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그냥 옆에서 볼 때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남자들도 이제 직접 창을 써봤으니 이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잘 알 수가 있었다.
아무리 좀비의 두개골이라 해도 단번에 창으로 꿰뚫는 일이 결코 쉬울 순 없었다.
“모두 멈추세요.”
북쪽 방벽의 외곽을 정리한 마루가 크게 외쳤다.
열심히 창을 내리찍던 남자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췄다.
2층 창문에서 활과 쇠뇌를 쏘던 여자들도 무기를 내렸다.
그는 방벽 안을 한번 살펴보더니 훌쩍 아래로 뛰어내렸다.
“꺄악!”
“오빠!”
“마루야!”
“어머!”
“억!”
비명과 경악성이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남은 십여 마리의 좀비들이 마루를 발견하고는 우르르 몰려왔다.
그 모습에 그는 좀비들을 향해 대뜸 창을 내던졌다.
휘익, 퍽!
쏜살같이 날아간 창은 좀비 한 마리의 아가리를 뚫었다.
그러고도 힘이 남아돌아 담벼락에 팍 꽂혔다.
촤앙!
마루는 번개처럼 별운검을 뽑았다.
경쾌한 스텝을 이용해 좀비들 사이를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신형이 움직일 때마다 싸늘한 검광이 번뜩였다.
동시에 좀비의 팔과 머리통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
그걸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마루가 종말을 대비해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마루가 십여 마리의 좀비를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았다.
철제 방벽 위에서 그냥 창을 내리찍어도 좀비 열 마리를 잡기 힘든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건 마치 칼로 무를 자르듯 숭덩숭덩 좀비들을 쉽게 잘라버렸다.
휘익!
이윽고 마지막 좀비가 쓰러지자 마루는 별운검을 허공에 세차게 한번 휘둘렀다.
칼날에 묻은 좀비의 피와 살점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상태 창!’
사람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그는 자신의 상태 창을 열어 살펴봤다.
어느새 레벨이 몇 개나 올라있었다.
[마루: 확실히 좀비를 잡으니까 레벨이 오르네요.] [해모수: 좀비 열 마리당 레벨 하나가 오르는 것 같아요. 뭐 그래 봤자 레벨 하나당 보너스 스탯은 하나에 불과하지만…….] [마루: 보너스 스탯 하나가 어디야! 레벨만 빨리 올리면 보너스 스탯을 몇십 개도 얻을 수 있잖아.]해모수의 부정적인 반응에 마루가 발끈했다.
[그렌: 그건 마루의 말이 맞아. 보너스 스탯을 하나라도 얻을 수만 있다면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확실히 좀비 열 마리를 잡으니까 레벨 하나가 올랐어. 하지만 이 규칙이 언제까지 적용될지 모르겠어.] [마루: 그야 앞으로 지켜보면 저절로 알 수 있겠죠. 그보다 먼저 한 가지 실험을 해보고 싶어요.]실험을 한다는 마루의 말에 그렌의 눈빛이 빛났다.
[그렌: 무슨 실험?] [마루: 다른 사람도 좀비를 잡으면 저처럼 레벨이 오르는지 알고 싶어요.] [해모수: 에이, 설마요?] [그렌: 흐음, 한번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있겠어. 어차피 다들 좀비를 잡고 있으니까 제일 많이 잡은 사람한테 몇 마리 몰아주면 금방 확인할 수 있겠네.]해모수는 설마 했다.
그렌은 마루의 생각과 같았다.
특별히 어려운 일도 아니고, 한 번쯤 실험해 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마루의 시선이 민정에게 향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손짓으로 가까이 불렀다.
민정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민정아! 좀비 몇 마리 잡았어?”
“한 다섯 마리쯤 잡은 것 같아요.”
어쩐지 자랑하는 말투였다.
마루는 그녀에게 아낌없이 칭찬을 쏟아부었다.
“정말! 대단하다. 남자들도 그렇게는 못 잡았을 거야. 역시 김민정이네.”
“헤헤, 내가 좀 대단하긴 하죠.”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민정은 그의 놀라워하는 표정을 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섯 마리만 더 잡아보자.”
“네에?”
이어지는 마루의 말에 민정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지 그녀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굳이 민정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철제 방벽 위를 빠르게 걸어 북쪽으로 이동했다.
차단 문이 보이자 마루는 아래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자물쇠를 풀고 차단 문을 활짝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 좀비들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좀비 다섯 마리가 들어오자 곧바로 차단 문을 닫았다.
