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민정의 숨소리가 점차 거칠어졌다.
마루는 그런 줄도 모르고 진아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뭔가 쌔한 느낌이 들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렌: 마루야, 정신 차려라!] [해모수: 마루 형, 화이팅!]마루는 그렌의 경고와 해모수의 원치 않는 응원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민정아! 나랑 같이 정찰 갈까?”
“어디로요?”
“과천대로 옆에 있는 문원 체육공원.”
“그래요.”
민정은 마루의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그럼 가서 활과 석궁 좀 가져와!”
“왜요?”
“원거리 타격이 어디까지 유효한지 확인 좀 해보려고.”
“알겠어요.”
민정은 진아 때문에 비록 화가 좀 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죄 없는 마루에게 화풀이하긴 싫었다.
그녀는 이를 앙다물고 이번만 못 본 척 넘어가 주기로 했다.
민정이 안채로 들어가자 그는 1차 방벽 안을 빠르게 한 바퀴 돌았다.
이제는 다들 좀비 잡는 게 익숙해졌다.
팀원들은 더 이상 좀비를 두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1차 방벽의 안쪽이 아닌, 바깥쪽의 좀비들을 향해 서슴없이 창을 내리찍었다.
그때 서쪽 방벽 위에 서현의 모습이 보였다.
“누나!”
마루는 번개같이 방벽 위로 뛰어 올라갔다.
“마루야!”
서현이 고개를 돌리며 반갑게 그를 맞았다.
그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이곳에 올라와 있었다.
마치 망부석이라도 되려는 듯 매형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 미안해! 그때 내가 따라갔어야 했는데…….”
“아니야. 네가 미안해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어.”
“같이 갔었다면 누나가 이렇게 힘들게 기다리지 않아도 됐을 거야.”
“그건 아니지. 네가 가면 우리 가족은 누가 지키니? 넌 오히려 빨리 다녀오라고 매형한테 차까지 내줬잖아.”
“그래도……”
마루는 서현을 보며 미안함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고맙다고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미안해! 내가 너한테 너무 걱정을 끼친 것 같구나.”
“아니야. 누나! 그런 말 하지 마! 매형이 오고 있다고 했으니까 분명히 오고 있을 거야.”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분명히 온다고 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이곳으로 오고 말 거야.”
서현은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
정말 가족만 아니었다면 매형을 쫓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좀비가 등장하는 상황에서 가족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형과 누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난다고 해도, 그는 분명 가족의 안전을 우선시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마루는 서현에게 더욱 미안한 감정이 생기는지도 몰랐다.
“누나, 나 지금 정찰 나갈 거야.”
“어디로?”
“과천대로 앞까지 가보려고.”
“마루야, 조심해! 알았지?”
“알았어. 누나도 이제 좀 들어가서 쉬어!”
“그럴게.”
마루의 위로가 조금은 전달이 됐는지 서현은 더 이상 방벽 위에 있지 않고 안채로 들어갔다.
‘아예 마을로 들어오는 길을 모두 막아버릴까?’
사실 2차 방벽을 아예 전부 막아버릴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마루의 가족을 비롯한 1차 방벽 안의 이웃들, 그러니까 이제는 사신회의 회원들이 레벨 업을 할 수가 없다.
안전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성장도 중요했다.
앞으로 언제 어디서 어떤 몬스터가 나타날지 모른다.
당장 강화 좀비나 구울이 나타나기만 해도 위험도가 대폭 올라갔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위험한 몬스터를 마루 혼자 다 처리할 수는 없다.
지난 사흘 동안!
마루는 수도 없이 좀비를 잡아 죽였다.
이미 죽은 놈들이니 다시 죽인다는 말이 좀 안 맞긴 하다.
어쨌든 덕분에 마루는 온라인 게임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폭렙을 경험했다.
상태 창을 열어서 확인해 보면 그 차이가 분명해진다.
트리니티(Trinity) 바이오 인터페이스 · 싱크로 11.5퍼센트
이름: 이마루(▲On) · 그렌(Off) · 해모수(Off)
종족: 인간
랭크: 최하급(F)
레벨: 28 / 69퍼센트
스탯: 근력 40(+4), 민첩 20(+4), 체력 20(+4), 지력 16(+9), 포스 15
그의 뒤를 민정이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아버지 이대근도 생각 외로 빠르게 레벨을 잘 올렸다.
이태인과 이재용 형제도 가족들의 레벨 업을 도우며 무섭게 좀비를 잡았다.
