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이대근과 김민석은 서로 상대방의 자식을 칭찬하는 것 같더니 어느새 자기 자식을 자랑하는 팔불출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 모습에 김영희와 백하연이 남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살래살래 저었다.
“그런데 둘은 어떻게 만났답니까?”
“아직 아무 말도 듣지 못하셨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혹시 댁의 따님은 우리 아들을 어떻게 만났는지 얘기를 하던가요?”
“글쎄요.”
마루는 자신의 어머니인 김영희와 김민정의 어머니인 백하연이 뭔가 보이지 않는 날 선 공방을 펼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바로 중간에 끼어들었다.
“민정이와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장장 12년 동안 같은 학교에 다닌 선후배 사이입니다. 최근에 제가 운동을 다니고 있는 과천 종합 격투기 체육관의 헬스 트레이너로 만났습니다.”
그제야 김영희는 마루가 김민정을 어떻게 만났는지 알게 됐다.
명문대를 나온 미모의 헬스 트레이너 김민정은 그녀가 아무리 살펴봐도 흠잡을 만한 곳이 없었다.
김영희는 일단 김민정이 며느릿감으로 마음에 들었다.
굳이 더 이상 견제하지 않고 바로 평화 모드로 돌아갔다.
“그렇구나. 참 건강하고 예쁜 따님을 두셨습니다.”
“참 착하고 든든한 아드님을 두셔서 좋으시겠습니다.”
마루와 민정은 묘하게 돌아가는 분위기로 인해 좀 곤혹스러웠다.
그저 가볍게 인사나 하고 바비큐나 먹자는 뜻으로 이렇게 모인 것이다.
그런데 양측 부모님은 뭔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신 듯싶었다.
굳이 이 분위기가 뭘까 하고 짚어보니 상견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마루가 식사를 권했다.
“배고프실 텐데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그게 좋겠어요.”
민정이 즉시 그의 말을 받아쳤다.
이대근과 김영희는 마루와 민정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루야, 그럼 네가 가서 두 분 드실 것 좀 챙겨와라!”
“네, 아버지.”
마루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백하연이 슬쩍 민정의 옆구리를 찔렀다.
“민정아, 너도 같이 가서 마루 오빠를 도와줘!”
“네, 엄마.”
민정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마루의 뒤를 따라갔다.
이대근은 김민석에게 시원한 맥주를 권했다.
“일단 시원한 맥주 한 잔 드시죠!”
“그럴까요.”
김민석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컵을 내밀었다.
이대근과 김민석이 사내답게 털털하게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시작했다.
그 분위기에 맞춰 김영희도 백하연에게 맥주를 권했다.
“맥주 한 잔 괜찮으시죠?”
“네, 한 잔 정도는 받을게요.”
“편안하게 많이 드시고 재미있게 놀다 가세요.”
“고맙습니다.”
김영희의 말에 백하연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백하연은 속 편하게 맥주를 마시고 있는 남편 김민석과는 달리 김영희를 아주 조심스럽게 대했다.
자신의 딸이 편하게 오빠라고 부르는 마루의 존재로 인해 그녀는 당연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 두 사람이 백년가약을 맺는다면 김영희는 자신의 딸인 김민정의 시어머니가 된다.
그렇기에 미리 어느 정도 잘 보여둘 필요가 있었다.
물론 민정은 백하연에게 마루와 사귄다거나 결혼하겠다는 말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백하연의 직감은 민정과 마루가 절대 보통 사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딸이 누군가를 얘기할 때 이토록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만약 민정이 둘이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고 했어도, 백하연은 아마 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을 것이다.
착하고 예쁜 딸은 보기와는 달리 단순하고 허당기가 있었다.
백하연은 자신을 꼭 닮은 딸, 민정이 남자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는 않지만, 일단 한번 마음을 주면 간과 쓸개는 물론이고 목숨까지 던질 정도로 맹목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백하연은 일단 김영희 앞에서 자존심을 세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바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태도를 취했다.
사랑하는 딸의 장래를 위해 자존심을 접고 거침없이 고개를 숙이는 어머니의 마음은 정말 고귀하고 위대하다.
‘묘하네. 아까와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어. 무슨 일이지? 혹시 마루와 민정이란 아이 사이에 뭔 일이 있었나?’
