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그러자 회오리를 치던 바람이 하늘로 쭉 뽑히듯 올라가 허공에 바람의 터널을 만들어 버렸다.
‘호오, 이게 되네.’
혼돈 마법으로 3서클이 넘는 마나를 보유한 그렌!
이제는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던 것들을 마법으로 실현하는 게 가능해졌다.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 주인을 떠나 윈드 마법에 던져진 고폭탄과 수류탄은 빠르게 바람의 터널을 타고 날아갔다.
그리고 그 끝에는 암베르 요새를 향해 보무도 당당하게 진군하고 있는 코슈타인 요새의 장갑보병들이 있었다.
휘이익, 퉁!
휘리릭! 투둥, 퉁퉁퉁, 데굴데굴!
행진하고 있던 장갑보병들 사이로 주먹만 한 쇳덩이들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어?”
“이게 뭐지?”
처음 보는 모양의 쇳덩이!
장갑보병 몇 명이 주워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러나 이게 뭔지는 당장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따름이다.
그때 여기저기에서 강력한 폭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쾅, 콰과광, 꽈광, 우르르릉!
피쉬잉, 피피핑, 쌔앵, 쌩쌩!
렌 화약으로 만든 고폭탄과 수류탄이 터지자 강력한 충격파와 시뻘건 화염, 그리고 새빨갛게 달궈진 쇠구슬들이 총알처럼 터져나갔다.
한순간에 장갑보병은 잘 다진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으악!”
“크악!”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와 열을 잘 맞춰 행진하던 장갑보병들.
단박에 박살 나 피의 아수라장으로 화해버렸다.
그리고 그 난리의 원인은 아직도 ‘현재진형행’이었다.
휘리릭, 쾅!
휘이익, 콰광!
휘익, 퉁, 데굴데굴, 콰앙!
렌 화약의 위력은 대단했다.
아니 렌 화약으로 만든 폭탄의 위력은 엄청났다.
고폭탄과 수류탄을 각각 채 스무 개도 던지지 않았는데 오백의 장갑보병 부대는 거의 파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있었다.
[마루: 형, 그만해도 될 것 같아요.] [해모수: 마법사들이 모두 쳐다보고 있어요.]신나게 폭탄을 날리던 그렌은 마루와 해모수의 말에 흠칫했다.
살짝 고개를 돌려 옆을 봤다.
라울을 비롯해 멀핀, 라비 등 모든 마법사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심지어는 야엘까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렌: 헐! 내가 너무 주의를 끌었나?] [마루: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그렌은 피와 살이 튀는 전투의 광기에 휘말려 자신이 좀 흥분했던 게 살짝 후회가 되었다.
[그렌: 이거 앞으로 어떡하지?] [마루: 뭘 어떻게 해요. 그냥 이제부터 가벼운 마법이나 쓰면서 모른 척해야죠.] [그렌: 고폭탄과 수류탄에 대해서 물어보면?] [마루: 그냥 비법이라고 말하고 모르쇠로 일관하세요.] [해모수: 그게 좋겠어요. 나만의 비법이라는데 지들이 어떻게 하겠어요.] [그렌: 그렇단 말이지.]그렌은 마루와 해모수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그가 생각해도 자신만의 비법이라고 딱 잡아떼면 그만이었다.
마법사는 다른 마법사의 비법을 탐하지 않는다.
뭔가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생각이 없다면 굳이 가르쳐 달라고 하지 않고 스스로 찾아내는 게 마법사의 생리다.
그렌은 폭탄이 들어있는 마법 주머니를 품속 깊숙이 집어넣었다.
대신 1서클과 2서클에 해당하는 매직 미사일과 그리스, 파이어 애로우와 윈드 커터를 조합해 날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다들 전투를 하는 중이라 누구도 가까이 다가와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전투에 집중하면서 꼭 필요한 곳에 광역 마법을 날려댔다.
연이은 카시오페라 왕국 마법사들의 피의 보복!
코티아르 왕국군은 그저 동네북처럼 얻어맞기 바빴다.
그렇다고 코티아르 왕국군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비록 5서클의 고위 마법사 레옹은 기습에 실패하고 잡혀서 포로가 됐지만, 원정군 본대에 남아있던 마법사들은 꾸준히 카시오페라 왕국의 마법사들을 견제했다.
