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백호 한 명 데려가겠습니다. 앞으로 이빨과 잇몸처럼 서로 도와서 왜구의 습격을 잘 막도록 합시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표면적으로나마 시근평과 도강원은 서로 굳게 악수를 했다.
볼일을 다 본 시근평은 해대호에게 명령서를 전달하고는 바로 성산백호소를 떠났다.
도강원은 시근평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해모수에게 다가갔다.
“아주 신이 났군. 신이 났어.”
“예에? 제가 백호로 영전한 것도 아닌데 뭐가 신이 난답니까?”
“어쭈! 군문에 들어오자마자 총기가 된 자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백호 자리를 노려!”
“하하하, 제가 언제 백호가 되겠다고 했습니까? 다만 별로 신이 나지는 않는다고 했지요.”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사이가 되다 보니 어느새 둘은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금세 친한 친구처럼 되어버렸다.
물론 도강원이 허물없이 해모수를 대해주고 있는 게 큰 요인이었다.
하지만 도강원의 입장에서 보면 해모수는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었다.
“이리 좀 와보게.”
“예.”
해모수가 자리를 뜨는 시근평의 뒤에서 정중히 군례를 올리자 도강원이 한쪽으로 그의 팔을 끌고 갔다.
“두 가지 일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하나는 영율소에서 동현 앞에다 백호소를 세워 운영할 계획이네.”
“그래요? 축하합니다. 아니 이게 진짜 축하해야 할 일인가 모르겠네요.”
“그래서 말인데… 영율백호소에 백호 한 명이 필요하네.”
“아!”
감탄사를 발한 해모수가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이제야 도강원의 말을 이해한 것이다.
“혹시 저희 형제 중 한 명을 데려가시겠다는 말인가요?”
“맞네. 누가 좋겠는가?”
살짝 고민이 됐다.
그렇다고 이건 거부할 수 있는 얘기도 아니었다.
아니 어떻게든 꼭 붙잡아야 할 제안이었다.
목숨의 빚을 진 도강원 정천호라면 누가 가든 틀림없이 잘 보살펴 줄 것이다.
“으음. 제 생각에는 셋째 형님이 좋겠습니다.”
“셋째라면… 해광호 백호 말인가?”
“예, 맞습니다. 보기와는 달리 은근히 꼼꼼하거든요.”
“알겠네. 그렇게 하지. 또 하나의 소식은 자네가 곧 정찰선을 타게 될 거라는 말일세.”
“정찰선요?”
놀라긴 했지만 아주 경악하지는 않았다.
김만덕 집사를 통해 이미 한번 들었던 얘기였다.
다만 설마 그 자리가 자신에게 돌아올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자네가 노획한 왜구의 관선이 정찰선으로 배정됐네. 미리 준비를 잘해두게. 땅에서 만나는 왜구와 바다에서 만나는 왜구는 전혀 다르니 말일세.”
“알겠습니다. 미리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에. 자네도 좋은 소식 있으면 혼자만 알지 말고 나에게도 좀 알려주시게.”
“당연히 그래야지요.”
둘은 서로의 손을 꼭 쥐고 눈을 빛냈다.
도강원이 영율소로 돌아가자 해모수가 들떠있는 형제들을 소집했다.
그러곤 방금 도강원에게 들은 따끈따끈한 소식을 풀었다.
놀란 해대호는 그제야 시근평으로부터 받은 명령서를 확인했다.
“이제는 하다 하다 바다에서 왜구와 싸우라고 지랄이네.”
“그러게 말이야. 해모수에게 너무 위험한 것 아니야?”
“너 괜찮겠냐? 내가 가서 보직을 바꿔달라고 부탁해 볼까?”
해씨 삼 형제는 막내가 정찰선을 탄다는 것을 바다로 나가 왜구에게 죽는 것처럼 격하게 받아들였다.
솔직히 해모수도 조금 무서웠다.
하지만 그에게는 마루와 그렌이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성장의 발판인 ‘트리니티 바이오 인터페이스’도 있었다.
어떻게든 준비를 잘해서 꼭 살아남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냥 제가 정찰선을 운영해 볼게요. 누군가는 바다로 먼저 나가서 자리를 잡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요.”
“네가 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대신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꼭 차출해 가라.”
“차라리 지원하는 병사들을 데리고 갈게요.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뭍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 이건 물어보는 게 정답이에요.”
“그렇게 해라.”
해대호는 선뜻 그의 의견을 들어줬다.
“그런데 새로 생기는 영율백호소로 광호가 가는 게 정말 최선일까?”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걸 오히려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듣기로는 영율소에도 고려의 유민이 제법 된다고 하네요. 도강원 정천호에게 부탁해서 영율백호소로 데려갈 자를 차출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면 좋을 것 같아요.”
