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그럼 어떻게 하려고?”
“일단 오늘까지만 나가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안 된다. 무조건 나가지 마. 어젯밤도 그렇고 오늘 아침에도 좀비가 돌아다니는 거 봤지?”
“예, 알겠습니다. 집에 있을게요.”
좀비에게 걸려 죽는 것보단 차라리 잘리는 것이 낫다.
태인은 두말하지 않고 아버지 이대근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이대근이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재용이는?”
“저도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서현이는?”
“아빠, 나 점심에 잠깐 친구 만나고 오면 안 될까요? 꼭 받아야 할 게 있단 말이에요.”
“안 돼!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너도 무조건 집에 있어. 그동안은 오냐오냐하면서 봐줬다만 이번만큼은 꼭 내 말대로 해라. 만일 아빠 말 어기고 몰래 나가면 회초리 맞을 줄 알아.”
“네? 회초리요? 내가 무슨 어린애예요? 이 나이에 회초리를 맞게…….”
“그럼 회초리 들지 않도록 하면 될 거 아냐?”
이대근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호통을 쳤다.
놀란 윤아는 금세 눈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한 번도 이런 호통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상냥하고 자신을 많이 예뻐해 주시는 분이다.
윤아는 서러운 마음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 없이 울었다.
이대근은 윤아가 우는 모습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하지만 결코 단호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여보! 뉴스 좀 보게 TV를 틀어줘요!”
“그러지.”
김영희의 말에 이대근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재용이 TV 리모컨을 잡았다.
TV가 켜지고 뉴스가 방영됐다.
다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눈과 귀가 온통 TV에서 나오는 뉴스에 집중된 탓이다.
―정체불명의 검은 괴인에 대한 루머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각국의 정부는 검은 피부를 가진 괴인에 대한 존재 여부를 확인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을 통해 운석을 타고 왔다는 검은 괴인의 사진과 동영상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마루는 뉴스에서 보여주는 검은 괴인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눈을 빛냈다.
확실히 자신이 처치한 마인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아메리카 대륙의 각국은 혜성의 지구 충돌이라는 대재앙의 공포에서 벗어나 축하 파티를 열기도 전에, 새로운 공포에 빠져들었습니다. 파이럿 혜성이 원인 모를 이유로 폭발한 것은 기뻐할 일입니다. 하지만 혜성의 파편이 별똥별이 되어 대도시에 떨어지면서 큰 피해가 나자 각국의 정부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구가 멸망에서 간신히 벗어나자 이제는 종말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특히 운석 안에서 나온다는 검은 괴인이 사람을 물고 할퀴며 좀비를 양산하고 있다는 소문이 급속히 퍼지고 있습니다. 각국의 정부는 검은 괴인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을 해주지 않고 루머 확산에 대해서는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검은 괴인의 존재에 대해 확인해 주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보를 공개하는 순간, 대중에게 공포가 확산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원래 공포가 또 공포를 낳는다.
두려움이 확대 재생산되면 패닉이 일어나는 것이다.
혼란이 심화되면 치안이 마비되고 무정부 상태로 변질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며 누리고 있는 현재의 이 평화로운 삶이 깨진다.
어쩌면 인류는 중세의 비참한 생활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마루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TV에서는 더욱 자극적인 해외 뉴스가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도쿄는 지금 좀비의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시부야 요요기 공원에 떨어진 별똥별로 인해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어젯밤의 충격에 이어 오늘 새벽은 인근 병원에서 좀비가 무차별적으로 발생했다는 신고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뉴스 진행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면이 바뀌었다.
―요요기 공원 북쪽에 위치한 도쿄 대학 부속 도쿄 병원은 현재 경시청(警視庁) 특수 급습 부대(SAT)가 출동해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방송 헬기를 연결해서 현장의 상황을 생방송으로 보도해 드리겠습니다.
하늘에서 방송국 헬기가 계속 원을 그리며 날았다.
45도 각도 아래의 도쿄 병원을 촬영하고 있는 것이다.
수도 고속도로 4호 신주쿠선이 경찰에 의해 원천 봉쇄됐다.
인근 도로에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었다.
경시청 특수 급습 부대 요원들이 헬기에서 옥상으로 레펠 강하를 시작했다.
