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2
12화
[해모수: 하긴 우리 형제만 해도 벌써 네 명이니 맘먹고 움직이면 열 명까지 모으는 건 금방이겠네요.] [마루: 그래. 바로 그런 생각으로 일을 저지르는 거야.] [그렌: 으음, 그럼 역시 돈부터 벌어야 하나?] [마루: 이런, 생각해 보니 다시 원점이네요.] [그렌: 내가 깨어나면 당장 마루와 해모수를 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좀 찾아봐야겠어. 강한 무력이 있으면 돈 벌기도 쉽고 또 돈이 저절로 굴러 들어오기도 하지.] [마루: 그럼 나는 장사로 돈을 벌 만한 아이템이 있나 한번 알아볼게요.]해모수는 마루와 그렌의 말에 왠지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이 적극적으로 해모수를 도와주자 없던 용기도 팍팍 생겨났다.
[그렌: 해모수, 괜찮으면 지금 잠깐 네 몸을 통해 네가 사는 세상에 얼마나 마나가 퍼져있는지 확인해 봐도 될까?] [마루: 그래. 이번 기회에 나도 한번 체험을 해보도록 하자.] [해모수: 나는 상관없어요. 그렇게 하세요.]해모수는 그렌과 마루의 말에 별로 기분 나빠 하지도 않고 바로 허락을 했다.
그렌이 빙의한 해모수의 몸의 통제권을 장악했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더니 이내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아 눈을 감았다.
[해모수: 어때요?] [그렌: 마루가 사는 세상보다 기운이 훨씬 풍부한 것 같아. 레무리아의 마나 농도가 100이라면 마루가 사는 세상은 1, 해모수가 사는 곳은 10 정도 있다고 보면 될 거야.] [마루: 기운이 풍부하다는 것은 마나 말고도 기(氣)가 풍부하다는 말인가요?] [그렌: 기에 대해서는 아직 내가 100퍼센트 이해를 하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아. 하지만 그렇다고 말해도 큰 무리는 없을 거야.] [해모수: 그 말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마루 형이 사는 세상보다 좋다는 말이죠?] [그렌: 응, 기운은 훨씬 좋아.] [해모수: 어? 그런데 지금 뭔가 몸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느껴져요. 그러고 보니 몸 밖에도 이상한 것들이 있는 게 느껴지네요.]해모수의 말에 그렌은 깜짝 놀랐다.
[그렌: 뭐? 설마 너 지금 마나를 느끼고 있다는 말은 아니겠지?] [마루: 기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그렌: 무엇을 느끼든 간에 일단 테스트 좀 해보자. 내가 마나를 조금 움직여 볼 테니까 느껴지는 쪽의 손을 들어줘!] [해모수: 네.]그렌은 마탑에서 어린아이들에게 마나에 대한 친화력이 있는지를 검사하는 간단한 방법을 해모수에게도 적용해 사용해 봤다.
놀랍게도 해모수는 마나를 조금만 움직여도 바로 그것을 감지하고 양쪽 손을 번갈아 들어댔다.
[그렌: 엄청나네. 해모수에게는 마나에 대한 높은 친화력이 있어. 그것도 최소한 상급이야.] [해모수: 그거 좋은 건가요?] [그렌: 물론이지. 마나에 대한 친화력이 높은 사람은 마법사나 기사가 되는 데 상당히 유리하지. 심장에 마나를 모아 서클을 만들어 공명해서 쓰거나 오러 홀에 오러를 모으고 가공해서 쓸 수 있거든. 이런 재능은 후천적인 노력보다는 거의 무조건 타고나는 거라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클래스를 넘어서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해모수가 만약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태어났다면 1서클의 견습 마법사, 2서클의 초급 마법사를 넘어 당장 3서클의 수련 마법사가 되고도 남았을 거야.]그렌도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해모수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일단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마루는 아직 마나에 대한 친화력이 뭔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렌이 볼일을 다 보자 이번에는 마루가 해모수의 몸의 통제권을 넘겨받았다.
신기하게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해모수의 몸이 자유롭게 움직였다.
[마루: 야아! 여기는 참 공기가 좋네. 가슴이 뻥 뚫리고 속이 다 시원해진다.]마루는 해모수가 사는 세상의 공기가 자신이 살아가는 현대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업혁명 이후, 과학의 발달로 인해 온갖 공해 물질이 쏟아져 나왔다.
핵실험이다 뭐다 해서 세상 이곳저곳에서 방사능도 마구 터트려 댔다.
그런 인간의 행태에 지구는 차츰 썩어가고 있었다.
