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김영희도 좀비 열 마리를 처치하는 데 성공했다.
“어머!”
순간 김영희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마루가 그 모습을 보더니 이대근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이대근은 얼른 다가와 아내를 데리고 한쪽으로 물러났다.
김영희가 무사히 좀비 열 마리를 처리하자 윤아도 용기를 냈다.
다음은 진아, 서현의 차례로 결국 가족 모두가 레벨 업을 경험했다.
그제야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웃집 사람들이 이대근 주위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밥 먹고 쉬었다가 한 시간 후에 다시 모이도록 하겠습니다.”
마루는 대답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휴식을 선언했다.
덕분에 바빠진 것은 이대근이었다.
그는 아예 각 가정의 대표들만 따로 불러 모았다.
그런 후, 왜 좀비를 잡아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했다.
마루는 한소신과 우성존을 불러 레벨 업에 대한 정보를 알려줬다.
“네에? 그게 정말이에요?”
“그럼 나도 여섯 마리만 더 잡으면 레벨 업이네.”
둘은 놀라기는 했지만 금세 적응했다.
하긴 좀비로 인해 종말이 온 세상이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좀비 열 마리당 레벨 하나가 오른다면 백 마리 잡으면 레벨 열 개가 오른다는 소리잖아.”
“이렇게 되면 좀비의 씨가 마르지 않을까?”
마루는 손을 들어 두 사람의 대화를 일단 막았다.
“먼저 방벽 너머를 좀 살펴봐.”
“좀비가 꽤 많네요.”
“우리가 좀비를 그렇게 잡았는데도 숫자가 줄지 않았어요.”
그제야 그들도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뭔가 이상하지? 너희들 혹시 무슨 소식 들은 거 없냐?”
“인터넷에 서울에 좀비가 창궐했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TV에서는 날씨 방송만 주야장천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정보를 차단하는 것 같아요.”
도봉산과 수도권 주변에 떨어진 파이럿 혜성의 파편들로 인해, 거의 천만에 달하는 인구의 서울에도 드디어 좀비가 창궐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1퍼센트만 좀비가 돼도 10만, 10퍼센트면 100만이다.
잘못하면 가까운 서울에 헬 게이트가 열리는 셈이다.
“아무래도 정찰을 나가봐야겠어. 좀비가 끊임없이 유입되는 게 너무 수상하고 불안해.”
“문원동이 과천 시내에 있는 것도 아니고… 좀 외곽에 치우친 편인데도 계속 좀비가 들어오는 게 말이 안 되긴 하죠.”
“차라리 드론을 띄우죠.”
드론이란 말에 다들 귀가 솔깃해졌다.
“드론이 있어?”
“아까 누가 드론이 있다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럼 드론을 빌려서 정찰을 해보자.”
“예.”
한소신은 즉시 움직였다.
비슷한 또래의 청년 하나를 붙잡고 뭔가 얘기를 하더니 갑자기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성공한 모양이네요.”
“우리도 가보자.”
마루는 우성존을 데리고 한소신과 청년을 향해 다가갔다.
청년은 마루를 보더니 대뜸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요기 사는 황병길입니다.”
황병길은 서글서글한 눈매에 제법 다부진 몸을 가진 청년이었다.
그가 손으로 가리키는 집은 대망 슈퍼에서 대각선으로 위치한 이층집이었다.
“이마루입니다.”
마루도 손을 내밀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드론을 띄워서 정찰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갑자기 좀비들이 확 늘어난 게 이상해서 정찰을 해보려고요.”
“마침 제가 쓸 만한 드론 한 대를 사놨습니다. 당장 가서 가져오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황병길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제가 같이 가서 도와드릴게요.”
한소신이 센스 있게 끼어들었다.
마루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멀어졌다.
“어휴! 그런데 이놈들 냄새가 아주 지독하네요.”
“마치 시체 썩는 냄새 같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것 같지는 않네요.”
“이거 치우는 것도 큰일이다.”
“확 불태워 버릴까요?”
“여기서 불을 질렀다가는 다들 연기 때문에 질식해 죽겠다.”
“그럼 이 많은 것들을 전부 소각장으로 옮겨야겠네요.”
“그렇지.”
“아무래도 전장을 소각장 근처로 옮기는 게 좋겠어요.”
“그것도 한번 생각해 보자.”
우성존의 말대로 하면 확실히 편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일단은 안전이 제일 중요했다.
잠시 얘기를 나누는 사이!
한소신과 황병길이 돌아왔다.
그들의 손에는 꽤 근사해 보이는 드론 하나와 리모트 컨트롤러가 들려있었다.
“일단 저희 방으로 가시죠.”