특형 경비 차(PV―2)와 총기 대책 경비 차가 빠르게 달려가 병원 정문을 틀어막았다.
특형 경비 차와 총기 대책 경비 차의 문이 일제히 열렸다.
수십 명의 특수 급습 부대 요원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더니 빠르게 병원 안으로 진입했다.
―타타탕, 타타타타탕, 타타타타탕…….
TV에서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마루와 가족들은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뉴스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옥상 문을 따고 병원 안으로 진입하던 경시청 특수 급습 부대 요원들!
갑자기 허겁지겁 밖으로 도망쳐 나오는 게 보였다.
그들의 뒤로 온몸이 붉은 핏자국으로 가득 찬 수백 명의 인파가 마치 물결치듯 쏟아져 나왔다.
김영희 여사와 윤아가 동시에 비명을 터트렸다.
“악!”
“꺄악!”
그들은 순식간에 특수 급습 부대 요원들을 급습했다.
요원 한 명당 수십 명씩 떼로 달려들었다.
이빨로 물고 손톱으로 살을 찢고 마구 살점을 뜯어 먹었다.
그 소름 끼치는 장면이 여과 없이 전 세계에 생방송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마루는 어머니와 윤아가 비명을 지르는 게 충분히 이해됐다.
당장 자신도 먹은 밥이 도로 넘어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경시청 특수 급습 부대 요원들을 물어뜯고 있는 저 사람들은 운석에서 나왔다는 검은 괴인에 의해 모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받고 있습니다. 좀비 관련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서는 이들을 좀비 숙주에 감염된 좀비로 보고 반드시 목을 자르거나 뇌를 파괴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놀란 것은 뉴스 진행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떨리는 목소리로 현장의 상황을 최대한 자세히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했다.
TV 화면을 통해 전해지는 도쿄 병원의 사태는 점점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도쿄 병원 정문으로 진입했던 경시청 특수 급습 부대 수십 명의 요원도 일제히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그들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수류탄을 까더니 거의 동시에 건물 안으로 집어 던졌다.
―꽝, 꽈광, 꽈꽝, 꽝꽝…….
병원 입구와 각 층의 유리창이 붉은 화염과 함께 일제히 터져나갔다.
검은 연기와 함께 검붉은 피와 살 조각이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특수 급습 부대 요원들은 특형 경비 차와 총기 대책 경비 차를 내버려 둔 채 경찰들이 세워놓은 바리케이드를 향해 미친 듯이 도망쳤다.
그들의 뒤로 수십 명의 피에 전 사람들이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모습 그대로 뒤쫓아 오고 있었다.
방송국 헬기에서 급히 줌인을 해서 이들의 모습을 화면 한가득 담았다.
붉은 피에 전 사람들, 아니 좀비들은 팔다리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있었다.
가슴에는 구멍이 뚫렸고 배에는 내장이 줄줄 새어 나왔다.
하지만 이들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잘도 걸어 다녔다.
이 끔찍한 모습에 뉴스 진행자도 급히 헛바람을 들이켜고 말았다.
“좀비다!”
“진짜 좀비 맞네.”
“우와, 대박!”
태인과 재용이 동시에 소리쳤다.
마루는 대박이라고 외치는 윤아를 쳐다봤다.
절로 고개가 흔들렸다.
자신의 막내 여동생은 누가 뭐라고 해도 4차원이 분명했다.
―타타탕, 타타타탕, 타타타타탕…….
―부아악, 부아아악, 부아아아악…….
―꽝, 꽝꽝, 꽝꽝꽝, 꽈과광…….
특수 급습 부대 요원들이 간신히 바리케이드를 넘어갔다.
그러자 곧 소총과 기관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유탄 발사기도 이에 질세라 연신 유탄을 날려댔다.
총성과 폭음이 뒤범벅되며 귀청을 괴롭혔다.
TV를 보고 있는 이들은 이제 곧 좀비들이 몰살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옥상으로 올라간 수백의 좀비들이 일제히 옥상 위에서 쏟아지듯 뛰어내렸다.
상황은 또 다른 파국으로 치달았다.
퍽, 퍼퍼퍽, 퍽퍽퍽…….
