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그러자 당장 터져버릴 것 같은 고양감이 확 떨어졌다.
대신 그에 맞먹는 쾌감이 척추를 통해 후두부를 강타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천지교태술은 이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었다.
그녀가 절정에 오르면서 쏟아낸 대량의 음기!
해모수는 자신의 몸으로 휘돌렸다 다시 그녀에게 되돌려줬다.
그러자 왕지현은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듯 금세 기운을 되찾았다.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은 장장 세 시진 동안 천지교태술을 펼쳤다.
“흐윽! 상공, 영선단에 변화가 느껴져요.”
그녀는 열락의 파도에 빠진 채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 와중에도 자신의 몸 안에 일어나는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후욱, 후욱, 어떤 변화 말이오?”
해모수도 이제 호흡을 통해 강약을 조절하는 법을 배웠다.
“영선단의 영기가 아까보다 훨씬 강해졌어요.”
“아!”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서로의 단전을 들락거리는 음양의 기운!
이제는 아예 손에 잡힐 듯 친근하고 묵직했다.
“상공의 단전에 축기된 내공이 느껴져요.”
그의 기운이 그녀의 뭔가를 건드렸는지 왕지현은 얘기를 하다 말고 귀여운 교성을 흘렸다.
역시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온몸이 다 젖도록 땀을 흘린 보람이 있었다.
희미하게 느껴지던 오러 홀이 이제는 완연히 자리를 잡은 게 느껴졌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소.”
“예, 상공의 뜻대로 하셔요.”
왕지현은 그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정성껏 닦아줬다.
해모수는 바로 천지교태술의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기운을 돌리는 방식은 같다.
허나 상대방의 몸에 강하게 뿌려줘야 한다.
이건 음양의 기운이 어느 정도 서로 화합한 상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다행히 그동안 둘은 음기와 양기를 어느 정도 동화시켜 놓았다.
영선단을 꽁꽁 얼린 천음도 이쯤 되면 고민이 생길 것이다.
자신의 부하이자 든든한 아군이었던 음기!
그런데 적군의 포근함에 홀려서 어느새 홀라당 넘어가 버렸다.
이제는 사이좋게 같이 다니는 녀석들을 꾀는 것도 쉽지가 않다.
아니 그러다가 오히려 자신의 기운을 쪽 빨리게 되자 극도로 경계하게 됐다.
그러나 해모수는 천음을 흡수하거나 없애려 들지 않았다.
어차피 천음도 천하의 음기가 모여 정화를 이룬 것!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꾸준히 다독거리다 보면 언젠가는 틈이 보일 것이다.
그것이 천지교태술을 직접 경험한 해모수가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이론과 실제가 좀 다르긴 하다.
“허억! 상공! 영선단과 이어졌어요.”
“으응?”
그때 왕지현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한동안 그녀의 영과 단절됐던 영선단이다.
그런데 지금 가늘긴 하지만 분명히 뜻이 통할 정도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는 마침내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상공! 손에 양기를 주입해 주세요.”
“…….”
“곧 단전 위로 극독이 흘러나올 거예요.”
“알았소.”
왕지현은 부탁을 하면서 천천히 침대에 몸을 뉘었다.
서로를 마주 보고 끌어안은 상태에서 그녀만 뒤로 누운 것이다.
다만 이렇게 자세를 변화하자 해모수의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
이러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천지교태술을 멈추지 않았다.
빠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았다.
적당한 속도로 꾸준히 노를 젓고 항해를 했다.
동시에 연결된 신체의 일부를 통해 꾸준히 음기와 오러가 교류했다.
그로 인해 끊임없이 순환되는 음양의 기운이 몇 배나 증가해 있었다.
늘어난 오러보다 훨씬 순수하고도 많은 양이었다.
“으음, 나와요!”
왕지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단전이 볼록해졌다.
마치 당장 골프공 하나가 안에서 툭 튀어나올 것만 같은 모양.
천음의 영향으로 그녀의 아랫배가 순식간에 꽁꽁 얼어버렸다.
해모수는 음양의 기운을 제외한, 보유하고 있는 모든 오러를 한 손에 모았다.
그러자 오른손이 점차 황금색으로 변해갔다.
이윽고 하얀 실 같은 것이 얼음을 뚫고 삐쭉 치솟았다.
주르륵!
동시에 하얀 실을 타고 타르 같은 새까만 액체가 흘러나왔다.
왕지현의 양부 척대광의 동생 척중광이 쓴 독단!
