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4
14화
“금가락지다.”
놀란 해모수가 소리를 쳤다.
허나 금방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혹시 근처에 누가 있다면 소리를 듣고 쫓아올지도 몰랐다.
[마루: 하하하! 잭 팟이 터졌네.] [그렌: 오오오! 해모수가 횡재했네.] [마루: 해모수! 정신 차려! 빨리 금반지 챙기고 튀자.] [해모수: 네.]해모수는 마루의 말에 땅바닥에 떨어진 금가락지를 허겁지겁 주웠다.
찢어진 안감에 잘 싼 후 품속 깊숙이 쑤셔 넣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미칠 듯이 배가 고팠었는데…….
이제는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마루: 이제 왜구의 머리통을 소금 자루에 담아서 가자.] [해모수: 네.] [그렌: 아까 그 집으로 가는 것이 좋겠어. 솥에 쪄놓은 밥도 있고, 창고에 아직 가져갈 양식도 있잖아.] [마루: 그렇군요. 이불로 보따리를 하나 만들어서 등짐을 지고 가도 되겠네요.]소금이 담긴 자루에 왜구의 머리를 담았다.
해모수는 창칼을 챙겨 들고 몸을 일으켰다.
몇 번이나 들락거린 집을 향해 그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해모수는 마루와 그렌이 알아서 척척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것이 참 좋았다.
그저 시키는 대로 부지런히 움직였다.
단지 그랬을 뿐인데 자신의 품으로 금가락지들이 날아들었다.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졌다.
그에 맞춰 발걸음도 구름 위를 걷는 듯 너무나 가벼워졌다.
다시 찾은 그 집은 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이번에는 좀 더 차분하게 방을 뒤진 끝에 어깨에 멜 수 있는 대나무 광주리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안에다 창고에서 찾은 쌀자루와 곡물들이 담긴 자루를 모조리 쓸어 담았다.
부엌에 들어온 해모수는 주걱을 찾아 솥 안의 찐 밥을 마구 퍼먹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주걱으로 열 번이나 밥을 퍼먹어도 배가 차지 않았다.
그러다 문뜩 찬장에 잘 쌓여있는 놋그릇을 보게 됐다.
그는 밥 먹다 말고 창고에서 빈 자루를 가져와 그것을 깡그리 챙겼다.
[마루: 너무 욕심부리지 마라. 금반지 열 개면 너희 식구가 몇 년은 먹고살 수 있는 돈이야.] [그렌: 그걸 다 들고 집에 어떻게 가려고 그래?] [해모수: 이 정도는 문제없어요.]해모수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일단 솥 안에 든 찐 밥을 꾸역꾸역 다 먹어치웠다.
그런 후, 솥까지 자루에 담아 대나무 광주리에 쑤셔 넣었다.
마루와 그렌은 대나무 광주리가 혹시라도 주저앉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용케 그 무게를 잘 버텨내고 있었다.
[마루: 왜구의 수급은 굳이 집에 가져갈 필요 없어. 어디 응달에다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숨겨놔.] [그렌: 언덕 위로 올라가면 왜구들이 갔는지도 한번 살펴봐라.]해모수는 집 밖으로 나와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몸을 움직였다.
조용히 오솔길을 타고 위로 빠르게 올라갔다.
언덕 위에 오르자 그렌의 말대로 해변부터 살펴봤다.
동료를 기다리던 왜구들은 진즉에 포기했는지 조각배를 타고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왜구의 관선들도 등주부를 약탈하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멀리 성산위가 잿더미로 변해 검은 연기를 마구 피워대고 있었다.
해모수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돌 틈에 숨겨둔 소금 자루를 챙겼다.
그러고 나서 뒤쪽의 더 높은 언덕을 향해 이동했다.
언덕을 넘어 바위로 된 절벽에 도착했다.
바위 사이에 왜구의 머리통이 담긴 자루를 잘 숨겨뒀다.
다 썩어가는 창 자루를 뽑아내 파도치는 바닷속으로 던져버렸다.
창촉만 따로 떼어내 핏물을 깨끗이 닦아냈다.
마른 천으로 둘둘 싸서 대나무 광주리 속에 같이 넣어버렸다.
죽인 왜구에게 노획한 칼을 들어 이리저리 휘둘러 보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색함을 피할 수 없었다.
역시 칼 쓰는 법은 따로 배워야 할 것 같다.
대나무 광주리의 끈이 어깨를 짓누르자 조금씩 아파왔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소영을 배부르게 먹일 수 있다고 생각하자 절로 힘이 솟았다.
