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하지만 이에 맞서 전 세계의 해커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국 정부의 홈페이지가 해킹을 당해 좀비 관련 동영상을 틀어주고 있었다.
대형 포털 사이트에도 해커들이 엄중히 경고를 하는 문구가 한쪽 면에 가득했다.
좀비 관련 동영상 주소가 이메일 형태로 무차별 살포되었다.
세계 각국의 정부가 좀비에 대한 정보를 은폐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소식이 해커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도쿄, 런던, 파리, 상파울로, 모스크바, 카이로, 뉴델리, 충칭, 상하이, 시드니……. 좀비가 나타난 곳이 정말 많네. 좀비 관련 동영상도 이미 수천 개가 넘어.”
윤아의 말을 들으며 마루는 재용에게 물었다.
“재용아, 우리나라에 별똥별이 몇 개나 떨어졌지?”
“공식적으로 서울, 과천, 인천, 수원, 성남, 고양, 부산, 울산, 창원, 대구, 광주 이렇게 열두 개가 떨어졌어.”
“파이럿 혜성의 파편은 다 떨어진 거야?”
“아직도 대기권을 돌고 있는 파이럿 혜성의 파편이 수천 개가 넘는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도 모자랄 판에 저렇게 숨기려고만 드니…….”
“그러게 말이야.”
마루는 서울이 포함된 경기도 지도를 꺼내 붉은 사인펜으로 운석이 떨어진 곳에 삼각형으로 표시를 하고 동그랗게 서로를 이어나갔다.
과천을 기준으로 열두 시 방향에 서울(도봉산), 열한 시에 고양, 아홉 시에 인천, 여섯 시에 수원, 세 시에 성남이 있었다.
이건 마치 과천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포위된 형국이었다.
[해모수: 어째 이거 그림이 별로 안 좋은데요?] [그렌: 과천을 포위한 형태라니……. 정말 그림이 영 아니다.] [마루: 우연이겠죠? 설마 누가 노리고 이런 짓을 벌인 것은 아니겠죠?]해모수가 마루의 희망을 무참히 짓밟았다.
[해모수: 우연치고는 참 지랄맞은 모습이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강원도에 거점을 만드는 건데…….] [그렌: 거점을 만드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강원도에 거점을 만들려고 생각했다면 지금처럼 준비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어.] [마루: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렌: 문제는 수도권에 사는 많은 인구가 좀비로 변했을 때 일어날 좀비 웨이브야. 이걸 도대체 무슨 수로 막지?]그렌의 말 그대로 좀비 웨이브가 일어난다면 정말 막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해모수: 좀비 웨이브가 왜 꼭 마루 형이 있는 과천으로만 온다고 생각하세요? 내 생각에는 오히려 사방으로 퍼져나갈 것 같은데요.] [그렌: 해모수 말에도 일리가 있어. 하지만 가정은 언제나 최악을 전제해야 해.] [해모수: 최악의 상태라면 그냥 다 죽는 건데 그딴 가정은 뭐 하러 해요?] [그렌: 뭐라고?] [마루: 헐! 그 말도 일리가 있네.]마루는 해모수의 말에 오히려 힘이 났다.
그렇다. 최악의 가정을 해봐야 뭐 하겠는가?
죽기밖에 더 할까!
그렌의 신중함도 필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해모수의 저런 대범함이 더 도움이 됐다.
확실히 지금 이 순간, 마루에게 필요한 것은 그렌의 신중함보다는 해모수의 대범함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마루는 진동을 하고 있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까톡을 확인했다.
아침 일찍 집으로 돌아갔던 서진아와 김민정이 거의 동시에 메시지를 보내왔다.
마루는 즉시 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루 오빠, 뉴스 봤어요?
“응, 봤어.”
―오빠 말대로 정말 세상에 좀비가 창궐했어요. 엄마와 아빠도 어젯밤 좀비를 직접 보시곤 깜짝 놀라셨어요.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대?”
―당분간 문일 마트 닫고 집에만 있으시겠대요.
“잘됐네. 민정이는?”
―집에 있어야지 저라고 뭐 뾰족한 수 있겠어요?
“그럼 나하고 같이 있자.”
―어떻게요? 제가 오빠 집으로 갈까요?
“아니. 그건 위험하니까 내가 민정이네 집으로 갈게.”
―알겠어요. 기다릴게요. 조심해서 오세요.
