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아닙니다. 새로 서클 갱신을 하러 왔습니다.”
“설마, 4서클! 아니 3서클에 오른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4서클인가?”
피라미는 도저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법사라는 자들은 원래 재능이 뛰어난 존재들이다.
그래서 가끔은 말도 안 되는 천재성을 발휘하며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드물기는 하지만 마탑에서도 이처럼 빠르게 서클을 올리는 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1서클에서 2서클, 또는 2서클에서 3서클로 오르는 과정에서나 볼 수 있다.
이처럼 3서클에 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마법사가 4서클로 바로 올라서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오해를 하고 계시는군요.”
“아! 역시 내가 생각했던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군.”
피라미는 그렌의 표정을 보고는 자신의 행동이 좀 경솔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이 다시 경악으로 물드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클 갱신을 하러 온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4서클이 아니라 5서클입니다.”
“뭐시라! 5, 5서클?”
“예, 5서클의 고위 마법사로 서클 갱신을 하러 왔습니다.”
“자, 자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말이 되건 안 되건, 그건 피라미 중급 마법사가 결정할 내용은 아니지요.”
너무 놀란 나머지 이제는 아예 불신의 눈빛으로 변해가는 피라미 마법사였다.
그 모습을 본 그렌은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거대한 마나의 유동이 일어났다.
그렌이 자신의 마력을 활짝 개방한 것이다.
동시에 그의 오른손이 위로 살짝 올라갔다.
“프로스트 노바!”
그렌이 시동어를 외치자 허공의 한 점에 차가운 냉기의 구체가 빠르게 생성됐다.
5서클의 광역 마법인 프로스트 노바였다.
쩌억, 쩌어억!
뽀드득, 뽀드드득!
강력한 마법의 위력으로 인해 그가 선 바닥을 기점으로 사방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며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나마 그렌이 프로스트 노바 마법을 정교하게 컨트롤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가만히 내버려 뒀다면 프릴 마탑의 에티오 지점 2층은 이미 얼음 굴로 변해버렸을 것이다.
마법사의 세계에서는 서클이 깡패다.
본격적인 실력 행사에 들어가자 피라미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입은 딱 벌어지고 눈은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세, 세상에! 프로스트 노바라니…….”
5서클의 광역 마법을 눈앞에서 직접 보게 된 피라미 마법사.
그는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팩트의 늪에 빠져버렸다.
다행히 피라미는 얼른 정신을 차렸다.
그가 프릴 마탑의 에티오 지점장이 된 것은 카드를 잘 쳐서 딴 게 아니었다.
마탑 안의 미묘한 정치와 힘의 역학 관계, 그리고 시세를 볼 줄 아는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직접 서클 갱신을 해줬던 3서클의 견습 마법사다.
그런데 무슨 기연을 얻었는지 4서클을 단번에 지나 벌써 5서클에 올랐다.
이런 무시무시한 성장 속도라면 앞으로 6서클, 심지어는 7서클의 대마법사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질투나 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늘에서 동아줄을 내려주고 잡으라며 힌트까지 주는 기회였다.
“내가 너무 놀라 잠깐 실례했네. 아니 실례했습니다.”
피라미는 얼른 일어나 말투까지 바꿔가며 몸을 추슬렀다.
태세 전환이 대륙 간 탄도미사일 급이었다.
“그럼 서클 갱신은 되는 겁니까? 아니면 다른 마법을 보여드릴까요?”
“아닙니다. 충분합니다. 5서클의 광역 마법인 프로스트 노바를 직접 봤는데 다른 마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태도가 깍듯하게 변한 피라미의 행동에 그렌은 마법을 즉시 캔슬시켰다.
하지만 그가 5서클의 광역 마법을 펼친 증거는 어느새 빙판이 된 바닥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렌은 굳이 그걸 없애려고 들지 않았다.
이미 자신은 5서클의 고위 마법사다.
프릴 마탑을 탈퇴하고 다른 마탑으로 가도 된다.
아마 오라는 곳은 줄을 서게 될 것이다.
카시오페라 왕국이 수틀리게 나와도 걱정할 게 없다.
그냥 다른 왕국으로 가버리면 된다.
