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그렌이 즉각 해모수의 말에 동의했다.
[그렌: 해모수의 말이 맞아. 포스와 오러를 단순히 수치로 비교할 수는 없어. 둘은 엄연히 그 성질과 쓰임새가 달라.]마루도 해모수를 위로하려는 목적이라서 두 사람의 말에 달리 반박을 하지 않았다.
[마루: 그나저나 이제 우리 셋에게 상태 창이 각각 열렸다는 것은 고무적이네요.] [그렌: 비록 랭크가 최하급이지만 자신의 상태를 수치화해 명확히 알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거야.] [해모수: 노력 여하에 따라 능력이 더 올라가게 된다는 말이겠죠.] [마루: 정확히 말하자면 스탯이 되겠지.] [그렌: 그건 아직 모르는 거야. 정말 나중에 능력이나 스킬 같은 것도 나올지 모르니까.] [마루: 능력이나 스킬 같은 게 나오면 좋죠. 하지만 그건 그때 나오면 생각해 보고… 일단은 스탯부터 올려야 해요.]해모수와 그렌의 고개가 동시에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마루는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마루: 스탯을 올리는 방법은 이미 나와있습니다. 나 같은 경우는 좀비를 제거해서 경험치를 쌓아 레벨을 올리는 겁니다.] [해모수: 그럼 난 왜구를 죽여야 레벨을 올릴 수 있다는 거겠죠.] [그렌: 나도 몬스터를 잡아야 레벨 업을 한다는 얘기겠네.] [마루: 그렌 형의 경우는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 기사나 마법사를 잡아도 경험치를 쌓을 수 있을지 몰라요.] [그렌: 왜 그렇게 생각하지?] [마루: 기사에게는 오러가, 마법사에게는 마나가 쌓이잖아요.] [해모수: 그렇게 말한다면 왜구는 오러나 마나가 없잖아요.] [마루: 일단은 그냥 내 짐작이야. 정확한 것은 레무리아에 갔을 때 직접 확인해 보면 되겠지.]해모수의 반론에도 그렌은 왠지 마루의 말이 맞을 것만 같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신도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모수: 어쨌든 저도 괄호 안에 엑스트라 스탯인가 뭔가 하는 것을 얻었어요. 이 말은 우리의 스탯이 올라가면 갈수록 서로에게 더 큰 보탬이 된다는 말이죠.] [마루: 아마 그럴 거야. 문제는 싱크로율인데 현재 1퍼센트에서 양쪽으로 1할 정도의 엑스트라 스탯을 얻고 있는 것 같아. 2퍼센트가 되면 2할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인데…….]그렌이 바로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렌: 그건 아닐 거야. 아마도 1~10퍼센트까지 1할이고 11퍼센트 이상이 되면 2할이 될 거야. 만약 마루의 생각대로 2퍼센트에 2할이면 100퍼센트에는 얼마나 많은 엑스트라 스탯을 받겠어.] [마루: 생각해 보니 형의 말이 맞네요. 물론 제 생각대로라면 더욱 좋겠지만 그건 밸런스 붕괴에 해당하니 아마 불가능할 거예요.] [해모수: 밸런스 붕괴?]해모수가 이해를 못 하자 마루가 자세히 설명을 해줬다.
대충 이해를 한 해모수는 그래도 여전히 의아해했지만 일단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마루: 이제 인벤토리도 열어봐!] [해모수: 아! 맞다. 그게 있었지.]마루의 말에 해모수가 반사적으로 인벤토리를 생각했다.
그러자 허공에 투명한 정육각형의 공간이 나타났다.
[그렌: 해모수, 너에게도 아공간이 생겼어.] [해모수: 이건 그냥 보이지 않는 금고나 마찬가지네.] [마루: 헐! 어떻게 인벤토리를 보이지 않는 금고라고 생각할 수가 있는 거지?] [그렌: 그러게 말이야. 아공간에 대한 개념은 벌써 여러 번 설명해 줬던 것 같은데…….]마루와 그렌이 뭐라고 하든 간에 해모수는 귀한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런 해모수와는 달리 마루와 그렌은 해모수의 아공간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해모수, 너 뭐 하고 있냐?”
그때 옆에서 뭔가에 푹 잠긴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모수가 고개를 돌려보자 둘째 형 해상호였다.