얼마나 세게 닫았는지 미처 들어오지 못한 좀비들의 팔다리가 차단 문에 찍혀서 떨어져 나갔다.
크어어어!
캬하아아!
방벽 안으로 들어온 좀비들은 마루를 향해 달려들었다.
눈이 시뻘건 놈들이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며 돌진해 오자 그는 가볍게 원을 그리며 피했다.
좀비들은 서로 몸이 엉키면서도 죽어라 마루를 쫓아왔다.
그는 몹 몰이를 하듯 좀비들을 끌고 민정이 서있는 철제 방벽까지 왔다.
다다다다, 탓!
마루는 일순 몸을 홱 돌리더니 철제 방벽을 향해 달려갔다.
부딪칠 것처럼 돌진한 그는 벽을 차고 가볍게 위로 뛰어올랐다.
철제 방벽 위에 올라선 마루를 보고 그제야 다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건 민정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렇게 위험한 행동을 해요.”
“나한테는 하나도 안 위험해.”
“그래도 걱정되잖아요.”
“알았어. 앞으로는 조심할게.”
민정의 애정 어린 시선과 걱정하는 말투에 마루는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보는 눈이 많아서 얼른 조심하겠다는 말을 했다.
“그나저나 좀비 다섯 마리를 더 잡자는 말은 무슨 뜻이에요?”
“그건 일단 다섯 놈만 더 잡아보고 나서 얘기하자.”
“알았어요. 하지만 나중에 꼭 얘기해 줘야 해요.”
“물론이지.”
마루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실험에 성공하지 못하면 굳이 사실대로 얘기해 줄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민정은 한쪽 무릎을 꿇고 창을 두 손으로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가 말한 대로, 그녀는 좀비를 딱 다섯 마리만 더 잡아보기로 했다.
빠각, 털썩, 빡, 빠각, 퍽, 풀썩…….
그때부터 민정은 열심히 좀비의 대가리에 구멍을 뚫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다섯 마리의 좀비를 잡는 데 성공했다.
“어!”
그때 민정의 몸이 멈칫했다.
“왜 그래? 뭔가 이상해?”
마루가 참지 못하고 급히 물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눈앞에 반투명한 글자가 떠올랐어요. 그리고 몸에 힘이 솟구쳐요.”
“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민정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바로 깨달았다.
“혹시 온라인 게임에 나오는 상태 창 같은 거 보여?”
“아니요.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아요. 마지막 좀비를 처치했을 때 눈앞에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어요. 그리고 뭔가 힘이 조금 강해진 느낌도 들었어요.”
“흐음.”
마루는 감탄사를 발하며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모수: 확실히 트리니티 바이오 인터페이스 같은 시스템은 아니네요.] [그렌: 상태 창이 뜨지 않은 것만 봐도 그건 쉽게 알 수 있어.] [마루: 그래도 레벨이 오르면서 스탯이 오르는 것은 비슷해요.] [해모수: 우리처럼 올리고 싶은 스탯을 직접 고르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알아서 올리는 방식이네요.] [마루: 맞아. 스탯은 랜덤으로 올라가는 것 같아.]셋은 머리를 맞대고 민정의 말을 열심히 분석했다.
[그렌: 그래도 이건 큰 소득이야. 누구든지 일정 수의 좀비를 잡으면 레벨을 올릴 수 있다는 거잖아.] [마루: 맞아요. 우리와는 방식이 다르지만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인류에게 시스템적인 혜택을 부여했어요.] [해모수: 앞으로 이걸 잘 활용하면 종말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렌: 그래도 이 정보를 당장은 마구 풀지 않는 게 좋겠어. 잘못하면 죽 쒀서 개 주는 수가 있으니까.] [마루: 알겠어요]그렌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것 같았다.
마루도 굳이 이런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먼저 이 정보를 가족들과 의논해 보고, 나중에 함께하기로 약속한 1차 방벽 안의 이웃들에게만 알려줄 생각이다.
“지금부터 각자 좀비 열 마리씩만 잡도록 하겠습니다.”
마루는 가족과 이웃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그의 일방적인 말에 다들 한숨을 내쉬며 뭐라고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마루는 아예 반론 자체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버지! 잠깐 이쪽으로 와주세요.”
“나 말이냐?”
“예, 아버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솔선수범이라고 했다.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가 항상 먼저 앞장서야 한다.
다행히 이대근은 아들의 의도를 눈치채고 순순히 따랐다.
“오늘 좀비 몇 마리 잡으셨어요?”