5서클의 고위 마법사는 그 정도로 귀한 전략적인 재원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5서클에 오르는 것만으로 귀족의 작위, 그것도 자작을 내주진 않을 것이다.
“먼저 제가 추태를 부려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5서클에 오르신 것 축하드립니다.”
“고맙소!”
편하게 말을 하던 피라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는 공손히 말을 높이며 친절한 미소를 짓는 피라미만 존재했다.
그렌도 이에 맞춰 편하게 말을 놓았다.
5서클의 고위 마법사가 4서클의 중급 마법사에게 존대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렌 님께 이처럼 마나의 은총이 넘치니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머지않아 대마법사가 되실 모습이 벌써 궁금해집니다.”
“대마법사라…….”
그렌은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꼭 대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말이 쉽지… 그건 감히 쉽게 언급할 계제가 아니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꼭 대마법사가 돼야지.’
그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허나 겉으로는 아예 얘기조차 듣지 못한 척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죄송합니다만, 당장 저희 지부에서 내어드릴 수 있는 것은 이 목걸이뿐입니다.”
피라미는 일단 프릴 마탑의 문장이 새겨진 목걸이 하나를 내밀었다.
그렌은 목걸이를 받아 잘 살펴봤다.
겉으로는 별로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목걸이였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뒤쪽에 정밀하게 새겨진 텔레포트 마법진을 볼 수 있었다.
“이건 텔레포트 아티팩트가 아니오?”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맞습니다. 시동어를 외치는 즉시 이곳 프릴 마탑 에티오 지점으로 텔레포트시켜 주는 마법 목걸이입니다. 한 손에 한 명씩 최대 두 명까지 같이 이동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소모되는 마나로 인해 쿨 타임이 있어서 하루에 한 번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동력은 역시 마나석이겠군.”
“그렇습니다. 마법 목걸이 안에는 정제된 중급 마나석이 들어있습니다.”
“만약 중급 마나석이 아니라 상급 마나석을 넣는다면 하루에 두 번도 가능한 것이오?”
“물론입니다. 마법 목걸이에 새겨진 마법진은 다중 텔레포트 마법진입니다. 마나만 충분하다면 하루에 몇 번도 텔레포트가 가능합니다. 좌표도 프릴 마탑을 제외하고 최대 다섯 곳까지 저장할 수 있습니다.”
피라미는 담담하게 마법 목걸이에 대해 설명했다.
중급 마나석도 더럽게 비싸다.
하물며 상급 마나석이야 말해 무엇 하랴!
그는 설마 그렌이 상급 마나석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텔레포트 목걸이는 생각보다 굉장한 아티팩트였다.
5서클에 달하는 마나를 가지게 된 그렌!
그가 텔레포트 마법을 펼치는 게 불가능할 리 없었다.
하지만 텔레포트 마법진을 쓰려면 사전에 좌표를 계산해야 한다.
여러 가지 준비 과정과 도구도 필요하고 마지막엔 주문을 영창해야 한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다급한 상황에서 갑자기 사용하긴 곤란한 마법이었다.
그러나 이 마법 목걸이만 있으면, 언제든지 시동어만으로 비상 탈출이 가능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렌의 얼굴엔 절로 만족한 미소가 감돌았다.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마법사라면 마땅히 훌륭한 아티팩트를 선물 받고 기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은 아닙니다. 프릴 마탑에서 결재가 떨어지면 5서클 고위 마법사에게 어울리는 마법 로브와 마법 아이템이 제공되고 매달 지원금과 품위 유지비까지 나올 겁니다.”
“흐음, 그런 점은 아주 마음에 드는군.”
그렌은 더 이상 겸손을 떨지 않았다.
힘을 가지면 그 힘에 맞게 행동하면 된다.
받아들이는 입장인 피라미도 그것을 당연시했다.
“현재 묵고 있는 곳을 가르쳐 주시면 나중에 제가 직접 선물을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그렌은 피라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마탑의 사서로 항상 아싸로 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내 정치, 아니 마탑 내 정치 및 힘의 역학 관계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도 고위 마법사가 되어 마탑에서 출세를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었다.