마치 수박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TV를 통해 생생히 전달됐다.
수십 구의 좀비들이 옥상에서 뛰어내리다 머리가 땅에 부딪쳐 박살이 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동료 좀비들의 희생(?)으로 땅바닥에 좀비 사체가 무더기를 이루며 차곡차곡 위로 쌓여 올라가자, 떨어져 내리는 좀비들의 모습이 점차 멀쩡한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옥상에서 뛰어내린 좀비들이 멀쩡한 모습을 하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타타탕, 타타타탕, 타타타타탕…….
―부아악, 부아아악, 부아아아악…….
―꽝, 꽝꽝, 꽝꽝꽝, 꽈과광…….
또다시 소총과 기관총이 맹렬히 불을 뿜었다.
유탄 발사기도 쉴 새 없이 유탄을 쏟아내서 좀비들을 박살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비들은 조금도 겁을 먹지 않았다.
꾸준하고 끈질기게 사람들을 향해 다가왔다.
이 살벌한 모습에 기절이라도 했는지 뉴스 진행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여자로 바뀌어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 지금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도쿄 시부야에 있는 도쿄 병원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중계해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저희 보도국으로 전 세계에서 이와 비슷한 뉴스가 속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볼 때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다는 좀비 괴담은 단순한 루머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뉴스 진행자로 보이는 당찬 여자의 목소리가 TV 스피커를 울렸다.
마루는 이 여자 방송인이 참 대찬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현재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즉각 대한민국 영토에 떨어진 운석 주변으로 군대를 보내고 이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미연에 방지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방송에서 직접적으로 정부에 압박을 가하다니…….
생각보다 쉽게 좀비 사태가 해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의 싹이 돋아났다.
팟!
그때 갑자기 TV 화면이 깜빡거리더니 ‘TV 화면 조정’ 영상으로 바뀌었다.
“어? TV가 왜 저래?”
“채널 좀 바꿔봐.”
재용이 리모컨을 들고 급히 채널을 바꿨다.
하지만 모든 채널이 하나같이 ‘TV 화면 조정’ 영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무래도 정부가 직접 개입을 시작한 것 같았다.
TV가 나오지 않자 그들은 일제히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고 DMB를 틀었다.
하지만 DMB도 똑같이 ‘TV 화면 조정’ 영상만 내보내고 있었다.
“정부가 개입한 것 맞죠?”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이미 저걸 본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닐 텐데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저러지?”
마루는 정부의 움직임이 무척 못마땅했다.
이대근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인터넷은 되네요.”
“우와, 인터넷, SNS 모두 난리가 났어요.”
재용과 윤아의 말을 듣고 인터넷을 살펴봤다.
모든 포털 사이트와 SNS가 좀비에 대한 얘기로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각종 카페와 블로그는 전 세계에 방송된 좀비 관련 동영상을 모아 올리기 시작했다.
SNS를 통해 주소가 빠르게 복사되어 미친 듯이 퍼져나갔다.
이 정도면 정부가 개입해도 쉽게 막을 수 없을 듯했다.
“혹시 인터넷도 끊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설마 인터넷까지 끊겠어?”
“그건 모르는 거야.”
“만약 인터넷과 SNS를 끊는다면 정부는 엄청난 후폭풍을 맞게 될 거야.”
태인이 잔뜩 인상을 쓰며 말했다.
재용은 동의할 수 없다는 듯 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김영희 여사가 째려보자 그들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둘은 뉴스를 보느라 이미 차가워진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편치만은 않았던 아점을 끝내고 과일을 나눠 먹으며 그들은 앞으로의 일들을 의논했다.
15분쯤 지나자 TV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급히 뉴스 채널을 켜자 처음 보는 뉴스 진행자가 앉아있었다.
“저 사람 누구지?”
“글쎄, 처음 보는 사람이네.”
“그러게.”
뉴스는 계속 진행됐다.
그러나 전과는 달리 스포츠와 오늘의 날씨에 대해서만 계속해서 떠들어 댔다.
다른 채널을 틀어보니 상황은 다 거기에서 거기였다.
인터넷으로 시선을 돌려 살펴봤다.
좀비 관련 동영상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확실히 각국의 정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정황이 그대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