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9
19화
‘이거 대체 시선을 어디다 두라는 거야? 왜 유독 이 체육관에만 이렇게 사람이 많은가 했더니…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군. 그나저나 이거 꼼짝없이 잡히겠는데.’
마루는 지금도 운동을 하며 사무실 안을 힐끔거리는 사내들처럼 자신도 어쩔 수 없이, 그녀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시원한 사이다를 한 잔 마시자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씩 진정됐다.
“김민정이에요. 트레이너 겸 신입 회원 안내를 맡고 있어요.”
“이마루입니다.”
“반가워요. 운동하러 오셨죠?”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밝힌 김민정은 곧바로 훅 하고 돌직구를 날렸다.
“네, 그렇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온 것은 아닌 것 같고, 혹시 배우고 싶은 격투기나 무술 같은 게 따로 있으신가요?”
“원하기만 하면 문 앞에 써진 광고대로 그 많은 격투기와 무술을 다 배울 수 있는 건가요?”
“물론이죠. 배울 능력만 있다면 가르칠 트레이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 체육관 관장님만 해도 격투기와 무술을 최소한 일곱 가지는 마스터하고 계세요.”
마루는 김민정의 말에 조금 놀랐다.
이곳 체육관 관장이 격투기와 무술을 최소한 일곱 가지나 마스터하고 있다는 말!
100퍼센트 과장이 분명했지만 그래도 ‘마스터’라는 단어를 사용하려면… 적어도 어지간히 전문적으로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대로 된 트레이너 몇 명만 있다면 사실 못 가르칠 것도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는 한 달 안에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격투기와 무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한 달 안에 쓸 수 있는 실전 격투기와 무술요?”
“네, 그렇습니다.”
김민정은 마루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더니 마루의 몸을 탐색하듯 훑어봤다.
“몸이 꽤 좋으시네요.”
“감사합니다.”
“혹시 과거에 격투기나 무술을 배운 적이 있나요?”
“군에서 태권도 조금 배웠습니다.”
“그게 전부인가요?”
“네.”
김민정은 마루의 말에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쉽지 않군요. 시간 대비 가장 효율적인 격투기는 권투예요. 실전 무술이라면 특공 무술을 추천합니다. 하지만 가장 파괴력이 높은 것은 역시 검도라고 할 수 있어요. 아무래도 무기를 들고 싸우기 때문이지요.”
“그럼 권투, 특공 무술, 검도를 동시에 배울 수 있나요?”
“물론이죠. 뭔가 사정이 있으신 것 같은데… 자세한 것은 김병한 관장님과 같이 의논해 보세요. 참고로 저희 체육관 관장님은 제 사촌 오빠세요.”
“아! 그러시구나.”
김민정의 말을 듣자, 마지막 퍼즐이 맞춰져 완성된 기분이었다.
마루는 더 이상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름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들어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에 바빴던 것이다.
‘권투, 특공 무술, 검도 이 세 가지 정도면 좀비를 잡는 데 충분하겠지!’
그 모습에 김민정은 의외라는 듯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봤다.
마루는 당장 더 좋은 방법이 없다면 이대로 진행하는 게 무난하다고 결정을 내렸다.
“참, 가격은 얼마죠?”
“회비는 한 달에 10만 원이에요.”
“그럼 내일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하죠. 운동복과 운동화만 가져오면 되나요?”
“반대편에 탈의실과 샤워실이 완비되어 있습니다. 세면도구나 샤워 물품을 챙겨오세요.”
“알겠습니다.”
“지금 등록하실 거죠?”
“물론이죠.”
마루는 김민정의 빛나는 눈을 마주치자 자신도 모르게 강하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고 말았다.
아마 그 누구도 김민정의 ‘지금 등록하실 거죠?’란 말에 감히 ‘노(No)’라고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 그런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고 본다.
사내라면 말이다.
김민정의 눈빛 공격은 그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강했다.
덕분에 격투기와 무술을 배울 수 있는 체육관을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다.
시간이 좀 남자 마루는 김민정에게 물었다.
“저… 구경 좀 하고 가도 괜찮죠?”
“물론이죠.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월척이 넘어왔다.