마루는 자신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의 집과 민정이 살고 있는 문일 마트는 20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걸어가도 몇 분 걸리지 않을 짧은 거리다.
픽업트럭을 타고 간다면 1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까톡을 닫으려는 순간!
서진아가 보낸 까톡이 눈에 밟혔다.
마루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망설였다.
[해모수: 마루 형, 뭘 망설이고 있어요? 굴러 들어오는 호박 발로 차지 말고 날아가는 새 붙잡지 말라고 했잖아요.] [마루: 야! 너 도대체 그딴 소리는 어디서 들었어?] [해모수: 드라마에서 봤어요. 형 좋다고 저렇게 들이대는 미녀를 모른 척하는 것은 영웅이 취할 태도가 아니에요.] [마루: 그건 또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해모수: 영웅은 삼처사첩(三妻四妾)을 마다하지 않는 법이라고요.] [마루: 허어, 갈수록 태산이네.]마루는 해모수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렌의 말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렌: 마루야, 김민정이 너와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굳이 서진아를 밀어낼 필요가 있을까?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그냥 좋은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면 되잖아.] [마루: 예에? 아니 그렌 형까지 도대체 왜 이러세요?] [해모수: 내 눈에는 김민정보다 서진아가 형한테 훨씬 더 잘 어울려요.] [마루: 그게 무슨 소리야? 해모수, 너 민정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딴 소리를 하는 거야?]해모수는 고개를 살짝 흔들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해모수: 나는 누가 됐든 형이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형이 살고 있는 나라가 일부일처제라고 해서 꼭 한 여자만 선택하는 거라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좀비가 창궐하면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고 법과 규칙도 무너진 세상이 올 거예요. 그럼 강한 남자가 많은 미녀를 얻게 되겠죠. 당장 김민정과 결혼한 것도 아닌데 서진아가 보내는 까톡까지 무시하는 건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에요.]마루는 해모수의 말에 입을 딱 벌렸다.
언제부터 해모수가 이렇게 말을 잘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렌: 나도 해모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 [마루: 으음. 둘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면…….]마루는 일단 해모수와 그렌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했다.
서진아와 사귈 생각은 없었고 그저 까톡을 무시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는 서진아가 보낸 까톡을 확인하고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그의 답장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지 바로 전화가 왔다.
―오빠! 저 진아예요.
“집에는 잘 들어갔어?”
―네, 덕분에 무사히 잘 도착했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야?”
―할머니가 뉴스를 보시더니 많이 불안해하셔요.
“그래?”
―혹시 괜찮으면 저희가 그쪽으로 가도 될까요?
“왜? 이리로 오고 싶다고 하셔?”
―예, 오빠네 집에 남자도 많고 해서 든든하게 느껴지신 모양이에요. 친척집으로 갈까도 생각해 봤지만 제가 불편할까 봐 안 가신다고 하네요.
마루는 잠시 고민해 봤다.
아예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서진아나 할머니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그의 마음도 불편해질 것이 확실했다.
‘모르는 사람도 구해주는 판에 진아와 그녀의 할머니라면 당연히 도와줘야겠지.’
마루는 마음속으로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뒷집 1층에 방 많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와서 지내도록 해.”
―정말요?
“응, 정말이야.”
―알겠어요. 그럼 할머니 모시고 바로 갈게요.
“여길 어떻게 오려고 그래? 설마 걸어오겠다는 거야?”
―걸어가면 위험할까요?
“당연히 위험하지. 그냥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조금 있다가 데리러 갈게.”
―알겠어요. 오빠! 고마워요.
“천만에.”
마루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왠지 두 사람을 살린 것만 같은 느낌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그는 1차 방벽을 나서기 전에 자신의 무장을 확인했다.
방검복에 전투 조끼를 걸치고 전투화를 신었다.
왼쪽 허리에는 별운검을 차고 오른쪽에는 동개를 걸었다.
등에는 개량궁을 메고 손에는 창을 쥐었다.
인벤토리에 넣어둔 권총까지 생각하자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루는 결코 방심하지 않고 실드부터 활성화시켰다.
“실드!”
실드 마법진이 새겨진 복부에 손을 대고 작게 시동어를 외쳤다.
마나 집적진에 모인 마나가 마루의 전신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연한 노란 빛이 호신강기처럼 일어나며 그의 온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저벅, 저벅, 저벅…….
모든 준비를 마친 마루는 거침없이 북쪽을 향해 걸어갔다.
