위기를 기적적으로 넘길 수 있었다.
“마이 로드! 협곡 위쪽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보자.”
야엘의 말에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렌은 협곡 위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뒤늦게 라울을 비롯한 마법사들도 열심히 쫓아왔다.
하지만 평소 몸을 꾸준히 단련해 왔던 그렌의 발걸음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포위망을 좁혀라!”
“적의 마법사가 마법을 쓰지 못하도록 방해해라!”
창, 차차창, 창창!
펑, 퍼펑, 펑!
화르륵, 화르르륵!
현장에 도착해 보니 살기와 적의가 뒤범벅된 피 튀기는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렌과 야엘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기습을 했던 코티아르군은 카스 기사단과 중앙군에 의해 오히려 포위된 상태였다.
코티아르의 기사와 병사들은 겹겹이 원진을 구성하고 결사적으로 방어하고 있었다.
원진의 중앙에는 마법사로 보이는 초로의 사내가 짧은 완드 하나를 들고 서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당황과 공포가 적당히 버무려진 감정이 어려있었다.
그렌은 어쩌다가 고위 마법사가 도망도 못 가고 저렇게 발목이 잡혔는지 의아했다.
자신 같으면 마법을 쏜 후 뒤도 안 보고 도망쳤을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그는 먼저 적군의 고위 마법사가 펼치는 마법부터 막아야 했다.
“파이어볼!”
“매직 미사일!”
휘익, 펑! 화르르!
“라이트닝!”
“록 애로우! 스톤 핸드!”
파츠츠츳, 쾅, 쿠궁!
“윈드 커터!”
“윈드 커터!”
쐐애애액, 카캉, 펑!
확실히 5서클 고위 마법사의 마법은 강력했다.
하지만 그렌은 굳이 적군의 마법사의 공격을 전부 막아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마법이 쏟아지기 전에 중간에서 요격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에 의해 몇 번의 마법 공격이 허무하게 막히자 적군의 마법사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만든 마법보다 훨씬 빠르게 대응 마법을 캐스팅하는 것을 보곤 카시오페라 왕국의 고위 마법사가 나타났다고 오해를 했다.
결국 그렌의 존재를 확실히 인식한 적군의 마법사는 타깃을 그를 향해 돌려버렸다.
그래도 그렌은 절대 적의 마법사와 정면 대결을 펼치지 않았다.
요격을 하다가 실패하면 즉시 그 자리를 떠서 회피해 버렸다.
그사이 카스 기사단이 적병을 빠르게 주살해 갔다.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다.
독 안에 든 쥐가 된 적군은 이렇게 질질 시간만 끌고 있어도 천천히 무력화되어 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울을 바롯한 마법사들이 현장에 나타났다.
“마이 로드! 적군의 마법사가 도망치려고 합니다.”
“어떻게든 막아!”
야엘의 말에 그렌은 적군의 마법사를 향해 빠르게 마법을 난사했다.
뒤늦게 나타난 라엘과 마법사들도 이를 갈며 적군의 마법사에게 마법을 날려댔다.
몇 겹으로 실드를 친 적군의 마법사는 품 안에서 스크롤 하나를 꺼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스크롤을 찢기 직전, 갑자기 휙 미끄러지더니 꽝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야엘의 정령인 다크가 몰래 가서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것이다.
“잘했어! 헤이스트! 야엘! 달려!”
그렌이 야엘에게 헤이스트 마법을 걸어주고 소리쳤다.
쿠웅!
그녀는 힘차게 땅을 밟고는 전력을 다해 정면으로 질주했다.
“실드! 실드!”
그렌은 야엘에게 연이어 실드 마법을 중첩해서 걸어줬다.
넘어진 적군의 마법사는 밀려드는 아군의 마법을 맞고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다만 그가 입고 있는 갑옷에서 번쩍번쩍 빛을 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상급의 마법 갑옷을 입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마법 아이템의 덕을 볼 수는 없었다.
적군의 고위 마법사도 그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화가 난 카시오페라 왕국의 마법사들이 강력한 마법을 난사했다.
적군의 고위 마법사는 막을 자신이 없는지 급히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모습이 영락없이 게으른 당나귀가 땅바닥을 뒹구는 모습!
수치로 얼굴이 벌게진 적군의 마법사는 급히 몸을 털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