한소신은 마루의 눈치를 보며 황병길을 자신이 묵고 있는 건넛집 2층으로 초대했다.
마루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반색을 하며 황병길을 끌고 갔다.
“라면이라도 끓여올까요?”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 가서 삼각 김밥이라도 가져와라.”
“네.”
우성존은 배가 고팠는지 밥부터 챙겼다.
황병길은 드론을 날릴 준비를 했다.
한소신은 창문을 활짝 열고 노트북을 켰다.
큼지막한 지도도 바닥에 한 장 깔았다.
마루는 드론을 쳐다보며 황병길에게 질문을 했다.
“이거 얼마나 멀리 날 수 있습니까?”
“최대 8킬로미터까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서 5킬로미터 안쪽으로 쓰는 것이 좋습니다.”
“그 정도면 과천 시내쯤은 살펴볼 수 있겠군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마 과천 전체를 커버하고도 남을 겁니다.”
전문 분야라서 그런지 황병길은 자신 있게 큰소리를 쳤다.
“비행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30분 정도입니다. 하지만 예비로 산 배터리가 하나 있으니 총 한 시간은 쓸 수 있습니다.”
그 정도면 일단 정찰은 충분할 것 같았다.
“마루 형, 그런데 어디부터 살펴볼 거예요?”
“먼저 과천 시내를 보고 서울대공원과 양재 IC를 살펴보자.”
“안양은요?”
“당연히 안양 쪽도 살펴봐야지.”
과천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울로 올라가는 북동쪽과 안양으로 내려가는 남서쪽으로 과천대로가 시원하게 뚫려있다.
그러니 서울 도봉산과 고양에 떨어진 파이럿 혜성의 파편으로 인해 생긴 좀비가 서울을 통해 내려올 수 있다.
물론 그 정도면 이미 서울은 좀비 천국이 되어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천과 수원에 떨어진 파이럿 혜성의 파편으로 발생한 좀비가 얼마든지 안양을 통해서 유입될 수 있었다.
바아아앙!
드론에 전원을 넣자 쿼드로터 특유의 소음을 내며 가볍게 날아올랐다.
황병길은 리모트 컨트롤러를 잡고는 조심스럽게 드론을 하늘로 띄웠다.
날개가 네 개라서 그런지 확실히 나는 모습이 안정적이었다.
“드론 카메라와 연결됐습니다. 모니터를 한번 보세요.”
“와우! 이거 영상이 장난이 아니네.”
“미국에서 1,500달러 주고 사온 겁니다.”
황병길이 은근히 가격 자랑을 했다.
과연 그가 자랑할 만큼 화질이 아주 뛰어났다.
이 정도면 굳이 군용 드론을 따로 만들지 않고 분대나 소대용으로 써도 괜찮을 듯싶었다.
드론은 힘차게 하늘을 날아 서쪽으로 이동했다.
그사이 우성존이 봉지가 빵빵할 정도로 많은 김밥을 가져왔다.
“슈퍼에 있는 김밥을 다 털어오면 어떻게 해?”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다 털어와. 빨리 안 먹으면 상한다고 챙겨주셨으니까 가져왔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먹자.”
마루는 한소신과 우성존의 실랑이를 한마디로 일축했다.
그는 김밥 한 줄을 꺼내 먼저 황병길에게 줬다.
황병길은 고맙다며 눈인사를 했다.
그들은 각종 김밥을 서로 나눠 먹으며 드론의 활용 방안에 대해 의논했다.
드론은 자동 모드로 해놓았는지 알아서 잘 날아갔다.
화면을 보니 어느새 과천 주공 아파트 단지를 넘고 있었다.
그제야 다들 긴장을 타며 모니터에 집중했다.
“저기 좀비들이 몰려있네.”
“좀 더 자세히 살펴봤으면 좋겠어요.”
“줌인을 하겠습니다.”
황병길은 버튼을 조작해서 간단히 줌인을 했다.
그러자 4단지와 5단지 사이를 돌아다니는 좀비들의 행렬이 보였다.
숫자가 꽤 많은 것이 확실히 좀비가 급격히 늘어난 것 같았다.
충분히 살펴봤다고 생각하자 마루는 과천시청을 보고 싶었다.
“과천시청 쪽으로 가보죠.”
“네.”
하늘을 날아가는 드론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빠르게 이동했다.
금세 과천시청에 도착한 드론을 조작해 그들은 주변 일대를 샅샅이 살펴봤다.
여기저기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과천시청 근처에 있는 군부대 하나가 좀비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로 인해 좀비들이 끊이지 않고 대량으로 유입되고 있었다.
역시 총은 함부로 사용할 것이 못 된다.
