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그는 얼른 그녀의 손등을 눌렀다.
고개를 살짝 흔들자 야엘도 알았다는 듯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토니오 자작이란 놈이 그들이 숨어있는 바위 앞, 평평한 돌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로의 마법사도 근처에 있는 평평한 바위 하나를 골라 앉았다.
기사들이 근처로 다가와 반원형으로 경계를 섰다.
“에휴! 이게 진정 맞는 길인지 모르겠소이다.”
한숨을 내쉰 마법사가 품속에서 오래된 지도를 꺼내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안토니오도 주머니에서 고풍스러운 열쇠 하나를 꺼냈다.
“그라함 마법사! 표식만 찾으면 끝납니다. 우리에겐 이게 있지 않습니까.”
“안토니오 자작! 나도 잘 알고 있어요. 문제는 우리가 찾는 표식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안토니오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서둘지 말고 천천히 찾아봅시다. 이제 시작한 지 사흘도 지나지 않았소.”
“그렇게 맘 편하게 있을 일이 아닙니다. 크로노스의 던전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벌써 다른 왕국으로 다 전해졌을 것이오.”
그라함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안토니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배포가 큰 건지 아니면 원래 무던한 성격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 봤자 이곳은 엄연히 코티아르 왕국의 영토 안이오. 제까짓 것들이 뭘 어떻게 하겠소?”
“우리 마법사 하나가 어스퀘이크 마법을 잘못 써서 부르나 왕국의 마나석 광산을 그만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큰 피해를 본 부르나 왕국은 물론 카시오페라 왕국까지 이를 갈고 있습니다. 그들이 소식을 들으면 분명히 이곳으로 부리나케 달려올 겁니다.”
“부르나와 카시오페라가 손을 잡았다지만 엄연히 우리에게도 지원군이 있소이다. 모리스 왕국에서 보낸 배가 이미 버셀에 들어왔어요.”
“허면 모리스 왕국이 왕실 기사단이라도 보내줬단 말입니까?”
그라함이 놀라는 것을 보며 안토니오가 자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습니다. 모리스 왕국의 왕실 기사단 중 하나인 필립 기사단과 정예병이 지금 도스 영지를 지나 틴틴산으로 오고 있습니다.”
“코난 기사단도 이리 보냈다고 하던데…….”
“소식이 참 빠르시군요. 그들이 오게 되면 우리 코티아르 왕국의 3대 왕실 기사단 중 코난 기사단과 벨 기사단이 모이게 됩니다. 거기에다 모리스 왕국의 필립 기사단까지 합세하면 아무리 카시오페라 왕국과 부르나 왕국이 난리를 쳐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안토니오의 자신만만한 태도에도 그라함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신중한 눈빛을 띠었다.
“흐음, 전력이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만 그렇다고 방심해선 안 될 것이오. 카시오페라 왕국과 부르나 왕국에서도 아마 결사적으로 나올 겁니다. 잘못했다간 부르나 왕국의 마나석 광산의 전철을 밟을 수 있어요.”
“걱정도 팔자라더니……. 참 여러모로 피곤하시겠습니다. 어쨌든 크로노스의 유산이나 열심히 찾아보세요. 그게 그라함 마법사의 일이니까요.”
“예, 그리하지요.”
그라함 마법사는 안토니오 자작의 놀리는 말투에도 별로 화를 내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크로노스의 유산을 찾는 것이다.
안토니오 자작과 신경전을 벌여봤자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
한편 안토니오와 그라함의 말을 들은 그렌은 깜짝 놀랐다.
옆에 앉아있는 야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곳이 크로노스의 유산이 숨겨져 있다는 던전이구나. 일이 어떻게 돌아가나 했더니 여기서 아주 중요한 단서를 찾았어. 마나석 광산이 무너진 것도 역시 코티아르 왕국 마법사의 짓이구나. 하지만 아무리 마나석 광산이 중요해도 전설적인 대마법사 크로노스의 유산에는 비견될 수가 없지.’
그렌의 머리가 아주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마나석 광산에 갇혔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나 보군. 하긴 크로노스 던전이 발견됐다면 마나석 광산이 무너진 것쯤은 바로 손절해 버렸겠지. 코난 기사단이 오고 있고 모리스 왕국의 왕실 기사단인 필립 기사단까지 합류하면 어마어마한 전력이 될 거야. 그걸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시오페라 왕국과 부르나 왕국은 기사단을 급파하겠지. 그렇다면 곧 이곳에 헬 게이트가 열리겠군.’
