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피라미는 가격표를 내밀며 대놓고 생색을 냈다.
그렌은 그러려니 하고 가격표를 받고 살펴봤다.
예상보다 훨씬 가격이 비쌌다.
하지만 50퍼센트 할인을 받으면 나름 괜찮은 가격대였다.
무엇보다 아티팩트를 직접 제작하는 데 있어 시간을 대폭 절약할 수 있었다.
“좋소. 구입하도록 하겠소.”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아티팩트 반지 제작 세트 네 개, 목걸이 제작 세트 세 개, 프릴 팔찌 제작 세트 두 개에다 도구 세트 하나, 아머 제작 세트 한 개를 주시오.”
“알겠습니다. 즉시 대령하겠습니다.”
피라미는 그 자리에서 주문서를 작성해 직원에게 넘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산서와 함께 잘 포장된 아티팩트 제작 세트를 가져왔다.
이미 구매한 것들을 곧바로 인벤토리에 담았다.
그렌은 계산을 하려고 금화가 담긴 주머니를 꺼냈다.
그러자 피라미가 손을 들어 만류했다.
“잠깐만 계산을 하시기 전에 제 말도 좀 들어주십시오.”
“크흠, 좋소.”
그렌이 소파에 깊숙이 몸을 실었다.
피라미는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프릴 마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
잠깐 말을 끊자 그렌은 아무런 표정 없이 피라미를 쳐다봤다.
“먼저 5서클에 오른 것과 자작이 되신 것을 축하한다는 전문이 왔습니다.”
피라미는 자신의 마법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그렌이 받아서 읽어보니 격식에 맞춰 온갖 미사여구가 가득한 편지였다.
빠르게 읽고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피라미는 프릴 마탑의 상징이 새겨진 로브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프릴 마탑에서 주는 선물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상급 로브입니다.”
그제야 그렌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5서클의 고위 마법사를 위해 만든 상급 로브라면, 가격은 둘째 치고 인챈트되어 있는 마법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로브 자체가 마법사를 보호하기 위한 아티팩트의 총아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5서클의 고위 마법사인 레옹의 상급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그래서 크게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다만 두 개의 다른 마탑이 똑같은 상급 로브를 만드는 데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이미 상급 로브를 장비하고 계시니 더 이상 따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피라미가 잽싸게 손절을 해버렸다.
이미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렌이 동의한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피라미는 테이블 위에 놓인 계산서를 손에 쥐고 살짝 흔들었다.
“5서클 고위 마법사에게 마법 아이템을 제공한다고 했는데 기억하시죠?”
“물론이오.”
“오늘 구입하신 아티팩트 제작 세트와 도구 세트로 대신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하하하!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렌이 웃음을 터트리자 피라미는 긴장을 풀고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피라미는 자신에게만 특별히 내려온 프릴 마탑의 지시 사항을 떠올렸다.
‘……그렌 고위 마법사가 카시오페라 왕국을 비롯한 다른 왕국의 왕실 마탑에 회유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나서라. 특히 다른 마탑에서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면 즉시 차단하고 지원을 요청하라. 그렌 고위 마법사에 관한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선처리 후 보고하고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투입하라. 지점장의 재량 아래…….’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자잘한 지시 사항이 있었지만…….
그렌의 말이 귀에 들리자 피라미는 즉시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피라미 지점장!”
“네, 그렌 님! 말씀하십시오.”
그렌은 피라미의 눈을 쳐다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나한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눈빛이군요.”
“으음.”
“뭔지 모르지만 사람 답답하게 하지 말고 시원하게 말해보시오.”
피라미는 그렌이 뭔가 눈치챈 듯하자 마음을 다잡았다.
“그럼 그렌 님을 믿고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
피라미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혹시 왕실 마탑이나 다른 마탑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까?”
“아직 오지 않았소.”
그렌의 대답에 피라미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자 살짝 불안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과감하게 대놓고 물어보기로 했다.
“프릴 마탑을 나갈 생각이 있으십니까?”
“아! 그걸 걱정하고 있었군요.”
그렌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생각해 보니 자신이 프릴 마탑의 탑주라고 해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았다.
마탑의 사서로 있던 1서클의 견습 마법사!