김영희는 백하연의 변해버린 태도를 곧바로 알아챘다.
그녀 또한 여자이기에 날카로운 여자의 직감을 가지고 있었다.
다행히 김영희는 백하연에게 갑질을 할 생각 따윈 없었다.
백하연에게 민정이라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외동딸이 있다면 김영희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서현과 윤아라는 두 딸이 있었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딸 가진 부모의 심정!
김영희는 큰딸 서현을 시집보낼 때 이미 한번 호되게 겪어봤다.
그래서 백하연의 태도가 왜 바뀌었는지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딸을 위해 자존심을 희생시키려는 그녀의 마음에 가슴이 살짝 뭉클해지기까지 했다.
백하연의 태도가 변하자 김영희의 마음도 한껏 풀어졌다.
김영희가 백하연을 진심 어린 태도로 대하자 백하연도 김영희의 마음의 변화를 알아채고 고마운 마음이 됐다.
두 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서로를 향해 작은 몸짓과 눈빛을 보내며 그들만의 감정의 교감을 일궈나갔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두 어머니!
이렇게 빠르게 친해지시자 금세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마루 오빠, 미안해요. 많이 불편하셨죠?”
“아니야. 그렇지 않아. 두 분 잘 모시고 왔어.”
“고마워요.”
“뭘?”
“우리 부모님을 이해해 줘서요.”
“하하하, 무슨 소리야? 저렇게 다들 재미있게 얘기하고 계신데…….”
마루의 말에 민정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부모님이 앉아계시는 파라솔 테이블을 쳐다보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정말 그의 말대로 부모님은 마루의 아버지, 어머니와 정답게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민정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의 어머니는 누구와 쉽게 친해지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십 년 만에 여고 동창생을 만난 것 같지 않은가!
그녀는 결코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없었다.
나중에 민정도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아보면 아마 이때 어머니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마루와 민정은 안심 스테이크를 시작으로 삼겹살, 꼬치구이, 각종 요리와 찌개 등을 열심히 나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파라솔 테이블이 온갖 음식으로 가득 찼다.
둘도 슬며시 자리에 앉아 같이 식사를 시작했다.
“어때? 맛있지?”
“네, 정말 맛있어요.”
“내 막내 여동생 윤아가 자칭 고기 굽는 달인이거든.”
“그러시구나.”
민정은 고기 굽는 달인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하지만 안심 스테이크가 혀에서 살살 녹아내리자 뭐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넘어갔다.
마루와 민정은 꼬치구이 하나를 뽑아서 나눠 먹었다.
다정하게 웃고 미소를 지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마루와 민정의 부모들은 둘의 이런 모습에 점차 확신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서로를 향해 남모를 눈빛을 교환했다.
하지만 바로 옆 파라솔 테이블에 앉아있는 서진아는 달랐다.
그녀는 차오르는 질투로 인해 온몸이 불타버릴 것만 같았다.
“우이씨! 어떻게 오빠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지?”
“진아야!”
“네?”
“진정해라.”
“할머니.”
서진아는 할머니가 자신의 손을 꾹 잡아오자 그제야 마음이 좀 진정되는 듯했다.
“너 마루라고 하는 저 청년 좋아하지?”
“네에!”
할머니의 물음에 서진아의 목소리가 갑자기 모기 소리만큼 작아졌다.
그녀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조금씩 붉게 달아올랐다.
할머니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남자의 마음을 얻으려면 기다릴 줄도 알아야지. 여자가 너무 촐랑대면 오다가도 도망가. 너무 들이대면 남자라는 동물은 도망치거나 동굴로 숨어버려. 남자는 그런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거든.”
뭔가 철학이 있어 보이는 할머니의 말에 서진아는 정신이 번쩍 났다.
“그럼 어떻게 해요?”
“먼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라. 남녀 간의 사랑은 불처럼 뜨겁게 타오르다가도 한순간에 얼음처럼 차갑게 식기도 하는 법이다. 지금은 그저 네가 옆에 있다는 정도만 주지시키면 돼!”
“그러다가 저 둘이 덜컥 결혼이라도 해버리면 어떻게 해요?”
“그건 앞으로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저 아이가 곱기는 하지만 내 눈에는 우리 진아가 백 배는 더 예쁘고 아름다워.”
