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땀이라니? 그건 내가 더 많이 흘린 것 같소만.”
말이야 바른말이지, 대련 내내 죽어라 고생한 것은 그였다.
왕지현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유만만!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해모수는 그녀의 목덜미에 뜨거운 숨을 불어 넣었다.
왕지현은 달빛 아래 달뜬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어 댔다.
두 사람의 분위기가 핑크빛으로 블링블링해지자 마루와 그렌은 두 사람의 일에 관심을 끊고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마루: 확실히 왕지현은 무예의 고수예요.] [그렌: 가르치는 것부터 뭔가 차원이 다른 것 같아.] [마루: 사실 이화접목, 격산타우, 궁신탄영 등은 무술의 초식이 아니라 무예의 이론이에요. 이건 우리가 배운 모든 무예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죠.] [그렌: 나도 이번에 한 수 배웠어. 발경이라는 것을 마법에도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거든.] [마루: 그래요?]마법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마루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렌: 점혈이라는 수법도 아주 독특하고 참고할 만했어.] [마루: 나도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수법인 줄 알았는데… 고대부터 내려오는 기예란 말에 깜짝 놀랐어요.] [그렌: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왕지현의 설명이 너무 쉽고 구체적이라는 거야.] [마루: 과학적으로 아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줘서 저도 포스를 운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마루와 그렌은 왕지현이 해모수를 가르치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그들 중 누구도 현재 사부나 스승을 모셔서 배우고 있는 게 아니다.
책으로 보거나 그렌이 알려줘서 스스로 연구하고 수련하면서 깨친 것이다.
그나마 야엘이 최근에 람 오러 연공법과 람소드를 전수해 주면서 검술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가르침에 목말라 있었다.
특히 마루와 해모수는 형(形)과 식(式)은 알아도 핵심 요체(要諦)와 비전(祕傳)은 모르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렇게 무예의 고수가 나타나 꼭 필요한 부분을 단번에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니… 가뭄 끝에 내린 단비처럼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렌은 마법사라 마루와 해모수처럼, 포스와 오러를 이용한 무예를 쓰지 못한다.
하지만 마루와 해모수는 마이티 파워 포스·포스 연공법과 퓨즈·람 오러 연공법을 뺀 각종 무예들을 얼마든지 혼용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미 다엘 소드와 다엘 스텝, 바란창법을 배워 각각 자신에 맞게 고쳐 쓰고 있는 두 사람이다.
이제는 사랑과 애정으로 가득 찬, 야엘의 람소드와 왕지현의 곡산검법을 전수받으며 친절과 정성이 듬뿍 담긴 가르침에 나날이 실력을 키울 일만 남겨두고 있었다.
[마루: 왕지현은 얼마나 강한 고수일까요?] [그렌: 최소 엑설런트 상급은 넘은 것 같고… 엑설런트 최상급 아니면 소드 마스터가 아닐까?] [마루: 아무래도 그 정도는 되겠죠!] [그렌: 해모수가 살고 있는 이곳은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어서 확신이 서질 않아. 하지만 영성을 띠고 있는 영선단과 음양기를 다루는 것만 봐도 그 정도는 충분할 거야.]현대사회를 사는 마루와 달리 해모수와 그렌은 야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강자지존, 약육강식 그리고 인명 경시 풍조가 만연한 곳!
무조건 강한 힘을 가진 자가 만수무강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
그때 마치 당장이라도 운우지락을 나눌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이 떨어졌다.
“벌써 이렇게 어두워졌구려.”
“돌아가야 할 시간이에요.”
“혼자서 갈 수 있겠소?”
“매일 다니는 길인걸요.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어요.”
“그렇긴 하지만…….”
해모수는 그녀를 홀로 보내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왕지현의 표정도 그와 많이 다르지 않았다.
젊은 연인은 헤어지기 싫어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밤이 깊었다.
군역을 지고 있는 해모수는 정찰함대가 있는 성산포구로 돌아가야 한다.
왕지현도 마찬가지로 북현에 있는 해모수네 별채로 가봐야 했다.
두 사람은 애틋한 정에 이끌려 서로의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을 보내다 간신히 포옹을 풀고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다.
따그닥, 따그닥, 따그닥!
그녀를 태운 하얀 말이 달빛을 뒤로 하고 멀어져 간다.
임의 마음을 품고 가는 여인의 가슴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매일 밤 이렇게 만나고 있는데도 너무나 보고 싶다.
아니 만나고 있는 중인데도 그리움에 애가 닳는다.
