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저쪽입니다.”
퉁그란의 말에 해모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주루를 향해 말 머리를 돌렸다.
“어서 오십시오.”
그들이 주루 앞에 도착하자 두 명의 점소이가 튀어나와 말고삐를 잡았다.
여진 삼총사가 재빨리 말에서 내렸다.
퉁그란이 앞에 서고 바토르와 차하루가 해모수의 양쪽 좌우로 갈라졌다.
해모수가 말에서 내리자 왕지현도 천천히 말에서 내려왔다.
성산포구에서 군마를 타고 동현을 거쳐 영성에 한달음에 도착했다.
급한 마음에 빠르게 달려오긴 했지만 다들 아직은 기운이 쌩쌩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점소이 하나가 다가와 두 손을 비비며 말했다.
해모수가 퉁그란을 쳐다봤다.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점소이의 뒷목을 잡았다.
“이놈아! 모시긴 뭘 모셔! 얼른 이 층으로 안내해라!”
“아! 이제 보니까 오늘 난실(蘭室)을 예약하신 분들이군요.”
눈치 빠른 점소이였다.
“말이 많은 놈이로구나.”
퉁그란이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헤헤, 이쪽입니다요.”
그제야 점소이는 ‘앗! 뜨거워라!’ 하고 얼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영산주루’라는 흔한 이름의 주루 이 층으로 올라갔다.
탁 트인 일 층과는 달리, 이 층은 전부 밀실이었다.
네 개의 밀실 중 난실에 도착하자 좌우로 문이 활짝 열렸다.
“어서 오셔요! 저희 주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란(蘭)이라고 합니다.”
난실을 담당하는 기녀가 나타나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해모수 일행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무기에 갑옷까지 장비한 자들이 들어오자 란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녀 본연의 야들야들한 행동이 시작됐다.
큰 눈에 시원한 외모, 육감적인 몸매에 나긋나긋한 몸짓!
묘하게 심신을 자극하는 향기와 은근슬쩍 스킨십을 하는 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불끈한 감정을 일으키게 만드는 여자였다.
하지만 해모수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천하절색인 미녀가 옆에 있었다.
기녀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아직 손님들이 전부 도착하지 않으셨어요. 먼저 안으로 드시지요?”
“그러지.”
난실은 무슨 호텔의 스위트룸처럼 입구에 응접실 같은 게 있고 안에 따로 또 방이 있었다.
여진 삼총사는 응접실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대신 왕지현이 해모수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왔다.
중앙에 커다란 탁자가 있는 방에는 은은한 난초의 향기가 배어있었다.
벽에도 대놓고 난을 그린 족자들이 걸려있었고, 실제로 난초가 담긴 화분도 여러 개 있었다.
“어떻게 먼저 한잔하시겠어요?”
“다 모이면 그때 함께하도록 하지.”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란은 해모수보다 뒤에 서있는 왕지현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왕지현에게 신경을 썼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왕지현이 여자라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란이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해모수가 대뜸 왕지현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녀는 충분히 반항할 수 있으면서도 마치 힘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가볍게 딸려왔다.
왕지현은 자연스럽게 해모수의 품에 안겼다.
이걸 보면 확실히 여우과였다.
“왜 이러세요? 보는 눈이 많습니다.”
“그럼 보는 눈이 없으면 이렇게 해도 된다는 말이오?”
해모수가 유들유들하게 대하자 그녀는 살짝 눈을 흘겼다.
“맘에 안 들어요.”
“뭐가 말이오?”
“그 음흉한 눈빛이요.”
왕지현은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마루와 그렌이 하는 행동을 보면서 나름 여러 가지 노하우를 터득한 해모수다.
그녀가 남녀 관계에서 말로 그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 눈빛이 어떻다고 그런 소리를 하시오? 구체적으로 말해주시오.”
“차마 내 입으로는 도저히 말을 하지 못하겠어요.”
그녀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바로 한발 물러섰다.
해모수는 왕지현의 이런 행동이 너무 귀여웠다.
낮에는 요조숙녀 밤에는 요부!
특히 어젯밤 V사의 스트래피 데미 브라와 팬티 세트를 입은 모습은…….
꿀꺽!
그는 상상만으로도 벌써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뭐예요?”
해모수의 이상 반응을 느낀 왕지현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몸을 놔주지 않았다.
대신 왕지현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어제 그 속옷 입고 있소?”