과거로 와보니 지구가 얼마나 오염되었는지 확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해모수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하늘과 바다는 정말 깨끗했다.
멀리 선단(船團)이 지나가는 모습이 아스라이 눈에 들어왔다.
[마루: 저기 배들이 지나간다.] [해모수: 네?]마루는 해모수가 반문하자 얼른 몸의 통제권을 해모수에게 도로 넘겼다.
해모수는 즉시 눈에 힘을 잔뜩 주고 바다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비명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해모수: 저, 저건 왜구예요. 왜구들이 쳐들어왔어요.] [마루: 왜구! 저쪽으로 가면 뭐가 있지?] [그렌: 등주부(登州府)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그렌이 용케 지명을 기억해 냈다.
해모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해모수: 맞아요. 저기로 계속 올라가면 등주부예요. 하지만 그쪽은 위해위(威海衛)가 세워져 있으니 아마 큰 변란은 없을 거예요.]위해위는 산동반도의 북쪽 끝에 있는 도시다. 명대(明代) 초에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이곳에 위소(衛所)를 설치했기 때문에 위해위라고 부른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전면(前面)에 류궁섬(劉公島)이 천연의 방파제를 이루는 수심 12미터의 부동항이었다.
[마루: 위해위가 세워져 있다면 지금은 병영만 존재하겠군.] [그렌: 혹시 모르니까 몰래 따라가서 구경해 보는 것은 어떨까?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멀리 떨어져서 그냥 훔쳐보기만 해도 될 것 같은데.]그렌의 말에 해모수는 회가 동했다.
말로만 듣던 왜구를 꼭 한번 눈으로 보고 싶었다.
호기심이 치밀어 오르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해모수는 어머니에게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다고 말을 남겼다.
그러곤 해안가를 따라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왜구들의 배가 천천히 가는 것처럼 보였다.
허나 막상 직접 달려서 쫓아가 보니 이건 보통 빠른 속도로 가는 게 아니었다.
그가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왜구들의 배를 따라잡는 것은 요원해 보였다.
[마루: 어? 선단에서 배들이 따로 떨어져 나오네.] [그렌: 저쪽엔 뭐가 있지?] [해모수: 북현(北懸)이라는 마을과 성산위(成山衛)가 있어요.] [마루: 성산위라면 위해위와 같은 건가?] [해모수: 네, 같은 거예요. 하지만 규모가 천호소(千戶所) 정도로 작다는 얘기를 들었어요.]해모수의 말에 마루는 대충 감을 잡았다.
[마루: 혹시 왜구들이 등주부를 치기 위해 양동작전을 벌이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최소한 저기 있는 마을과 성산위는 박살이 나겠군.] [그렌: 그럼 빨리 가보자. 참, 해안가로 달리지 말고 이제부터는 몸을 숨기면서 다녀!] [해모수: 알겠어요.]해모수는 마루와 그렌의 말을 듣고는 벌겋게 흥분된 얼굴로 뛰기 시작했다.
이 부근은 어렸을 적부터 자주 돌아다니던 곳이라 지형이 눈에 많이 익었다.
그래서 나무 사이로 달리며 자신의 몸을 쉽게 숨길 수 있었다.
왜구들의 거듭된 약탈로 인해 위해위와 성산위가 거의 동시에 세워졌다.
하지만 영해주(寧海州)를 뒤로하고 등주부를 지키기 위한 목적의 위해위와는 달리 성산위는 뒤에 배경이 없었다.
기껏해야 현(懸)에도 못 미치는 마을 몇 개가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원래는 5,600여 명의 병사가 배치되어야 하는 성산위에 천호소(千戶所) 규모에 불과한 1,000여 명의 병사만 배치된 상태였다.
그것도 지금 반 이상은 둔전(屯田)을 위해 논과 밭에 나가있었다.
성산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올라온 해모수는 바닷가에 개미 떼처럼 몰려드는 왜구의 관선(関船: 세키부네)들을 보고는 입을 딱 벌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왜구의 전력(戰力)이 대단했다.
[해모수: 엄청나네요. 왜구들에게 들키면 바로 죽은 목숨이겠어요.] [마루: 지금부터 왜구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해서 움직여.] [해모수: 네.] [그렌: 저놈들이 하는 짓을 눈여겨보는 것이 좋겠어. 나중에 쓸모가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야.]해모수는 그렌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마루는 무슨 뜻인지 대충 눈치챘다.
그렇다고 해모수에게 굳이 설명을 해주지는 않았다.
