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정신없이 쏟아지는 그녀의 애정 공세!
마루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부드러운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의 가슴이 눌리며 뭉클한 감촉이 얇은 티셔츠를 통해 생생하게 느껴졌다.
둘은 정신없이 서로의 입술을 탐닉했다.
그들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직 둘만이 존재하는 이 공간을 마음껏 만끽했다.
피 끓는 젊은 청춘 남녀는 뜨겁게 불타올랐다.
이대로 서로를 활활 태워버리기라도 할 듯 거침없는 기세로 서로의 몸 여기저기 불을 질렀다.
만약 누군가의 방해만 없었다면!
마루와 민정은 이대로 서로를 하얗게 불태웠을 것이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문자 메시지가 계속 들어왔다.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자꾸 울려대니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확인해야 했다.
언제 데리러 올 거냐는 진아의 문자 메시지!
참 절묘한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잠깐 밖에 나갔다 올게.”
“갑자기 어디를 간다고 그래요?”
“진아와 할머니가 무섭다고 이쪽으로 온대.”
“진아요?”
“서진아라고… 어제 할머니와 같이 왔던 고 3 있잖아.”
“네에?”
복사꽃처럼 두 뺨이 활짝 핀 민정의 눈빛이 순간 서늘해졌다.
마루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켰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어요?”
마루는 어떻게 된 일인지 민정에게 아주(?) 자세히 설명해 줬다.
그녀는 속이 많이 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티를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진아의 앙큼한 얼굴을 떠올리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
“오빠! 그럼 같이 가요.”
“그, 그럴래?”
그는 민정의 제안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그녀가 서진아를 경계하는 것이 느껴졌다.
마루는 민정을 꼭 끌어안고 프렌치 키스를 시도했다.
처음에는 살짝 거부하는 몸짓을 보였다.
하지만 나중에는 못 이기는 척 그의 공세를 받아줬다.
한동안 설왕설래를 하고 나자 그녀의 얼굴이 보기 좋게 붉어졌다.
애정이 가득한 눈빛이 된 두 사람!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밖을 나섰다.
마루는 픽업트럭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민정이 보조석에 타자 그는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문원 2동 마을 회관 옆 러브릿지 빌라 201동.
이곳에서 서진아가 사는 집까지는 채 2킬로미터도 되지 않는다.
차로 6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어디서 좀비가 나올지 모르는 상태다.
민정의 애마인 미니 쿠퍼보다는 확실히 픽업트럭이 튼튼하다.
짐칸에서 아직도 으르렁거리는 좀비와 함께 두 사람은 짧은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1차 방벽과 2차 방벽을 지나 문원로를 탔다.
문원 체육공원을 가기 직전, 아랫배랭이로를 타고 크게 돌았다.
옆으로 나란히 만들어진 과천대로가 보였다.
평소라면 차량으로 가득 차있어야 할 과천대로다.
하지만 지금은 다니는 차량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과천대로 너머 과천시에서는 여전히 총성이 끊이질 않았다.
사기막길로 좌회전하자 진아가 사는 러브릿지 빌라가 바로 보였다.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
마루는 민정을 잠시 차에 두고 밖으로 나왔다.
예리한 눈빛으로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
아직까지 여기는 좀비의 침입이 없는 듯 보였다.
그래도 언제든지 좀비는 나타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입구로 다가가자 창문이 열리고 진아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마루가 마주 보며 손을 흔들자 창문이 다시 닫혔다.
잠시 후 진아가 할머니를 모시고 문밖으로 걸어 나왔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것처럼 두 사람은 커다란 캐리어를 하나씩 끌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빠!”
마루는 서진아와 그녀의 할머니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진아도 그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때 픽업트럭 보조석의 문이 열렸다.
민정이 밖으로 나오더니 할머니를 향해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밝게 웃는 민정의 얼굴을 본 진아는 흠칫 놀랐다.
민정이 마루와 함께 등장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서진아의 할머니는 여전히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마루를 쳐다봤다.
“반가우이. 이렇게 신세를 지게 되어 미안하네.”
“아닙니다. 신세라뇨? 괜찮습니다.”
