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3
13화
[마루: 이건 기회다. 해모수! 빨리 쫓아가서 저놈을 죽여!] [그렌: 마루,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건 너무 위험하잖아.] [마루: 칼 맞아서 다 죽어가는 놈을 두려워할 게 뭐가 있어요? 해안에 남아있는 조각배를 봐요. 동료를 기다리는 왜구가 딱 둘 남았죠? 저들이 지금 누굴 기다리고 있겠어요?] [해모수: 마루 형, 정말 마을에 왜구가 한 놈도 안 보여요?] [마루: 이미 약탈을 끝내고 배를 타러 간 거야. 남아있는 놈은 저 칼 맞은 놈과 조각배에서 동료를 기다리는 두 놈뿐이야. 모험을 하려면 지금같이 완벽한 상황에서 해야지. 앞으로 이런 절호의 기회가 언제 또 찾아올지 몰라.] [그렌: 음, 잘하면 잡을 수도 있겠군.]해모수는 그렌까지 동조를 하고 나서자 결국 마루의 말대로 한번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언덕을 돌아 내려갔다.
[마루: 먼저 아까 저 왜구가 나온 집으로 들어가 봐. 뭔가 무기 될 만한 것이 있을지도 몰라.] [해모수: 아! 알겠어요.]해모수는 마루의 말을 듣자 자신의 돌대가리를 한 대 치고 싶었다.
아무리 중상을 입은 왜구라 해도 무기도 없이 상대를 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대문으로 들어가자 피비린내가 확 풍겼다.
마당에 목이 잘린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발밑에 있는 머리통은 너무도 원통한지 눈을 부릅뜬 채 죽어있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피 묻은 창(槍) 한 자루가 들려있었다.
해모수는 옳다구나 하고 일단 무기부터 챙기기로 했다.
죽은 사람의 손목을 발로 꾹 누르고 두 손으로 창 자루를 잡아챘다.
드디어 난생처음으로 제대로 된 창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렌: 창 자루가 다 썩어가는 것을 보니 오래 쓰긴 글렀네.] [마루: 창촉을 보세요. 그래도 쇠로 되어있어요. 창 자루만 바꿔주면 계속 요긴하게 쓸 수 있을지도 몰라요.]해모수는 그렌과 마루의 말을 듣고는 자신의 손에 들린 창을 살펴봤다.
끝이 뾰족한 유엽형(柳葉形)이다.
가장 흔하고 기본이 되는 평범한 창에 불과했다.
그래도 무기는 무기라서 빈손보단 백배 나았다.
아니 무기를 들고 있자… 당장이라도 왜구 몇 놈은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루: 일단 방 안을 한번 훑어보자!] [해모수: 네?] [마루: 너 계속 그렇게 다 낡아빠진 옷 입고 다닐 거야? 짚신도 다 떨어졌잖아. 죽은 남자를 보니까 얼추 네 몸과 비슷하겠다.]남의 집에 들어가서 몰래 물건을 훔쳐가는 것을 절도라고 한다.
마루는 지금 자신에게 바로 그 도둑질을 하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하지만 왜구에 의해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다 죽었다.
주인이 없으니 어쩌면 이것은 도둑질이 아닐지도 모른다.
해모수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결국 입술을 꼭 깨물고 말았다.
일단 마음을 굳히자,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집 안을 빠르게 돌며 살펴봤다.
이미 왜구들이 난입해 사람들을 죽이고 식량과 금은보화를 다 챙겨간 상태였다.
대문은 물론이고 온 방의 문과 창고가 전부 활짝 열려있었다.
[마루: 안방에 윗도리와 바지가 널려있더라. 모퉁이에는 긴 옷도 하나 걸려있어.] [그렌: 옆방에 하얀 양말이 있는 것을 봤어.] [마루: 버선을 말하는 건가요?] [해모수: 알겠어요.]해모수는 안방으로 들어가 죽은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단의(短衣)와 편복(便服), 장포(長袍)를 집었다.
옆방으로 가선 버선같이 생긴 족의(足衣)와 광목천을 넉넉히 챙겼다.
말(襪)·족건(足件)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버선으로 부르기로 했다.
[마루: 죽은 남자가 신고 있는 가죽신도 벗겨!] [해모수: 네?] [마루: 왜 놀라고 있어? 계속 그렇게 다 떨어진 짚신 신고 다닐 거야?]해모수는 마루가 소리치자 반사적으로 죽은 남자의 시체를 향해 걸어갔다.
목이 잘린 끔찍한 모습의 시체.
그 앞에 쪼그리고 앉자 해모수는 괜히 심장이 쫄깃해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가죽신을 벗겨냈다.
발 옆에 떨어져 있는 잘린 머리통이 마치 자신을 노려보며 뭐라고 욕을 하는 것 같았다.
