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어! 저긴 과천 외국어 고등학교잖아!’
처음엔 별똥별이 떨어진 곳이 과천시청인 줄 알았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자신의 모교가 불타고 있었다.
그나마 밤이라서 대형 사고로 번지지는 않았다.
만약 낮에 수업하다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아마 많은 학생이 죽거나 다쳤을 것이다.
이상한 건 주변에 전혀 사람이 보이지 않다는 점이다.
불이 났으면 구경하는 사람들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다들 어디로 갔는지 도로가 텅 비어있었다.
무너진 학교 담장 앞에 승합차를 세웠다.
한 손에 창을 잡고 다른 한 손에 물총을 들었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 보니 농구장이 보였다.
아니 농구장이었던 곳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파이럿 혜성의 파편으로 보이는 직경 3미터의 운석!
이놈이 주변을 아예 초토화시켜 버린 것이다.
마루는 깊은 웅덩이처럼 파인 크레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중심부에 반파된 운석의 모습이 보였다.
“으음.”
마루는 운석을 향해 손전등을 비춰 살펴보더니 탄성을 흘렸다.
[그렌: 운석이 반으로 쪼개졌다.] [마루: 안에 있던 뭔가가 이미 밖으로 나왔어.] [해모수: 운석 안에 보이는 검은 저거, 혹시 관 아니에요?] [마루: 관이라고?] [해모수: 네, 돌로 만든 석관처럼 보이지 않아요?] [그렌: 정말 그러고 보니 관처럼 생기긴 했네. 그렇다면 저 안에서 나온 것은 인간과 유사한 몸의 형태를 가지고 있겠구나. 설마 저기에다 누가 좀비를 넣어둔 것은 아니겠지?] [해모수: 마루 형, 그렇게 멍하니 서있지만 말고 어서 빨리 추적해요. 우리가 도와줄게요] [마루: 응, 알았어.]마루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운석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확실히 바로 앞에서 손전등을 비춰보자 운석이 반으로 쪼개진 안이 검은 돌로 만든 석관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렌: 마루야, 손전등을 아래쪽으로 조금만 돌려봐!]그렌의 말에 마루는 손전등을 아래로 비췄다.
[마루: 어! 발자국이다.] [해모수: 형, 저 발자국을 따라가면 잡을 수 있어요. 아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렌: 맞아. 진짜 생명체가 운석에 타고 있었다면 떨어진 충격을 바로 해소하진 못했을 거야.]마루는 정체불명의 발자국을 발견한 시점부터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괜히 어영부영하다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밤길을 대낮처럼 빠르게 걸어갔다.
[마루: 여기서부터는 차를 타고 가야겠다. 발자국이 큰길로 이어져 있어.] [해모수: 그게 좋겠어요.]마루는 무너진 학교 담장 앞으로 돌아갔다.
한쪽에 세워둔 승합차를 탄 그는 조심스럽게 차를 몰아 큰길을 내려왔다.
정체불명의 발자국을 쫓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발자국 자체가 마치 일부러 타르라도 묻힌 것처럼 끈적끈적한 검은 기름띠를 찍어놓은 것만 같았던 것이다.
탕! 탕탕탕!
차를 몰던 마루가 멈칫했다.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려왔다.
대한민국은 개인의 총기 소유가 엄격히 금지된 나라다.
이렇게 시내에서 총소리를 듣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과천 경찰서 쪽이다.’
전보다 오감이 발달한 마루는 총성이 어디에서 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부우우웅!
그는 힘차게 엔진을 돌려 과천 경찰서 앞으로 달려갔다.
탕탕탕, 탕탕탕!
다시 총성이 들렸다.
마루는 즉시 과천 경찰서 뒤쪽의 새술막길과 중앙로 사이, 그러니까 과천 소방서 후방에 몰려있는 오피스 건물들 쪽이라는 걸 직감했다.
부아아앙!
과천 경찰서를 지나 관문로에서 좌회전해 통영로로 달려갔다.
갑작스러운 가속에 승합차의 엔진이 죽는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역시 세월은 못 속이는지, 차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좌회전을 해 과천 경찰서 민원 봉사실 건물과 과천 소방서 사이, 새술막길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루는 기어코 사달이 나고 말았다는 생각에 입술을 꼭 깨물었다.
길에다 승합차를 세워놓고 안쪽으로 달려갔다.
“크아아!”
“우워억!”
몇 발짝 걸어가지도 않았는데 전방에서 두 사람이 괴이한 몸짓을 하며 달려왔다.
“헉!”
