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총원 전투 배치!”
“예에?”
홍유도 도망칠 생각을 했었나 보다.
해모수의 명령에 반응하지 못하고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전투준비를 하란 말 못 들었어?”
“아! 예, 총원 전투 배치!”
그가 호통을 치고 나서야 홍유도 정신을 차리고 복창했다.
“총원 전투 배치!”
“총원 전투 배치!”
복창을 하는 대원들의 표정에 숨길 수 없는 공포가 물들었다.
이대로는 전투에 들어가면 필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모수가 목소리에 오러를 섞으며 크게 외쳤다.
“성산일호에 타고 있는 대원들은 들으라!”
마치 천둥이 치는 것처럼 우렁찬 목소리가 배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우리는 정찰함대의 대원이다. 최일선에서 왜구와 싸우는 정예군이란 말이다.”
해모수는 순식간에 정찰함대 대원들을 수군의 정예군로 탈바꿈시켜 버렸다.
“여기가 사지(死地)인 줄도 모르고 다가오는 저 허접한 해적 놈들을 보라! 저건 병선도 아니고 어선을 개조한 것에 불과하다.”
상선을 개조한 해적선이긴 하지만 절대 어선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기를 올리기 위해 적당한 뻥은 어디를 가나 꼭 필요했다.
“크기도 작고 해적들의 숫자도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다. 세 척이라고는 하나 각종 화기로 무장한 우리 전선(戰船)이 패할 이유는 전혀 없다. 모두 나를 믿고 해적들을 단번에 쓸어버리자!”
“와아아아!”
해모수의 짧은 연설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원들은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물론 여진 삼총사와 홍유, 강조가 선동한 부분이 크긴 했다.
하지만 대원들도 지금 사기에서 밀리면 질 수도 있다는 절박감이 크게 작용했다.
“해 총기, 굳이 정면으로 셋과 싸울 필요는 없어요.”
“바다에서 유투술이라도 쓰라는 말처럼 들리는군.”
“맞습니다.”
왕지현은 그의 옆에 서서 조언을 해주었다.
해모수는 사람들이 보고 있는 관계로 편하게 말을 놓았다.
“강조, 배를 우측으로 조금 틀어라!”
“예, 해 총기.”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성산일호는 곧바로 우측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해적들은 도망치려는 줄 알고 얼른 방향을 바꿔서 쫓아왔다.
하지만 확실히 개조된 관선이 속도는 빨랐다.
“강조, 크게 우회해서 접근한다!”
“크게 우회하랍신다.”
강조가 복창을 하자 성산일호의 키를 잡고 있는 숙련된 선원들이 즉시 이에 맞춰 배를 움직였다.
“선측에 방패를 세우고 적의 도선에 대비하라!”
“선측에 방패를 세우고 적의 도선에 대비하라!”
해모수의 말 그대로 대원들이 복창을 하며 빠르게 움직였다.
그때 홍유가 슬며시 다가와 물었다.
“화전(火箭)을 쓸까요?”
“아니야. 굳이 그렇게 할 필요 없어.”
“그럼 해적들과 근접전을 벌이시겠다는 말입니까?”
“꼭 그렇게 할 생각은 아니야. 활과 쇠뇌를 준비하고 혹시 모르니 강노와 연노도 일단 준비해 놔!”
“예, 해 총기.”
홍유가 해모수의 명령을 받아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해모수는 손으로 여진 삼총사를 불러들였다.
“너희 셋은 산탄포를 쏠 준비를 해!”
“유탄과 작열탄은 안 쓰나요?”
“음, 그건 나중에 상황을 봐가면서 쓰도록 하자.”
“화전은 정말 안 쏠 겁니까? 해전은 역시 화전이 제일 좋다던데.”
“해적선 다 태워먹으면 우린 누구한테 수고한 비용을 보상받아?”
“예에? 설마 해적선을 나포하려는 겁니까?”
“당연하지. 너희들도 눈으로 봐서 알겠지만 저놈들 그냥 오합지졸이야. 왜구의 관선이라면 모를까 근본도 없는 한적(漢賊)에게 우리가 털릴 일 있냐?”
“크하하하! 그거야 그렇죠.”
왜구와 단병접전을 벌이는 짓은 그들도 겁이 났다.
하지만 딱 봐도 허접하기 그지없는 해적에겐 절대 질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해모수의 무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여진 삼총사다.
의심 없이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어버렸다.
여진 삼총사가 껄껄거리며 웃자 배의 분위기도 한결 좋아졌다.
전투에서 질 것 같으면 절대 웃을 수가 없다.