“아, 아니 그걸 지금 왜 물어보세요?”
“내가 내 여자에게 그런 것도 못 물어본단 말이오?”
“그, 그건 아니지만.”
해모수는 웃음을 참기 힘들어졌다.
잔뜩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
표정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혹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입고 오지 않은 것이 아니오?”
“아니에요. 너무 천이 약해서 찢어질까 봐 다른 것을 입고 왔어요.”
“아! 그것 참 다행이오. 그럼 어떤 것을 입고 있소?”
“스, 스포츠브라…….”
왕지현은 모기가 기어가는 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잘했소. 그런데 선물은 마음에 드시오?”
“네, 정말 이런 기물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브래지어와 팬티를 보고 기물(奇物)이라고 하는 그녀였다.
얼마나 편하고 좋았으면 이런 소리가 다 나올까!
“기물이라!”
“너무 편하고 좋아요.”
“다행이요. 앞으로 종종 구해드리리다.”
“고, 고맙습니다. 상공!”
이제야 상공 소리가 나오는 왕지현이다.
“화장품은 써봤소?”
“네, 써봤어요.”
“어땠소?”
“월궁의 항아님들이나 쓰는 물건 같아서 놀랐어요.”
“하하하! 그 정도였소?”
그녀의 말에 해모수는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하긴 수은을 비롯해 온갖 중금속으로 떡칠해 놓은 허접한 이 시대의 화장품만 보다가, 최첨단 과학기술과 노하우로 생산된 현대의 화장품을 보면 놀랄 만도 할 것이다.
“특히 거울이 너무 맑고 깨끗해요.”
해모수도 이건 동감하는 바였다.
이 시대의 거울은 동경이다.
현대의 거울처럼 맑고 깨끗하지가 않다.
유리 표면을 금속성 은으로 코팅하는 현대 거울 제작 기술은 1835년 독일인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발명했다.
이 화학 공정으로 인해 거울은 대량생산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더 이상 거울이 호화와 사치의 물건이 아닌 일상생활용품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해모수: 마루 형, 대박 아이템 하나 찾았어요.] [마루: 거울 말이냐?] [해모수: 네, 거울을 가져다 팔면 엄청 돈 벌 것 같아요.] [그렌: 오! 그거 좋은 생각인데……. 나도 한번 알아봐야겠다.]해모수의 말에 마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안에 쏙 들어가는 손거울은 개당 백 원밖에 안 한다.
그것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파는 가격이다.
손잡이가 달린 럭셔리한 모양의 거울도 만 원을 넘지 못한다.
이런 걸 가져다 팔면 모르긴 해도 수십, 아니 수백, 수천 배를 받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해모수: 소금을 몰래 파는 것보다 이게 훨씬 낫겠어요.] [그렌: 하긴 밀염은 위험해. 염상들과 경쟁도 치열하고, 하지만 거울은 대체가 불가능하잖아. 가격 경쟁도 걱정할 필요가 없고. 견제 자체가 들어올 수가 없겠어.] [마루: 손거울은 대망 슈퍼에도 있고 이마트 같은 곳에 가면 널렸어요. 당장 챙겨서 보내드리도록 할게요.]해모수와 그렌은 마루의 대답에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사람은 좋은 물건이 싸게 나오면 사게 되어있다.
특히 사치품인 거울이 저렴한 가격에 나온다면… 여자들은 도저히 사지 않고는 못 버틸 것이다.
해모수만 해도 그렇다.
공유 인벤토리를 통해 오우거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받았다.
그는 바로 내갑과 군용 갑옷을 벗어서 던져버렸다.
각종 마법진으로 떡칠한 마법 갑옷이다.
굳이 다른 갑옷을 입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프릴 반지(실드, 힐)와 프릴 목걸이(인비저블, 윈드 커터, 쇼크 웨이브)도 바로 꼈다.
음양기를 사용하는 청동 팔찌(헤이스트, 아이언 스킨, 실드)와 세트를 이루자 무서울 것이 없어졌다.
사실 해모수는 그동안 써왔던 환도, 쇠뇌, 창, 비표 대신 당장 리볼버 권총과 소총 및 중기관총을 써보고 싶었다.
아마 사내라면 누구라도 이런 마음이 들 것이다.
해모수는 공유 인벤토리가 활성화된 후, 마루와 그렌이 물건을 보내주기 시작하자 아주 신이 났다.
