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촤아아악, 촤아아악!
두 척의 배는 시원하게 파도를 가르며 부지런히 튀었다.
남서쪽으로 내려가자 오던 길과는 반대로 소장산도, 장산도, 광록도가 나타났다.
광록도를 지나 요동반도의 해안가를 타고 내려갔다.
“배를 멈춰라!”
“배를 멈추랍신다!”
그때 해모수가 갑자기 배를 멈췄다.
“모두 여기서 대기하라.”
배가 멈추자 해모수는 홍유와 강조를 불러 당부를 했다.
“홍유는 성산일호를 맡고 강조는 왜구의 관선을 맡는다.”
“어디 가십니까?”
“나와 왕 사부는 저리로 간다.”
“예에?”
홍유는 해모수의 손가락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해모수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해변!
그곳에는 왜구의 관선 한 척이 정박되어 있었다.
“설마 저걸 털러 간다는 말은 아니시죠?”
“맞는데. 시간 없으니까 자꾸 말 시키지 말고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를 주면 냉큼 와서 챙겨가라!”
“아, 알겠습니다.”
해모수는 홍유를 더 이상 상대해 주지 않고 여진 삼총사를 불렀다.
“즉시 조각배를 내리도록 해!”
“우리는요?”
“너희도 같이 간다.”
“알겠습니다.”
셋은 해모수의 말에 신이 났는지 번개처럼 움직였다.
마침 왜구의 관선에 쓸 만한 조각배가 보였다.
힘을 합쳐 조각배를 바다 위로 내리자 해모수와 왕지현이 먼저 탔다.
뒤이어 여진 삼총사가 조각배로 내려와 노를 잡았다.
“노는 내가 잡을게.”
“그러세요.”
노를 젓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여진 삼총사는 굳이 해모수가 하고 싶다는 걸 말리지 않았다.
하지만 왕지현은 달랐다.
“이쪽은 제가 맡죠.”
“고맙소.”
왕지현은 해모수의 옆에 앉아 노를 잡았다.
“갑시다.”
촤르락, 촤르락, 촤르락…….
조각배는 해모수와 왕지현이 젓는 노의 힘에 빠르게 나아갔다.
둘은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고 노를 젓는 속도를 딱딱 맞췄다.
또한 노를 젓는 힘과 속도도 굉장했다.
여진 삼총사는 그냥 조금 빠르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마치 물 위를 살짝 떠서 날아가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덕분에 해변에 정박한 왜구의 관선에 도착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피잉, 철썩, 피잉, 철썩!
왜구의 관선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하지만 힘과 정확도가 형편없어서 아예 근처로 오지도 못하고 바다에 떨어졌다.
그제야 여진 삼총사는 방패를 들어 화살 공격에 대비했다.
배가 가까워지자 점차 방패를 두들기는 화살이 많아졌다.
얼핏 보니 배에 남아있는 왜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관선만 점령할 수 있다면 최소한 왜구 80여 명의 발을 묶는 셈이었다.
“먼저 올라갈게. 천천히 올라와!”
“조심하십시오.”
해모수는 여진 삼총사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몸을 허공으로 쑥 뽑아 올렸다.
탁, 탁, 타다닥, 탁!
그는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두 손과 두 발을 이용했다.
관선의 옆면을 타고 거미처럼 움직여 빠르게 배 위로 기어 올라갔다.
해모수의 뒤를 이어 왕지현이 조각배 위에서 가볍게 몸을 던졌다.
그녀는 바닷물을 한번 걷어차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중간에 배의 옆면을 도움닫기로 한번 밟고는 사뿐하게 뱃전에 올라섰다.
“적이다.”
“목을 베라!”
“죽여라!”
왜구들이 두 사람을 향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해모수와 왕지현의 손에 환도가 들리자… 그때부터 일방적인 살육이 일어났다.
싸늘한 칼날이 번뜩이며 허공을 난도질했다.
그 범위에 들어온 놈들은 예외 없이 팔다리가 날아갔다.
머리통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심장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왕지현의 애정 어린 지도를 받는 해모수!
그의 칼날은 나날이 무섭게 예리해지고 있었다.
십여 명의 왜구들이 순식간에 도륙당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진 삼총사가 배 위로 올라왔다.
“성산일호에 연락해서 이거 나포하라고 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퉁그란의 말에 해모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소리야?”
“그냥 여기서 오는 놈들을 기다렸다가 하나씩 잡으면 될 것 같아서요.”
“뭐라고?”