그로 인해 어머니 김영희와 누나 이서현 그리고 막내 여동생 윤아까지 전 가족이 모두 레벨 10을 찍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한소신과 우성존도 열렙을 했다.
이들은 열일을 하는 와중에 마루의 도움을 받아 틈틈이 경험치를 쌓아서 레벨 10을 넘길 수 있었다.
각 팀의 팀장들도 현재 레벨이 전원 두 자리 숫자였다.
팀원들도 적지 않은 수가 레벨 10을 찍고 기뻐했다.
이로 인해 그동안 소각장을 얼마나 왔다 갔다 했는지……
또 얼마나 많은 좀비의 사체를 태웠는지…….
그 고생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물론 가장 힘들었던 것은 좀비가 된 강준모를 소각시킬 때였다.
감정의 기복이 심해, 차마 끝까지 볼 수가 없어 눈을 돌려버린 기억이 났다.
“형님, 아니 마루 회장님!”
지난 일을 하나둘씩 돌이켜 보고 있을 때!
한소신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왔다.
“왜 그래? 무슨 일 났어?”
“일단 이것 좀 한번 보세요.”
한소신은 마루에게 대뜸 노트북을 안겨줬다.
그는 의문의 눈동자를 하고 엔터 키를 쳤다.
동영상이 틀어지고 요상한 화면이 떠올랐다.
“이 동그란 거는 다 뭐냐?”
“파이럿 혜성이 폭발한 것은 잘 아시죠.”
“당연하지. 폭발한 파이럿 혜성의 파편 일부가 땅에 떨어지고 좀비가 창궐해서 우리가 지금 이런 개고생을 하고 있는 거잖아.”
“맞아요. 그런데 동영상을 잘 보세요. 땅에 떨어진 것보다 훨씬 많은 파이럿 혜성 파편들이 지금 한곳으로 모이고 있대요.”
마루는 그제야 정색을 하고 동영상을 다시 봤다.
“그럼 이 반지같이 생긴 게 파이럿 혜성의 파편이란 말이야?”
“예, 동영상은 나사(NASA)에서 나온 거예요. 지금 전 세계로 암암리에 경고를 보내는 거죠.”
“무슨 경고?”
“파이럿 혜성이 폭발했으니 그 파편이 지구로 떨어지든가 아니면 우주로 날아가 버리든가 해야 할 게 아니에요. 그런데 이렇게 대기권에 수천, 수만 개의 파편이 모여들고 있어요. 이건 절대로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에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면?”
“앞으로 뭔가 비자연스러운 현상이 일어나겠죠.”
“아!”
마루는 입을 딱 벌리고 놀라야 했다.
동영상은 지금 대기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놀라운 기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렌: 설마 아니겠지.] [해모수: 뭔 소리예요?] [마루: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으면 말해주세요.] [그렌: 말하기조차 무서워!] [해모수: 아니 답답하게 왜 그러세요.]그렌은 자꾸 말하는 것을 망설였다.
그 모습이 오히려 해모수와 마루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결국 두 사람의 성화를 이기지 못한 그렌이 겨우 입을 열었다.
[그렌: 이건 그냥 내 생각일 뿐이야. 그러니 오해하지 말고 들어줘!] [마루: 알았으니까 빨리 말하기나 하세요.] [그렌: 아무래도 파이럿 혜성 파편이 초대형 게이트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아.] [해모수: 게이트라뇨?] [마루: 설마 텔레포트 마법진 같은 것을 만든다는 말씀이세요?] [그렌: 아니. 그보다 더한 영구적인 게이트를 만드는 것 같다는 말이야.] [해모수: 예에?]해모수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마루는 그동안 배운 지식으로 텔레포트 마법진과 게이트의 차이점을 생각했다.
[마루: 그러니까 저 하늘 위에 어딘지에 있는지도 모를 외계의 행성과 연결되는 영구적인 게이트가 생성되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렌: 맞아.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물론 100퍼센트 확실한 건 아니지만.] [해모수: 설마 판타지 소설에서 나오는 그 헬 게이트가 열리는 거예요?] [그렌: 헬 게이트?] [마루: 헬 게이트!]마루는 그렌의 말보다 해모수의 말에 더 놀라버렸다.
게이트라고 하니까 느낌이 잘 오지 않았다.
그런데 헬 게이트라고 하니까 바로 소름이 쫙 돋았다.
정말 헬 게이트가 열린다면……
진짜 악마와 마귀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눈앞을 가렸다.
