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7
17화
[해모수: 정말 날씬하고 잘생긴 종족이네요. 귀와 피부만 빼면 사람과 똑 같아요.] [그렌: 그래서 유사 인종이라고 부르지. 마루와 해모수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아마 존재하지 않을 거야.] [마루: 제가 사는 세상에는 유사 인종이나 수인족 없습니다.] [해모수: 저도 몬스터라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마루와 해모수가 동시에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그렌: 나도 그럴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어. 어쨌든 해모수의 체형이 호리호리하고 민첩성이 뛰어나니 다크 엘프의 비전이 잘 먹힐 거야.] [해모수: 그게 전부예요?] [그렌: 물론 아니지. 해모수를 위해서 특별히 인챈트 마법 두 가지를 준비했어. 헤이스트와 스톤 스킨이야. 이건 도서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당장이라도 해모수를 위해 인챈트해 줄 수 있어.] [해모수: 헤이스트, 스톤 스킨?]해모수는 어떤 마법인지 몰라서 다시 물었다.
그렌은 귀찮아하지 않고 친절하게 해모수에게 설명해 줬다.
[그렌: 헤이스트는 원래 시전자의 시간을 조절해서 빠르게 움직이게 만드는 상급 마법이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고위 마법사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야. 해모수가 쓰게 될 헤이스트는 마나로 육체를 크게 활성화시켜서 빠르게 반응할 수 있게 만드는 걸 말해. 특히 뇌를 자극해서 동체 시력과 반응속도를 높이면 마치 세상이 느리게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지. 그래서 헤이스트라고 부르는 거야.] [해모수: 뭔가 엄청난 마법 같긴 하네요.] [그렌: 하하하, 엄청난 마법이긴 하지. 하지만 고위 마법사들이 발현하는 헤이스트가 아니라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마법이야. 마나와 부작용이라는 대가 말이야.] [해모수: 마나가 소모된다는 의미라면 이해했어요. 그런데 부작용은 또 뭐예요?] [그렌: 그건 직접 한번 겪어보면 알아. 자꾸 사용하다 보면 견딜 만해질 거야. 그리고 육체가 단련되면 단련될수록 부작용도 확연하게 줄어드니까 꾸준히 수련을 하도록 해.]해모수는 그렌의 말을 대충 이해했다.
이번에는 스톤 스킨 마법이 궁금해졌다.
[해모수: 스톤 스킨은 뭐예요?] [그렌: 말 그대로 피부를 차돌처럼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이지. 어지간한 화살이나 창칼은 그냥 튕겨낼 정도니까 해모수에게는 꼭 필요한 인챈트 마법이야.] [해모수: 와! 그거 정말 대단하네요.] [그렌: 그렇지?]해모수가 그렌의 말에 크게 흥분하자 그렌은 만면에 아버지 미소를 지었다.
해모수는 부작용이 있다는 헤이스트 마법보다 스톤 스킨 마법이 어쩐지 더 유용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스톤 스킨 마법도 만능은 아니다.
명검이나 일정 강도 이상의 타격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아예 마법이 깨지기도 한다.
[그렌: 일단은 여기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한계야.] [마루: 고마워요.] [해모수: 그렌 아저씨, 정말 고마워요.] [그렌: 고맙기는 오히려 내가 더 고맙지. 마루와 해모수가 아니었다면 난 아마 1서클의 견습 마법사로 평생을 살아가야 했을 거야. 하지만 두 사람을 만나자마자 벌써 2서클의 초급 마법사가 됐어. 이제 2서클의 마법을 수련하고 마나를 충분하게 쌓는다면 3서클도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해. 그것에 비하면 내가 해주는 이런 작은 일은 정말 일도 아니지.] [마루: 그래도 고마운 것은 고마운 거예요.] [해모수: 맞아요. 아저씨가 없었다면 이런 것을 누가 구해주겠어요.] [그렌: 하하하, 둘이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너무 부끄러워진다. 어쨌든 앞으로 너희 둘을 위해 내가 최선을 다하도록 할게.] [마루: 감사합니다.] [해모수: 고맙습니다.]마루와 해모수가 거듭 감사 인사를 했다.
그렌은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받아본 게 언제였던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앉았다.
그러곤 마루와 해모수를 위해 차분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머릿속으로 내용을 잘 풀어서 설명해 줬다.