위험을 피한다고 피한 곳이 마나석 광산 안이었다.
그게 무너지면서 자칫 요단강을 건널 뻔했지만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런데 빠져나왔다고 여긴 곳이 알고 보니 다시 사지(死地)였다.
그렌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때 그라함 마법사가 지도를 뒤집는 것이 언뜻 보았다.
‘어!’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도에 찍혀있는 표식이 어디서 많이 봤던 문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흰개미 굴 광장에서 봤던 그 문양이 틀림없었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야엘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확실히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아마 찾고 있는 표식이 어디 있는지는 발견하기 힘들 것이다.
어두컴컴한 동굴 속, 수십 미터 위쪽에 난 잘 보이지도 않는 개구멍을 무슨 수로 찾아낸단 말인가?
그렌은 슬슬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크로노스 대마법사의 유산이다.
마법사로서 어찌 욕심이 나지 않겠는가!
그는 야엘을 향해 메시지 마법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그라함 마법사가 가지고 있는 지도의 문양이 바로 우리가 흰개미 굴 광장에서 본 거야. 안토니오 자작이란 놈에게 열쇠만 탈취한다면 크로노스의 유산을 우리가 얻을 수 있어. 야엘도 들었겠지만 마나석 광산을 무너뜨린 게 코티아르 왕국의 마법사야. 이 기회에 놈들에게 복수도 하고 엿을 먹이자.
그녀는 그렌의 메시지 마법을 듣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악동을 연상케 했다.
그는 다시 한번 메시지 마법을 사용했다.
―일단 놈들이 여길 나가면 몰래 뒤를 따라가자. 기회를 봐서 폭탄을 터트리거나 광역 마법으로 제압한 다음에 그라함 마법사가 가진 지도와 안토니오 자작이 가지고 있는 열쇠를 탈취하는 거야.
야엘은 대답을 듣자마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은 세워졌다.
이제부터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에 따라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렌은 바위틈으로 안토니오와 그라함을 노려보며 어떻게 엿을 먹일지 궁리했다.
“출발!”
충분히 쉬었다고 판단한 안토니오 자작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라함 마법사도 그의 뒤를 따라 쫓아갔다.
기사들이 안토니오 자작과 그라함 마법사를 원형으로 호위했다.
그들의 앞뒤로 코티아르 왕국의 정예병이 대오를 갖추고 나아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병력이 상당했다.
“어휴!”
“다행히 들키지 않았어요.”
그렌이 길게 한숨을 쉬자 야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그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줬다.
그렌은 사실 자신이 땀을 흘리고 있는지도 인식하지 못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지 어째 야엘이 하는 짓마다 예쁘기 그지없었다.
쪽!
그는 가볍게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야엘이 그렌의 품에 냉큼 안기며 얼굴을 비볐다.
두 사람은 잠시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병력이 상당했어.”
“그렇죠? 벨 기사단의 기사들이 수십 명은 되어 보였어요.”
“병사들도 정예병으로 보였어. 대충 백은 넘었지?”
“이백은 안 되고 백오십은 넘었어요. 그런데 그 마법사는 어때요? 고위 마법사예요?”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아마 그 정도는 될 거야.”
그렌은 그라함 마법사를 생각했다.
그의 경지가 확실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히 자신보다 윗줄이었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강해 보이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만만해 보였다.
그렇다면 아마도 5서클의 고위 마법사일 것이다.
“슬슬 움직여 볼까?”
“네.”
두 사람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코티아르 왕국의 던전 탐사단을 쫓아갔다.
모르긴 해도 던전 입구에는 이들보다 몇 배는 많은 기사와 정예병이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기회는 많지 않아. 단번에 놈들을 처치하고 지도와 열쇠를 탈취해야 해.”
“알겠어요. 다크에게 잘 말해놓을게요.”
야엘의 대답에 그렌은 용기를 얻었다.
동굴의 특성상 어둠의 정령이라면 큰 문제 없이 목적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기회를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게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반나절 동안 던전 탐사단을 따라다녔다.
