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이제는 감정에 따라 포스가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있었다.
마루도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확실하게 경고를 하지 않으면 철부지 윤아는 분명 말썽을 일으키고 말 것이다.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이대근이 해결사로 나섰다.
“마루야, 그런데 네 허리에 찬 거 권총 아니냐?”
“네, 맞아요.”
이대근의 말에 마루는 바로 얼굴을 풀고 대답했다.
그로 인해 안채의 분위기는 한결 나아졌다.
“어디서 난 거야?”
“매형과 사장어른을 구하러 과천 시내에 나갔다가 수방사 군인들에게 구했어요.”
이대근을 비롯해 이태인과 이재용을 시작으로, 아니 안채에 있는 모든 남자들이 부러운 눈빛을 했다.
“잠깐만요.”
그걸 눈치챈 마루는 안채를 벗어나 급히 밖으로 나갔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자 그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안에서 K2 소총 세 정과 탄약통을 꺼냈다.
안채로 다시 들어오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마루에게 집중됐다.
“소총이다.”
“K2 소총이야.”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남자들은 K2 소총을 보고 흥분했다.
하지만 여자들은 반대로 우려의 눈빛을 보냈다.
그만큼 총이 낯설어 그런 것이다.
“전부를 아버지께 드릴게요.”
“나한테?”
“예, 알아서 가족들에게 나눠주세요.”
“으음, 알았다.”
사실 가족들에게 나눠준다고 해봐야 아버지 이대근, 형 이태인, 동생 이재용이 하나씩 차지하게 될 것이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전부 남자들이니 그게 최선이었다.
노골적으로 부러운 눈빛을 하고 있는 한소신과 우성존!
마루는 웃음을 참으며 두 사람을 쳐다봤다.
“다음에 소총을 구하게 되면 제일 먼저 너희 둘에게 줄게.”
“정말이죠?”
“진짜 약속한 거예요!”
“그래. 약속하마.”
마루의 확약에 섭섭했던 둘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참! 황 PD는 뭐 하고 있어?”
“형이 가져온 드론 때문에 지금 정신없이 바빠요.”
“아주 드론과 살림을 차릴 생각인가 봐요.”
마루는 황 PD가 새로운 드론에 빠졌다는 말에 반색했다.
이미 전기와 통신이 끊어진 세상이다.
당장 문원동 외부의 사정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드론이 유일했다.
다들 배부르게 먹고 나자 마루를 중심으로 남자들이 모여들었다.
매형 김현수가 제일 먼저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았다.
“마루 처남! 고마워. 덕분에 이렇게 살아났어.”
“매형도 참! 몇 번이나 말해놓고 또 같은 말씀을 하시네.”
“고마워서 그러지. 마루 처남이 아니었으면 우리 어머니까지 큰일 날 뻔했잖아.”
마루는 사장어른 신사임의 눈치를 살폈다.
비록 손가락 두 개는 잘렸지만… 좀비에게 물리고도 생존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상태가 좋았다.
“K2 소총은 태인이와 재용이에게 줄게.”
이대근이 대뜸 두 아들에게 소총을 한 정씩 나눠줬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왜 나한테 고맙다고 그러냐? 소총을 구해온 것은 마루인데…….”
이대근의 말에 마루는 바로 두 손을 들고 마구 흔들었다.
“됐어요. 제발 낯간지럽게 가족끼리 고맙다는 말은 그만합시다.”
“하하하, 그래도 고맙다 마루야.”
“나도 고마워 형!”
태인과 재용은 소총을 받고는 희희낙락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소총으로 상대할 것은 좀비가 아니야.”
“뭐? 그럼 사람을 쏘라는 거야?”
마루의 말에 태인이 눈썹에 힘을 주며 물었다.
“그게 아니라 좀비에게는 가급적 쓰지 말고 나중에 무법자나 적대 세력이 생기면 그때 소총으로 대항하라는 거야.”
“무법자?”
“적대 세력?”
태인과 재용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해갔다.
그들은 무법자나 적대 세력이라는 말에 큰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좀비 사태로 인해 이미 공권력이 무너진 사회였다.
나중에 일이 잘 풀리면 정부가 다시 공권력을 휘두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누가 범죄를 저지르면 막아줄 사람이 없었다.
“사신회가 마을을 지키는 자경대 역할을 잘해야 할 거야.”