생각해 보니 퉁그란의 계획도 나쁘지 않았다.
“좋은 생각인 것 같군. 그럼 셋이 알아서 처리해 봐!”
“또 어디 가시게요?”
“저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왜구의 관선을 하나 봐놓았어.”
그의 말은 마치 자신이 먹을 떡을 미리 찜해놓은 것처럼 들렸다.
왜구의 함대는 하나의 조직이 아니다.
해적들의 집합체일 뿐이다.
그래서 같이 뭉쳐있을 때는 위험하지만… 이렇게 약탈을 시작하게 되면 완전히 분리되어 따로 논다.
“그럼 우리도 가겠습니다.”
“성산일호에 확실히 인수인계를 하고 난 후에 오든지 말든지 해!”
“알겠습니다.”
여진 삼총사는 싸우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이었다.
해모수는 왕지현과 같이 조각배로 내려갔다.
혼자 두 개의 노를 잡고 빠르게 젓기 시작했다.
“저쪽 해안가로 가요.”
해안을 타고 계속 내려가려고 하던 그를 왕지현이 만류했다.
“뭍으로 가자고?”
“예, 그게 더 빠를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 그녀의 말도 맞았다.
뭐 어느 쪽으로 가든 목표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렇다고 왜구의 조각배가 뭉쳐있는 곳으로 바로 가지는 않았다.
이들은 이미 나포한 관선에서 나온 놈들이었다.
굳이 해모수가 정리하지 않아도 성산일호에서 알아서 해결할 것이다.
“바위 아래가 좋겠어요.”
그들은 툭 튀어나온 바위들이 많은 곳으로 갔다.
보통 이런 곳은 누구도 가까이 오려고 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암초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모수와 왕지현에게는 조금도 방해가 되지 못했다.
커다란 바위 앞에 도착하자 조각배를 힘으로 들어서 올려놓았다.
그들은 해변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멀리 왜구의 관선들이 모여있는 게 보였다.
“어라! 한 척이 아니었네.”
“적어도 세 척 이상이에요.”
“잘됐군.”
예전 같으면 겁을 집어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반가웠다.
몸에 살짝 땀이 나려고 할 즈음.
눈에 작은 포구 하나가 들어왔다.
해모수와 왕지현은 방향을 틀어 숲속으로 들어갔다.
사사삭, 사사삭, 사사삭…….
둘의 신형은 우거진 수풀 사이를 달리는 노루처럼 경쾌했다.
빠르게 풀을 스쳐가는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잔잔하게 깔렸다.
그늘진 수풀 아래에서 편하게 풀을 뜯던 꽃사슴들이 그들의 등장에 놀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저기예요.”
“벌써 마을 하나가 작살났군.”
숲이 끝나자 눈에 보이는 것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을이었다.
“다 잡을 건가요?”
“그래야지.”
“그럼 해안가부터 시작하죠.”
“좋아.”
왕지현의 눈동자가 전에 없이 싸늘했다.
눈에 보이는 마을은 이미 왜구들에 의해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해안가에 있는 왜구부터 시작해 거꾸로 거슬러 올라올 생각이었다.
해모수도 오늘 크게 살계를 열기로 했다.
왜구는 인류에게 백해무익한 해충이다.
사람 죽이기를 밥 먹듯이 하며 마을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강간했다.
게다가 주민들을 납치해 창녀로 쓰거나 노예로 팔아먹기까지 했다.
이런 놈들은 살아 숨 쉬는 그 자체로 패악이고 민폐다.
그러니 보는 족족 죽여 없애야 한다.
왜구들이 준동하기 시작한 초기!
한반도 중남부와 요동반도, 산동반도 일대가 집중적으로 노략질을 당했다.
나중에는 세력이 커지자 중국 대륙의 중부와 남부, 해남도가 쑥대밭이 됐다.
이들로 인해 동북아시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을까?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실드!”
해모수는 왕지현의 어깨에 손을 댔다.
그러곤 작게 시동어를 말했다.
몸속의 음양기가 청동 팔찌로 빠르게 흘러 들어갔다.
실드 마법진이 발동되며 왕지현의 전신을 감쌌다.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선술(仙術)!”
“실드라는 수법이오.”
“실드!”
왕지현이 그의 말을 따라 하자 해모수는 한 손으로 오른쪽 해안가를 가리켰다.
그녀가 무슨 뜻인지 알아먹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해모수는 왼쪽의 조각배를 맡기로 하고 작게 시동어를 말했다.
“아이언 스킨!”