마루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렌: 마루야! 조심해. 저것들 좀비야.] [해모수: 저게 좀비예요?]그렌이 즉각 두 괴인의 정체를 파악하고 경고성을 발했다.
마루와 해모수는 좀비를 처음 봤다.
그래서 그런지 해모수는 호기심이 생겼고 마루는 살짝 몸이 굳어버렸다.
다다다다!
도도도도!
건장하고 마른 좀비 둘은 영화에서 본 것처럼 절대 느리지 않았다.
사람과 비슷한, 아니 어떻게 보면 사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이얏!”
마루는 눈앞까지 다가온 좀비를 향해 스테인리스 창을 앞으로 쭉 뻗었다.
콰직!
창은 단박에 좀비의 코를 부수고 들어가 뒤통수를 뚫고 나왔다.
거칠게 달려오던 좀비가 즉시 힘을 잃고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그동안 열심히 수련한 게 위급한 상황에서 빛을 발했다.
하지만 그걸 기뻐하긴 좀 이른 감이 있었다.
뒤이어 다른 좀비 하나가 그를 향해 온몸을 내던지듯 부딪쳐 왔다.
마루는 창을 회수해 다시 공격하는 것은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는 창을 포기하기로 하고 그대로 손을 뗐다.
대신 옆으로 한 걸음 비켜나 벼락같이 별운검을 발검(拔劍)했다.
스촤앙!
별운검의 은빛 칼날이 아름다운 선을 그리며 대각선으로 치솟았다.
철썩!
뒤늦게 뭔가 잘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마루를 죽일 듯 달려오던 좀비!
목이 잘리고 머리통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를 물어뜯으려는 좀비의 시뻘건 눈깔!
그때까지도 마루를 향해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퉁, 데구르르…….
좀비의 머리통이 바닥에 떨어지며 굴러갔다.
벤치 옆에 부딪친 머리통이 멈췄다.
그제야 좀비의 눈이 붉은 등이 꺼진 듯 회색으로 물들어 갔다.
[해모수: 우와! 멋지다.] [그렌: 마루야, 잘했어.]해모수와 그렌이 동시에 마루의 침착한 대처를 칭찬했다.
하지만 마루는 오히려 덤덤했다.
분명히 전에는 상상만 해도 구역질 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신의 손으로 좀비의 머리통을 꿰뚫고 직접 목까지 베어버렸는데도 아무렇지 않았다.
‘내가 원래 이렇게 담이 컸던가!’
마루는 이상하게도 자신이 자신인 것 같지 않은 위화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비록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렌이 수도 없이 몬스터를 잡는 것을 바로 앞에서 지켜봤다.
해모수가 왜구들을 척살하는 장면도 수도 없이 목격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뭔가를 죽이는 데 이미 면역이 돼버린 것만 같았다.
‘이건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 상황에서 욕지기가 나오거나 몸이 굳어버린다면 더 큰 일이겠지!’
마루는 별운검을 빠르게 한 번 휘둘렀다.
더러운 좀비의 검은 피가 허공에 뿌려졌다.
좀비의 머리통을 꿰뚫은 채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창도 회수했다.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 봤다.
이미 길거리는 난장판이 다 되어있었다.
바닥은 사람의 피와 살점으로 도배를 한 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죽은 시체가 꿈틀대며 일어나고, 이미 좀비로 변한 놈들은 마치 제 세상이라도 만난 듯, 미친 듯이 날뛰고 다녔다.
사방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와 귀청을 긁어댔다.
여기저기에서 아우성을 치며 격렬히 싸우는 소리도 들렸다.
좀비 영화를 위한 세트장을 만든다면, 아마 이곳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을 듯싶었다.
“으음!”
마루는 무거운 신음성을 흘리며 앞으로 달려갔다.
그는 왼손에 별운검을 쥔 채 오른손으로 창을 굳게 잡고 앞으로 쭉 뻗었다.
푹!
액세서리 가게 문을 박박 긁던 좀비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픽 주저앉았다.
마루는 좀비의 뒤통수에 박힌 창을 힘껏 비틀어 뽑았다.
뒷머리에 커다란 구멍이 나며 역겨운 냄새가 훅 풍겨왔다.
고개를 들자 유리창을 통해 입을 딱 벌린 젊은 여자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그녀의 눈에는 놀람과 두려움 그리고 호기심이 적절히 버무려져 있었다.
마루는 바로 몸을 반전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좀비를 향해 정면으로 앞발을 내뻗었다.
퍽!
놀랍게도 좀비는 달려오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로 날아갔다.
그는 그걸 그저 구경만 하지 않고 곧바로 쫓아가 힘차게 창을 찔렀다.