그는 곧바로 집으로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막내 여동생에게 물건을 풀었다.
언더웨어와 내복, 양말 세트와 수건 세트만 보고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뒤이어 치약, 칫솔, 비누, 샴푸, 거울, 신발, 조미료, 향신료, 포도주 등 각종 생필품을 꺼내자 가족들은 눈이 돌아가 버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장 감격한 것은 치맥이었다.
마늘 양념 치킨, 프라이드치킨, 순살 파닭, 닭 강정 등 마루가 멕시코 치킨에서 손수 같이 튀긴 치킨과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를 맛보자 모두 환장을 해버렸다.
특히 해태영은 천상의 맛이라고 극찬을 했다.
물론 그날 저녁 라면을 먹고 나서는 맛의 폭풍에 휩싸여 새삼 천외천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말이다.
MSG(글루탐산나트륨) 승!
왕지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화장품과 사워용품, 생리대와 청결제 등을 받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밤에 살짝 찾아온 해모수에게 언더웨어를 따로 선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모든 물건이 다 행복을 주었던 것은 아니었다.
저녁 식사 후에 온 가족이 구충제를 한 알씩 먹었는데… 몇 번이나 화장실, 아니 변소를 들락거리느라 나름 고생을 해야 했다.
얼마나 많은 기생……. 크흠!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자!
덕분에 야밤에 때아닌 목욕 열풍이 불었다.
샴푸와 린스, 비누를 써보고 놀랐고… 치약과 칫솔을 쓴 후 시원하고 개운한 입안의 느낌에 다시 한번 놀라야 했다.
특히 칫솔질을 하면서 바라보는 거울의 선명함은 너무나 신기했다.
이런 반응은 성산백호소와 영율백호소에 있는 형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반응이 더 판타스틱했다.
그렇다고 해모수가 아무 생각 없이 막 나눠준 것은 아니다.
보물을 가진 게 죄라고 했다.
혹시라도 기물이라고 의심받을 만한 물건은 아예 내놓지 않았다.
옷도 언더웨어와 양말, 내복 종류를 제외한 스포츠웨어와 아웃도어는 거의 풀지 않았다.
하지만 신발은 꼭 필요했다.
그래서 화려한 색상은 전부 빼버렸다.
대신 어둡고 탁한 색상의, 무난한 단화와 등산화만 나눠줬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절대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좋은 물건을 나눠 쓰는데 괜한 마가 끼어들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취지였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서야 다들 좀 잠잠해졌다.
“무슨 생각 하세요?”
“어! 아니오. 아무것도.”
해모수는 왕지현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눈치가 빨라도 너무 빠른 그녀다.
그는 두 손으로 왕지현의 몸을 쓰다듬으며 입맞춤을 했다.
잠시 달달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왕지현의 몸이 바람처럼 빠져나갔다.
몸을 바로 하자 이미 그녀는 해모수의 뒤에 시립한 상태였다.
방문이 열리고 김만덕 집사가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주군(主君)!”
“어서 오세요! 군사(軍師)!”
해모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만덕은 왕지현을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해모수도 그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인사를 건넸다.
엊그제 만나놓고 둘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처럼 무척 반가워했다.
“제가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도 방금 왔어요.”
김만덕의 사과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일단 앉읍시다.”
“네, 주군.”
두 사람이 동시에 의자에 좌정했다.
적당히 서로 인사말을 하고 안부를 물어보고 난 후!
김만덕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가 오늘 급히 보자고 한 것은 소개시켜 드릴 사람이 있어섭니다.”
“소개시켜 줄 사람이라니요?”
“산동성 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의 도지휘첨사(都指揮僉事)입니다.”
“네에?”
해모수는 깜짝 놀랐다.
산동성 도지휘사사는 오군도독부(五軍都督府)의 명령을 받는 산동성을 총괄하는 군정 기관이다.
도지휘첨사라면 산동성 도지휘사사에 네 명만 있는 정3품의 고위 관료였다.
도지휘첨사 네 명은 각각 관리(管理), 전비(戰備), 훈련(訓練), 둔종(屯種)의 부서를 관장한다.
김만덕의 말에 의하면 오늘 만날 사람은 그중 관리를 담당하는 장(長)이었다.
백호소의 백호(百戶)의 품계가 정6품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직 품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총기(總旗)와는 체급이 달랐다.
격이 너무 차이가 난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