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뉴스의 화면이 재난이 일어난 상하이 남경동로 현장을 비췄다.
처참하게 부서진 빌딩과 건물의 잔해가 보였다.
끔찍한 형태로 죽은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게 방송됐다.
뉴스를 보던 주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민정도 어지간히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루는 손을 뻗어 그녀의 보드라운 손을 꼭 쥐었다.
민정은 마루의 따뜻한 손이 자신의 손을 덮어오자 서서히 마음이 안정되고 몸의 떨림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마루에게 말없이 고마움을 담은 눈인사를 했다.
상하이 남경동로에 떨어진 별똥별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빌딩 두 개를 무너뜨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주변 상가를 아예 초토화시켰다.
사망자만 수백 명이 넘을 것이라는 중국 언론의 공식 보도!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상자가 나올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원래 자국의 부끄러운 모습을 축소시키는 게 관행처럼 굳어진 중국이다.
그 첨병에 있는 중국 언론들의 행태로 볼 때 사망자 수백 명이란 말은 피해를 대폭 축소시킨 것에 불과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 증거로, 이미 사망자가 수천 명이 넘는다는 중국 네티즌의 얘기가 인터넷과 SNS를 통해 공공연하게 터져 나오고 있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속담이 있다.
날개도 달리지 않은 소문이 광속으로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뿌려지고 있다.
쾅!
그때 갑자기 천둥 같은 폭음과 함께, 지축을 흔드는 강한 진동이 일어났다.
마치 대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야외용 파라솔 테이블이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북서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과천시청 방향에서 불빛이 번쩍 일어났다가 서서히 사그라지는 것을 봤다.
“과천시청에 파이럿 혜성의 파편이 떨어진 것 같아.”
“어떡하지? 이제 정말 종말이 오는 거야!”
“어머, 우린 이제 어쩌면 좋아요?”
바비큐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늦은 밤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밖으로 나와있던 동네 주민들까지 모두들 불안한 표정으로 발만 동동 굴렀다.
방금 전까지는 그래도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나라에, 아니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서 일어난 현실이자 내 문제가 됐다.
그러니 놀라고 불안하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모수: 마루 형, 파이럿 혜성의 파편이 떨어졌어요.] [그렌: 당장 가서 죽음의 근원을 제거해야 해.]해모수와 그렌이 다급히 소리쳤다.
[마루: 예, 알겠어요.]마루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대근은 마루의 빛나는 눈동자를 보자 일순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지금 자신의 아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그는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완강히 막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루의 눈동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차분히 아버지 이대근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대근은 마루의 눈을 통해 그의 굳건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마지못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고 말았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김영희가 남편이 하는 꼴을 보더니 급히 마루를 불렀다.
“마루야, 너 혹시 지금 별똥별이 떨어진 장소로 가려는 것은 아니겠지?”
“맞아요. 저 지금 저곳으로 가야 해요.”
“안 된다. 그건 너무 위험해.”
“당장 제가 가지 않으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과천시 전체가 좀비들의 세상으로 변할지도 몰라요.”
“차라리 경찰에 연락을 해라. 그들보고 가라고 하면 되잖아.”
김영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루에게 다가갔다.
커다란 가방에서 무기와 장비를 꺼내고 있던 마루는 그녀에게 단단히 팔이 잡혔다.
“엄마, 제발 이러지 마세요! 난 꼭 저길 가야 해요. 내가 지금 안 가면 수백, 아니 수천 명이 좀비로 변해 죽게 될지 몰라요. 한 명의 목숨이라도 더 살리려면 지금 나를 보내주셔야 해요.”
“왜 꼭 네가 가야 하는데? 다른 사람을 보내면 안 돼?”
“다른 사람… 누구요? 경찰요? 아니면 여기 있는 동네 사람요?”
마루의 말에 동네 주민들이 기겁을 하며 몸을 움츠렸다.
“난 그런 거 모른다. 그냥 무조건 너만 가지 마.”
“경찰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예요. 그들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단 말이에요. 내가 저길 가는 이유는 다름 아닌 바로 우리 가족을 지키려는 거예요. 그러니 제발 절 더 이상 말리지 말아주세요.”