물론 김민정과 무슨 썸을 타길 바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처럼 예쁘고 멋진 몸매를 가진 미녀가 자신의 옆에 바짝 붙어서 체육관 시설을 안내해 주고, 트레이너들을 소개시켜 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저희 체육관에는 열 명의 메인 트레이너가 있어요. 저쪽은 기초 체력 강화 운동을 하는 곳이고, 이쪽은 각종 격투기와 무술을 배우는 곳이에요. 왼쪽 링은 권투를 배우는 회원들이 주로 쓰고, 오른쪽 링은 이종격투기를 배우는 회원들이 주로 사용합니다. 주말에는 일반 회원들의 스파링도 링에서 벌어집니다. 검도는 주로 해동검도를 가르치는데 대한검도를 배우시겠다면 따로 말씀을 해주셔야 해요.”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그녀가 옆에서 조잘댔다.
귀가 시원해지고 몸이 붕 뜨는 기분이었다.
역시 미녀와 함께 있는 건 즐거운 일이다.
마루는 유리 속에 비친 김민정의 얼굴을 보면서 설명을 들었다.
그러나 한 번도 고개를 돌려 직접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괜히 그녀의 얼굴을 보게 된다면… 안 그래도 얼굴이 따끔거릴 정도로 노려보는 남자 회원들에게 몰매를 맞아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런 마루의 행동이 거꾸로 김민정의 관심을 조금씩 끌고 있었다.
마루는 미처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김민정의 가이드로 시작된 체육관 투어.
1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빠르게 끝나버렸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마루는 체육관 입구에 섰다.
“덕분에 이 체육관에 대해 도사가 된 기분입니다.”
“저희 체육관 회원이 되셨으니 당연히 그 정도 서비스는 해드려야지요.”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뵙죠.”
“오전에 오실 건가요?”
“네, 오전에 올 생각입니다.”
“그럼 내일 봐요. 안녕히 가세요.”
“네, 안녕히 계세요.”
마루는 김민정의 인사를 받으며 기분 좋게 문을 나섰다.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데 실없는 웃음이 자꾸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자신만의 즐거움.
마치 비밀처럼 가슴에 고이 간직한 채, 그는 버스 정거장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해모수: 뭔가 썩 느낌이 안 좋네요.] [그렌: 그러게 말이야. 마루가 헛물켜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루: 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렌: 착각은 자유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마루: 그런 거 아니거든요.] [해모수: 그런데 왜 자꾸 그렇게 실실 웃어요? 미친 사람처럼…….] [마루: 내가? 난 그냥 일이 잘 풀려서 그런 거야. 절대 누구를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야.] [해모수: 정말요?] [마루: 그래. 정말이야.] [그렌: 마루가 정말이라니 그렇다고 해두자.] [해모수: 흥, 뭐 그러죠.]마루는 자신을 수상하게 생각하는 해모수와 그렌의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아직도 실실 웃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런 마루의 모습에 해모수와 그렌은 그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 * *
탁탁탁탁…….
도마 위에서 날카로운 식칼이 마치 춤이라도 추듯 경쾌한 스텝을 밟는다.
아궁이에서 비집고 올라온 붉은 혓바닥.
넉넉한 품을 자랑하는 솥을 뜨겁게 달군다.
치이이이이익!
고소한 냄새가 나는 기름이 달궈진 솥 안으로 떨어져 내린다.
순식간에 불이 붙으며 격렬한 반응을 일으킨다.
미리 숭덩숭덩 썰어놓은 싱싱한 고기 조각들.
이에 맞춰 솥 안으로 자유낙하를 시작한다.
한껏 열이 받은 솥 안의 기름들이 즐겁게 칙칙거리며 호응해 온다.
미리 적당한 크기로 썰어놓은 놋그릇 안의 각종 신선한 채소.
고기 조각들의 뒤를 이어 솥 안으로 쏟아진다.
코끝을 자극하는 향기로운 냄새가 일순 부엌을 가득 채운다.
지글지글…….
보글보글…….
부엌문 앞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아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해태영.
자신도 모르게 킁킁대며 음식 냄새를 맡곤 이내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의 뒤로 해모수와 막내 여동생 해소영이 연신 침을 꿀떡꿀떡 삼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소영아! 여긴 간만 맞추면 다 끝나니 얼른 상 차려라.”
“어머니, 상 차려서 방 안에 가져다 놓은 지 벌써 한참 됐어요.”
막내딸의 말에 박수영은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렸다.
부엌문 앞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두 남정네를 보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련히 때가 되면 안 가져갈까 봐 그래요? 거기 서있지 말고 안에 좀 들어가 계세요!”