첫사랑의 늪에 빠진 여인의 앞으로 달빛이 비친다.
우두두두두두…….
벌써 그녀가 그리워졌는지 혹여 시야에서 놓칠세라, 사내는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했다.
다시 상봉한 남녀!
그렇게 젊은 연인은 밤이 새도록 서로의 손을 쉬이 놓지 못했다.
* * *
“아니 이게 뭐야?”
“왜구의 관선은 어디 가고… 이런 희한한 배가 튀어나왔어.”
“우리가 몰 수 있는 거야?”
“이게 앞으로 우리가 타야 할 배가 맞습니까?”
성산포구 앞에 모인 정찰함대 대원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떠들어 댔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여기가 시장인지 포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에도 해모수는 묵묵히 배만 쳐다봤다.
사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왜구의 관선, 아니 개조선의 생경함이 할 말을 잊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 사람, 아니 한 영혼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마루: 이야! 이건 완전히 스쿠너를 닮았네.] [그렌: 스쿠너가 뭐야?] [마루: 대항해 시대에 나오는 범선의 일종이에요.] [해모수: 그러니까 그게 도대체 뭐냐고요?]해모수는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를 높였다.
마루는 두 사람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스쿠너(schooner)는 두 개 이상의 마스트에 삼각돛을 달고 있는 범선의 형태를 말한다.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네덜란드가 최초로 사용했으며 미국의 독립 전쟁 때 북미에 퍼져 발전했다.
스쿠너의 장점은 소수의 선원으로도 돛을 쉽게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역풍에도 속도가 아주 준수해 연안상선이나 어선 등에 폭넓게 사용됐다.
풍향의 변동이 심하고 거센 지역을 항해하는 데 유리하여 서아프리카에서 북미를 오가는 남해안의 노예무역 루트는 대부분 스쿠너를 이용했다.
[해모수: 그러니까 이게 나중에 만들어지는 배란 말이죠?] [마루: 맞아. 물론 조금 더 손을 봐야겠지만 기능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해모수: 그럼 왜구의 관선보다는 훨씬 좋은 배가 된 거잖아요.] [마루: 당연하지. 속도가 빨라서 잘만 운영하면 왜구의 배가 아예 쫓아올 생각도 하지 못할 거야.]그제야 해모수의 굳은 얼굴이 좀 펴졌다.
[그렌: 왜구의 관선보다 돛이 좀 많은 거 아냐?] [마루: 돛대도 하나 더 세웠고 모두 가프 세일을 달았어요. 배 앞쪽으로 바우스프릿(bowsprit)을 달아 지브(Jib)도 두 장 달았고, 꼭대기에 견시수가 올라갈 자리도 마련해 놨네요.]가프 세일이니 지브니 바우스프릿이니…….
그렌과 해모수는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소한 이 배가 마루가 원한 대로 잘 개조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모수: 이거 정말 우리가 운용할 수 있을까요?] [마루: 물론이지. 그걸 말이라고 해?] [그렌: 아 참! 왕지현이 무역선을 탔다고 하지 않았나? 도움을 청해봐!] [해모수: 안 그래도 도와주겠다고 저렇게 나와있잖아요.]왕지현은 개조선에 관심이 많은지 배 구석구석을 열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녀는 병사들이 입는 군복과 비슷한 옷을 입었다.
가죽 갑옷을 걸치고 투구도 썼다.
안면 가리개로 얼굴을 가리고 두 눈만 밖으로 내놨다.
그래서 얼핏 보면 같은 병사로 보였다.
[마루: 해모수, 겁먹지 말고 일단 배부터 띄워!] [그렌: 그래. 바다로 나가서 시험 운항을 해보자.] [마루: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 실수해 가며 배우는 거지.] [해모수: 에휴! 알겠어요.]해모수는 마루와 그렌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사실 작은 어선밖에 타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왜구의 관선을 모는 것은 만용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제 그보다 더한, 아니 아예 생소한 개조선을 타야 했다.
겁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김만덕이 이럴 줄 알았는지 무역선을 오래 탄 숙련된 선원들을 보내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개조선이 생경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출항 준비!”
“출항을 준비해라!”
“출항 준비를 하랍신다.”
해모수가 명령을 내리자 소기들이 복창하고 이내 대원들까지 차례로 복창했다.
걱정이 태산 같던 그들도 명령이 떨어지자 재빠르게 움직였다.
일단 개조선 안으로 물통과 식량을 들이기 시작했다.