김영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네가 왜 위험을 무릅쓰고 저길 가? 네가 무슨 영웅이야? 네가 지구를 지키는 슈퍼맨이라도 돼?”
“제가 슈퍼맨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가려는 거예요.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저 죽음의 근원을 찾아 없앨 수 있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슈퍼맨이 된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을지 몰라요.”
마루의 간절한 목소리가 골목을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김영희는 아들이 무슨 전장(戰場)에라도 끌려가는 사람처럼 끝까지 그의 팔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이대근이 나서서 그녀의 양팔을 붙잡아 떨어뜨려 놓았다.
“여보, 정신 차려! 마루가 지금 가지 않으면 내일은 서현이가, 모레는 태현이가 죽을 수 있어. 정말 우리 식구들 모두 죽는 꼴을 봐야 속이 시원하겠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왜 우리 가족이 죽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누굴 믿고 여기까지 왔어? 마루를 믿고 왔잖아. 그러니까 믿으려면 끝까지 우리 아들을 믿어야지.”
“으흐흑!”
김영희는 남편 이대근의 말에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대성통곡(大聲痛哭)을 시작했다.
누가 보면 당장 아들이 죽은 줄로 착각하기 딱 좋은 모습이었다.
마루는 그 틈에 얼른 어머니 김영희 여사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그는 차분하게 무장을 했다.
방검복을 입고 그 위에 전투 조끼를 걸쳤다.
전투화를 신고 전투 배낭을 등에 멨다.
벨트 왼쪽에는 별운검을 달고 한쪽 어깨에는 개량궁과 화살집을 넣는 통인 동개를 걸었다.
마지막으로 스테인리스스틸 창과 화염방사기 대용으로 쓸 물총을 챙겼다.
마루는 다시 한번 아버지 이대근을 쳐다봤다.
“네 엄마는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라!”
“예, 아버지.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마루가 이대근과 김영희를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이대근은 입술을 꼭 깨물며 가만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때 마루의 동생인 이재용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형, 나랑 같이 가자. 아무래도 불안해서 안 되겠어.”
“네가?”
“왜? 내가 가면 안 돼?”
“아무래도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나중에 네가 힘이 생기면 그때 같이 가자.”
마루는 단호하게 재용의 동행을 거절했다.
이대근은 그런 마루를 만류했다.
“마루야! 재용이하고 같이 가라!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않겠어? 서로 의지도 되고 말이야.”
“아닙니다. 지금은 혼자 가는 게 좋겠어요. 무슨 일이 생기면 잽싸게 도망치기도 편하고요.”
이대근의 말에 마루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김영희는 눈물을 훔치며 자신의 남편과 아들들을 차례로 쳐다봤다.
혼자보다 둘이 덜 위험하고 의지가 될 것이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마루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역시 수긍이 됐다.
하나가 가도 위험하고 둘이 가도 위험해 보였다.
하나가 덜 가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남은 하나가 꼭 가야 한다니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잠깐, 저도 같이 갈래요.”
“나도 같이 갈게요.”
이번에는 우성존과 한소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루가 둘을 쳐다보다 시선을 조금 옆으로 옮기자 불콰하게 술에 취한 헬 서바이벌 동호회 회장 나구원, 현장비, 장무기가 마치 뜨거운 물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퍼뜩 놀라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고맙다. 하지만 역시 나 혼자 가는 게 좋겠어.”
“흐음, 알겠어요. 대신 조심하세요.”
“위험한 짓 하지 마요. 이상하다 싶으면 냅다 튀어요. 그게 사는 길이에요. 알죠?”
“하하하, 알았어.”
마루는 두 사람의 말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는 우성존과 한소신이 위험한 일에 자원해 준 사실이 무척 고마웠다.
일단 마음만 받기로 하고… 뒤로 몸을 돌리자, 이번에는 김민정이 나섰다.
“마루 오빠, 저랑 같이 가요.”
민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루의 가방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안을 뒤적이더니 일본도 하나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의도는 바로 봉쇄됐다.