물론 5서클의 고위 마법사 라울과 그렌 때문에 제대로 된 견제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예 없거나 견제를 전혀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결국 암베르 요새 앞 전투는 코티아르 왕국군의 패배로 일단락됐다.
카시오페라 왕국과 부르나 왕국의 연합군이 승리한 것이다.
코슈타인 요새 사령관 코린 남작은 전황이 크게 불리해지자 전격적으로 후퇴를 명령했다.
전투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것은 후퇴할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멸하지 않은 것은 모두 코난 기사단과 코티아르 왕국 마법사들의 필사적인 노력 때문이었다.
덕분에 코티아르 왕국군은 간신히 대오를 유지하며 퇴각할 수 있었다.
물론 코티아르 왕국군은 이 와중에 카스 기사단 본대와 중앙군 그리고 그렌을 비롯한 마법사들의 끈질긴 파상 공세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코티아르 왕국군은 끝내 암베르 요새를 벗어나 숲속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와아아아아!
전장에 거센 승리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겼다.”
“승리했다.”
“마법사 만세!”
“카스 기사단 만세!”
“카시오페라 왕국 만세!”
“부르나 왕국 만세!”
부르나 왕국의 암베르 요새에도 뜨거운 함성이 이어졌다.
비록 적의 강력한 공격에 함락 직전까지 가는 위기에 몰리긴 했다.
하지만 카시오페라 왕국이 늦지 않게 보낸 지원군 때문에 끝내 승리할 수 있었다.
아니 부르나 왕국의 병사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안도했다.
그렌도 야엘과 함께 손을 마주치며 승리를 자축했다.
함성이 잦아지자 조개처럼 단단히 닫혀있던 암베르 요새의 성문이 활짝 열렸다.
안팎에서 병사들이 전장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며 그렌과 야엘은 암베르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승리했다고 마냥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얼마나 코티아르 왕국군의 공세가 지독했는지 암베르 요새는 이미 반쯤 성벽이 부서지고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이야! 여기서 쉬는 것도 쉽지 않겠는데…….”
“암베르 요새는 부르나 왕국군이 알아서 할 겁니다. 지금은 여기보다 마나석 광산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합니다.”
라울 마법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옷이 피로 물든 크라우스 남작이 나타났다.
카스 기사단의 단장 크라우스 베켄!
그는 보기만 해도 호쾌한 금발의 미남자였다.
카시오페라 왕국의 실세 중 하나로 꼽히는 베켄 후작가의 둘째 아들.
게다가 실력도 뛰어나서 벌써 엑설런트 상급을 넘어 최상급을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크라우스 남작! 오랜만이오.”
“라울 마법사님, 안 그래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5서클의 고위 마법사는 어느 왕국을 가도 자작으로 대우받는다.
그러니 크라우스 남작에게 라울은 편하게 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둘은 이미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괜찮으시다면 뒤처리는 암베르 왕국에 맡기고, 우리는 당장 마나석 광산으로 가도록 하죠.”
“흐음, 난 괜찮네만…….”
라울은 그렌을 비롯한 마법사들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4서클 마법사인 멀핀과 라비가 라울을 쳐다보더니 동시에 찬성을 표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나와 벨로 그리고 지나가 동참했다.
당연히 그렌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자네들은 어떤가?”
크라우스 남작은 카스 기사단 본대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희는 아주 쌩쌩합니다.”
피해가 아주 없진 않았다.
그래도 카스 기사단은 코난 기사단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기쁨을 맛봤다.
물론 전황 자체가 기습으로 인해 유리한 국면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카스 기사단은 마법사님들을 호위하면서 즉시 마나석 광산으로 이동한다. 중앙군도 암베르 요새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으니 같이 간다.”
“예, 단장님.”
“충!”
기사들과 중앙군 병사들이 일제히 군례를 올리며 대답했다.
크라우스 남작은 말을 타고 서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라울이 그의 옆으로 다가가 열심히 뭔가를 묻기 시작했다.
그사이 카스 기사단은 전열을 정비하고 마법사들을 호위했다.
[마루: 이제 막 전투가 끝났는데도 당장 이동하는 게 좀 이상하네요.] [해모수: 그러게 말이에요. 뭔가 일이 터졌나 봐요.]그렌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보통 전투가 끝나면 전장을 정리하고 쉬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무리하게 일정을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 확실히 마나석 광산의 상황이 좋지 않은 듯했다.
