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하늘이 수상했다.
아니 대기권에 떠있는 파이럿 혜성의 부서진 파편들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점점 뭉치며 거대한 원형의 링을 만들어 가는 모습!
아주 심상치가 않았다.
전 세계는 이 기이한 현상에 전례 없는 공포가 확산되어 갔다.
강대국들은 당장 핵을 쏴서 떨어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을 보유하지 않는 나라들은 대기권에 핵을 쏘면 결국 인류 공멸이라며 결사반대했다.
유엔은 매일 터지는 난상 토론장의 고성으로 난리도 아니었다.
당장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좀비 사태조차 진정될 기미가 없었다.
그런데 이 정체불명의 불길한 기현상은 지구촌을 아예 패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쏴!”
핑, 털썩!
“나이스 샷!”
“고마워요.”
민정이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마루를 쳐다봤다.
“레벨 업 했어?”
“네.”
“지금 레벨이 몇이지?”
“31요.”
그녀의 레벨이 어느새 30대를 넘어가고 있었다.
단순 계산으로 좀비를 310마리 이상 잡았다는 말이다.
“민정아! 수고했어.”
“천만에요. 오빠 덕분에 이렇게 쉽게 레벨 업을 하게 됐어요.”
“내 덕분이라니……. 사거리가 100미터나 되는데. 네가 활을 잘 쏜 거지.”
마루는 칠성검을 뽑으며 대답했다.
어느새 빠르게 다가온 좀비가 민정을 덮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피하려고 생각도 하지 않고 담담히 서있었다.
그는 민정의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칠성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훅, 철썩!
풀썩, 데굴데굴…….
공간을 가르는 차가운 칼날!
좀비의 목을 인정사정없이 쳐버렸다.
머리를 잃은 좀비의 몸과 잘린 머리통이 거의 동시에 땅에 떨어졌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머리통을 쳐다보며 마루는 다시 한번 가볍게 칠성검을 휘둘렀다.
좀비의 체액과 살점이 후드득 떨어져 나갔다.
칠성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그는 민정을 쳐다봤다.
그녀의 허리엔 자신이 준 별운검이 잘 걸려있었다.
최근에 람소드와 곡산검법을 배우기 시작한 마루!
그는 무기를 칠성검으로 바꿨다.
아무래도 람소드와 곡산검법은 곡도인 별운검보다는 양쪽에 날이 있는 칠성검과 더 잘 어울렸다.
“일단 100미터까지는 원거리 타격으로도 레벨 업이 가능하군.”
“그동안 좀비가 무서워서 나서지 못한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아주 좋아하겠어요.”
민정이 마루에게 다가와 그의 팔에 팔짱을 꼈다.
마루는 산책을 하듯 문원 체육공원을 가로질렀다.
“그래 봤자 실제 사거리는 50미터를 넘지 못할 거야.”
“하긴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정도 거리조차 벅찰 수 있어요.”
“결국 시작은 가까운 거리에서 쇠뇌로 하게 되겠지.”
“쇠뇌로 좀비를 잡아 레벨 업을 하다가 힘이 생기면 활을 잡고요.”
“맞아. 그게 앞으로 원거리 딜러의 루틴이 될 거야.”
“원거리 딜러요?”
그녀는 원거리 딜러라는 말에 주목했다.
“응, 원거리 딜러.”
“그 말 꽤 멋있는 거 같아요.”
“게임용어야.”
원거리 딜러, 근거리 딜러, 탱커, 누커, 힐러 등.
온라인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용어였다.
“원거리 딜러가 너무 많이 나와도 곤란한데…….”
“곤란할 게 뭐가 있어요. 레벨 업 하고 나면, 아니 힘이 생기고 나면 또 달라질 텐데요.”
“그렇지. 자신의 몸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 직접 힘을 쓰지 못해 안달이 나는 사람도 생기겠지.”
“맞아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포지션이 적당히 나눠져야 좀비를 상대하는 게 편한데. 언제까지 철제 방벽 위에서 좀비만 잡을 수는 없을 테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이지. 너도 강화 좀비와 구울을 직접 봤잖아.”
민정은 눈을 크게 뜨며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내가 그냥 보기만 했나요? 강화 좀비를 직접 잡기까지 했는데.”
“그렇지. 그러고 보면 우리 민정이는 참 겁이 없네.”
“무슨 소리에요? 내가 얼마나 겁이 많은데……. 오빠가 옆에 있으니까 든든해서 그렇죠.”
“정말?”
“그럼요.”
마루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어째 민정은 말하는 것도 참 예쁘게 한다.
두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할 사이도 없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자연스럽게 깍지가 껴지고 둘의 감정은 하나로 이어졌다.