아직은 생각일 뿐이고 정말 나중에는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해모수: 어? 성산위가 불타고 있어요.] [마루: 벌써 성산위는 무너졌군.] [그렌: 북현이라는 마을도 곧 털리겠네.]그들은 바닷가에 있는 병영이 불에 활활 타오르자, 결국 성산위가 왜구의 손에 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곧이어 왜구는 마을로 쳐들어왔다.
멀리서 사람들의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루: 해모수, 여기에서는 마을이 잘 보이지 않으니까 저기 아래쪽 언덕으로 내려가자.] [그렌: 위험하지 않을까?] [마루: 설사 왜구가 해모수를 발견한다고 해도 굳이 잡으러 언덕 위로 올라오겠습니까? 저기 저렇게 잡아갈 사람도 많고 털어먹을 것도 많은데…….]그렌은 마루의 설명을 듣자 이해가 갔다.
자신이 왜구라도 절대 귀찮게 이런 곳까지 올라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렌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자 해모수는 그게 곧 마루의 의견에 동의한 것이라고 봤다.
언덕을 내려가기 위해 비탈길을 왼쪽으로 돌았다.
조그만 오솔길을 찾아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북현 마을이 한눈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이 나왔다.
해모수는 언덕 꼭대기에 있는 바위틈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런 후, 빼꼼히 얼굴만 살짝 내밀고 마을을 내려다봤다.
마을 사람들이 지르는 참혹한 비명이 바로 앞에서 듣는 것처럼 생생했다.
해모수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느낌에 주먹을 꼭 쥐었다.
[마루: 해모수, 쫄 것 없다. 나중에 서갈봉 잡아서 원수를 갚는다는 녀석이 이 정도에 겁을 먹어서 되겠어?] [그렌: 사실은 나도 좀 무섭다. 해모수가 두려워하는 것은 정상이야.]해모수는 그렌의 위로보단 마루의 말에 더 큰 자극을 받았다.
서갈봉을 생각하자 가슴속에서 불쑥 노화(怒火)가 치솟았다.
당장 두려움이 날아가 버렸다.
개 같은 원수 놈의 얼굴을 떠올리자… 더 이상 사람의 비명 따위가 두렵지 않았다.
덕분에 해모수는 마을 사람들이 왜구의 칼에 베이고 창에 찔려 죽는 것을 보고도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노인 한 명이 도망가다가 왜구에게 걸려 목이 날아갔다.
그것을 시작으로, 뚱뚱한 중년 여인의 배가 갈리고 창자가 쏟아져 내렸다.
청년들의 팔다리가 잘리고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모습도 보였다.
어린아이가 칼에 맞아 상체와 하체로 분리되는 끔찍한 장면!
왜구를 상대로 죽창을 찌르며 공격하던 남자가 여러 명의 왜구의 창칼에 난도질을 당하는 모습도 이어졌다.
젊은 처녀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왜구!
나올 때는 칼에 피를 잔뜩 묻힌 것을 보니… 무슨 짓을 했는지 얼핏 짐작이 갔다.
마루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당장 무릎을 꿇고 땅에 토악질을 하고 싶었다.
지금 빙의한 육체가 해모수가 아니고 자신의 몸이었다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해모수가 더 이상 떨지 않는다.
냉정한 눈초리로 사태를 주시하는 모습이 무척 대견해 보였다.
뭐든지 자꾸 보면 눈에 익고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설사 평상시엔 전혀 볼 수 없는 처참한 학살이라도 말이다.
셋은 어느새 왜구들이 저지르는 살인, 강간, 방화, 약탈, 납치에 눈이 적응되어 갔다.
그러자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표적인 것이, 더 이상 왜구가 마을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들어오는 놈이 없다는 것은 이제 나갈 놈만 남았다는 얘기가 된다.
다른 하나는 바다 위에 떠있는 왜구의 관선과 해변 사이를 조각배들이 열심히 오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조각배들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이윽고 해변에 조각배 하나가 마지막으로 남았다.
해모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마을을 향했다.
[해모수: 왜구의 약탈이 끝났나 봐요.] [마루: 해모수, 마을의 뒤쪽을 봐!] [그렌: 아! 한 놈이 거꾸로 당했구나.]마루의 말에 해모수는 마을의 뒤쪽을 살펴봤다.
왜구 한 놈이 어기적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 뒤쪽으로 뭔가 줄줄 흘렀다.
[해모수: 뭘 흘리고 가네요.] [마루: 흘리긴 뭘 흘려? 칼 맞아서 피 나는 거잖아.] [그렌: 으음, 비틀거리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중상을 입었나 보군.]그제야 해모수의 눈에도 왜구가 걷는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한 손에 칼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자루 하나를 쥐고 걸어간다.
점점 힘들어하며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