“서쪽으로 조금만 더 움직여 보세요.”
“좀비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군부대의 상황을 알고 싶으신 거죠?”
“예, 맞습니다.”
황병길은 마루의 의도를 정확하게 인지했다.
드론이 서쪽으로 방향을 틀고 유유히 날아갔다.
“아!”
“난리 났다.”
“저거 어떡하지?”
“얼마 못 버티겠어.”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네 명의 사내!
그들은 일제히 장탄식을 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높고 단단한 벽은 이미 처참히 무너져 있었다.
철조망도 갈기갈기 찢겨있었고 그 사이로 좀비의 물결이 밀려가고 있었다.
기관총이 미친 듯이 발사되고 사방에서 유탄이 떨어져 폭발했다.
클레이모어가 터지고 소이탄이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하지만 거대한 좀비의 해일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끝났네.”
“어휴! 끔찍하다.”
“저걸 무슨 수로 막지?”
나름 강력한 화력을 가지고 있는 군부대가 순식간에 좀비의 군단에 먹혀버리는 모습에 다들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마루는 그들과는 좀 다른 이유로 인해 놀랐다.
[해모수: 뭔가 이상해요. 철조망이 찢긴 것 보셨죠.] [마루: 좀비들이 어떻게 담을 무너뜨렸지?] [그렌: 좀비 중에 뭔가 특별한 놈이 섞여있는 것 같아.] [해모수: 특별하다니요?] [그렌: 아무래도 강화된 좀비나 구울이 있는 것 같아.] [마루: 강화 좀비? 구울?]마루의 머릿속에 판타지 소설에서 읽었던 강화 좀비와 구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해모수: 설마 좀비도 레벨 업을 하는 거예요?] [그렌: 꼭 레벨 업이라기보다 변태를 하거나 변종이 생겼다고 봐야지.] [해모수: 어쨌든 일반 좀비보다 강한 놈이 생겼다는 말이네요.] [마루: 좀비들을 박멸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말도 되겠어요.] [그렌: 그렇지.]그렌의 말에 마루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많은 좀비들이 우글대서 당장 강화 좀비나 구울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 셋이 한 가정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강화 좀비나 구울보다 더한 놈이 나타나지 말란 법도 없었다.
결국 마루가 레벨 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 하나가 여기에 있었다.
“마루 형, 그런데 좀비들이 위가 아니라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것 같아요.”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
한소신과 우성존이 간만에 의견 일치를 보았다.
마루도 그들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양재는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고 먼저 안양 쪽을 살펴봅시다.”
“예.”
황병길은 두말하지 않고 즉시 드론을 남서쪽으로 이동시켰다.
놀랍게도 과천대로를 따라 수천 마리의 좀비들이 북상하고 있었다.
“으음.”
“아!”
그들의 입에서 침통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안양이 이 정도면 수원은 이미 좀비 소굴이 됐겠네.”
“맞아. 하지만 인천에서 좀비들이 몰려왔을 수도 있지.”
“어느 쪽이든 과천이 위험해졌군.”
“그래도 양재를 한번 살펴봤으면 좋겠어.”
한소신과 우성존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분위기를 다운시켰다.
마루는 굳이 그들의 말에 동조하지 않고 모니터를 보는 데 집중했다.
[마루: 이거 문제가 심각해요.] [그렌: 아무래도 좀비 웨이브가 시작될 모양이야.]그렌의 목소리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해모수: 역시 인천이나 수원이 좀비들에게 털린 것 같죠?] [마루: 그럴 가능성이 높아. 아직 양재 쪽을 살펴보지 않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시작은 인천이나 수원 아니면 양쪽 모두였을 거야.] [해모수: 그럼 빨리 대책을 세워야죠.] [마루: 대책이 어디 있어? 그냥…….] [해모수: 존버하시게요?] [마루: 그, 그래. 최선을 다해 버텨봐야지.]해모수의 단어 사용이 갈수록 누구를 닮아갔다.
마루는 한마디 하려다가 그냥 내버려 뒀다.
지금은 그런 사소한 문제로 신경을 분산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렌: 어떻게 보면 버티는 게 정답일 수도 있어.] [해모수: 그게 무슨 뜻이에요?] [그렌: 벌써 잊었어? 좀비를 잡으면 레벨 업이 가능해지잖아.] [해모수: 아! 그런 수가 있었군요.] [마루: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요. 문원동에 들어온 좀비들을 빠르게 정리하면서 레벨 업을 하고 밖으로 나가서 좀비들을 적극적으로 사냥해야겠어요.]그렌의 말에 마루는 일말의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것이 확실한 해결책이 되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