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사실 이런 얘기 따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함께 한배를 타고 갈 사람이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아니 강씨 집안과 해동연합이 지금 동맹을 맺는다는 게 오늘 만남의 주된 목적이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고려의 유민이셨군요.”
“산동에서 이름난 유지의 딸인 할머니를 만나지 못하셨다면, 아마 오늘날 저는 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도 젊은 나이에 벌써 도지휘첨사라니……. 참! 대단하십니다.”
“그게 어디 제 능력이겠습니까? 할머니의 가문에서 힘을 써준 결과죠.”
강민찬은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왜 젊은 나이에 도지휘첨사가 될 수 있었는지도 말이다.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술잔이 빠르게 오고 갔다.
“앞으로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건 제가 해야 할 소리 같군요. 참! 백부님에게 듣기로는, 바다에서 왜구를 막기 위해 자유로운 정찰 활동 보장을 원하신다고요. 정찰함대 규모도 좀 더 키우고 싶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아무래도 정찰선 한 척으로는 온전한 정찰과 감시 임무를 수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음, 그럼 제가 한번 힘을 써보겠습니다. 어차피 성산위가 가지고 있는 배와 전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성산위요?”
갑자기 강민찬이 성산위를 거론하자 해모수의 눈이 빛났다.
“성산위에도 정찰선 몇 척을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정찰선단도 조직되었고요. 하지만 심산소가 세워지면 굳이 정찰과 감시를 이원화할 필요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럼 당연히 통합해야지요. 이런 경우 한쪽으로 힘을 몰아주는 게 효율적입니다. 다만 그만큼 책임은 더 무거워질 겁니다.”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강민찬의 말에 해모수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성산위에 언제부터 정찰선단이 만들어진 거지? 설마 그전부터 있었는데 우리한테 여태 숨긴 것은 아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설득력이 없었다.
모르긴 해도 성산포구에 정찰함대가 만들어지고 난 이후, 급하게 따로 만든 것 같았다.
“참! 형님 세 분이 성산백호소와 영율백호소의 백호라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이번에 심산소가 세워지면 천호소의 주축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길 저도 소망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될 겁니다. 어차피 이제 우리는 한 식구가 아닙니까!”
“한 식구요? 맞습니다. 우린 한 식구네요. 하하하!”
“하하하!”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안심하거나 긴장을 풀면 안 된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후로 그들은 더 이상 일 얘기는 하지 않았다.
술과 요리 그리고 예쁜 여자가 있는데 무슨 고리타분한 얘기를 더 하겠는가!
강민찬은 허리띠를 풀고 제대로 놀기 시작했다.
능력이 있는 사내가 놀기도 잘 놀았다.
술도 호쾌하게 마셨다.
기녀들을 희롱하고 노는 것도 아주 수준급이었다.
덕분에 해모수도 기녀들의 온갖 음담패설을 들어가며 거하게 술을 마셔야 했다.
김만덕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끝까지 정신 줄을 놓지 않았다.
술자리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해모수의 모습에 혹시 어려서부터 기루 출입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물론 해모수가 어려서부터 기녀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더 자세한 얘기는 일단 여기선 생략하기로 하자.
“하하하! 오늘 잘 마셨습니다.”
“저도 덕분에 배 속에 기름칠을 했습니다.”
“앞으로 종종 이렇게 만납시다.”
“불러만 주시면 천 리 길도 마다않고 달려가겠습니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술자리는 파장을 맞이했다.
바쁜 사람들이니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는 게 옳았다.
김만덕과 해모수는 강민찬에게 가장 예쁘고 몸매가 좋은 기녀 한 명을 붙여줬다.
인사를 하고 눈치를 주자 기녀가 곧바로 아양을 떨면서 강민찬을 데리고 내실로 사라졌다.
“휴우우우!”
해모수는 곧바로 전신에 오러를 돌렸다.
술기운을 모아 몸 밖으로 힘차게 밀어냈다.
그러자 일순 방 안에 주향이 가득해졌다.