그들은 분지 외곽에 난 길을 따라 서남쪽으로 한 시간을 내려왔다.
그러자 깎아지른 절벽들 사이로 커다란 목책이 하나 보였다.
“저기가 마나석 광산입니다.”
“오오!”
크라우스 남작이 한 손으로 목책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외쳤다.
라울은 그의 말을 받아 과장되게 감탄사를 발했다.
암베르 요새와 마나석 광산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만약 지금처럼 천천히 말을 타고 오지 않고 빠르게 달려왔다면 15분도 채 걸리지 않은 위치였다.
그런데…….
벌써부터 뭔가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나석 광산의 모습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났다.
바닥은 피로 물든 듯 적갈색이었고 목책의 한쪽은 반파되어 있었다.
복구 작업을 펼치고 있는 부르나 왕국의 병사들도 피곤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반갑게 마중을 나오는 카스 기사단 선발대도 숫자가 많이 비어있었다.
풀 플레이트 아머는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고 여기저기 찌그러진 곳도 많았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모양이군.”
멀핀이 그렌에게 다가와 슬며시 속삭였다.
“그래 보이는군요.”
그렌도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주위를 살폈다.
마나석 광산이 있는 위치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좌우편과 뒤쪽은 깎아지를 듯 세워진 절벽으로 막혀있었다.
유일한 출입구는 정면에 하나.
하지만 경사가 있고 약간 위로 치우쳐져 있었다.
적이 공격을 하려면 필히 경사진 언덕길을 올라와야 했다.
목책 아니 바리케이드만 잘 쌓아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지형이었다.
문제는 언덕길의 폭이 넓고 적군이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저기 코티아르의 정찰병이 보인다.”
“쥐새끼처럼 숨어서 쳐다보네.”
눈이 좋은 기사들이 적병의 모습을 발견하고 흥분해서 외쳤다.
절벽과 숲으로 뒤덮인 건너편!
그 어딘가에 코티아르 왕국군이 자리를 잡고 호시탐탐 마나석 광산을 노리고 있었다.
그렌과 야엘은 말을 타고 마나석 광산으로 올라갔다.
입구에 세운 목책을 지나자 부르나 왕국의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렌과 야엘은 일단 마나석 광산 입구까지 가봤다.
막상 도착해 보니 절벽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좌우의 움푹 팬 지형이 드러났다.
“저기가 숙소인 모양이네요.”
“흐음,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군.”
야엘의 말에 그렌은 한숨부터 나왔다.
절벽 사이로 보이는 것은 군용 막사의 물결이었다.
싸우러 오긴 했으나 그래도 암베르 요새 안의 숙소나 그에 준하는 곳에 머물 줄 알았다.
하지만 현장의 상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해 보였다.
“저기 절벽에 구멍이 나있어요.”
야엘도 군막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절벽 위쪽에 보이는 작지 않은 구멍을 가리켰다.
“차라리 저리로 들어갈까요?”
“사다리를 세운다면 출입하는 게 불편하지는 않겠어.”
절벽에 난 구멍은 성인 남자가 설 수 있는 높이였다.
문제는 위치였는데…….
지상에서 약 3미터쯤 위에 있었다.
일단 야엘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쯤은 도움닫기 한 번이면 가볍게 올라갈 수 있는 높이였다.
당연히 그렌도 올라가는 게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부유 마법인 3서클의 레비테이션 한 방이면 끝이다.
아니 꼭 마법을 쓰지 않더라도 도움닫기를 할 만한 곳만 있으면 충분히 뛰어서 올라갈 수 있었다.
“일단은 잠시 상황을 지켜보자.”
“네, 그렌 님.”
말에 내려서 잠시 기다리자 그들을 향해 부르나 왕국의 병사들이 다가왔다.
“그렌 마법사님과 야엘 호위님 모시러 왔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렌과 야엘은 병사들을 따라 절벽 우측으로 들어갔다.
안은 밖에서 보던 거와는 달리 전혀 딴판이었다.
절벽 안쪽은 마치 항아리 모양처럼 입구가 좁고 안이 넓었다.
처음에는 이 많은 인원을 어떻게 수용할지 궁금했다.
그런데 막상 안으로 들어와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게다가 이 지형은 마나석 광산을 중심으로 반대편에도 있었다.
당연히 밖에서 보기보다 훨씬 많은 병력을 주둔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