오늘 마을 하나가 초토화됐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러나 그 덕에 해모수는 가족과 함께 오늘 저녁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르긴 해도 아마 등주부도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그럼 또 누군가 그 덕분에 주린 배를 채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생존을 위해 서로 죽고 죽이고…….
그 틈바귀에서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치열하게 머리를 굴려야 한다.
이곳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법칙이 지배하는 야만(野蠻)의 세계다.
* * *
눈을 뜨자 돌로 된 벽이 보였다.
손가락을 대보자 차가운 한기가 절로 소름을 돋게 한다.
몸을 일으켜 보자 정겨운 자신의 방이다.
아니 지긋지긋한 감옥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괜히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어졌다.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손으로 눈곱을 떼고 얼굴을 살살 문질렀다.
일명 고양이 세수.
연구할 시간도 모자란 마법사들에게 목욕은 사치다.
물론 명상을 자주 하는 고위 마법사들이야 얘기가 다르겠지만.
얼굴에 있는 물기를 수건으로 닦고 로브를 걸쳤다.
연구실로 쓰고 있는 거실로 나왔다.
책상 위에 고대 마법서와 그것을 해설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고서가 놓여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로브의 호주머니에서 하얀 마법 주머니를 꺼냈다.
마법 주머니의 주둥이를 열고 고대 마법서와 고서를 안에 담았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빵 자루와 돈주머니를 뺐다.
빵 자루에서 빼낸 부드러운 빵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우유와 함께 마시면 더 좋을 텐데…….
뭐 물과 같이 먹어도 그리 나쁘지 않다.
빵을 먹으면서 돈주머니를 열어 안에 들어있는 금화를 꺼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금화!
앞으로 이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바뀌게 될 것이다.
‘아무래도 계획을 앞당겨야겠어.’
그렌은 느긋하게 하급 마법서를 연구하며 실력을 쌓으려고 했다.
고대 마법서도 해석해서 누구도 모르는 고대 마법의 비밀을 캐고 싶었다.
하지만 마루와 해모수에겐 시간이 별로 없었다.
마루의 세상을 죽음의 저주로 몰아갈 파이럿 혜성!
그 마물이 도착하는 데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마탑의 도서관에서 최대한 파이럿 혜성의 정보를 찾아내야 한다.
아니 마루를 도와줄 방법을 강구해야만 한다.
해모수의 경우는 더 급했다.
당장 왜구라 불리는 해적들이 해안가 마을을 쳐들어와 약탈을 해댔다.
이젠 언제라도 그들과 부딪치는 것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해모수는 조만간 군역을 져야 할 것 같다.
당장 군역을 지게 된다면 최전선에 나가 왜구들과 전투를 벌이게 될 것이다.
그럼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된다.
다행히 해모수가 사는 세상에는 마나가 있다.
비록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의 1할에 불과한 마나의 농도지만.
그래도 마루가 사는 세상이나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
해모수에게 잘 맞는 신체 강화술이나 오러 운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마도 생존율이 월등하게 올라갈 것이다.
‘내가 당장 쓸 수 있는 마법 중에 쓸 만한 게 뭐가 있지?’
그렌은 이제 겨우 심장에 서클 하나를 만든 1서클의 견습 마법사다.
당연히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1서클의 마법에 불과했다.
매직 미사일, 그리스, 라이트, 스트렝스, 매직 아머 그리고 각종 원소 마법인 파이어, 아이스, 어스, 윈드…….
열 가지가 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최하급 몬스터 한 마리도 제대로 사냥하기 어려운 기초적인 마법일 뿐이다.
“라이트!”
그렌은 간단히 라이트 마법으로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라이트!”
두 번이나 마법을 사용했지만 발현되지 않았다.
‘설마!’
그렌은 즉시 제자리에 앉아 심장에 있는 서클을 돌렸다.
놀랍게도 서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지금 심장에는 서클은 물론 마나 한 톨 없이 텅 비어있다는 사실이…….
‘이럴 수가! 혹시 죽었다가 살아나면서 몸이 재구성이라도 된 건가? 그래서 서클이 사라진 건가?’
그렌은 마법사답게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유를 밝혀낸다고 해도… 이미 사라진 서클이 다시 나타날 일은 없다.
그렌은 크게 낙담하고 말았다.
[해모수: 그렌 아저씨, 왜 그래요?] [마루: 무슨 일 있어요?]그동안 잠자코 가만히 보고만 있던 해모수와 마루가 급격히 요동치는 그렌의 감정을 느끼고 말을 걸어왔다.