이어서 아직 몸속에 남아있는 주기(酒氣)까지 삼매진화로 말끔히 태워버렸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걱정했습니다.”
“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아까와는 달리 해모수의 눈빛은 너무도 또렷했다.
김만덕은 그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거 제가 미처 주당을 알아보지 못했군요.”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해모수가 살짝 웃다가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저자는 믿을 만합니까?”
“세상에 믿을 놈이 어디 있습니까!”
“하하하! 맞군요. 우문현답이었어요.”
김덕만의 말이 옳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었다.
그래서 한 단체의 수장은 항상 부하들을 의심하고 감시해야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참 불행한 자리였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주고받는 것이 확실한 사람입니다.”
“일단 그거면 됐습니다.”
그 정도면 훌륭했다.
돈 받아먹는 값을 하는 놈이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지난번에 말했던 그 관우라는 놈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 그 염상 말입니까? 푸하하하!”
해모수의 물음에 김만덕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왜 그렇게 웃습니까?”
“밀염을 하는 주제에 관우라는 이름을 쓰니 웃지 않을 도리가 없지요.”
“관우도 소금장수 아니었습니까? 밀염을 했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거야 직접 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지요. 어쨌든 그자 덕분에 내주부와 청주부의 염상들과 선을 댈 수 있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공유 인벤토리가 나타난 이상 앞으로 소금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단, 하루에 최대 1톤은 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정제가 잘된 천일염에다 맛까지 좋으니 들여오는 족족 잘 팔려나갈 것이다.
“관우라는 자가 자신에게도 소금을 공급해 주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럼 적당히 공급해 주세요.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소금만 파는 게 아닙니다. 염상들이 가지고 있는 판매망을 얻는 것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해모수가 은근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김 집사!”
“예, 주군.”
“혹시 거울 장사 좀 해보시겠습니까?”
갑작스러운 얘기에 김만덕은 눈을 깜빡여 댔다.
“거울 장사요?”
“동경 같은 거 말입니다.”
“동경이야 이미 차고 넘칠 텐데…….”
동경이란 말에 김만덕은 바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것이다.
“그럼 이런 건 어떻습니까?”
“어!”
해모수가 손바닥 거울을 내밀자 김만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이렇게 깨끗한 동경, 아니 은경이 있었다니…….”
“이건 은경이 아닙니다. 거울이라는 겁니다.”
“거울!”
“이거 하나에 얼마나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음, 아무리 못 받아도 은 한 냥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은 한 냥이라…….”
명초에는 주조 화폐를 썼다.
허나 재료가 부족했고 휴대하는 데 무척 불편했다.
거기에다 도주(盜鑄)의 남발로 결국 홍무(洪武) 7년(1372), 보초제거사(寶鈔提擧司)에서 ‘대명보초(大明寶鈔)’를 발행했다.
동시에 금, 은, 동의 유통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상인들 사이에서는 알게 모르게 여전히 금과 은이 유통됐다.
은 한 냥이면 계절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쌀 두 석에서 다섯 석은 살 수 있다.
명나라의 한 석은 약 94.4킬로그램이다.
은 한 냥으로 188.8킬로그램의 쌀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파는 쌀(20킬로그램) 가격이 47,900원.
200킬로그램이면 479,000원이다.
188.8킬로그램이니까 계산하기 쉽게 우수리를 왕창 떼내고 그냥 45만 원이라고 하자!
100원짜리 손거울이 45만 원이 됐으니 4,500배의 폭리다.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
“이 거울을 대량으로 가져오면 몇 개나 팔 수 있습니까?”
“당장 천 개, 아니 만 개라도 팔 수 있습니다.”
해모수의 질문에 김만덕은 자신감을 보였다.
거울을 보더니 이게 대박 상품이라는 것을 감 잡은 것이다.
“10만 개라면요?”
“그것도 시간만 넉넉히 주시면 얼마든지 팔 수 있습니다.”
“더 크고 좋은 것도 있는데…….”
“더 비싸게 받으면 됩니다.”
자신만만한 김만덕의 태도!
결국 해모수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야 말았다.