그 속에 들어있던 극독이었다.
‘삼매진화!’
그는 검은 액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순수한 기운이 중첩된 극양의 기운.
삼매진화가 처음으로 해모수의 손을 통해 세상에 등장했다.
해모수는 그녀로부터 이미 삼매진화를 쓰는 수법을 배웠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해주는 통에 아주 귀에 못이 박히는 줄 알았다.
덕분에 처음 쓰는 것치곤 아주 능숙했다.
치칫, 치이익, 치치칫!
아무리 지독한 극독이라도 삼매진화라는 극양의 기운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극독은 매캐한 냄새를 피우며 힘없이 타들어 갔다.
하지만 냄새를 맡는 것조차 위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해모수는 다른 한 손을 강하게 휘저어 독기를 창문 밖으로 날려버렸다.
이윽고 영선단이 단전에 봉인하고 있던 극독을 모두 뽑아냈다.
당연히 극독도 전부 태워버렸다.
“아응, 이제 됐어요.”
왕지현은 밝은 목소리로 말을 했지만 귀여운 소리가 났다.
그녀의 아랫배를 덮은 얼음이 천천히 녹아 물이 됐다.
놀랍게도 영선단을 꽁꽁 얼렸던 얼음, 아니 천음은 눈 깜빡할 사이에 반대로 영선단 안에 갇혀버렸다.
이럴 줄 미리 알았다면 천음은 아마도 그녀의 몸속 깊숙이 숨어버렸을 것이다.
허나 영선단을 가두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 했던 천음!
오히려 반전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영선단에 의해 봉인이 되어버렸다.
안에서 강하게 반항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탄력이 넘치는 영선단은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고 묵묵히 잘 버텼다.
“아! 드디어 천음이 봉인됐어요.”
왕지현은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다 끝난 것이오?”
“아니요. 그렇진 않아요. 제 몸은 천음이 모이는 그릇이에요. 지금 천음의 정화가 사라진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다시 모이게 될 거예요.”
산 너머 산이라더니…….
이게 딱 그 짝이었다.
“흐음,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나요?”
“천음이 모이는 족족 없애버리든가, 몽땅 흡수해야죠.”
“그건 우리가 앞으로 천지교태술을 많이 펼쳐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그,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당황한 그녀는 말을 더듬었다.
“나와 합방을 하는 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아니에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럼 나와 합방을 하는 게 좋았어요?”
“당연히 좋았죠. 아주 좋았……. 어!”
그녀는 해모수의 유도심문에 그만 딱 걸려들고 말았다.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왕지현!
그녀의 얼굴이 복사꽃처럼 발갛게 물들어 갔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는 계속 장난을 치고 싶었다.
“우리 계속할까요?”
“네? 아! 상공이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전 상공이 좋으면 다 좋아요.”
“하하하! 이제 보니 낭자는 열녀가 될 소질이 넘치는구려.”
“자꾸 그렇게 놀리시면 부끄럽……. 아흑!”
그가 살짝 움직이자 왕지현은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다.
천형의 저주에서 한발 벗어난 상황이라 긴장이 풀리고 심신의 빗장까지 다 열려버렸다.
놀라운 것은 그동안 수동적인 태도를 버리고 능동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처음처럼, 다시 몸을 일으켜 그의 허벅지 위로 올라탔다.
“상공, 고마워요. 앞으로 평생 동안 이 은혜를 잊지 않고 살게요.”
“낭자, 그렇게 부담 가질 필요는 없소. 그냥 내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난 행복할 것이오.”
“아!”
왕지현의 맹세에 해모수는 고백으로 응수했다.
그녀는 그가 하는 행동과 눈을 보고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당사자에게 고백을 들으니 왕지현은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가슴이 막 간질간질하고 몸이 구름 위로 붕 뜨는 느낌이었다.
“기왕 시작하는 거 이참에 천음도 같이 해결합시다.”
“어떻게요?”
“살살 달래봅시다.”
“그런다고 말을 들을까요?”
“음양화합이 뭐겠소? 강요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없애거나 흡수하지 않으며 서로 화합하여 사이좋게 공존하는 게 아니겠소.”
“그러니 미끼를 던져보자는 말씀이군요.”
“맞소. 영선단이 길을 조금 열어주면 오러를 보내 천천히 천지교태를 이뤄봅시다. 당장 안 돼도 실망하지 말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성공하는 날이 오지 않겠소?”
“맞아요. 저는 상공의 말씀에 따르겠어요.”