덕분에 마루와 해모수는 그리 어렵지 않게 각각의 연공법과 스킬을 착실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낼 수 있었다.
그렌도 몇 번을 반복해서 읽고 설명을 해주다 보니 오히려 마루와 해모수보다 빨리 책 내용을 몽땅 외워버리게 됐다.
그래서 책을 도로 서가에 가져다 두고 도서관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쉬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마루와 해모수의 이해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창문을 통해 스며든 달빛이 가득한 방!
배움의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 * *
동녘의 붉은 태양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장막처럼 내려앉은 어둠이 저항할수록, 세상은 미명(微明)에서 광명(光明)으로 바뀐다.
희미한 그림자가 점점 진해지고 짜리몽땅해져 간다.
시나브로 하늘은 파란 물감으로 번져간다.
차가운 새벽의 공기가 상큼하고 시원한 날이다.
그리 넓지 않은 옥상.
허름한 체육복을 입은 사내의 표정이 자못 비장하다.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기마 자세에서 왼발을 앞으로 내민다.
동시에 왼손을 안에서 바깥으로 뻗으며 원을 그린다.
다시 오른발을 앞으로 내민다.
같은 방식으로 안에서 바깥쪽으로, 오른손으로 원을 펼쳐낸다.
그렇게 일곱 걸음을 앞으로 나아간다.
동작을 무사히 마치자 이번엔 반대로… 뒷걸음질하며 역동작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작과 호흡의 일치다.
또한 각 동작에 맞춰서 수인(手印)을 달리해야 한다.
전후좌우(前後左右), 사방(四方)을 점하고…….
몸을 낮췄다 세우며 상하로 움직인다.
몇 번이나 머릿속에 새겨진 그림을 상기해 본다.
동작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며 수련하길 무려 세 시간!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워진다.
마지막 숨을 토하고 나서야 모든 차례가 끝난 걸 깨달았다.
“휴우우우우우!”
어느새 하늘은 굴절률이 가장 큰 빛의 파동으로 물들어 시원하고 이지적인 분위기의 푸른색을 연출하고 있다.
햇빛이 온 세상에 가득한 이 시간.
길거리에는 벌써 차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빨리, 후딱 지나가는지 알 수가 없다.
[마루: 이제 간신히 포스 연공법을 흉내 낼 수 있게 됐네요.] [그렌: 그 정도면 굉장히 잘하고 있는 거야.] [마루: 세 시간 동안 겨우 기본동작만 한 번 해내다니, 난 아무래도 자질이 부족한가 봐요.] [그렌: 포스 연공법은 자질이 중요한 게 아니야. 의지가 중요하지.]마루는 자신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렌은 끝까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용기를 북돋아 줬다.
그래서 더욱 고마웠다.
[마루: 포스 연공법을 계속하면 정말 포스를 일으킬 수 있나요?] [그렌: 물론이지. 아까도 말했지만 포스 연공법은 의지가 아주 중요해. 자신이 수련하고 있는 포스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무조건 실패하는 거야. 그러니까 스스로를 믿고 꾸준히 하도록 해. 그리고 오늘 처음 해봤잖아.] [마루: 그렇긴 하죠.] [그렌: 포스 연공법은 동공(動功)이지만 꾸준히 수련하면 심신(心身)이 모두 강하게 단련되는 효과가 있어. 심공(心功)이나 차크라 수련처럼 정신력이 강해지지. 무엇보다 경지에 들어서면 포스를 일으켜서 자유롭게 쓸 수가 있어.] [마루: 알겠어요. 알려주신 대로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꾸준하게 수련할게요.] [그렌: 그래. 포스를 일으키는 그날까지 파이팅!] [마루: 네. 파이팅!]그제야 마루의 얼굴에 그늘이 사라졌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포스 연공법으로 수련을 시작했으니…….
반드시 포스를 일으키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아침을 맛나게 먹고 옥상으로 다시 올라왔다.
사방이 뻥 뚫린 옥상에서 그가 살고 있는 문원동을 바라보며 마루는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봤다.
‘내가 나선다고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아마 그건 불가능하겠지.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을 거야. 그럼 난 어떻게 하지? 그냥 모른 척해야 하나? 나와 내 가족만 챙기고 말까? 물론 그게 제일 편하긴 할 거야. 하지만 과연 평생 후회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순 없겠지.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인터넷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경고를 주는 정도에 불과하구나.’
자신은 슈퍼맨이 아니다.