정찰함대의 수장인 해모수 총기와 소기인 여진 삼총사가 웃는 것을 보고 다들 이번 전투에서 승리할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여진 삼총사가 해모수의 명령을 받아 준비하러 간 사이.
왕지현이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해적들의 배는 우리 개조선보다 약간 작습니다. 상선을 개조한 것이 분명하고 갑판에 최소한 스물다섯 이상의 해적들이 보입니다.”
“그럼 셋을 합치면 일흔다섯 명쯤 되겠군.”
“전략을 세우셨습니까?”
“당연하지. 크게 원을 그리며 해적들이 계속 뒤에서 쫓아오게 만들 거야.”
“활과 쇠뇌로 쫓아오는 해적들을 공격하고요?”
“활과 쇠뇌만 있는 것은 아니지. 강노와 연노도 있어.”
왕지현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으로는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혹시 산탄포와 유탄을 믿고 있는 겁니까?”
“그건 최악의 경우에 쓸 거야. 화전도 마찬가지고.”
“그럼?”
“왕 사부와 내가 있잖아.”
“예에? 그건 너무 무모합니다.”
그제야 해모수의 생각을 읽은 왕지현이 기겁을 했다.
하지만 그는 따로 믿고 있는 것이 있어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해적선에 우리 둘만 뛰어드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알고 있소. 하지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왕 사부는 해적선이 기동하지 못하도록 잘 막기만 하시오.”
“아!”
그녀는 걱정으로 인해 목소리까지 떨려왔다.
해모수가 이 정도로 무모한 사람인 줄은 전혀 몰랐다.
“우현 전타!”
“우현 전타!”
해모수의 명령에 성산일호가 급하게 우측으로 선회했다.
그러자 속도를 이기지 못한 해적선들이 다급히 선회를 하느라 바빠졌다.
생각보다 개조한 관선의 회전력이 좋았다.
성산일호는 해적들을 향해 선미를 보이다가 다시 우현을 내보이며 선회했다.
해적선들은 그걸 따라 하느라 죽을 고생을 하고 있었다.
“속도를 늦춰라!”
“속도를 늦추랍신다.”
이제는 낚시질을 할 때다.
해모수는 배의 속도를 조금씩 늦추며 해적선을 꽁무니로 끌어들였다.
“왕 사부, 우리도 가서 활을 쏩시다.”
“예.”
왕지현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솔직히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하지만 여차하면 본신의 진산절예를 모조리 쏟아내어 버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차라리 편해졌다.
물론 해모수는 그녀가 생각하는 것만큼 무모하지 않았다.
아니 해모수를 코치하고 있는 마루가 그 정도로 막무가내는 아니었다.
[마루: 작전명 가랑비에 옷 젖는다, 실시!] [그렌: 그게 뭐야?] [해모수: 궁수들이 선미에서 대기 중이에요. 산탄포도 미리 옮겨놨어요.] [마루: 그럼 이제 남은 것은 활쏘기 실력을 발휘하는 것뿐이네.] [해모수: 정말 이걸로 될까요?] [마루: 되긴 뭐가 돼? 당연히 안 되지. 어차피 이건 해적의 숫자를 줄이는 용도에 불과해. 해적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약을 올리는 용도일 뿐이야.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게 되면 도망치려고 할 거야.] [그렌: 아하! 그때 받아버리려는 거군.]그렌의 말에 해모수가 그제야 작전의 개요를 이해했다.
해모수는 얼굴에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명령했다.
“일제사격!”
“일제사격!”
명령에 복창을 하는 궁수들, 아니 활을 든 대원들이 일제히 해적선을 향해 화살을 쏘아 날렸다.
쏴아아아!
비처럼 쏟아진 화살에 해적 몇 놈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뒤로 다른 해적선이 열심히 따라붙고 있었다.
“강조! 해적선에 포위되지 않도록 방향을 잘 틀어라!”
“알겠습니다. 해 총기.”
강조는 벌써 그의 생각을 읽은 듯,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진 삼총사도 해모수의 얼굴을 애타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산탄포를 빨리 써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쏴아아아!
비처럼 음악처럼!
화살은 허공을 날아 해적선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그때마다 갑판에 붉은 물감이 확 퍼져나갔다.
정말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딱 맞았다.
성산위의 정찰선인 줄도 모르고 약탈하려고 달려든 해적들!
그들은 일고의 동정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일 뿐이다.
피해가 커지자 쫓아오던 해적선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놈들이 슬쩍 뒤로 물러서고 뒤쪽에 있던 해적선이 앞으로 나왔다.
하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궁수들은 일제사격을 하고 해적은 쓰러지고…….