아이언 스킨 마법진이 발동하자 청동 팔찌로 음양기가 쑤욱 빨려 들어갔다.
동시에 그의 피부가 서서히 황금빛으로 변해갔다.
“뭐야? 저놈!”
“겁도 없이 달려오는군.”
“죽여라!”
마을을 약탈한 열 명의 왜구들이 조각배에 짐을 싣고 있었다.
그들은 해모수가 홀로 달려들자 기가 막혔는지 비웃음을 날렸다.
사실 그는 쇠뇌부터 쏠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달려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비웃는 소리를 듣자 창을 꺼내 냅다 앞으로 던져버렸다.
휘익, 퍽, 퍼억!
창을 얼마나 세게 날렸는지 왜구의 가슴을 뚫고도 힘이 남아 뒤에 있는 놈까지 고치를 꿰듯 함께 뚫어버렸다.
“크아악!”
“컥!”
참혹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안색이 변한 왜구들이 칼을 들고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해모수의 환도는 이미 뽑힌 지 오래였다.
서걱, 사각, 스윽, 철썩…….
황금빛으로 빛나는 신형의 앞으로 싸늘한 칼날이 번뜩였다.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냉정한 환도에 이미 목이 잘린 시체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한 칼날의 폭주!
정확히 열 개의 수급을 따고서야 멈췄다.
해안가 모래 바닥은 왜구의 더러운 피로 붉게 물들었다.
휘익! 후드득!
해모수는 허공에 빠르게 한번 환도를 휘둘러 왜구의 피와 살점을 털어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왕지현도 마침 이쪽을 보고 있었다.
둘은 말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마을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두 사람은 중간에서 만나 함께 달렸다.
마을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강간한 왜구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왔다.
왕지현이 달려가면서 각궁을 들고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핑, 핑, 핑, 핑!
백발백중!
번개처럼 날아간 화살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목표에 명중했다.
두 사람이 놈들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뒤늦게 이마에 화살이 박힌 왜구들이 차례로 뒤로 넘어갔다.
“웬 놈이냐?”
그때 목소리에 제법 힘이 실린 낭인 하나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옷을 입은 것만 봐도 평범한 왜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놈은 상대를 너무 몰랐다.
해모수는 달리는 그대로 환도에 힘을 실어 빠르게 휘둘렀다.
번쩍!
마치 번개가 치듯 그의 칼날이 낭인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낭인은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급히 칼을 세로로 세웠다.
하지만 자신의 칼날에 걸리는 것은 전혀 없었다.
치이이익!
툭, 데굴데굴!
해모수와 왕지현이 낭인을 스쳐 지나가고 나서야, 낭인의 목이 잘리고 머리가 스르르 미끄러져 내리며 잘린 단면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땅에 떨어진 낭인의 머리통은 옆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이 왜, 언제 당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멋진 검기상인이었어요.”
왕지현이 한 손을 들어 그에게 엄지 척을 선물했다.
해모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적이다.”
“두 놈을 포위하라!”
“죽여라!”
“활을 쏴라!”
간만에 그녀에게 자랑질을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때마침 방해꾼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해모수는 왜구들을 향해 정면으로 거세게 돌진했다.
놀란 왜구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이미 기세에서 지고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왕지현도 그에 질세라 옆으로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두 사람이 거친 직선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자, 시선이 분산되며 순식간에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했다.
퍽! 와당탕, 쿵탕!
우드득, 빠각!
해모수가 왜구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와 어깨로 들이받았다.
왜구들의 몸이 일제히 허공을 날아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슴이 움푹 파이고 팔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기절한 그들은 아주 운이 좋은 편이었다.
차차창, 창창창, 차차창, 차차창…….
원을 그리면서 날아든 호접(胡蝶)!
그녀의 사나운 날갯짓에 왜구의 무기들이 전부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어지는 것은 자신의 목구멍을 붙잡고 쓰러지는 왜구들의 몸부림이었다.
언제 어떻게 당했는지 인지하지 못한 가운데 벌어진 참사였다.
“멈춰라!”
그때 마을 안에서 사무라이 하나가 달려왔다.
갑옷을 제대로 챙겨 입은 것만 봐도 왜구를 이끄는 우두머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가 멈추라고 하면 너도 멈추니?”
해모수는 대뜸 환도를 휘둘러 사무라이를 공격했다.
창!
놀랍게도 사무라이는 자신의 왜도로 그의 환도를 가볍게 막았다.
해모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살짝 자만했던 마음을 버리고 즉시 오러를 끌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