지구를 구할 수도 없고 그럴 능력도 안 된다.
아무리 바다를 덮을 듯 오지랖이 넓어도…….
80억 인구를 자랑하는 지구를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후회할 것만 같다.
‘친구들을 만나서 의논을 해봐야겠다. 선배도 만나보고 힘을 빌려보자. 그러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자금은 또 어디 가서 구하지? 뭘 하든 간에 역시 돈이 꼭 필요하구나.’
마루의 머릿속에 친구와 선배 몇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럴 때, 죽마고우(竹馬故友)인 절친들이 옆에 있으면 참 좋겠는데…….
다들 일이 너무 잘 풀려서 국내에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두 놈 모두 미국에 유학 갔다가 현지에서 만난 재미 동포 처녀들과 결혼을 했다.
한 놈은 LA에, 다른 한 놈은 뉴욕에서 살고 있다.
자신은 아직 제주도도 못 가봤는데…….
친구들은 벌써 태평양 너머 미국이라는 큰물에서 놀고 있다.
그러고 보니 미국으로 오기만 하면 제수씨들이 착한 동생들을 소개시켜 준다고 했었는데…….
아! 이제는 영원히 미국에 갈 일은 없을 것 같구나.
오늘은 참 날씨가 좋았다.
셔츠와 청바지에 점퍼만 하나 걸치고 밖을 나섰다.
먼 곳에 있는 절친 생각해 봐야 답도 나오지 않는다.
차라리 가까이 사는 이웃사촌을 공략하는 것이 더 빠르겠다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제일 먼저 과천에 살고 있는 후배이자, 아끼는 동생 한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루는 망설이지 않고 즉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준모야!”
―어? 마루 형?
“그래. 나다.”
―형, 반가워요. 어쩐 일로 아침에 저에게 전화를 다 주십니까?
“그냥 생각나서 전화해 봤다.”
―우와, 이거 영광입니다. 어디세요?
“지금 집에서 나왔어. 과천 시내로 가는 길이야.”
―혹시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없는데.”
―이상하네요. 저녁이라면 술이라도 마시러 가자고 전화를 했겠지만, 백주 대낮에 전화를 다 주시다니…….
살짝 꼬는 강준모의 말에 마루는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찼다.
“너 이번에 컴퓨터 수리점 오픈했다며?”
―아니 지금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이제 들은 것처럼 얘길 해요?
“어? 그거 오래됐냐?”
―어휴, 참! 내가 말을 말아야지. 나한테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니 그냥 이리 오세요. 점심이나 같이합시다.
“그래, 지금 갈게.”
―네, 올 때 붕어빵 좀 사오시구요.
“아이고, 여전히 붕어빵 마니아구나.”
―그냥 형만 보면 생각이 나서요.
“우리 서로 흑역사는 잊기로 하지 않았니?”
―아 참 그렇지. 미안해요. 그럼 이따 봅시다.
강준모가 놀라서 얼른 전화를 끊었다.
마루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마침 도착한 마을버스를 탔다.
흔들리는 창문으로 준모와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강준모는 학교 후배다.
과천에서 산다는 공통점 때문에 한때 같이 술도 많이 마시러 다녔다.
클럽에서 같이 만난 여자들과 동시에 썸을 타다 결국 차이고, 강가에 나란히 앉아 눈물의 붕어빵을 먹기도 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강준모가 붕어빵을 좋아하게 된 것이…….
‘사실대로 말하면 분명히 미쳤다고 할 테고 뭐라고 핑계를 대지?’
마루는 파이럿 혜성에 대해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고민이 됐다.
그는 지하철 4호선, 정부과천청사역 11번 출구에 있는 소방서 삼거리에서 내렸다.
버스 정거장 근처에서 일단 붕어빵을 적당히 사 들고, 과천 소방서 뒤편에 있는 그리 높지 않은 빌딩을 향해 걸어갔다.
제법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건물.
준모가 말했던 ‘에센 소프트’란 회사명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어라? 컴퓨터 수리점 아니잖아.’
마루는 생각보다 큰 규모에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기왕에 여기까지 온 거다.
칼을 뺏으면 무라도 베라고 했는데…….
그냥 갈 수도 없어 용감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현대적인, 모던한 디자인의 넓은 사무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봐도 이건 절대 컴퓨터 수리점이 아니다.
문 앞에 정장을 예쁘게 차려입은 여직원이 생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