각종 무기와 화기 및 화약이 실렸다.
여분으로 돛을 싣고 수리할 목재와 도구들도 챙겼다.
정찰함대의 대원 중 열 명이 남아 포구를 지키고 나머지 사십 명이 배에 탔다.
그중 반이 아래층으로 내려가 노잡이가 됐다.
스쿠너를 닮았지만 개조선은 엄연히 갤리선처럼 노를 저을 수 있었다.
숙련된 선원들도 얼른 개조선에 올라타 이것저것 살피기에 바빴다.
아직 익숙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용도와 방식으로 쓰이는지는 알고 있는 듯했다.
“왕 사부도 타시오.”
“예, 총기!”
왕지현은 일부러 굵은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느껴졌다.
그동안 밤에만 몰래 만났었는데 이제는 대낮에도 해모수와 함께 다닐 수 있게 됐다.
물론 들키면 도망가야 할지도 모른다.
또한 성산위에 걸리면 해모수에게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개조선 운항을 도와주는 항해사라고 핑계를 대볼 생각이다.
해모수는 대원들에게 왕지현을 외부에서 초빙한 무사부로 소개했다.
물론 거짓말은 아니다.
실제로 그녀가 정찰함대의 대원들에게 무술을 가르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진 삼총사와 그의 직속인 홍유와 강조는 그녀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굳이 반대를 하지 않는 것은 왕지현이 보기 드문 무예의 고수였기 때문이다.
왜구와의 싸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려는 눈물겨운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했다.
[마루: 이제는 아주 대놓고 데이트를 즐기네.] [그렌: 나중에 들키면 어떻게 하려고 저러지?] [해모수: 핑계는 많아요. 포구를 같이 쓰는 어부를 잠시 태웠다고 해도 되고 운항을 도와줄 항해사라고 해도 될 거예요.] [마루: 너 혹시 수틀리면 그냥 다 엎어버리고 도망갈 생각 아니야?] [해모수: 크흠, 뭐 그런 생각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사랑에 눈이 먼 가여운 청춘!
확실히 막 나갈 생각까지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렌: 그래도 해모수 곁에 왕지현이 같이 있는 게 안심이 되네.] [마루: 솔직히 그건 저도 부인할 수 없네요. 아무리 작열탄과 유탄, 산탄포와 화전이 있다고 해도 왜구와 전투를 벌일 생각을 하면 많이 불안해져요.] [해모수: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긴장되잖아요.] [마루: 하하하! 긴장할 것 없어. 급하면 소드 마스터가 알아서 도와줄 거야.] [해모수: 소드 마스터요?] [그렌: 크흐흐!] [마루: 푸하하!]해모수는 무슨 소린지 전혀 못 알아들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그렌과 마루는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마루: 그나저나 해모수를 위해 헤이스트와 스톤 스킨을 인챈트해 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렌: 맞아.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어.] [해모수: 무슨 상황요?] [마루: 아! 왕지현!]마루는 그렌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그렌: 그래. 맞아. 왕지현이 있잖아.] [마루: 혹시 내 몸에 새긴 문신처럼 마나 집적진과 실드 마법진을 새기려는 거예요?] [그렌: 물론 그것도 가능하지. 하지만 그건 마루가 사는 세상처럼 마나가 아주 희박했을 때나 쓰는 방법이야. 이곳은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 [해모수: 그럼 어떻게 하려고요?] [그렌: 당연히 아티팩트를 만들어야지.] [마루: 마법 아이템을 만든다고요!]마루와 해모수는 조금 의아해했으나 그렌은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렌: 전에는 불가능했는데… 이제는 나도 5서클에 가까운 마나를 모았어. 그에 따라 마법진도 중급 마법진을 쓸 수 있게 됐어.] [마루: 아! 그런 뜻이구나.] [해모수: 그럼 이제 나도 마법을 날릴 수 있게 되는 거예요?]해모수의 눈이 갑자기 별빛처럼 초롱초롱해졌다.
[그렌: 물론 그 정도는 아니야. 당장은 급한 대로 차고 있는 청동 팔찌에다 헤이스트와 스톤 스킨, 아니 아이언 스킨을 인챈트해 줄게.] [마루: 아이언 스킨이면 스톤 스킨보다 상위 버전인가요?] [그렌: 응, 솔직히 스톤 스킨이 보기에는 좀 안습이잖아.]마루는 그 모습이 절로 상상이 되는지 고개가 자동으로 끄덕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