마루와 민정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담을 넘었다.
길을 건너자 과천시 장애인 복지관이 보였다.
그 너머에 과천대로가 있었다.
크워어어!
캬흐으으!
사방에서 좀비들이 아우성을 치며 달려왔다.
과천대로 옆이라서 그런지 좀비들이 꽤 많았다.
마루는 즉시 바로 옆에 있는 과천 문화원으로 들어갔다.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눈에 불을 켜고 두 사람을 쫓아왔다.
일대일로 싸우면 절대 질 리가 없다.
하지만 좀비는 한두 마리가 무서운 것이 아니다.
바로 물량이 무서운 놈들이었다.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덤벼들면 막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한 방에 쓸려버린다.
“계단으로 올라가자.”
“예.”
그는 침착하게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이미 한바탕 좀비가 휩쓸고 지나갔는지 사방에 굳은 핏자국이 보였다.
둘은 3층을 지나 옥상 홀로 올라갔다.
민정이 확 트인 옥상 홀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여긴 별로네요.”
“밖으로 나가자.”
마루가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옥상 홀을 나가자 옥상정원이 보였다.
역시 가려진 곳이 없어서 싸우기 좋은 지형은 아니었다.
“차라리 저기 기둥 위로 올라가라.”
“좋아요. 같이 올라가요.”
“아니 너만 올라가라고.”
“네에?”
민정은 마루의 말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단호한 그의 태도에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그는 민정을 들어 훌쩍 기둥 위로 던졌다.
그녀는 균형을 잡고 기둥 위에 사뿐히 내려섰다.
“거기서 원거리 딜러 역할을 좀 해봐!”
“알았어요. 조심해요!”
“물론이지.”
민정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활을 들었다.
마루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그녀를 향해 미소를 날렸다.
“실드!”
그는 실드 마법진이 새겨진 복부에 손을 대고 작게 시동어를 외쳤다.
마나 집적진에 모인 마나가 마루의 전신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연노랑 빛이 호신강기처럼 일어나 마루의 전신을 부드럽게 감쌌다.
크하아아!
캬오오오!
계단을 통해 좀비들이 떼거리로 몰려오며 포효를 했다.
촤앙!
“와라!”
마루는 빠르게 칠성검을 뽑아 들고 외쳤다.
어그로가 잔뜩 끌리자 좀비들이 몰려왔다.
그는 지체 없이 달려오는 좀비의 목을 쳐버렸다.
차악, 털썩!
좀비의 목이 잘리자 뛰어오던 관성 그대로 쓰러지며 밀려왔다.
덕분에 뒤에서 달려오던 좀비들이 발에 걸려 우르르 넘어졌다.
그는 빠르게 주변을 한번 훑어보고 지형을 머릿속에 입력했다.
뒤로 한 보, 옆으로 한 보 물러나며 칠성검을 허공에 두 번 그었다.
사각, 서걱!
쿵, 풀썩!
공간을 가르는 직선에 걸린 좀비의 목이 갈라지며 검은 액체가 솟구쳤다.
목을 잃은 좀비 두 마리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무너져 내렸다.
‘어디 그동안 배운 검법들을 한번 시험해 볼까! 마이티 파워 포스!’
마루는 포스를 끌어내 전신으로 돌렸다.
그의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온몸에 힘이 솟구치는 쾌감도 맛볼 수 있었다.
‘다엘 소드! 람소드! 곡산검법!’
마루는 해모수와 그렌을 통해 배웠던 모든 검법들을 하나씩 차례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검광이 직선으로 빠르게 그어졌다가 작게 원을 그리며 세차게 몰아쳤다.
작은 원이 모여 큰 원을 이루고 다시 큰 원이 잘게 쪼개졌다.
파칭, 후두둑!
화악, 퍽, 촤아악!
좀비들의 팔다리가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목이 잘린 머리통이 허공으로 마구 떠올랐다.
그사이에 불어닥친 날카로운 바람이 좀비들의 얼굴을 짓이겨 버렸다.
타타탓, 촤아아아!
파츠츳, 쏴아아아!
직선과 원이 만나 아름다운 도형이 만들어졌다.
작은 파도가 커지더니 이내 거대한 칼날의 해일로 변했다.
좀비들의 머리가 직선, 대각선, 원을 그리며 잘렸다.
날카로운 점의 모임이 무자비하게 좀비의 대가리를 갈아버렸다.
마루의 움직임은 마치 우아한 춤과 같았다.
살랑살랑 직선으로 다가가다 원형으로 곡선을 그리며 물러났다.
미친 듯이 몰아치다 갑자기 산들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몸에 실드를 치고 전신에 포스를 돌린 상태다.