“민정아!”
갑작스러운 딸의 돌발 행동에 놀란 김민석과 백하연이 동시에 튀어나온 것이다.
민정은 곧바로 큰 난항에 봉착했다.
김민석과 백하연이 양쪽에서 민정의 팔을 각각 하나씩 붙잡고 결사적으로 막아섰던 것이다.
“호적에 네 이름을 파내기 전에는 절대 불가야!”
“움직이기만 해봐. 절대로 가만히 안 있을 거야.”
마루는 그들의 결연한 의지를 확인하자 민정을 향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민정은 마루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할 수 없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안해요.”
“아니야. 금방 다녀올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네.”
마루는 민정을 향해 일부러 환한 미소를 지어줬다.
그러고 나자 이번에는 옆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던 서진아가 일어났다.
“오빠, 저도 갈래요.”
“넌 안 돼!”
“왜요?”
“넌 고3이잖아?”
“고 3이 어때서요? 오빠도 잘 알잖아요. 저 이미 성인이라는 거.”
“그래도 안 돼. 할머니, 어서 진아 좀 말려주세요.”
마루는 서진아가 아무리 성인이라고 해도 아직 고등학교 3학년에 불과한 그녀의 동행이 썩 달갑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서진아의 할머니가 보여준 태도였다.
“난 말릴 생각이 없네. 진아는 이미 성인이야.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어.”
“들었죠? 만약 절 데려가지 않는다면 나 혼자라도 갈 거예요.”
“이런.”
마루는 슬슬 골치가 아파왔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망설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과천 시내로 가봐야 할 때였다.
마루는 결국 강압적인 수단을 쓰기로 했다.
“우성존! 한소신!”
“예?”
“네, 형!”
“여기 고 3 좀 맡아줘라. 같이 가면 방해만 될 거야.”
“네에?”
“아! 알겠어요.”
우성존이 벙 쪄있는 사이!
한소신이 마루의 말에 즉각 반응했다.
그는 서진아의 한쪽 팔을 단단히 잡고 놔주지 않았다.
“어?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당장 놓지 못해요?”
“절대 안 돼! 마루 형의 명령이야.”
한소신은 정말 소신 있게 마루의 말을 따랐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우성존도 얼른 다가와 서진아의 반대편 팔을 잡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서진아가 거칠게 반항을 했지만 그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마루가 서진아의 할머니를 보며 낮고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진아를 말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알겠네.”
신기하게도 마루의 말에 할머니는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바뀐 태도에 그는 안도의 한숨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격렬하게 반항하던 서진아는 할머니가 조곤조곤 하시는 말씀에 금방 순한 양이 됐다.
뭐라고 했는지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 불편한 혹은 떼어놓고 갈 수 있었다.
“아버지, 차 좀 빌려주세요.”
“차 키 여기 있다.”
이대근이 즉시 호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그에게 던졌다.
마루는 가볍게 한 손으로 차 키를 받아냈다.
골목을 조금 걸어가자 튼튼하게 생긴 철제 방벽과 차단 문이 보였다.
그는 차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빠르게 골목길을 돌았다.
한쪽 벽에 주차해 둔 승합차가 보였다.
마루는 키를 꽂고 시동을 걸었다.
그러곤 힘차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부우우웅!
아버지가 슈퍼를 운영하며 십 년도 넘게 타고 다니시던 낡은 승합차다.
그런데 워낙 관리를 잘해서 그런지… 아직도 쌩쌩 잘만 달린다.
문원로 입구에서 에스캅 경비원들을 만나 사정을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들도 눈으로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봤는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모르긴 해도 전화로 소식도 듣고 스마트폰을 통해 뉴스도 다 보고 있었을 것이다.
돌아가는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진 않을 테니 방심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문원로를 타고 과천대로를 지나 별양로로 갈아탔다.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부림교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했다.
관문로를 빠르게 달려 내려가 과천 경찰서 앞에서 황교말길로 우회전했다.
길을 타고 위로 쭉 올라가 보니 낯익은 장소에서 불길이 치솟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