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마루는 갑자기 변한 그의 태도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서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말을 이었다.
“제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잠시 후, 저 하늘을 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겁니다. 만약 제 말이 틀리면 그냥 미친놈이 헛소리 지껄였다고 생각하시고 마음껏 비웃어 주십시오. 하지만 제 말이 맞으면 지금부터 여러분은 인류의 종말을 맞아 당장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셔야 할 겁니다.”
“정말 좀비가 창궐할 거라고 확신하는 겁니까?”
근처 주택에서 사는 동네 이웃 하나가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마루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정중하게 답변을 해줬다.
“그렇습니다.”
“그 근거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아마 부수적인 얘기가 될 것입니다. 당장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종말이 올지 말지 그게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그냥 이것 하나만 기억하세요. 좀비를 만나면 무조건 피하라는 겁니다.”
“…….”
“만약 피할 수 없다면 창으로 좀비의 머리를 찌르거나 칼로 목을 쳐야 합니다. 다른 곳은 아무리 창칼로 쑤시고 공격해도 소용없습니다. 좀비는 이미 한번 죽은 시체이기 때문에 죽여도 다시 죽지 않습니다. 반드시 좀비의 뇌를 파괴해야 활동이 멈추게 됩니다. 또한 좀비에게 물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좀비에게 물리면 99.99퍼센트는 좀비로 변하게 됩니다. 그럼 결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마루의 말에 너무 놀라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마루는 조금도 사람들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곧바로 우성존과 한소신을 앞으로 불러냈다.
“준비됐지?”
“네, 준비됐습니다.”
“그럼 너희 둘이 시범을 보이도록 해.”
“네.”
마루가 뒤로 물러났다.
우성존과 한소신이 앞으로 나오더니 좀비 퇴치를 위한 시연을 준비했다.
좀비로 분장시킨 남자 마네킹을 가져와 땅바닥에 세웠다.
좀비 퇴치 키트를 꺼내 빠르게 창을 조립했다.
이 모든 게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오늘 바비큐 파티에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좀비 퇴치 키트를 하나씩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이 안에는 좀비를 퇴치할 수 있는 조립식 창이 들어있습니다. 시연을 도와주실 분은 대한민국 헬 서바이벌 동호회의 회원이신 우성존 씨와 한소신 씨이십니다.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
다들 이게 뭔가 했다.
하지만 우성존과 한소신이 창을 들고 앞으로 나서자 호기심 많은 동네사람들은 얼떨결에 박수를 쳤다.
우성존과 한소신은 주민들을 향해 고개를 한번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좀비 마네킹을 향해 창끝을 세우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얏!”
“얏!”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성존과 한소신은 크게 기합을 질렀다.
아무래도 이 둘은 이게 무슨 태권도 시범쯤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시작은 우성존이 먼저였다.
우성존은 창을 단단히 잡고 좀비 마네킹의 정면에서 한 발짝 다가가며 힘차게 창끝을 앞으로 내밀었다.
푹!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좀비 마네킹의 얼굴이 단번에 창에 꿰뚫렸다.
우성존이 창을 빼고 뒤로 물러섰다.
이번에는 한소신이 창을 들고 앞으로 나가 단박에 좀비 마네킹의 머리를 꿰뚫어 버렸다.
“대단한 실력입니다. 원래 이렇게 한 번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데… 역시 두 분은 서바이벌 전문가답게 쉽게 하시는군요. 수고하신 두 분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짝!
와아아아아!
마루의 넉살 좋은 진행에 동네 주민들은 이번에도 웃으며 박수를 쳤다.
헬 서바이벌 동호회 회원들은 크게 환호성을 지르며 분위기를 띄웠다.
“헬 서바이벌 동호회 회원들은 이리 나와서 박스 안에 들어있는 좀비 퇴치 키트를 바비큐 파티에 참석하신 분들에게 나눠주도록 하세요.”
“네.”
우성존과 한소신이 마루의 말을 듣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대망 슈퍼 옆에 쌓아놓은 박스를 하나씩 들고 다니며 야외용 파라솔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좀비 퇴치 키트를 나눠줬다.
쾅!
꽈르릉 꽈과과광!
그때 하늘을 진동시키는 엄청난 폭음과 함께 지축을 뒤흔드는 진동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쳐다봤다.