해모수는 해대호의 걱정을 단박에 날려버렸다.
“내가 갈게요. 큰형과 둘째 형이 가는 것보다 내가 가는 게 나을 거예요.”
해광호는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편히 말했다.
“좋아. 이렇게 되면 우리 좀 더 심도 있게 얘기를 나눠보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인 방도를 한번 세워보자고.”
“그래요.”
“좋아요.”
“그게 좋겠어요.”
해씨 사 형제는 만장일치로 합의를 보고 지휘 막사로 들어갔다.
그들은 오랫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미래의 계획을 세우고 다듬고 수정했다.
해모수가 밖으로 나왔을 때!
어느새 해는 중천에 떠있었다.
* * *
“이거 우리가 잘 몰고 다닐 수 있겠어?”
“해모수 총기! 전혀 문제없습니다. 제 아버지와 예전에 이것보다 훨씬 더 큰 배도 몰아봤습니다.”
“속도는 좀 나올 것 같아.”
“예. 왜구의 관선이 좀 빠른 편입니다.”
성산백호소 앞바다.
자신이 노획한 왜구의 관선에 오른 해모수는 영 마음이 불안했다.
과거 무역선에서 잔뼈가 굵은 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 마음을 읽은 마루가 오히려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마루: 이게 속도는 좀 날지 모르지만 겁나게 약해. 더군다나 정찰을 목적으로 한 쾌속선으로는 많이 부족하지. 당장 선체를 보강하고 돛대도 더 세워야 해.] [해모수: 역시 그렇겠죠.] [마루: 물론이지. 왜구의 관선이 한두 척씩 다니는 것도 아니고 우르르 몰려다닐 텐데… 혼자 정찰한답시고 나대다가 포위라도 당하면 바로 사망이야. 무조건 속력을 올려야 해! 그래야 최악의 경우 재빠르게 도망칠 수 있지. 그러려면 돛대도 더 세우고 돛도 여러 종류로 달아야 해.] [해모수: 알겠어요. 바로 김만덕 집사에게 연락해서 이놈을 개조해 달라고 부탁해야겠어요.]그제야 해모수의 얼굴이 살짝 펴졌다.
왜구의 관선은 그럭저럭 상태가 괜찮았다.
하지만 꼭 고쳐야 할 곳이 몇 군데 있었다.
해모수는 김만덕 집사를 불러 이번 기회에 아예 진정한 쾌속선으로 탈바꿈시키기로 마음먹었다.
해모수는 퉁그란을 보내 김만덕에게 연락을 취했다.
김만덕은 소식을 듣자 만사를 제쳐놓고 그에게 달려왔다.
“오오! 이것이 전에 노획했던 왜구의 관선이군요.”
“어서 오세요. 바쁘신데 와달라고 해서 미안해요.”
“천만에요. 부르시는데 얼른 와야지요.”
김만덕은 해모수와 악수를 하곤 열심히 왜구의 관선을 둘러봤다.
다행히 김만덕은 배에 관해 지식이 아주 풍부했다.
앞돛대, 주돛대, 뒤돛대, 지거, 세로돛, 가로돛, 삼각돛, 사각돛, 선수돛, 후변돛, 돛의 삼단 분리 등, 그는 해모수가 말하는(마루가 조언해 주는) 것을 거의 대부분 이해했다.
결론적으로 왜구의 관선은 김만덕이 부른 선원들에 의해 끌려갔다.
어디로 가져가는지, 배를 어떻게 고치고 보강할지 모르지만… 다음에 볼 때는 꼭 마루가 조언해 준 대로 잘 바뀌어 있기를 희망했다.
그사이 해모수는 정찰선의 대원을 구성했다.
바늘 가는 데 실 간다고 여진 삼총사는 무조건 그를 따랐다.
소기 임명 후 배속됐던 배장손, 박위, 노영희, 김통정도 지원했다.
성산백호소에서도 선원이었거나 배를 타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다들 해모수를 보고 기꺼이 정찰선을 타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금세 오십여 명의 정원이 다 차버렸다.
‘당장은 이 정도만 하자. 어차피 정찰선이 한 대로 끝날 것 같지도 않고, 나중에 정찰함대를 구성한다고 하니 그때 더 뽑으면 될 거야.’
해모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정리하고 정찰선 대원의 구성을 마무리했다.
그는 대원들을 따로 떼어내 성산백호소 아래쪽에 있는 작은 포구로 이동시켰다.
원래는 ‘성산위포구’로 가야 한다.
하지만 해모수는 성산백호소와 혼선을 빚을 수 있다는 말로 고사했다.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정찰선의 모항은 결국 성산백호소 앞에 있는 ‘성산포구’가 되었다.