“그냥 왜구들과 싸웠던 전투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참 너도 배짱이 두둑하구나. 다들 앞날이 걱정스러워 끙끙 앓고 있는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왜 앞날을 걱정해요?”
해모수의 말에 해상호는 입을 살짝 벌리고 웃었다.
“너도 어지간하구나. 생각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아니면 호랑이 간이라도 삶아 먹은 거야?”
“하하하! 둘째 형님, 괜히 쓸데없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무슨 죄지었어요? 오히려 왜구와의 전투에서 큰 전공을 세웠으니 상을 받아야 마땅하다고요.”
“넌 아직도 모르겠니? 그럼 우리 형제들이 무슨 큰 죄를 지어서 모조리 군역에 끌려왔어? 한족(漢族), 아니 명나라 조정은 우리 고려 유민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제대로 대우해 줄 생각이 없어. 그저 어떻게 하든 수탈하고 노동력을 착취할 생각만 한다고.”
해상호는 낮은 목소리로 이를 갈았다.
그의 눈은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해모수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 잘될 거예요. 영율소의 도강원 정천호도 도와준다고 했어요.”
“그게 정말이냐?”
“네.”
그제야 해상호의 눈가에 서린 분노가 조금은 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성산위의 지휘첨사(指揮僉事) 왕규동이 하는 말을 너도 들었잖아.”
“그건 다 개소리예요. 우리의 이름으로 거짓 장계를 올려서 사기를 치려고 하는 거라고요.”
“그래도 이렇게 무조건 버티고만 있으면 사형을 시킨다고 했잖아.”
“사형요? 어떻게요? 엄연히 군법이라는 게 있는데 무슨 죄로 우릴 사형시키겠어요. 전부 블러핑이에요.”
“블러핑?”
해모수는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한 번 탁 치면서 말을 정정했다.
“그러니까 공갈 협박이라는 말이에요.”
“어휴! 그래도 솔직히 난 겁이 난다. 이러다 형제들에게 사달이라도 일어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돼서 죽겠어.”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성산위의 지휘사(指揮使) 장제민과 지휘첨사 왕규동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감옥을 들락거리며 해씨 사 형제에게 온갖 협박과 공갈을 해댔다.
나중에는 지키지도 못할 감언이설을 쏟아내며 미리 조작한 장계에 해씨 사 형제의 수인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들의 음모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마루와 그렌이 즉시 저들의 계략을 알아채 버린 것이다.
해모수는 형제들을 설득하여 끝까지 저항하기로 했다.
“이미 영율소의 도강원 정천호가 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로 급보를 올렸어요. 저들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안달을 내는 거예요. 시간은 우리 편이에요. 그리고 정 안 되면 탈옥해서 도망치면 되죠.”
“뭐어?”
해상호는 해모수의 말에 기가 막혔는지 오히려 웃음을 흘렸다.
“허허허! 그래 네가 나보다 낫다.”
“암! 우리 막내가 해씨 사 형제 중 으뜸이지.”
“크크크, 나도 동의해요.”
해대호에 이어 해광호까지 그 말에 동참했다.
다들 안 자고 있었나 보다.
그들은 슬슬 몸을 일으키더니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마음고생들이 컸는지 형제들의 피부가 많이 거칠어져 있었다.
마루 형의 세계에서 바셀린이라도 가져와 발라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형님들, 조금만 기다리세요. 우린 반드시 이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을 겁니다.’
해모수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형들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사실 해모수가 그동안 놀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영율소의 도강원 정천호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고, 해동연합의 조직을 만들고 있는 김만덕 집사에게도 연락을 취해 구명 운동을 시켰다.
또한 여진 삼총사인 퉁그란, 바토르, 차하루에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파옥(破獄)을 준비시켰다.
물론 파옥은 최후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성산백호소의 살아남은 병사들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생사고락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전우!
해씨 사 형제의 구명을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해모수의 조언을 받아 성산백호소 전투에 대한 진상을 사방으로 알렸다.
그리고 성산위의 만행에 대해서도 소문을 뿌려댔다.
전 방위로 날아드는 소리 없는 공세!
이미 쌀이 익고 밥이 다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해모수는 이런 사실을 아직 형들에게 모두 말해줄 수 없었다.