아까까지만 해도 진한 보라색으로 밝게 빛나던 파이럿 혜성!
어느새 폭발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헉, 아까 저들이 예언했던 일이 정말 벌어졌어.”
“진짜 혜성이 폭발했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누가 TV 좀 켜봐요. 뉴스 좀 보게!”
사람들은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대근은 테이블 위에 놓인 리모컨을 들고 TV를 틀었다.
뉴스에서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핵보유국들이 우주로 쏘아 올린 핵미사일들이 파이럿 혜성을 하나도 맞히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갑자기 파이럿 혜성이 폭발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다들 당황했다.
미국의 유명 방송국인 CNNN의 기자는 기적이 일어났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만약 파이럿 혜성이 공중에서 폭발하지 않았다면 아마 미국 본토를 직격했을 것이라며 신의 가호라고 떠들어 댔다.
[해모수: 드디어 시작됐네요.] [마루: 기어코 올 것이 오고야 말았어. 정말 내 생각이 틀리길 바랐는데…….] [그렌: 마루, 그렇게 넋 놓고 있을 시간 없어. 이제 곧 파이럿 혜성에서 쏟아져 나온 죽음의 파편들이 지구 곳곳으로 퍼져나갈 거야. 그럼 곧바로 좀비들이 만들어지고 지구는 종말을 맞이하게 될 거야.] [마루: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죠?] [그렌: 일단 마루가 살고 있는 집 근처로 죽음의 파편이 떨어지면 재빨리 달려가서 제거하고 불로 싹 태워서 정화해야지. 초기에 죽음의 파편만 잘 대처해도 좀비의 창궐 규모를 크게 줄일 수가 있을 거야.]마루는 그렌의 말에 정신이 번쩍 났다.
그는 즉시 마이크를 잡고 소리쳤다.
“여러분, 제가 아까 말씀드린 대로 파이럿 혜성이 폭발했습니다. 이제 파이럿 혜성의 파편이 별똥별로 변해 지구로 떨어지면 대재앙이 시작됩니다. 이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죽음의 파편을 불로 태워버리면 됩니다. 좀비의 창궐을 최소화하려면 반드시 초기에 죽음의 파편을 불로 태워 정화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그걸 어떻게 막겠습니까?”
동네 이웃 중 한 명의 말에 마루는 즉시 방법을 제시했다.
“직접 나가서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이용하면 됩니다.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SNS를 통해 죽음의 파편을 불로 태워버리라고 전해주세요. 그럼 누군가는 그것을 보고 단 한 개라도 더 죽음의 파편을 불로 태워 좀비를 만들어 내는 숙주를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경찰에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정부나 국방부에 아시는 분이 계시면 지금 바로 소식을 전해주세요.”
마루의 진심 어린 말이 통했는지 동네 주민 한 사람이 소리쳤다.
그러자 곧 동네 이웃 중 하나가 그 대열에 합류했다.
“제가 국방부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정부에 친척이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어요.”
“그럼 어서 이런 사실을 전해주세요. 우리 모두 힘을 합치면 능히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마루의 말에 주민들은 각자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아는 사람들에게 이메일과 SNS를 통해 이러한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가장 큰 활약을 보인 것은 역시 우성존과 한소신이었다.
이 둘은 아예 들고 다니던 노트북을 파라솔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대한민국 정부와 국방부 그리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정보를 올렸다.
각종 카페와 블로그에 빠짐없이 싣는 것은 물론, 친하게 지내는 파워 블로거와 유튜버들에게 연락을 해서 자신이 주는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최대한 전 세계에 뿌려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세계 각국의 정부와 국방부 그리고 정보부처에 파이럿 혜성의 파편 조각을 즉각 불로 태워 소각해야 한다는 정보를 보냈다.
“야아! 진짜! 이게 무슨 짓이야? 또라이 새끼 하나 때문에 다들 이렇게 미친 짓을 하고 있네.”
그때 마루를 향해 대놓고 시비를 거는 삐딱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이름이 뭐냐?”
“내 이름은 왜 물어?”
마루의 말에 청년은 눈에 힘을 주며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그는 키도 크고 몸도 울퉁불퉁한 근육질이었다.
한마디로 장난 아니게 좋은 체격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해모수와 그렌을 통해 이미 수많은 왜구와 몬스터를 죽인 경험을 공유한 마루였다.