어느 날 갑자기 몸 안에 드래곤이라도 둥지를 틀었는지 빠르게 5서클의 고위 마법사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 마법사의 나이가 이제 겨우 서른세 살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감히 상상도 못 할 기사였다.
그러니 애먼 놈에게 날아갈까 봐 불안하기도 했을 것이다.
“난 프릴 마탑에 전혀 불만이 없소. 그러니 괜히 쓸데없이 엉뚱한 일에 힘 빼지 마시오.”
“아! 알겠습니다.”
그렌의 딱 부러진 말에 피라미의 안색이 확 풀렸다.
“앞으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프릴 마탑 에티오 지점으로 오십시오. 프릴 마탑 본점에서 20퍼센트, 제 직권으로 30퍼센트, 도합 50퍼센트의 할인율을 적용해 드리겠습니다.”
“오오!”
그렌도 이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티팩트를 비롯한 각종 마법용품을 반값에 준다는 말은 그만큼 그렌을 높이 평가한다는 얘기였다.
물론 수익률이 90퍼센트가 넘는 폭리의 전형인 마법 아이템들이다.
절대 원가에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렌은 피라미의 제안에 호의가 물씬 솟아났다.
그렌은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입고 있던 레옹의 상급 로브를 벗어버렸다.
대신 프릴 마탑에서 선물한 상급 로브, 일명 프릴 로브를 걸쳤다.
간단한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피라미는 크게 안심이 되었다.
“앞으로 성심성의껏 잘 모시겠습니다. 불러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소. 프릴 마탑과 피라미 지점장의 호의를 잊지 않겠소.”
“감사합니다.”
선물을 잔뜩 준 것은 프릴 마탑과 피라미 지점장이었다.
그런데 어째 고맙다는 말이 그렌이 아닌 피라미의 입에서 나왔다.
이것으로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심지어는 아까 이동용 선반에 올려놓았던, 팔려고 내놓은 물건의 값까지 칼같이 계산해서 돈주머니를 쥐여줬다.
그렌과 야엘은 기분 좋게 프릴 마탑 지점을 나섰다.
피라미 지점장은 1층 출입구까지 나와서 공손히 인사했다.
급이 다른 그의 행동에 오지랖이 만렙인 프라이는 감히 다가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마스터! 너무 멋있으세요.”
“크흐흐! 내가 좀 멋있긴 하지.”
콩깍지가 제대로 쓰인 야엘의 말에 그렌도 뻔뻔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둘 모두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올라가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는 것도 아니니…….
뭐 둘만 좋으면 그만이었다.
왕실 마법부에 도착했다.
정중한 환대를 받으며 귀빈실을 차지했지만 아드민 남작은 볼 수 없었다.
급한 일이 있어서 왕궁으로 들어갔다는 얘기만 들었다.
그렌은 할 수 없이 창구 직원에게 야엘이 사용하던 방어구와 무기를 반납했다.
왕실 마법부 제2창고에서 보급 받았던 풀 플레이트 아머와 롱 소드였다.
물론 그것만 보급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중에 돌려주지 않아 뒤탈이 생길 만한 것은 이게 전부였다.
나머지는 전부 써버리거나 전투 중에 망실했다고 기록했다.
이것으로 그동안 왕실 마법부와 카르카스 요새 등에서 보급 받은 물품은 전부 그의 차지가 됐다.
설사 사소한 문제가 좀 생기더라도, 이미 자작이 된 그에게 감히 묻고 따질 간 큰 행정관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것들을 구입하고 싶은데 혹시 가능할까?”
그렌은 구매 요청서에 자신이 필요한 물품을 적어냈다.
원래는 아드민 남작에게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자리에 없는 사람이니 그는 어쩔 수 없이 창구 직원에게 물어봐야 했다.
“얀, 버틀, 렌…….”
창구 직원은 구매 요청서를 꼼꼼히 살펴봤다.
내실로 들어가 묵직한 서류철을 가져와 대조를 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렌 자작님, 가능할 것 같습니다. 마침 구매 요청을 하신 물건들이 전부 새로 들어와서 재고를 방출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럼 내가 전부 싸게 구입할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어차피 방출할 재고는 경매로 팔아버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렌 자작님이 구매해 주신다면 저희야 대환영입니다.”
“좋아. 그럼 내가 전부 인수하도록 하지.”