이제 원하던 클래스에 오르게 됐으니 제대로 인싸가 한번 되어보고 싶었다.
피라미가 보이는 호의는 그런 면에서 미래에 성공을 예매한 그렌에게 미리 줄을 대기 위함이었다.
피라미는 임시로 그렌의 로브에 5서클 마법사의 표식을 새겨줬다.
그렌은 피라미에게 자신이 묵고 있는 여관의 이름을 가르쳐 주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1층으로 내려와 출입문 밖까지 나와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피라미의 모습!
“그렌 님, 그럼 편히 가십시오.”
그걸 본 2서클의 초보 마법사 프라이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나중에 그렌이 5서클에 오른 것을 알게 된 프라이는 결국 경악을 금치 못했다.
또한 한동안 배가 아파서 죽을 고생을 했다는 루머까지 들려왔다.
프릴 마탑의 에티오 지점장인 피라미의 채신머리를 뒤로하고 그렌과 야엘은 내성으로 향했다.
두 번째 목적지는 왕실 마법부였다.
중앙의 넓은 대로를 따라 걸어가자 내성 성문이 나타났다.
역시 한번 와본 곳이라 쉽게 찾아올 수 있었다.
호위병들이 둘을 보자 뭐라고 말을 걸려고 했다.
그렌은 반사적으로 라이트 마법을 시전했다.
마법을 보자 호위병들은 급히 튀어나오려는 말을 주워 삼켰다.
대신 그들의 얼굴에 가식적인 친절과 두려움이 서렸다.
그래도 내성의 호위병들은 조심스럽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마법사님, 목적지를 말씀해 주시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왕실 마법부로 간다.”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내성 호위병 하나가 친절하게 앞으로 나섰다.
그렌과 야엘은 호위병을 따라 왕실 마법부로 걸어갔다.
화려한 왕실 마법부 건물에 도착하자 그는 1쿠페를 꺼내 팁으로 건넸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호위병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당당히 왕실 마법부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마법사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창구의 여직원은 친절하게 물었다.
그렌은 담담하게 자신의 용건을 얘기했다.
“서클 등록을 하러 왔소.”
“몇 서클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5서클이오.”
“네, 그럼 이걸 작성해서 제출해 주세……. 예에? 5서클요?”
습관적으로 말을 하던 여직원이 깜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좌측으로, 아니 귀빈실로 제가 모시겠습니다.”
확실히 3서클을 등록할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녀는 창구에서 튀어나와 왼쪽에 나있는 문을 활짝 열었다.
귀빈실은 여전히 넓고 화려했다.
오는 사람들이 전부 마법사라 의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오겠습니다.”
그렌이 어디론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여직원은 몇 번인가 신신당부를 하고는 귀빈실 안쪽으로 사라졌다.
잠시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자 귀빈실 안쪽 문이 열렸다.
화려하고 세련된 의상을 입은 사내!
빈틈없고 깐깐한 표정의 사내가 시종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그렌은 아드민 남작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어? 그렌 준남작이 아니십니까?”
“이렇게 또 뵙게 됐습니다.”
왕실 마법부에서 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아드민 남작은 그렌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틴틴산에 계셔야 할 분이 왜 여기……. 설마 서클 등록을 하러 온 분이 그렌 님은 아니시죠?”
“왜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렌이 웃으면서 말하자 아드민이 멍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거렸다.
“혹시 새로운 서클 등록이 5서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꿀꺽!
아드민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말았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군요.”
“믿을 수 없다면 믿게 해드려야죠.”
그렌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마력을 개방했다.
즉시 귀빈실을 진동시키는 거대한 마나의 유동이 일어났다.
“프로스트 노바!”
그가 시동어를 말하자 허공의 한 점에 차가운 냉기의 구체가 생성되었다.
뽀드득, 뽀드득!
쩌억, 쩌어억!
그렌의 주변으로 서리가 내리며 빠르게 사방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 서슬 시퍼런 기세에 아드민은 자신도 모르게 다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 그만! 됐습니다. 그렌 님, 5서클의 광역 마법! 프로스트 노바 확인했습니다.”
마치 백기 투항을 하듯 아드민 남작은 빠른 속도로 말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