“피이, 그건 내가 할머니 손녀이니까 그렇지요.”
“꼭 그렇지만도 않아. 주위를 한번 둘러봐라! 지금 이 순간에도 너를 몰래 훔쳐보고 있는 녀석들이 꽤 되잖니?”
“정말요?”
서진아는 할머니의 말에 슬쩍 주변을 한번 훑어봤다.
그녀의 말대로 주위에 자신을 쳐다보는 청년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할머니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자 서진아는 금세 자신감을 회복했다.
“할머니의 말이 맞아요.”
“거봐라. 내가 뭐라고 했니? 우리 진아가 제일 예쁘고 아름답다고 했지!”
“그런 소리는 이제 그만하시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비법 좀 가르쳐 주세요.”
“비법을 얘기해 주면 그대로 따라 할 생각은 있고?”
“물론이죠. 100퍼센트 할머니 말대로 할게요. 빨리 얘기해 주세요. 네?”
애가 닳은 서진아의 말에 할머니는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작게 소곤거렸다.
“내가 가만히 살펴보니 저 마루라는 녀석! 보통내기가 아니야. 눈빛도 부리부리하고 목소리에 힘이 실린 게 의지가 견정한 청년이 분명해.”
“나도 마루 오빠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할머니는 고새를 못 참고 자신의 말에 토를 다는 손녀를 보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저런 유형의 남자는 성공을 위해, 아니 목표를 위해 아주 열심히 노력하지.”
“그래요?”
“하지만 빈틈없어 보이는 저 겉모습과는 달리… 저런 남자들은 대개 자존심이 세고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해. 또한 자신이 원하는 기준에 미치지 않으면 크게 실망하거나 무기력해지기도 하지. 거기에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드는 저돌성과 적당히 타협을 할 줄 아는 속물적인 근성도 가지고 있단다.”
“에이, 요새 기회주의적이고 속물적이지 않은 남자가 어디 있어요.”
“어? 이 녀석이 벌써부터 자기 남자라도 되는 양 감싸고도네?”
할머니의 말에 서진아는 퍼뜩 놀라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이내 할머니의 손을 슬그머니 잡고는 살살 애교를 부렸다.
“아잉!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요새 남자들이 다 그렇다는 말이잖아요.”
“내 말도 바로 그거야. 대개 저런 유형의 남자들이 그런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어.”
“그래서요?”
서진아는 할머니의 말에 조금씩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니까 첫 번째, 절대 사내의 뜻을 꺾으려고 들지 말거라. 저런 남자는 자신의 뜻을 꺾으려고 들면 너를 여자로 보지 않고 경쟁자로 보거나 적대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아.”
“알겠어요. 절대 마루 오빠의 뜻을 꺾지 않을게요.”
“두 번째, 옆에서 자꾸 칭찬을 해줘라.”
“아, 그 말은 오빠를 인정해 주라는 뜻이네요.”
“그래. 맞다.”
“또요.”
“마지막으로 항상 옆에서 도움을 주는 파트너이자 멘토가 돼야지.”
“멘토요? 제가 어떻게 오빠의 멘토가 돼요?”
“멘토가 별거냐? 고민을 들어주고 같이 해결책을 찾으면 그게 멘토인 게지.”
“음, 그건 결코 쉽지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한번 노력해 볼게요.”
서진아는 할머니의 말을 듣자 앞으로 눈앞의 경쟁자를 어떻게 치워버리고 마루에게 다가갈지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서진아는 자신의 생일날 있었던 마루와의 스킨십으로 인해 이미 마루가 자신의 남자 친구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민정의 등장으로 그녀는 깜짝 놀라고 또 당황했다.
생각해 보니 마루는 자신에게 한 번도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동안 자신 혼자만 마루를 줄기차게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도 나고 자존심도 많이 상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마루를 그냥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미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어버렸기 때문이다.
마루와 김민정의 다정한 모습에 그녀는 질투로 터져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바로 옆에 앉아계신 든든한 아군인 자신의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의 조언을 듣자 그녀는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조금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최후에 웃는 자가 승자다.’
누가 말했는지 모르지만 정말 명언인 것 같다.
서진아는 자신이 반드시 최후에 웃는 승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