“그, 그럴까?”
해태영은 아내의 말에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못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옮겨본다.
해모수는 배 속의 식충이들을 자극하는 향기를 맡자 몽롱한 표정이 됐다.
아무리 주루에서 일을 하던 해모수라고 해도… 이렇게 풍성한 소고기야채볶음을 배불리 먹을 기회는 흔치 않았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맛있는 음식 냄새를 배 속 깊이 채우려고 부엌 문지방을 잡고 끈질기게 버티던 해모수!
보다 못해 나선 해태영의 실력 행사 뒤에야 방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그의 허리를 잡아 몸을 통째로 들고 방 안으로 들어선 해태영.
해모수를 살며시 내려놓으며 귀에 속삭인다.
“매일 이렇게 먹고 살면 소원이 없겠다.”
“아버지, 어제도 쌀밥에 생선튀김 먹었잖아요.”
“넌 생선을 튀긴 거와 소고기를 볶아 먹는 게 같니?”
“다르죠. 암, 다르고말고요. 그건 확실히 달라요.”
해태영의 말에 해모수는 크게 고개를 도리질을 했다.
아니 누구처럼 강하게 세 번 부인했다.
물고기를 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생선을 튀겨 먹는 것은 쉽지 않다.
기름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쌀밥을 먹는다는 것은 연중행사로도 쉽지 않다.
그런데 오늘!
뭔 날인지, 해씨 일가의 점심 메뉴는 무려 소고기야채볶음이었다.
점심 식사로 소고기를 먹게 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그들에게는 천지가 개벽하는 것에 버금가는 엄청난 대사건이었다.
“다 됐어요. 어서 드세요.”
“야호!”
“맛있겠다.”
해모수가 두 손을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박수영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해태영도 철이 덜 지난 아이처럼 방실방실 웃어댄다.
“호호호, 그렇게 좋니?”
“네, 너무 좋아요.”
“그래, 많이 먹어라.”
“네, 어머니.”
“소영이도 많이 먹고…….”
“네.”
대답은 시원하게 했다.
하지만 해모수와 해소영 그 누구도 쉽게 젓가락을 들지 못했다.
해태영과 박수영이 먼저 수저를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태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고기야채볶음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하얀 쌀밥이 가득한 밥그릇 안에 떨리는 숟가락을 푹 쑤셔 넣었다.
새하얀 쌀밥을 한가득 퍼서 입안에 넣었다.
젓가락으로 소고기야채볶음을 집어 입에 넣고 조심스럽게 씹어본다.
“어때요?”
“아버지, 맛있어요?”
해모수와 해소영이 침을 꿀떡 삼켰다.
해태영은 돌연 지그시 눈을 감고는 고개를 가만히 좌우로 흔들었다.
뜨거운 기름에 볶아져 육즙이 그대로 살아있는 소고기의 야들야들한 식감!
씹을수록 터져 나오는 고기즙의 풍미!
아! 마치 혓바닥에서 무희들이 춤을 추고 있는 것만 같다.
“세상에, 이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야. 어서 너희들도 먹어봐라.”
“네!”
“예!”
해태영의 허락이 떨어졌다.
가족들의 손에 들린 숟가락과 젓가락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씨 일가의 입에서 예외 없이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의 눈은 어느새 감동으로 물들어 가고…….
좋아 죽겠다며 웃는 웃음소리가 방 안을 떠나지 않는다.
해태영과 해모수는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그러다 소고기야채볶음이 반쯤 사라지자 문뜩 정신을 차렸다.
둘은 거의 동시에 소고기를 집어 박수영의 숟가락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박수영은 또 그것에 감동했는지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도 기어코 숟가락을 꾸역꾸역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어느 정도 배를 채웠는지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뒤를 막내딸 해소영의 젓가락이 뒤를 이었다.
그녀는 소고기야채볶음을 집어 어머니의 밥그릇 안에 재빨리 집어넣기를 반복한다.
보기만 해도 뿌듯한 모습.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세 쌍의 눈동자가 박수영을 향했다.
박수영은 밥을 먹다 말고 기어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옷고름을 푹 적셨다.
그 모습에 다들 입안에 넣으려던 숟가락을 마저 넣지 못하고 있다.
음식이 아닌 뭔가를 계속 억지로 삼키는 시늉을 보이더니…….
끝내 모두 눈시울을 붉히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