비밀을 아는 사람은 적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저벅, 저벅, 저벅…….
입구 쪽에서 간수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해모수를 포함한 해씨 사 형제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해씨 사 형제는 나와라!”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놈아! 나오시라고 해야지.”
간수장이 새로 들어온 간수의 뒤통수를 치며 말했다.
“나, 나오십시오.”
그제야 간수가 고개를 숙이며 말을 공손히 했다.
간수장은 혀를 차다가 얼른 감옥의 자물쇠를 열고 문을 열었다.
“어찌 된 일인가?”
“방면하라는 명이 떨어졌습니다.”
해대호의 물음에 간수장은 예전과는 달리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그도 태세 전환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간수장의 한마디에 해모수는 대충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전투에서 공을 세운 자를 무리하게 투옥시킨 게 결국 사달이 난 것이다.
“형님, 뭐 하고 있어요? 빨리 나갑시다.”
“그, 그래. 나가자.”
해대호가 감동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해광호가 옆에서 초를 쳤다.
하지만 그들 누구도 더 이상 이런 감옥 안에 갇혀있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밝은 빛에 눈을 찌푸리며 밖으로 나오자 여진 삼총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퉁그란, 바토르, 차하루!”
해모수는 여진 삼총사와 격하게 포옹을 하며 인사를 나눴다.
뒤이어 해씨 삼 형제가 다가와 그들과 반갑게 악수를 했다.
해모수는 주변을 둘러보다 퉁그란에게 슬쩍 물었다.
“일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해모수 소기, 성산위 지휘사가 곧 파직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으래?”
대번에 그의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이건 도저히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문뜩 아찔한 생각이 들자 정색을 하며 말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우리 빨리 성산백호소로 돌아갑시다.”
“그러는 게 좋겠다. 괜히 여기서 얼쩡대고 있다가 분풀이라도 당하면 우리만 손해야.”
해모수의 말에 해상호가 즉시 감을 잡고는 맞장구를 쳤다.
“말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바토르가 해씨 사 형제를 이끌고 영문(營門)으로 향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빠르게 영문 밖으로 나가 미리 대기시켜 놓은 말을 탔다.
“이럇!”
“핫, 하앗!”
여진족 삼총사는 말할 것도 없고 해씨 사 형제도 이제는 제법 말을 잘 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긴 맞나 보다.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갔다.
우두두두두!
해변가를 타고 성산위가 보이지 않는 곳에 다다랐다.
해대호가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
군마가 보폭을 좁히며 걷기 시작하자 이제는 서로 대화를 나눌 만했다.
“도지휘사사나 성산위에서 무슨 명령이 내려오지는 않았나?”
“전령이 와서 명령서 몇 개를 놓고 갔습니다. 하지만 지휘관 부재로 그냥 놔뒀습니다.”
“내용은 읽어봤나?”
“밀봉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읽어봤습니다.”
차하루가 해모수의 눈치를 보며 대답하자 해대호가 한 손을 휘저었다.
“괜찮으니 뭐라고 쓰여있었는지 말해보게.”
“예, 해대호 총기! 일단 성산백호소를 다시 재건하라는 명이 있었고, 또 죽은 병사를 묻어주고 부상당한 병사들은 후방으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롭게 병사들을 충원해 줄 테니 데려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성산백호소의 지휘관인 해씨 사 형제가 없다고 못 할 일도 아니었다.
죽은 병사들의 시신은 가족들이 와서 찾아갔다.
연고가 없는 병사는 이미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줬다.
부상당한 병사들도 진즉에 후송해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다만 병력을 보충하는 일은 지휘관이 없어서 당장 데려오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예산이나 복구 자재를 준다는 말은 없고?”
“그건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차하루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해모수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성산백호소를 재건하는 자금은 아마 장제민 지휘사와 왕규동 지휘첨사가 이미 착복하고 없을 것이다.
나중에 달라고 하면 창고에서 다 썩어가는 자재들을 내주고 나 몰라라 할 것이 분명했다.
“그 문제는 일단 성산백호소로 올라가서 천천히 얘기하도록 합시다.”
“맞는 말입니다.”
해모수가 강하게 말하자 해광호가 즉시 동의를 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성산백호소를 향해 달려갔다.
다들 머릿속으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