“음… 세 마리.”
“그렇군요. 앞으로 일곱 마리만 더 잡아보세요.”
“알았다.”
“열 마리를 채우면 뭔가 변화가 있을 거예요. 당황하지 마시고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이대근은 마루의 말에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
당장 무슨 뜻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뭔가 이유가 있으려니 하고 꾹 참았다.
마루는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전과 같이 차단 문을 열고 좀비 일곱 마리를 안으로 들였다.
쫓아오는 좀비들을 몹 몰이 하듯 끌고 온 다음 다시 철제 방벽 위로 훌쩍 뛰어 올라갔다.
“준비되셨으면 시작하세요.”
마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대근은 자세를 잡았다.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창을 단단히 잡고 사정없이 아래로 내리찍었다.
확실히 자세가 많이 어설프고 어색했다.
마루는 친절하게 창을 잡는 법과 휘두르는 법을 이대근에게 꼼꼼히 가르쳤다.
1:1로 원 포인트 맞춤형 레슨을 해주자 이대근은 금세 한 명의 훌륭한 창잡이가 됐다.
뻑, 풀썩, 빡, 털썩, 빠각, 삐걱, 퍽, 털썩…….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난 후.
끝내 이대근은 일곱 마리의 좀비를 해치울 수 있었다.
“어!”
역시 이대근의 반응도 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마루는 웃으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 눈에 뭐가 보이면 말씀해 주세요.”
“지금 내 눈이 이상한가? 여기 눈앞에 글자가 떠올랐어.”
“뭐라고 써져있어요?”
“무슨 레벨이 올랐다고 하는데…….”
“잘하셨어요. 좀비 열 마리를 잡을 때마다 레벨이 올라갈 거예요. 혹시 힘이 세지거나 몸이 가벼워지진 않으셨어요?”
“음, 아까는 좀 지쳤는데 지금은 괜찮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레벨이 오르면서 체력이 붙으셨나 보네요.”
“체력?”
이대근은 놀라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마루를 쳐다봤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그러게요. 저희도 무슨 게임 같아서 놀랐어요.”
“그럼 너희들도 레벨이라는 것이 오른 거야?”
“예. 저도 민정이도 레벨이 올라서 몸이 강하고 튼튼해졌어요.”
“그럼 다른 사람도 좀비를 열 마리씩 잡으면 우리처럼 레벨이 오르겠네?”
“맞아요. 하지만 일단은 우리 가족과 여기 이웃들만 아는 것으로 하는 게 좋겠어요. 그다음은 나중에 회의로 결정하세요.”
“알았다.”
마루의 말에 이대근은 쉽게 동의했다.
아버지 다음은 당연히 형 태인과 동생 재용이었다.
민정과 이대근이 했던 방식과 동일하게 태인과 재용도 좀비 열 마리를 잡고 레벨 업을 했다.
그걸 지켜보던 이웃들도 이제는 꼭 해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중간에 조금 문제가 있었다.
먼저 가족을 생각하는 마루로 인해 어머니 김영희가 선택되자 반발한 것이다.
“남자들만 하면 됐지 왜 여자들까지 하라고 그래요?”
“어허! 솔선수범 몰라? 그리고 좀비 앞에서 남자 여자가 어디 있어?”
“당신과 아이들이 지켜주면 되잖아요. 난 무서워서 못해요.”
김영희의 반항은 생각보다 완강했다.
평생 누굴 해코지해 본 적이 없으신 분이니… 아무리 좀비라고 해도 창으로 머리를 꿰뚫어 버리는 짓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좀비들이 남녀를 가리고 공격하는 것도 아니다.
길게 한숨을 내쉬던 이대근이 심통이 잔뜩 나있는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앙탈을 부리는 몸을 부여잡고 귀에다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단박에 그녀의 태도가 달라졌다.
“마루야! 뭐 하고 있냐? 빨리 좀비 몰아와라.”
“예? 아! 네.”
마루는 놀랍다는 듯 이대근을 쳐다봤다.
정말 뭐라고 속삭였는지 꼭 듣고 싶었다.
그는 차단 문을 열고 좀비 열 마리를 들였다.
그러고는 별운검으로 사정없이 팔다리를 잘라버렸다.
몸통만 남은 좀비들을 차례로 바닥에 늘어놓고 어머니 김영희를 데려왔다.
“창을 두 손으로 단단히 잡고 여기를 이렇게 푹 쑤셔요.”
“아, 알았다.”
당당하던 전과는 달리 창을 쥔 그녀의 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