“하긴 좀비가 판을 치는 세상이니 무법자가 나타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생각해 보니 정말 좀비보다 사람이 더 위험할 수도 있겠구나.”
다들 아직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앞으로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짐작은 하고 있었다.
“오후에 문원동 일대에 모인 좀비를 사냥할 겁니다. 물론 2차 방벽 안에서 안전하게 좀비를 잡을 거예요.”
마루의 말이 끝나자 이대근이 바로 되물었다.
“이번에는 원거리 타격조도 운영한다면서?”
“네, 그렇습니다. 성인 남자만 좀비와 싸우라는 법이 없으니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 좀비를 잡도록 할 거예요.”
마루의 말에 김영희를 비롯한 여자들이 입술을 꼭 깨물었다.
심지어는 진아의 할머니까지 좀비를 사냥하겠다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는 여자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말을 이었다.
“다들 잘 알다시피 좀비 열 마리를 잡으면 레벨을 올릴 수가 있습니다. 이때 주로 근력, 민첩, 체력 스탯이 올라가는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레벨 업을 하면 할수록 피부가 고와지고 젊어지는 것 같습니다.”
“정말?”
사장어른 신사임이 체면도 잊고 놀란 음성으로 외쳤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여자라면 이런 반응이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마루는 이대근의 얼굴을 살펴보며 질문했다.
“아버지, 레벨 업 하니까 몸이 어떠세요?”
“힘이 더 세지고 이제는 잘 지치지도 않아. 뱃살도 들어갔고 몸이 건강해진 것 같아.”
이대근은 마치 프로 보디빌더처럼 자신의 두 팔을 들고는 잔뜩 힘을 줬다.
팔에서 타조 알만 한 알통이 불쑥 위로 솟구쳤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얼굴이 하얗게 되고 검버섯과 주근깨도 싹 없어졌다.
이번에는 어머니 김영희의 얼굴을 살펴봤다.
역시 전에 없이 생기가 넘치는 탄력 있는 피부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주목을 받고 있는 이는 따로 있었다.
바로 김민정이다.
그녀의 피부는 윤기가 넘치다 못해 이제는 아예 자체 발광을 하고 있었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그녀의 외모는 여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게 무척 부담스러웠는지 민정은 괜히 설거지를 한다고 일어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자들이 다급히 고개를 돌려야 했다.
몸에 딱 붙는 바지가 탐스러운 애플 히프를 드러내며 그녀의 섹시한 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흠.”
이대근을 시작으로 다들 헛기침을 하면서 시선을 급히 거뒀다.
마루는 민망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한소신에게 질문을 했다.
“현재 사신회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정확히 389가구에 1,201명이 회원으로 등록했습니다. 이 중 400명이 동서남북 4개 팀에 속해 1차 방벽과 2차 방벽을 지키고 있어요.”
“그럼 문원동에 사는 거의 전 주민이 포함됐다는 얘기네.”
“그렇습니다.”
사신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문원동을 접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동쪽에 사는 몇 가정이 아직도 버티고 있습니다.”
“혹시 나와 관련이 있는 거야?”
“예, 형이 그들의 가족을 죽였다며 절대 사신회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어딜 가나 고춧가루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사람을 죽였다면 모를까, 마을을 위협하는 좀비를 처치한 것을 가지고 원한을 가진다면 이쪽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마루는 그냥 대범하게 대처하기로 했다.
“할 수 없지. 싫다는 사람들 붙잡지 말자. 차라리 이 기회에 그 사람들을 철저히 배제해서 방벽을 보강하도록 해.”
“설마 2차 방벽에서 완전히 제외하라는 말은 아니죠?”
“바로 그거야. 좀 복잡해지긴 하겠지만 머리를 잘 써서 2차 방벽 밖으로 떨어뜨리는 방법을 연구해 봐!”
한소신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성존은 아직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루는 그 모습에 다시 한번 냉정하게 말했다.
“사신회에 가입하기 싫다고 하잖아. 그럼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면 되는 거야. 우리가 피를 흘리고 싸워서 지키고 있는 마을이야. 안보 무임승차는 절대 허용할 수 없어.”
“알겠습니다.”
모두 100퍼센트 동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안보 무임승차라는 말에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되자 마루가 제일 먼저 일어났다.