다다닥, 휘익, 탁!
굳이 차단 문을 열지 않고 그대로 달려가다 철제 방벽을 훌쩍 뛰어넘었다.
엑스트라 스탯을 합쳐 20을 넘긴 민첩은 이런 묘기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그는 길 한가운데로 자신 있게 걸어갔다.
창문 틈으로 자신을 훔쳐보는 동네 주민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 중에는 분명한 적의도 느껴졌다.
굳이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지금 아쉬운 사람은 그들이지 마루가 아니었다.
이백여 미터를 걸어갔지만 좀비는 보이지 않았다.
골목을 돌아 문일 마트 앞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오빠! 지금 나갈게요.
민정의 문자를 확인하고 그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마루는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의 집을 살펴봤다.
문일 마트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방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다.
대문은 철문으로 튼튼했고 담도 무척 높았다.
셔터로 굳게 닫힌 마트의 입구도 쉽게 뚫고 들어가긴 힘들어 보였다.
이 정도면 일단 안심이다.
“오빠!”
“민정아!”
대문이 열리고 긴 생머리를 질끈 동여맨 민정이 밖으로 나왔다.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를 입고 분홍 운동화를 신었다.
평범한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과 매력은 조금도 반감되지 않았다.
마루에게 바짝 다가온 민정이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슬쩍 좌우로 돌려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마루는 그녀의 입술에 살짝 입맞춤을 했다.
쪽!
“어! 이게 뭐예요?”
“아침 인사야.”
“허락도 받지 않고 이렇게 해도 돼요?”
장난기 가득한 그녀의 눈빛이 아침 이슬처럼 반짝였다.
“헉, 그거 허락받아야 되는 거였어?”
“당연하죠. 입술도 내 몸의 일부인데 당연히 허락을 받아야죠.”
“그렇구나. 난 몰랐네. 앞으로 꼭 허락받고 쓸게.”
쪽!
하지만 마루는 이번에도 허락받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맞춤을 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길고 더 깊었다.
민정은 아무 말 없이 마루의 눈을 쳐다봤다.
어쩐지 그녀의 눈빛이 조금은 더 뜨거워진 것 같았다.
그는 민정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이 절로 활짝 펴졌다.
자연스럽게 둘은 손깍지를 끼었다.
짧은 순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의 입가에는 가진 자의 배부른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걸어갈 거예요?”
“아니. 혹시 모르니 차 타고 가자.”
민정은 집 앞에 세워둔 빨간색 미니 쿠퍼를 향해 차 키를 들었다.
삐빅!
문이 열리자 마루는 보조석에 앉았다.
그녀는 운전석에 탄 후 시동을 걸었다.
부릉부릉, 부우웅!
시원하게 엔진이 걸리자 민정은 빠른 속도로 차를 몰았다.
1차 방벽이 나타나자 마루는 차에서 내려 철제 방벽을 단숨에 뛰어넘어 갔다.
안에서 자물쇠를 풀고 차단 문을 열었다.
그녀가 천천히 차를 몰아 1차 방벽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곧바로 차단 문을 닫고 자물쇠를 걸어 잠갔다.
한쪽 골목에 주차한 민정이 밖으로 나오자 마루가 다가섰다.
“나 이사했어.”
“어디로요?”
“뒷집 2층으로.”
“그래요?”
“올라가서 시원한 냉면 먹을래?”
“좋아요.”
민정은 아무런 저항 없이 마루의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그의 손을 잡고 뒷집 2층으로 올라간 민정은 소파에 앉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마루의 방부터 구경했다.
이미 청소를 해놓은 상태라 민정이 보기에도 깨끗하고 좋았다.
“오빠, 여기 참 깔끔하고 좋네요. 혹시 매일 청소하세요?”
“내가 집을 잘 어지럽히지 않는 편이라서 그런가 봐. 물론 가끔 청소도 하지.”
“그러시구나.”
그녀는 만족한 대답이라도 나왔는지 얼굴이 환해졌다.
“냉면 해줄까?”
“아뇨.”
“그럼 뭐 해줄까? 라면?”
“아니요. 이거 주세요.”
“뭐?”
민정은 손가락으로 마루의 입술을 가리켰다.
그러면서 그의 가슴을 확 밀어버렸다.
마루는 중심을 잃고 침대 위로 쓰러졌다.
그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그녀는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마루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몸 위로 올라탄 민정은 마루의 입술에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