왼쪽 눈을 뚫고 들어간 창은 좀비의 뇌를 짓이겨 놓고 뒤통수로 빠져나왔다.
“크워어!”
마루는 창을 돌리며 거칠게 뽑았다.
이어 몸을 낮추며 별운검을 수평으로 확 그어버렸다.
촤악!
뒤에서 그를 물려고 달려든 좀비의 무릎이 잘리며 몸이 옆으로 픽 쓰러졌다.
마루는 좀비를 걷어차 엎어지게 만들었다.
그러곤 발로 좀비의 등을 꾹 밟고 별운검으로 머리통을 푹 쑤셨다.
삶은 고구마에 젓가락을 쑤셔 넣듯 별 저항도 없이 칼날이 잘도 들어갔다.
눈에 핏빛 광채를 뿌리며 이빨을 딱딱거리던 좀비가 즉시 얌전해졌다.
마루는 다시 몸을 움직였다.
사람을 물려고 뛰어가는 좀비가 보였다.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발로 등을 밟았다.
이번에는 창을 써서 뒷머리를 쿡 찔렀다.
배터리가 다 닳은 인형처럼 좀비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고, 고맙습니다.”
놀란 청년이 그 와중에도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예의 바른 청년이다.
“빨리 건물 안에 들어가 숨으세요.”
“예.”
마루는 청년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고개를 돌렸다.
식당의 문을 뚫고 들어가려는 좀비가 보였다.
당연히 식당 안에는 싱싱한 요리보다 더욱 탐이 나는 사람들이 숨어있었다.
그는 다가가 검으로 목을 쳐서 깔끔하게 잘라줬다.
화장품 가게에서 주인과 실랑이를 하는 좀비도 보였다.
급히 달려가 창으로 옆머리를 찔러버렸다.
“까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여자로 인해 오히려 마루의 귀청이 터질 뻔했다.
인상을 쓰자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보다 먼저 지린내가 나서 얼른 피해버렸다.
굳이 여자가 수치를 느낄 만한 상황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거리를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대로 좀비들을 처치했다.
‘이거 참! 끝이 없네.’
마루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부지런히 손발을, 아니 검과 창을 놀렸다.
당장 자신이 잡아 없앤 좀비만 해도 열 마리가 넘었다.
집에서 파이럿 혜성의 파편이 떨어진 과천 외국어 고등학교까지 직선으로 겨우 3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리 승합차가 중고라고 해도 12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좀비가 눈에 띄게 늘어나 있었다.
[그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좀비를 처리하는 것도 좋아.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지.] [해모수: 맞아요. 숙주인지 호스트인지 하는 놈을 먼저 제거해야 돼요.]마루는 그렌과 해모수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맞다. 자신이 지금 거리에서 좀비나 잡을 때가 아니다.
그는 즉시 가려던 길을 멈췄다.
바로 앞에서 달려오는 좀비 한 마리의 목을 따는 것을 마지막으로 마루는 가던 길을 급히 되돌아왔다.
[마루: 어디였지?] [그렌: 글쎄. 이 근처가 분명한데…….] [해모수: 아까 차 세워뒀던 곳으로 가봐요.]마루는 해모수의 말을 따라 승합차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고새를 못 참고 좀비 한 마리가 신나게 달려왔다.
그는 달려오는 좀비를 향해 냅다 창을 던졌다.
휘익! 퍽!
머리통이 꿰뚫리며 수박 깨지는 시원한 소리가 났다.
좀비는 달려오던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땅바닥에 쓰러진 채 그대로 쭈욱 밀려왔다.
바닥에 스키드 마크처럼 검은 물감이 칠해졌다.
마루는 거칠게 창을 잡아 뽑았다.
그러면서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왠지 주변 거리가 제법 낯이 익었다.
가만히 보니 여긴 예전에 아끼던 후배, 강준모가 운영하는 회사가 있는 곳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에센 소프트’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후배의 회사가 있는 건물로 시선을 옮기자 이 층에서 누군가 자신을 향해 마구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였다.
마루는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가까이 다가갔다.
신기하게도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은 강준모였다.
뭐라고 말을 꺼내려는 순간!
강준모는 급히 자신의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세웠다.
그러고는 자꾸 옆 골목을 가리켰다.
마루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희미한 가로등이 비치는 골목으로 걸어갔다.
어두컴컴한 골목 안을 살피자 안쪽으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우적우적, 우적우적!
뭔가를 맛있게 씹어 먹는 모습이 보였다.
마루의 눈에서 시퍼런 살기가 피어올랐다.
검은 그림자의 손에 들린 것은…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작은 어린아이의 몸뚱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