해모수의 말에 그녀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아니 설사 그가 틀렸다고 해도 왕지현은 아마 따랐을 것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젊은 두 사람은 천음을 핑계로 다시 합방했다.
일단 천음이 영선단에 묶여있으니 마음에 부담이 없었다.
해모수와 왕지현은 느긋하게 천지교태술을 펼치면서도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할 수가 있어 너무나 좋았다.
쌀이 끓고 뜸이 들어 밥이 다 된 상태였다.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밤새도록 사랑을 속삭였다.
늘어나는 기운만큼 그들의 마음에도 상대방이 차지하는 자리가 점점 커져만 갔다.
검은 하늘에 쏟아질 것만 같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흐르는 구름 속에 달님이 얼굴을 내밀고 나와 창문을 비춘다.
불타는 침대 위에는 사랑과 감사, 기쁨과 은혜가 넘친다.
젊은 연인들에게 오늘은 정말 아름답고 소중한 밤이다.
물론 별채 밖에서 대장을 호위하며 기다리는 여진 삼총사에게는 허벅지에 피가 맺히도록 힘겨운 밤이기도 했다.
* * *
웅!
아웅!
우웅, 웅웅웅…….
멀리서 이명이 들려왔다.
정체불명의 이명은 점점 커지고 또렷해져 갔다.
“흑흑흑… 그렌 님,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살살 귀를 간지럽히는 입김.
그렌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긴 했는데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짓누르는 게 있는지 몸도 아주 무거웠다.
[마루: 형, 정신이 좀 들어요?] [해모수: 이야,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그렌: 내가 지금 살아있냐 죽었냐?] [마루: 하하하, 살아있으니까 우리와 얘기를 하지요.] [해모수: 빨리 정신 차리고 야엘 좀 달래봐요. 아까부터 질질 짜는데 시끄러워 죽겠어요.]해모수가 짜증 난 것처럼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짙은 장난기가 서려있었다.
[그렌: 내가 얼마나 정신을 잃었지?] [마루: 네다섯 시간 정도 됐을 거예요.]그렌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그의 품에 안겨있던 야엘이 고개를 들었다.
“그렌 님!”
“끄응, 야엘!”
반가운 야엘의 목소리에도 그렌은 가슴이 많이 답답했다.
“살아계셨군요.”
“그럼 죽은 줄 알았어?”
“숨을 쉬고 계시기에 죽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죽을까 봐 걱정했어요.”
“고맙군. 그런데 왜 몸이 이렇게 무겁지?”
“그, 그건 제가 위에 있어서…….”
야엘이 말끝을 흐렸다.
그는 당장 그녀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그것보다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게 답답했다.
“라이트!”
그렌은 가볍게 라이트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작은 빛 무리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이 흙으로 꽉 막혀있었다.
고개를 숙이자 야엘이 흙에 범벅이 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모양을 보아하니 둘이 서로를 끌어안은 채 흙에 파묻힌 모양이었다.
“완전히 흙에 파묻혔군.”
“죄송해요. 제가 지켜드려야 했는데…….”
“이건 야엘 때문이 아냐. 어떤 개또라이 병신 같은 마법사가 마나석 광산 앞에서 어스퀘이크 마법을 썼기 때문이야.”
그렌은 담담히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녀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돌았다.
그의 말이 나름 위로가 됐던 모양이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이렇게 같이 죽을 수 있어서…….”
야엘은 그의 품에 고개를 기대며 속삭였다.
하지만 그렌은 그녀의 말에 절대 동의를 할 수 없었다.
“뭔 소리야? 우리가 죽긴 왜 죽어?”
“그럼 살 수 있어요?”
“당연히 살아야지. 아니 지금 우리 둘 모두 살아있잖아.”
그렌이 당당하게 얘기를 하자 모든 것을 포기한 것만 같았던 야엘의 눈에도 생기가 돌았다.
“가만, 그런데 우리 지금 어떻게 숨을 쉬고 있는 거지? 이렇게 갇혀있으면 공기가 없을 텐데…….”
그의 의문에 야엘이 바로 대답했다.
“다크가 있잖아요. 미세하게 틈을 만들어서 숨을 쉴 수 있게 공기를 보내주고 있어요.”
“아!”
결국 두 사람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어둠의 정령, 다크 덕분이었다.
“이거 다크에게 큰 신세를 졌는데…….”
“다크가 없었다면 전 아마 진즉에 포기했을 거예요.”
그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