그렌의 안색이 절로 밝아졌다.
창구 직원은 그의 얼굴이 활짝 펴지자 덩달아 기분 좋게 웃었다.
사실 이건 운이 좋았다.
왕실 마법부는 언제나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제품과 물자만 납품받는다.
항상 최상의 컨디션과 가장 신선한 상태로 일정 수량의 재고를 유지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재고를 처분하고 새것으로 갈아치운다.
마침 왕실 마법부 창고에서 재고를 유지하기 위해 긴급하게 납품받았던 물자들이 그들이 원했던 최상급은 아니었다.
나중에 원하던 최상급의 물건을 새롭게 납품받자 재고를 처분해 버리기 위해 창고 하나에 쌓아놓고 방출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 계산서입니다.”
창구 직원은 꼼꼼히 계산을 마치고 최종 계산서를 내밀었다.
확실히 방출하려고 했던 재고라서 그런지 가격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렌은 금화를 꺼내 단번에 계산을 마쳐버렸다.
이어 창구 직원과 같이 왕실 마법부 창고로 걸어갔다.
그는 그렌이 계산을 끝낸 구매 요청서를 가지고 물자를 양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속도가 정말 엄청나게 빨랐다.
그렌이 창구 직원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족족 아공간 반지에 쓸어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모수: 이거 양이 장난이 아니네요.] [마루: 이 정도면 렌 화약을 충분히 만들 수 있겠어요.] [그렌: 어차피 이곳에선 렌 화약을 쓸 일이 거의 없어. 양도 많고 가격도 저렴하니까 해모수를 위해 렌 화약을 대량으로 제조해서 넘겨줄게.] [해모수: 그렌 형, 고마워요.] [그렌: 천만에.]그렌은 넓은 마음으로 해모수에게 아낌없이 퍼주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입니다.”
그렌은 순식간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전부 챙겼다.
창구 직원의 고맙다는 인사말에 그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이거 전부 렌 화약을 만들 재료죠?”
“맞아.”
야엘은 이 재료들로 뭘 만들지 벌써 눈치를 챘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용처까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왕실 마법부를 나온 그들은 토러스 대륙 용병 길드를 향해 걸어갔다.
“저기 있네요.”
그녀가 말하기도 전에 이미 그렌은 토러스 대륙 용병 길드를 발견했다.
넓은 대지에 일체의 꾸밈이 없는 큰 건물!
건물 꼭대기에 설치한 간판에는 큰 글자로 ‘토러스 대륙 용병 길드’라고 당당하게 써져있었다.
출입구는 각지에서 온 온갖 다양한 부류의 용병들로 득실거렸다.
어깨를 펴고 안으로 들어가자 시끄러운 소음이 즉시 사라졌다.
로브를 입은 모습만 봐도 그가 마법사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거기에다 개인 호위 기사까지 딸려있으니 귀족이 분명했다.
“어서 오십시오. 토러스 대륙 용병 길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네모난 얼굴을 한 길드의 남자 직원 하나가 총알같이 튀어나왔다.
“조용한 곳 없소?”
“2층으로 가시죠.”
그렌의 말에 길드 직원은 곧바로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둘은 그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방문을 열자 제법 잘 꾸며놓은 귀빈실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렌이 소파에 앉자 길드 직원은 인사를 꾸벅 했다.
“잠시 기다리시면 담당자를 모시고 오겠습니다.”
길드 직원이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갔다가 금세 돌아왔다.
문이 열리자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저는 토러스 대륙 용병 길드 에티오 지점을 맡고 있는 나바호 지점장입니다.”
“난 그렌 자작이오.”
“아! 그렌 자작님!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충 인사가 끝나자 그렌은 손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나바호 지점장은 그렌이 마법사라는 것을 깨닫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토러스 대륙에 워낙 마법사들의 기행, 아니 만행에 대한 소문이 자자한지라 괜한 일로 트러블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어느새 주객이 전도된 듯했다.
“바쁜 사람 불러놓고 시간 길게 끌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말하도록 하겠소.”
“그래주시면 저야 고맙지요.”
화끈한 그렌의 발언에 나바호 지점장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렌은 탁자 위에 메이스, 2연발 소형 쇠뇌, 버클러, 웨어울프 가죽 갑옷 세트를 꺼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