[그렌: 아! 해모수! 마루! 너희들이구나.] [해모수: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어요?] [그렌: 서클이 사라졌어. 간신히 서클 하나를 만들었는데… 죽었다가 살아나면서 몸이 재구성이 됐는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마루: 으음, 그거 유감이군요. 하지만 그게 꼭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잖아요?]마루의 말에 그렌이 의혹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렌: 그게 무슨 소리지?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봐.] [마루: 물론 이건 내가 그냥 생각한 가설이에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내 말이 아주 근거가 없다고는 말 못 할 거예요.] [그렌: …….] [마루: 비록 서클을 이루고 있는 마나가 사라졌지만, 앞으로 마나를 쌓는 데는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어요. 그것은 그렌 아저씨의 몸에 쌓여있던 노폐물과 안 좋은 불순물 같은 것이 죽었다가 살아나면서 전부 사라졌기 때문이죠.] [그렌: 아!]그제야 그렌은 마루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깨달았다.
마루의 말이 맞다.
지금 자신의 신체는 갓 태어난 어린아이와 같이 깨끗한 상태다.
그러니 새롭게 마나를 쌓기 시작하면…….
예전보다 훨씬 더 순수한 마나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렌: 마루,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지금 당장 시험해 봐야겠어.]그렌은 방으로 들어갔다.
항상 명상을 하며 서클을 돌리던 커다란 방석 위로 가서 앉았다.
책상다리를 하고 두 손을 가볍게 아랫배 위로 모았다.
눈을 감고 그동안 수도 없이 해왔던 명상을 시작했다.
먼저 세상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마나를 느껴봤다.
마나를 느껴야 마나를 모을 수가 있다.
마나를 쌓아야 심장에 서클을 생성할 수 있다.
서클이 있어야 주문과 시동어를 통해 마나의 공명과 발현을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마법사 중 최악의 재능이라며 탄식하던 스승님.
그의 말처럼 그렌은 마나를 쉽게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어쩐지 예전에 비해 몇 배는 더 쉽게 마나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사실이 그렌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물론 그래 봤자 없던 재능이 새로 생긴 것은 아니다.
몸이 깨끗한 상태라 상대적으로 더 마나를 쉽게 느끼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그렌은 이미 커다란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깊게 호흡을 하면서 숨을 쉬었다.
호흡을 통해 들어온 공기는 단순히 산소만 제공해 주지 않는다.
공기 중에 섞여있는 마나(mana)도 몸속으로 같이 들어온다.
그렌의 인도를 따라 마나가 심장에 모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냥 나가려던 녀석들이다.
하지만 점차 그렌의 의지에 따라 심장에 와서 머문다.
자리를 잡자마자 친구들도 부른다.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하자 이제는 서로를 끌어당기며 똘똘 뭉치기까지 한다.
마나는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클을 만들기 전까지는 많은 집중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단 서클이 만들어지면 상황이 바뀐다.
굳이 따로 명상을 하거나 마나를 모으려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서클 안으로 마나가 차오른다.
그렌은 한 시간 동안이나 정성껏 공을 들여 명상을 했다.
눈을 뜬 그렌의 입가에 만족한 미소가 걸렸다.
[해모수: 마나가 금방 모였네요.] [마루: 내 말이 맞죠?] [그렌: 하하하! 그래 마루의 말이 맞았어. 확실히 전에 비해 마나를 쉽게 느끼고 쉽게 모으고 있어.] [마루: 얼마나 모았는데요?] [그렌: 1서클의 마나를 기준으로 10퍼센트 정도 모았어.] [마루: 네? 그럼 1서클의 마나를 모으려면 이 짓을 열흘 동안 해야 한다는 말이잖아요?] [그렌: 열흘도 더 걸리지. 먹고 자고 생활하는 가운데 절반은 사라지니까.]그렌의 말에 마루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마루: 정말 극악의 효율이네요. 마법사도 아무나 못 하겠어요. 인내심이 없는 사람은 도중에 포기하겠어요.] [그렌: 마법사는 명상을 포기하지 않아. 그리고 일단 서클을 만들어 놓으면 더 이상 마나가 흩어지지 않고 쌓이기 때문에 괜찮아.]온라인 게임으로 인해 1서클 알기를 개떡으로 알고 있는 마루다.
그런 그가 그렌의 말에 쉽게 동의할 리 없었다.
[마루: 차라리 해모수가 대신 명상인지 뭔지를 하면 어때요? 천부적인 재능이라면서요?] [그렌: 아! 그거 좋은 생각이네.]그렌은 마루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