하지만 특별한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간간이 던전의 함정이 발동하고 몬스터들이 난입하긴 했지만, 그라함 마법사가 함정을 해체하고 기사들이 나서면서 순식간에 제압됐다.
덕분에 그렌과 야엘은 인내와 끈기를 시험하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창, 차차창, 창창!
펑, 퍼펑, 펑펑펑!
앞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렌과 야엘은 서로 눈을 한번 마주치고는 속보로 빠르게 걸어갔다.
이번에는 전투를 하는 모습이 예전과는 달랐다.
“스켈레톤이에요.”
“스켈레톤 마법사까지 있어.”
흰개미 언데드를 겪어봐서 그런지 두 사람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던전 탐사대는 꽤 당황한 상태였다.
스켈레톤이 하나둘도 아니고 수백 마리가 떼로 몰려들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뒤쪽에서 스켈레톤 마법사가 각종 마법을 날려대고 있었다.
간간이 뼈 갑옷으로 무장한 스켈레톤 나이트까지 설치는 게 보였다.
[해모수: 그래도 던전 탐사단이 질 것 같지는 않아요.] [마루: 물론 그렇겠지. 기사만 수십 명이 있는데……. 하지만 이 정도면 분명히 틈이 생길 거야.] [그렌: 나도 동감이야. 여기서 한번 모험을 해봐야겠어.]갑작스러운 스켈레톤들의 습격에 던전 탐사단에 큰 혼란이 왔다.
하지만 기사들이 개입하자 조금씩 안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렌은 시간이 지나 저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승부수를 띄우기로 했다.
“야엘, 다크를 보내서 미리 준비 좀 해줘!”
“예스, 마이 로드!”
그렌의 의지를 읽은 야엘의 눈빛이 냉정하게 변했다.
그는 파랑 마법 주머니에서 클레이모어와 부비 트랩을 꺼냈다.
미리 탈출로를 예상해서 곳곳에 클레이모어와 부비 트랩을 설치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그렌은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그는 마력 증폭 장갑을 들었다.
“윈드!”
던전 탐사단에는 그라함이라는 마법사가 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마법을 운용했다.
저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바람의 통로를 동굴 천장을 향해 만들어 냈다.
파랑 마법 주머니에서 고폭탄과 수류탄, 소이탄도 꺼내기 시작했다.
기폭 장치를 작동시켜 넉넉하게 시간을 할당했다.
준비가 끝나자 각종 폭탄을 바람의 통로 안으로 마구 밀어 넣었다.
창, 차창, 창창창!
펑, 퍼펑, 펑펑펑!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됐다.
하지만 기사들이 전투에 개입하고 병사들과 함께 스켈레톤에게 맞서자 전세가 뒤집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투가 이어지는 것은 스켈레톤 마법사들 때문이었다.
간간이 쏟아지는 저들의 마법!
감히 기사라고 해도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진형을 유지해라!”
“뒤로 밀리지 마라!”
“스켈레톤 마법사들을 요격해라.”
그 와중에도 안토니오 자작의 호통 소리가 동굴을 쩌렁쩌렁 울려댔다.
그라함 마법사는 냉정한 눈빛으로 전장을 주시했다.
특히 스켈레톤 마법사들에게 아주 관심이 많은지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퉁, 투둥, 퉁퉁퉁…….
그때 허공에서 웬 쇳덩어리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처음에는 스켈레톤 마법사의 공격인가 싶어 식겁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다들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래도 마법사라고 그라함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쇳덩이를 들어 살펴봤다.
미약하게 마법적인 요소가 섞여있음을 간파했다.
“이건 뭐지? 무슨 포탄의 일종인가?”
마탑의 서고에서 이런 형태의 물건을 본 적이 있었다.
그라함은 거의 정확히 쇳덩이의 정체를 파악했다.
하지만 이게 시한폭탄의 역할까지 하는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몰랐다.
그게 던전 탐사단의 운명을 갈랐다.
그라함은 손에 수류탄을 쥐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미연에 참사를 막기는커녕 제일 먼저 희생자가 되었다.
쾅, 콰과광, 쾅쾅…….
우르릉, 쿠르릉, 쿵쾅!
화르륵, 화르륵!
그렌이 바람의 통로를 통해 쏟아부은 각종 폭탄들이 일제히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