할머니의 말에 마루는 당치 않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진아야, 가져갈 것은 여기 캐리어 두 개뿐이야?”
“네, 이게 전부예요.”
민정은 진아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자 절로 미소가 지워지는 기분이었다.
“안녕하세요? 민정 언니 맞죠?”
“응, 맞아. 그런데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그냥 알게 됐어요.”
민정과 진아의 시선이 허공의 한 점에서 격렬하게 부딪쳤다.
두 사람은 한눈에 서로가 연적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인지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차가운 냉기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마루는 그 모습에 얼른 할머니의 한 손을 붙잡고 차로 모셨다.
진아도 할머니와 같이 뒤쪽으로 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썰렁했다.
아무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마루도 섣불리 대화를 시작하지 않았다.
2차 방벽과 1차 방벽을 통과해 집 앞에 도착했다.
골목에 주차를 하고 짐칸에서 캐리어 두 개를 꺼냈다.
“할머니, 이 집 1층을 사용하세요.”
“여긴 누구 집이야?”
“제가 필요해서 월세를 주고 빌렸어요.”
“그런데 우리가 써도 되는 거야?”
“네, 전혀 문제없어요.”
마루는 캐리어를 양손에 들고 뒷집 1층으로 들어갔다.
진아와 할머니가 그의 뒤를 바짝 쫓아갔다.
민정만 뒤에 남아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 * *
우두두두!
넘실거리는 파도의 거품을 밟으며 네 필의 군마가 빠르게 해안가 모래사장을 질주한다.
이대로 곧장 달리면 만나게 될 성산위.
하지만 그들은 따로 볼일이 있는지 기수를 틀어 북현으로 들어갔다.
왜구의 약탈로 한때 폐허가 됐던 마을!
어느새 아픔을 다 잊은 듯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노을.
땅거미가 지는 때!
시나브로 대지는 명멸해 가는 빛의 기로에 서있다.
이히히히힝!
고삐를 잡아당기며 급속히 속도를 줄인다.
군마들이 죽겠다며 몸살을 앓는 소리를 냈다.
돋보이는 기마술을 뒤로하고 훌쩍 뛰어내린 네 명의 사내.
그중 하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 안으로 뛰어갔다.
“푸흐흣!”
뒤에 남은 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얼마나 좋으면,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저럴까?
이런 경우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좋을 때다!”
그걸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달리는 사내의 심정은 그저 다급하기만 하다.
“오라버니! 오셨어요?”
“어! 안녕!”
반갑게 웃는 누이의 인사에 해모수는 한 손만 살짝 치켜든 채 그냥 스쳐 지나갔다.
“해모수!”
“어머니, 안녕하세요.”
“그, 그래.”
뭐가 그리도 바쁜지 이번에는 어머니 박수영을 보고도 머리만 꾸벅인다.
본채를 지나 옆문으로 나가 달리자 별채가 눈에 들어온다.
수풀로 우거진 숲 안에 세워진, 작은 연못이 딸린 별채!
고즈넉한 분위기에 낮은 담장.
지붕 위로 주홍빛 노을이 배경처럼 깔리기 시작했다.
아담한 별채 앞에 다다르자 해모수는 급히 달리기를 멈췄다.
“휴우우!”
길게 심호흡을 하고 난 후, 천천히 별채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다 부서질 것 같은 경첩 소리가 왜 이렇게 크게 울리는지…….
벌렁거리는 심장 때문에 괜스레 원망을 해본다.
“은공,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청아한 여인의 목소리가 안쪽에서 들려왔다.
무엇을 봤는지 해모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짐짓 불퉁하게 말한다.
“허 참! 더 이상 은공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잖소.”
하얀 궁장(宮裝)을 입고 왕지현이 나타났다.
그녀의 자태는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하늘의 선녀인가 월궁의 항아인가!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쫄깃해졌다.
“호호호, 죄송해요. 공자님.”
“그 공자님이란 소리도 나와는 잘 어울리지 않소.”
하늘거리는 옷 때문에 더 예뻐 보이는 걸까?
아니면 미녀는 원래 이렇게 심장에 해로운 존재인가?
해모수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그녀 앞에 마주 섰다.
“사흘 만인가요?”