그러나 말만 포구지 성산포구는 사실 버려진 포구에 불과했다.
인가도 없고 창고도 없었다.
선착장은 허름했고 큰 배를 접안시키기는 무리가 따랐다.
“여기에다 정찰대의 초소를 짓고 저쪽에다 막사와 창고를 짓는다. 선착장도 보수하고 양쪽에 목책을 세우자!”
해모수의 말에 모두 의욕을 북돋았다.
처음부터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당장 바다로 나가 왜구와 싸우는 것보단 나았다.
그렇다고 죽도록 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급한 대로 막사를 세우고 잘 먹고 잘 잤다.
해동연합에서 빌린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낚시도 즐겼다.
누가 보면 놀고 있다고 하겠지만 이것도 다 훈련의 일환이었다.
그렇다고 먼 바다로 나가지는 않았다.
성산백호소가 간신히 보일 정도의 거리를 잘 유지했다.
바다에는 왜구라는 포식자가 널려있었다.
변변한 전투선도 없는 그는 이미 쫄보가 다 되어있었다.
[해모수: 마루 형님, 아무리 그래도 낚시는 좀 아니지 않나요?]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낚싯대를 걸치고 앉은 해모수.
그가 볼을 부풀리며 물었다.
[마루: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낚시를 간다고 해야 병사들이 좋다고 바다로 나가지. 그럼 왜구 잡으러 간다며 바다로 나올 거야?] [해모수: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수군, 아니 해군이라면 바다에 나가서 훈련을 해야죠.] [마루: 훈련은 나중에 왜구의 관선이 개조되어 오면 그걸로 해. 중요한 것은 지금 병사들을 바다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거야. 그리고 낚시해서 물고기 잡으면 그게 다 병사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지. 안 그래?] [그렌: 하하하, 그건 마루의 말이 맞다. 물고기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지.]하도 마루가 강력히 주장하니 해모수도 정말 그런가 했다.
[마루: 그보다 철공소에서 왜 연락이 안 오지?] [해모수: 시간이 좀 걸리나 보죠.] [그렌: 개량궁, 개량 쇠뇌, 강노, 연노, 산탄포, 작열탄, 유탄 등 만들 게 많잖아.]해모수는 장은철의 편을 들어줬다.
그렌도 해모수의 말에 동조했다.
마루가 요구한 물건들은 아무리 봐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마루는 냉정히 고개를 흔들었다.
[마루: 개량궁과 개량 쇠뇌는 이제 많이 만들어 봐서 재고도 좀 가지고 있을 거야. 강노와 연노는 이미 만들어 사용하고 있으니 만들기 어렵지 않을 것이고. 산탄포는 성산백호소에서 실전 데이터, 아니 실전에 사용한 후 어떤 게 가장 좋은지 자세하게 정보를 전해줬어. 우리가 대포를 만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산탄총에 가까운 가벼운 산탄포를 만들어 달라는 거잖아. 가지고 있던 청동포와 부서진 산탄포까지 전부 넘겨줬는데 그걸 녹여서 틀에 부어 찍어내는 것조차 이렇게 느려 터져서야 원……. 작열탄과 유탄도 만드는 방법에서 주의할 점까지 다 알려줬구먼 뭐가 더 시간이 필요해?]사실 해모수와 그렌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학이 발달한 세상도 아니었다.
화약을 보급 받는 것도 쉽지 않았고 산탄포를 만드는 일도 지지부진했다.
제강 제철 기술이 일천하고 화학과 금속공학도 발전하지 않은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루는 너무 늦다고 생각했다.
화승총을 만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전장식 산탄포였다.
그렇다고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바다로 나갈 수는 없었다.
근접전의 달인인 왜구들과 바다에서 배를 붙여놓고 해상전을 한다는 것은 그냥 자살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화포로 무장한 누전선으로 왜구와의 해전에서 대승을 한 최무선!
화포로 무장한 판옥선으로 왜란 때 해신(海神)으로 불리던 이순신!
이들처럼 화포로 무장한 함대를 가지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바다에서 왜구의 관선과 조우했을 때, 적의 사기를 꺾고 막대한 인명 피해를 줄 수 있는 비장의 무기 하나가 필요했을 뿐이다.
[해모수: 그냥 죽폭이나 더 만들어 놓을까요?] [그렌: 지연신관을 만들어서 죽폭에 넣는 것은 어때?] [마루: 도화선인 약선을 감은 게 지연신관인 목곡(木谷)이고, 목곡을 담은 죽통을 넣고 내부를 빙철(憑鐵)로 채워서 중완구에 놓고 쏘면 그게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예요.] [그렌: 생각보다 만들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