그는 로브를 입고 무기를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민정이 급히 따라갔다.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자 뒤늦게 사람들도 서둘러 무장을 갖췄다.
“1차 방벽을 한번 둘러보고 나서 서부 2팀으로 가보자.”
“네, 오빠!”
마루는 민정과 같이 빠르게 1차 방벽을 한번 둘러봤다.
혹시라도 좀비가 새어 들어왔는지 살피는 것이다.
물론 1차 방벽 사방에 감시조를 투입시켜 놓았다.
하지만 경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마루는 더 이상 방검복, 전투 조끼, 전투화, 전투 배낭을 장비하지 않았다.
그렌에게 상급의 마나 로브를 받은 이후, 전부 인벤토리와 마법 로브로 대체해 버렸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이 있어 일부러 칠성검은 허리에, 개량궁은 등에 차고 다녔다.
필요하면 로브 안에 숨겨놓았던 것을 꺼내는 것처럼 창과 마법 소총을 쓸 생각이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마루가 1차 방벽을 넘어 서쪽으로 움직이자 사방에서 마을 주민들이 나타나며 인사가 쏟아졌다.
그들도 시간에 맞춰서 좀비를 잡으러 나온 것이다.
이제는 좀비 열 마리를 잡으면 레벨 업 한다는 건 비밀도 아니었다.
사신회 회원들 사이에선 이미 소문이 아니라 정설로 퍼져있었다.
당연히 마루도 굳이 좀비를 잡겠다고 나선 회원들을 말릴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더 열심히 좀비를 잡으라고 가지고 있던 개량궁과 컴파운드 보우, 리커브 보우와 쇠뇌를 전부 빌려줬다.
그로 인해 쇠뇌용 화살(볼트), 카본 화살, 스테인리스 스틸 화살촉 박스 등 집 한쪽을 차지한 박스들이 몽땅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과천 공업사 박 사장이 사신회에 합류해서 참 다행이었다.
“회장님, 어서 오세요.”
2차 방벽 서쪽에 도착하자 이희영 서부 2팀 팀장이 깍듯하게 인사를 해왔다.
“점심 식사 잘하셨어요?”
“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여기는 이미 준비가 다 된 것 같군요.”
“미리 예행연습까지 해뒀습니다.”
이희영 서부 2팀장은 대놓고 자신감을 보였다.
하는 행동을 보아하니 꽤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었다.
마루와 이희영 팀장이 2차 방벽 위로 올라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좀비들이 몰려와 아우성을 쳐댔다.
“환영 인사가 참 뜨겁습니다. 이제 우리도 시작하면 되겠네요.”
“그렇군요. 좀비들이 아주 반가워하고 있어요.”
둘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주변을 예리한 눈동자로 살폈다.
“근접 딜러는 방벽 위로! 원거리 딜러는 모두 2층으로 올라가세요.”
이희영 팀장이 외치자 서부 2팀의 팀원들과 주민들이 각자 담당할 위치로 가서 섰다.
그가 마루의 얼굴을 쳐다보며 명령을 기다렸다.
마루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공격 개시!”
와아아아!
미리 약속대로 다들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일대에 있던 좀비들이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핑, 피피핑, 핑핑핑…….
철제 방벽 서부에 있는 주택 2층에서 밖으로 화살과 볼트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명중률이 형편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많은 화살과 볼트가 날아가자 좀비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2차 방벽 위에 있는 근접 딜러들은 신나게 좀비들을 해치웠다.
다들 좀비를 한두 마리 잡아본 게 아니어서 창을 내려찍는 데 거침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레벨 업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어!”
“왜?”
“나 뭔가 느껴졌어.”
“레벨 업 했구나.”
“아! 나도 레벨 업 했다.”
“아싸! 레벨 업.”
여기저기에서 자랑하듯 레벨 업을 외쳤다.
옆에서 자꾸 레벨 업을 했다고 하자 다른 사람들까지 경쟁이 붙어버렸다.
사람들은 손에 물집이 생기도록 열심히 활과 쇠뇌를 쏴댔다.
이희영 팀장은 미리 팀원들을 배치시켜 의욕이 과해지지 않도록 적당히 조절했다.
사신회에서 주관하는 대대적인 좀비 사냥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현재 좀비 사냥을 하는 곳은 서부 2팀만이 아니었다.
동서남북 사방에 있는 네 개의 팀이 동시에 진행하는 일제 작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