“부르셨다 들었소.”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크흠, 근처에 볼일이 좀 있었소.”
뭔가 엇갈리는 듯했지만 나름 대답은 잘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굴이 붉어지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왕지현은 그게 귀여워 보였는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살짝 웃었다.
순간 온 세상이 환하게 밝아진 것만 같은 느낌은 나만의 착각일까?
“안쪽으로 드시지요.”
“그, 그럽시다.”
그녀는 별채가 마치 자신의 집이라도 되는 양 해모수를 안내했다.
그런데 별채로 들어서나 싶더니 연못에 세워진 작은 정자로 인도한다.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했을까?
정자의 중앙에는 작은 주안상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
해모수는 그녀의 손짓에 연못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한번 둘러봤다.
한 폭의 산수화를 담은 듯 경치가 무척 아름다웠다.
자기 집에 진짜 이런 곳이 있었나 싶었다.
왕지현은 주안상 옆으로 다가와 그를 정면에 보고 우뚝 섰다.
해모수가 고개를 들고 쳐다봤다.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정겹게 웃었다.
“은공, 먼저 천녀의 절을 받으셔요.”
왕지현은 그가 미처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나긋나긋 절부터 했다.
하늘거리는 하얀 궁장이 바닥을 사뿐히 뒤덮는다.
곱게 빗은 머리카락이 풀리며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
해모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그녀의 아리따운 자태만 바라볼 뿐이었다.
왕지현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가 살포시 주안상 앞에 앉았다.
“한 잔 올리겠사와요.”
“크흠.”
그는 헛기침을 하며 상위에 놓인 작은 술잔을 집어 들었다.
쪼르륵!
맑은 청주가 술잔을 가득 채웠다.
해모수는 왕지현을 한번 쳐다보고는 단숨에 입안으로 술을 털어 넣었다.
식도를 태우는 화끈한 느낌이 빠르게 위장까지 번져갔다.
“크으.”
절로 새어 나오는 감탄사!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안주를 집어 그의 입가로 가져왔다.
잠시 멈칫했던 해모수는 이내 입을 벌려 넙죽 받아먹었다.
천천히 안주를 씹으며 그는 왕지현을 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렇게 분위기를 잡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방정맞게 뛰어대던 심장도 분위기에 잠식됐는지 어느새 차분히 가라앉고 있었다.
“뭔가 긴히 할 말이 있는 듯한데…….”
해모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의 눈빛이 대번에 처연해졌다.
“은공은 이 비천한 년을 두 번이나 구해주셨습니다.”
“두 번?”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를 두 번이나 구한 기억이 없었다.
다 썩어가는 통나무에 의지해 파도에 떠내려가던 왕지현을 구한 것 외에, 또 다른 뭐가 있었단 말인가?
해모수의 의문에도 그녀는 속 시원히 대답해 주지 않았다.
“은공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저는 도저히 갚을 길이 없습니다.”
“뭐 꼭 갚으라고 한 일은 아닙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앞으로 은공을 위해 살겠습니다.”
“예에?”
“몸과 마음을 다해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아니 뭐 꼭 그럴 필요까지는…….”
왕지현의 청천벽력 같은 선언에 대담한 해모수도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놀랍기도 하고 기대감도 들고 한편으로 이상하다는 의문도 생겼다.
도대체 지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은공이 원하시면 언제든 천녀의 몸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전 결코 은공과 섞일 수 없는 비천한 몸이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해모수가 언성을 높이자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진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꾸 스스로를 비천하다고 여기는 게 심히 못마땅했다.
왕지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돌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칼을 좀 빌려주세요.”
“내 칼을?”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느닷없이 칼을 빌려달라니…….
“은공을 위해 검무(劍舞)를 준비했습니다.”
이제는 칼춤을 추겠다고 한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그녀의 행동!
해모수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결국 허리에 차고 있는 환도(環刀)를 풀어주고 말았다.
촤앙!
칼집을 잡은 왕지현은 거침없이 환도를 뽑아 들었다.
잘 벼려진 환도의 날을 살피는 모습이 뭔가 범상치가 않았다.
한두 해 칼을 잡아본 솜씨가 아닌 듯 너무도 자연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