아무리 체격이 훌륭한 청년이라고 해도 겨우 일반인에 불과한 젊은 사내의 기에 눌릴 이유는 전혀 없었다.
“지금 여기가 네 집 안방이야? 너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도 다들 한 사람이라도 살려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넌 왜 쓸데없이 시비를 걸어?”
“시비는 개뿔! 네가 지금 헛소리를 해서 사람들을 다 홀려놓고 있잖아!”
삐딱 청년은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감히 마루가 자신을 어쩌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곤 더욱 기세등등하게 나왔다.
모르긴 해도 아까 마루의 목소리만 듣고도 쫄아버렸던 사실이 못내 그의 가슴에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청년은 그렇게 복수를 할 기회를 엿보다 이제야 마루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쪼잔한 자식!
마루는 그가 하는 짓을 보곤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는 집 옆문에다 갖다 놓은 자신의 커다란 가방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가방의 지퍼를 열고 안에서 별운검을 꺼내 들었다.
창!
별운검을 뽑자 맑은 쇳소리가 청명하게 주위를 울렸다.
불빛에 비친 칼날이 추상(秋霜)처럼 섬뜩하게 빛났다.
마루는 별운검을 위로 세우고는 빠르게 삐딱 청년을 향해 다가갔다.
“야, 너, 너 왜 그래? 설마 그 칼로 날 찌르려는 것은 아니지?”
“글쎄?”
놀란 삐딱 청년이 얼굴을 하얗게 물들이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이야압!”
마루는 냉소를 짓다 돌연 크게 기합성을 내질렀다.
동시에 삐딱 청년을 향해 정면으로 빠르게 쇄도했다.
“으아아악!”
삐딱 청년은 너무 놀라 그만 온몸이 얼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니 공포에 질려서 자신도 모르게 주변이 떠나가라 크게 비명을 질렀다.
“마루야!”
“오빠!”
“마루 오빠!”
이대근을 비롯해 민정과 서진아가 마루를 부르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악!
퉁! 데굴데굴…….
좀비 마네킹의 머리가 땅에 툭 떨어져 굴러갔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자 놀란 가슴을 부여잡았다.
“뭐야? 깜짝 놀랐잖아.”
“난 또 진짜 사람을 베는 줄 알았네.”
“호오, 나도 모르게 지리는 줄 알았다.”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대동소이했다.
마루가 별운검을 들고 삐딱 청년을 향해 쇄도할 때는 기겁했다.
틀림없이 사람을 해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몸이 청년을 스쳐 지나 좀비 마네킹의 머리를 베는 모습에 이젠 오히려 별거 아니라는 듯 다들 태연함을 가장했다.
“여러분, 좀비는 이렇게 단칼에 목을 쳐야 합니다. 아셨죠?”
“네.”
“알겠소.”
동네 주민 몇 사람이 마루의 말에 허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지은 마루가 별운검을 멋지게 한 바퀴 돌려 검집에 수납했다.
김민정과 서진아는 거의 동시에 의자에 주저앉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루는 삐딱 청년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이상하게도 아까부터 전혀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선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묘한 지린내가 났다.
마루가 인상을 쓰자 삐딱 청년은 부르르 몸을 떨더니 갑자기 미친놈처럼 자신의 집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가 서있던 자리를 쳐다보자 지린내가 나는 노란 물이 고여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더러운 놈!’
마루는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그는 그저 속으로만 삐딱 청년의 만행을 욕했다.
마루는 바비큐를 하면서 생긴 재를 가져와 노란 오물이 고인 곳에 잔뜩 뿌렸다.
신기하게도 냄새가 사라지며 마치 정화라도 된 것처럼 깨끗해졌다.
“미국 전역에 파이럿 혜성의 파편이 떨어지고 있어.”
“도심에 떨어진 혜성의 파편 때문에 화재가 발생했대.”
“이러다가 정말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거 아냐?”
“아까 하는 얘기 못 들었어? 좀비가 창궐한다고 하잖아.”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까?”
“대망 슈퍼 사장과 그의 아들이 파이럿 혜성 폭발한다고 했을 때 너 뭐라고 했냐? 그때도 너 안 믿었잖아!”
“그 누구도 파이럿 혜성이 혼자 폭발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
“그런데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이젠 저들의 말을 신중히 들어두는 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되겠다는 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