[마루: 부엌으로 가서 옷 갈아입고, 걸치고 있는 옷과 짚신은 아궁이 속에 넣고 다 태워버려.] [해모수: 네.]해모수는 마루의 말대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다 낡아빠진 옷과 짚신을 벗어 활활 타고 있는 아궁이 속에 던져 넣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화마(火魔)는 그의 옷과 짚신을 받아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춤을 춰댔다.
홀딱 벗은 몸 위로 안방에서 가져온 옷을 차려입고 장포까지 걸쳤다.
광목으로 만든 하얀 버선을 신고 다시 가죽신을 신자 정말 몸이 날아갈 것 같고 발이 아주 편해졌다.
[마루: 허! 이 자식 대물(大物)이네.] [그렌: 작진 않군.]해모수는 둘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보단 솥단지 안에서 살살 피어 나오는 고소한 향기!
밥 냄새가 그의 본능을 거칠게 자극해 댔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열어보자… 역시 하얀 쌀밥이 잘 쪄져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꿀꺽!”
해모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마루: 배고픈 거 잘 알아. 하지만 지금은 밥 먹을 때가 아니야. 빨리 나가서 왜구를 먼저 잡아 죽여야 해.] [그렌: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거야. 지금은 마루의 말대로 해.] [해모수: 어휴, 알겠어요.]해모수는 꼬르륵거리는 자신의 배를 잡고 잠시 모른 척하기로 했다.
대신 피 묻은 창을 단단히 잡고는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골목을 나와 오른쪽으로 꺾자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왜구 한 놈의 뒷모습이 보였다.
[마루: 쫓아오기 쉽게 땅바닥에 줄줄 피를 흘려놨네.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 말고 창으로 등이나 뒷목을 찔러 죽여!] [그렌: 등은 모르지만 뒷목을 찌르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마루: 해모수가 침착하게 움직이면 충분히 가능해요. 너무 긴장하지 말고 차분히 한 방에 끝내자.] [해모수: 네, 그렇게 해볼게요.]뿔난 망아지처럼 뛰어대는 자신의 심장 소리!
해모수는 마치 가슴 안에서 천둥이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마루와 그렌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용기를 내어 왜구를 향해 다가갔다.
막상 왜구의 뒤에 도착하자, 해모수는 어린아이같이 작고 왜소한 왜구의 체격에 맥이 탁 풀렸다.
[마루: 뭐 해? 빨리 찔러!]마루가 소리치자 해모수는 두 손으로 창 자루를 단단히 잡고 왜구의 등을 힘껏 찔렀다.
“크악!”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왜구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마루: 아직 안 죽었어. 한 번 더!]마루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해모수는 창 자루를 힘껏 옆으로 비틀며 위로 쭉 뽑았다.
피가 솟구치자 일단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이번에는 옆으로 돌아가 왜구의 뒷목에 창촉을 대고는 깊숙이 푹 쑤셔 눌렀다.
“컥!”
치명상을 입은 왜구는 단말마를 내질렀다.
바르르 몸을 한 번 떨더니 이내 개구리처럼 대자로 몸을 쫙 편 채 죽어버렸다.
[마루: 잘했다.] [그렌: 훌륭하다.]마루와 그렌은 해모수가 왜구를 깔끔하게 죽이자 아낌없이 칭찬했다.
왜구에게 목이 잘려 죽은 남자가 상대의 몸에 미리 구멍을 내어놓지 않았다면… 아마 이렇게 간단히 해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마루와 그렌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모수의 사기를 위해 굳이 그걸 들춰내지 않았다.
땡땡땡!
그때 어디선가 종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루: 기다리던 왜구들이 동료를 부르는 모양이다. 일단 저 칼과 자루를 들고 후퇴하자.] [해모수: 네.]목표로 했던 왜구를 죽이고 나자 마루는 일단 후퇴를 권고했다.
그렌도 그의 의견에 동의를 하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모수는 아까 마을을 살펴봤던 언덕 위로 올라왔다.
“허억허억!”
그리 먼 거리도 아니건만 전력 질주를 한 탓인지 조금 숨이 찼다.
[그렌: 저놈들이 아직도 안 가고 버티고 있네?] [마루: 그러게요.]그렌과 마루가 해변에서 동료를 기다리고 있는 왜구를 주시했다.
그사이 해모수는 두꺼운 천으로 만들어진 자루를 열어봤다.
안에는 멜론만 한 소금 덩어리가 들어있었다.
해모수는 미소를 지으며 자루를 잘 묶었다.