해적들이 쏜 화살은 성산일호에 닿지도 못하고 바닷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군이 가진 개량궁과 해적이 쏘는 활의 사거리 차이!
절묘한 시간 차, 아니 거리 차 공격이었다.
그 싸움에 뛰어난 궁술의 전문가 한 명이 끼어들었다.
핑, 핑, 피잉, 핑핑핑…….
왕지현이 개량궁을 들고 활을 쏘기 시작했다.
거리는 전혀 상관이 없는 듯 그녀의 화살은 쏘는 족족 해적들에게 명중됐다.
처음에는 활쏘기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는 감을 제대로 잡았는지 점점 빠른 속사로 바뀌고 있었다.
해모수도 나름 활을 좀 쏘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속사와 정확도를 따라가기에는 많이 부족해 보였다.
“와아아아!”
사기가 충천했다.
아군은 전혀 피해가 없고 적들은 속속 쓰러지는 상황.
이렇게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또 있을까?
대원들은 피곤하지 않게 서로 교대해 가며 활을 쏘았다.
두 번째 해적선에서도 뭔가 느낀 게 있는지 급격히 속도를 늦췄다.
세 번째 해적선이 오지 않을까 했지만 벌써 눈치를 채고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왕 사부, 세 번째 해적선을 맡아주시오.”
“예, 명에 따르겠습니다.”
왕지현은 속으로 조금 미안해졌다.
이렇게 간단하게 해적을 무력화시킬 줄 모르고 오해를 했던 것이다.
해모수는 그녀의 맘도 모르고 단호하게 말했다.
“난 두 번째 해적선으로 가겠다. 홍유에게 성산일호의 지휘권을 넘긴다. 우리가 내린 후 첫 번째 해적선으로 가서 산타포를 쏴라. 배가 침몰하지 않게 조심하고 인명 살상을 위주로 전투를 전개하라!”
“예, 해 총기.”
“알겠습니다. 해 총기.”
홍유와 강조를 비롯해 여진 삼총사가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좌현 전타!”
“좌현 전타!”
홍유가 해모수가 서있던 자리로 가서 섰다.
그러곤 능숙하게 명령을 내렸다.
성산일호는 힘차게 좌회전을 했다.
그러곤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해적선을 거꾸로 추격하기 시작했다.
“돛을 올려라!”
“돛을 올려라!”
커다란 삼각돛이 활짝 펴졌다.
그러자 이제와는 달리 빠른 속도로 파도를 헤치고 나갔다.
“먼저 다녀오겠습니다.”
“다치지 마시오.”
왕지현이 밝게 인사를 했다.
해모수는 그녀의 몸에 살짝 손을 대며 속삭이듯 말했다.
‘실드!’
몸속의 음양기가 그의 팔찌로 빠르게 밀려들어 갔다.
대번에 실드 마법진이 발동되며 왕지현의 몸을 감쌌다.
순간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야 했다.
“금강불괴… 선술(仙術)?”
“선술은 아니고. 그냥 좀 도움이 되는 술법이오.”
해모수는 흐드러지게 웃으며 깜짝 놀라는 왕지현의 등을 살짝 밀었다.
그러자 그녀는 옆으로 따라붙은 세 번째 해적선의 위로 떨어져 내렸다.
“안 돼!”
“사람이 떨어졌다.”
아직 상황을 모르는 대원들은 깜짝 놀랐다.
해모수가 사람을 밀어 해적선으로 떨어뜨리는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곧 왕지현이 환도를 뽑고 해적들을 도륙하기 시작하자 오히려 대원들은 크게 환호성을 터뜨렸다.
“와아아아!”
그녀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아니 너무도 아름다웠다.
마치 검무를 추는 것처럼 우아하고 예술적이었다.
허나 보기와는 달리 결과는 참혹했다.
해적의 팔다리가 잘리고 머리가 날아갔다.
사방으로 피가 분수처럼 터지고 갑판은 금세 붉게 물들어 갔다.
해적들은 연신 뒤로 밀려났다.
대적 불가의 강적을 만난 탓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해적선이 멀어지고 두 번째 해적선이 다가왔다.
해모수는 가볍게 몸을 풀며 대기했다.
해적들은 놀라서 활을 쏘고 투창을 날렸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정찰함대 대원들의 거친 보복을 불러들였다.
방패 뒤에 숨은 대원들은 개량궁과 개량 쇠뇌를 일제히 발사했다.
온갖 욕을 다 하며 날뛰던 해적들의 몸에 길고 짧은 화살들이 틀어박혔다.
이런 면에서 인간은 공평해진다.
누구나 화살을 맞으면 피를 흘리고 쓰러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지체가 높아도 화살 한 대 맞으면 바닥을 박박 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