“오빠!”
그때 민정이 다가와 그의 팔을 툭 쳤다.
덕분에 가까스로 정신 줄을 잡은 마루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민정은 마루의 한숨에 괜히 한소신을 노려봤다.
하지만 한소신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두 팔로 X 자를 만들며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마루: 이건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네.] [그렌: 맞아. 괜히 고민해 봐야 머리만 아파. 그리고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니까 일단은 좀비를 때려잡으면서 레벨을 올려!]생각해 보니 이건 자신이 고민한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었다.
해결할 능력도 없는 놈이 걱정한다고 달라질 게 없었다.
그보다는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낫다.
[해모수: 죄송해요. 괜히 제가 입방정을 떨었어요.] [마루: 아니야. 오히려 네 말에 정신이 번쩍 났어.]마루는 해모수의 사과를 가볍게 받아줬다.
한소신에게 노트북을 돌려주며 그는 한마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계속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변화가 생기면 지금처럼 바로 나한테 보고해 줘! 그리고 지원 팀을 좀 보강해라! 네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으니까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알아서 뽑아 써!”
“옛써!”
한소신은 그 말이 가장 기뻤다.
군기가 딱 들어간 자세로 경례까지 붙이며 참을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쫄따구 구하라니까 저렇게 좋을까!
“가자!”
“네.”
마루가 먼저 1차 방벽을 훌쩍 뛰어내렸다.
민정이 뒤이어 점프를 했다.
좀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왔다.
안 그래도 기분이 안 좋았다.
그런데 더러운 면상을 한 좀비를 보니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퍽, 파삭!
마루는 달려오는 좀비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때린 곳은 멀쩡한데 반대편이 터져나가며 뇌와 뇌수가 비산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과도하게 힘을 썼다는 것을 인지했다.
[해모수: 어? 지금 저거 봤어요?] [그렌: 응 봤어.] [해모수: 아무래도 격산타우를 쓴 것 같은데 …….] [그렌: 지금은 그냥 조용히 있도록 하자.] [해모수: 예.]그렌의 권유에 해모수는 그만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민정은 마루의 옆으로 바짝 붙어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확실히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는지 기분이 나빠 보였다.
그러나 그 이유를 몰라서 일단 묵묵히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이럴 때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나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민정은 말없이 그의 등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마루는 잠시 서서 한숨을 내쉬다가 빠르게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사신회는 본격적으로 세력 확장에 나섰다.
고문 이대근은 대망 슈퍼를 중심으로 이웃 주민들과 소통했다.
안 그래도 좀비로 인한 공포와 두려움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주민들이다.
1차 방벽 확장 소식과 사신회 가입 권유는 이들에게 구원의 동아줄과 같았다.
팀장과 팀원들은 각자 친하게 지내는 이웃들을 중심으로 가입을 권유했다.
380가구에 달하는 문원동 주민들!
사신회 회장이 공언한 대로, 가입하는 데 전혀 어려울 게 없었다.
특별한 문제가 있지 않는 한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그로 인해 사신회의 회원 숫자는 빠르게 증가했다.
이에 비례해 동서남북 4팀과 지원 팀도 빠르게 팀원의 숫자를 불려갔다.
지원 팀은 과천 공업사 박 사장을 부르는 데 성공했다.
대금은 돈이 아닌 모자란 식량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더불어 박 사장과 그의 가족들을 사신회로 영입했다.
좀비로 인해 빈집이 많이 생겨서 살 집을 제공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로 인해 과천 공업사 박 사장은 아주 의욕적으로 변했다.
1차 방벽이 빠르게 확장됐고 보강하는 일도 눈부시게 속도를 냈다.
식수도 급한 대로 해결했다.
문원동 우측 편에 있는 천주교 수녀회!
그곳에 남모르는 우물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지원 팀이 수녀 좀비, 아니 좀비가 된 수녀들을 정리해 가며 확인한 결과 파이프만 연결하면 얼마든지 지하수를 퍼 올릴 수 있었다.
문제는 지하수를 퍼 올리려면 반드시 전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은 전기가 있어서 괜찮지만… 나중에 전기가 끊기면 바로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었다.
지원 팀은 자전거 바퀴라도 달아서 수동으로 끌어 올리자는 아이디어까지 냈다.
하지만 매봉 약수터까지 파이프를 연결하지 않고도 식수를 구할 수 있다는 메리트 하나만으로도 분명히 이건 희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