거기에 다엘 스텝과 검법의 고유 스텝들이 합쳐지니 그야말로 질풍노도에 풍운변색이 따로 없었다.
[해모수: 우와! 우리 마루 형이 달라졌어요.] [그렌: 세상에 마루의 실력이 이 정도였나?] [해모수: 괄목상대라는 말이 여기에 딱 맞네요.] [그렌: 그동안 놀고 있었던 게 아니구나.]해모수와 그렌은 마루의 검을 보고 크게 놀랐다.
한 번도 이 정도의 실력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포스와 검법의 조화가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었다.
[해모수: 이거 어째 나도 좀 분발해야겠는데요.] [그렌: 어쨌든 이걸 보니 안심이 된다.] [해모수: 포스를 조금 더 폭발적으로 썼으면 좋겠는데.] [그렌: 그러기엔 아직 포스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해모수와 그렌은 마루가 포스를 오러처럼 쓰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빌어먹을 과학 문명 탓에 지구엔 기와 마나가 형편없이 적었다.
오죽하면 그렌이 레무리아의 마나의 100분의 1도 안 된다고 한탄을 했겠는가!
한편 민정은 마루의 움직임을 보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원거리 딜러로 그를 지원을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어머나! 세상에!”
그녀의 눈은 경악에서 감동으로 물들어 갔다.
나중에는 당장이라도 하트가 뿅뿅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누군가에게 ‘이 사람이 바로 내 남자야!’라고 마구 자랑질을 하고 싶었다.
파츠츠츳, 파츠츠츳!
펑, 퍼퍼펑, 펑, 퍼퍼펑!
마루의 검무는 점점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제는 그의 주변 일대가 전부 검광으로 번뜩였다.
물샐틈없는 칼날의 파도가 좀비들을 휩쓸었다.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자근자근 다져지며 피 떡이 되어갔다.
“이얍!”
마루는 마지막 힘을 모아 칠성검을 좌에서 우로 세차게 휘둘렀다.
스촤하아!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공간을 가르는 일섬에 눈이 부신다.
초승달처럼 생긴 노란 빛이 전면으로 빗살처럼 뻗어나갔다.
예리한 빛의 파도에 걸린 십여 마리의 좀비들!
놈들의 몸은 마치 두부처럼 너무도 쉽게 두 쪽으로 갈라졌다.
순간 그는 휘청했다.
몸에서 뭔가가 쑥 빠져나가는 기분에 잠깐 현기증이 들었던 것이다.
[해모수: 이번에는 확실하네요.] [그렌: 그래. 확실히 포스를 검기처럼 쐈어.] [마루: 그게 무슨 소리예요?] [해모수: 혹시 못 본 거예요?] [마루: 뭘?] [그렌: 본인도 모르게 사용한 거구먼.]그제야 해모수와 그렌은 상황을 이해했다.
마루가 무의식적으로 포스를 사용했다는 점을 말이다.
해모수는 마루에게 방금 일어났던 일을 자세히 설명해 줬다.
마루는 두 사람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당장 또 해보라고 한다면 똑같이 할 자신은 없었다.
휘익, 후드드득!
마루는 허공으로 칠성검을 휘둘러 좀비의 피와 살점을 털어냈다.
옥상정원엔 더 이상 서있는 좀비를 찾을 수가 없었다.
수십, 아니 백 마리는 족히 넘을 것 같은 좀비들의 잘린 사체가 바닥을 도배하듯 펼쳐져 있었다.
“오빠!”
민정은 기둥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탁! 도도도도도!
그녀는 곧바로 마루에게 달려와 점프하듯 안겼다.
너무도 놀랍고 너무나 자랑스러운 남자 친구다.
방정맞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민정은 도저히 제어할 수가 없었다.
“왜 그래? 놀랐어?”
“아니에요. 너무 멋있어서 그래요.”
“하하하! 정말?”
“그럼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녀의 말에 살짝 당황했던 마루의 입가에 장난기가 감돌았다.
“이런! 결국 나의 멋짐에 반하고 말았구나. 무하하하!”
“아이 몰라요.”
정말 반해버렸는지 민정이 괜히 앙탈을 부렸다.
그는 사랑스러운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옥상정원은 백 마리도 넘는 좀비들이 토막 난 자리였다.
그것도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이런 더러운 곳에서 굳이 핑크빛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지는 않았다.
“철수하자.”
“네.”
마루의 한마디에 그들은 곧바로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간간이 나타나는 좀비는 민정의 창과 화살의 제물이 됐다.
그러다 뭔가 이상한 놈 하나를 발견했다.
“저게 뭐죠?”
“이제는 해골 뼈다귀도 돌아다니네.”
마루는 말을 하면서도 해골 뼈다귀의 정체를 간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