[마루: 소금이면 나쁘지 않네.] [그렌: 당장 먹을 수 있는 양식이나 금은보화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해모수는 그렌의 말에 소금으로도 얼마든지 식량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마루: 해모수, 아무래도 한 번 더 아래로 내려가야겠다.] [해모수: 네?] [마루: 저 두 놈이 오기 전에 돌아가서 죽은 왜구의 목을 잘라! 수급(首級)을 챙겨야 해!] [해모수: 왜구의 머리를 가져오라고요?] [마루: 그래. 그걸 소금에 푹 절여놓았다가 나중에 요긴하게 써먹자.] [해모수: 왜구의 머리를 어디에다 써요?] [마루: 얘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네. 관(官)에서 왜구의 머리를 얼마나 비싸게 쳐주는지 몰랐어?] [해모수: 왜구의 머리가 돈이 된다는 거예요?] [마루: 당연히 돈이 되지. 왜구의 수급 하나에 얼마나 쳐줄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적지 않은 포상금이 걸려있을 거야. 하지만 잘하면 포상금보다 더한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몰라.] [해모수: 도대체 어디다 쓸 생각이에요?] [마루: 그건 일단 왜구의 수급을 확보한 후에 천천히 생각해 보자.] [해모수: 어휴! 알겠어요.]해모수는 마루의 말에 일단 소금 자루를 바위틈에다 잘 숨겨놓았다.
그러고는 왼손엔 검을, 오른손에는 창을 들고 내려갔다.
[마루: 칼이 꼭 샴쉬르같이 생겼네.] [해모수: 샴쉬르가 뭐예요?] [마루: 네가 들고 있는 초승달처럼 생긴 칼의 원래 이름이야. 페르시아산(産)인데 베는 데 특화된 검이지.] [해모수: 그렇구나.] [마루: 아까 들어갔던 집으로 먼저 들어가자. 창고로 가서 소금 자루와 비슷한 포대를 몇 개 챙겨.] [해모수: 거기에다 머리통을 담으라는 말이죠?] [마루: 응, 그래.]해모수는 마루의 말대로 아까 옷과 가죽신을 구한 집으로 들어갔다.
창고를 찾아서 안으로 들어가자 비슷하게 생긴 자루가 몇 개 더 보였다.
[해모수: 어? 쌀이다! 콩도 있네. 어라 소금도 있잖아.] [그렌: 아까 그 왜구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이것들을 그냥 놔두고 갔구나.] [마루: 잘됐다. 소금 자루를 들고 가자.] [해모수: 네.]해모수는 소금 자루 하나만 집어 들고는 골목길을 빠르게 달려갔다.
아까 자신의 창에 찔려 죽은 왜구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시체 앞에 서자 확실히 이들을 왜 왜구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마루: 잘 조준해서 단번에 목을 잘라야 해. 안 그러면 온몸에 피를 다 묻혀야 할 거야.] [해모수: 알겠어요.]해모수는 대답을 하자마자 두 손으로 칼을 잡고 하늘로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곤 장작을 패듯 힘껏 아래로 내리쳤다.
휙, 쩍!
놀랍게도 해모수는 단번에 왜구의 목을 댕강 잘라버렸다.
그 모습에 해모수 본인이 더 놀라서 칼을 땅에 떨어뜨렸다.
쨍그랑!
[마루: 잘했다.] [그렌: 대단하다. 한 번에 잘라버리다니. 그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하던데.] [마루: 이제 머리통 세워놓고 피 빠질 때까지 잠시만 기다리자.] [해모수: 휴우, 얼마나 기다려야 돼요?] [마루: 글쎄. 한 몇 분만 기다리면 대충 피가 빠지지 않을까?] [그렌: 그것보다 시체의 옷을 벗겨서 머리통을 감싸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마루: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러네요.] [해모수: 아휴, 이제는 이놈의 옷까지 벗겨야 되네.]해모수는 투덜대면서도 죽은 왜구의 시체가 입은 옷을 칼로 잘라 벗겨냈다.
[마루: 이상하다.] [해모수: 네? 뭐가요?] [마루: 아무리 봐도 이상해. 아까 왜구들 보니까 장수 빼고는 전부 아랫도리를 입고 있지 않았거든. 그런데 이놈은 비록 짧기는 하지만 제법 제대로 된 하의를 입고 있어. 훈도시를 입은 것도 아니고.]해모수는 왜구의 머리통을 죽은 왜구의 시체에서 자른 옷으로 감쌌다.
그러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해모수: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요?] [마루: 벗겨봐야지.] [해모수: 네? 아이 참, 냄새나는 저놈의 바지를 나보고 벗기란 말이에요?] [마루: 그래. 빨리 내 말대로 해봐.] [해모수: 이거 참……. 진짜 미치겠네.]해모수는 구시렁대면서도 마루의 말대로 죽은 왜구의 반바지를 벗겨냈다.
자신이 죽여놓고도 죽은 왜구의 살이 손에 닿을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반바지를 벗겨내자 사타구니 사이에 번데기 하나가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마루: 반바지 안에 뭐가 있나 잘 좀 뒤져봐.] [해모수: 뒤지고 있어요. 에이 더러워. 어! 안에 뭐가 있어요.] [마루: 하하하, 내가 그럴 줄 알았지.] [그렌: 정말? 뭐가 들어있어?] [해모수: 잠깐만요.]해모수는 왜구의 반바지를 두 손으로 꼬물꼬물 주물럭거리다 뒤집었다.
안쪽에 안감이 있는 것이 보였다.
손으로 거침없이 잡아 뜯자 누런 금가락지가 우수수 땅에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