“지금은 열 개뿐입니다. 구하는 대로 더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해모수는 인벤토리에서 손거울 열 개를 꺼내 김만덕에게 넘겼다.
이건 팔라고 주는 게 아니라 샘플 개념이었다.
어차피 대망 슈퍼 창고 어딘가에 박혀있는 박스만 찾으면 백 단위의 손거울이 생길 것이다.
“개당 가격을 얼마나 받아야 합니까?”
“공급은 우리가 조절할 수 있으니 너무 비싸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럼 은 한 냥 정도가 적당하겠군요.”
“그 정도로 가격을 정착시키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거울 판매에 대한 얘기가 대충 마무리 지어졌다.
해모수는 슬며시 탁자 위에 후추와 설탕을 꺼내놓았다.
후추는 1킬로그램에 13,000원, 설탕은 3킬로그램에 5,000원짜리였다.
뒤이어 유리병에 담긴 후추(50그램)와 설탕(50그램)도 하나씩 꺼냈다.
“후추와 설탕입니다.”
“네에?”
후추와 설탕은 각각 향신료와 조미료다.
그것도 시장에서 아주 고가에 거래되는 물건들이었다.
“이건 굳이 말이 필요 없겠죠?”
“양이 얼마가 됐든 전부 소화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많은 양은 아니지만 꾸준히 매입해 놓겠습니다.”
“주군에게 이런 상재가 있을 줄 몰랐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김만덕은 지금 엉뚱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모수는 굳이 그의 오해를 풀어주지 않았다.
공유 인벤토리가 아니면 설명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가 후추와 설탕의 충격에서 벗어나자 이번에는 주제를 해동연합으로 바꿨다.
“해동상회가 등주부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등주부뿐만이 아닙니다. 내주부와 청주부로도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역시 이런 얘기는 신이 났다.
“좋은 소식이군요. 문제는 없습니까?”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이미 예상했던 것이라 대세에 큰 지장은 없을 겁니다.”
큰 문제가 없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해동상단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차츰 연안상거래를 확대하며 적지 않은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다만 왜구의 관선들이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고 있어 무척 조심하고 있습니다.”
왜구라는 말에 해모수와 김만덕 모두 썩소를 지었다.
“역시 왜구가 문제군요.”
“당장 연안함대라도 만들어서 해동상단을 지키고 싶습니다.”
“그 마음은 저도 같습니다. 문제는 어지간한 함대의 규모로는 왜구의 함대를 막을 수 없다는 겁니다. 차라리 지금처럼 조심하는 게 더 낫습니다.”
“참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정말 안타까웠다.
왜구만 없었다면… 아마 지금보다 상거래가 10배, 아니 100배는 더 활성화됐을 것이다.
“그래도 해동연합에서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함대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동감입니다. 그래서 해동무관에 쓸 만한 인재들을 뽑아달라고 요청해 놓았습니다.”
“모두 고려의 유민입니까?”
“대부분은 고려의 유민입니다. 하지만 일부는 여진족을 비롯한 타민족입니다.”
“일단 한족은 없는 거군요.”
“철저히 배제하고 있습니다.”
시작을 한족과 같이하면 안 된다.
특히 해동연합의 함대, 즉 해동함대는 해모수가 가지게 될 힘의 근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해동연합의 함대는 고려의 유민이나 한민족(韓民族)만으로 구성할 겁니다. 용맹하고 충성심이 높은 자들로 추려달라고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해모수는 문뜩 타이완 섬이 생각났다.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현재는 아무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섬이다.
한마디로 무주공산이란 말이다.
“혹시 동번(東番: 타이완)을 아십니까?”
“명나라 동남부에 있는 복건(福建)에서 바다를 건너면 나온다는 이족(夷族)의 섬 이름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현재 그곳은 무주공산입니다. 원주민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해안가를 중심으로 서로 사이좋게 지낸다면 큰 문제 없이 그 땅을, 아니 그 섬 전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김만덕은 갑자기 크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아! 드디어 나라를 세우시는 겁니까?”
“너무 앞서가지 마세요. 지금은 그냥 선발대를 보내서 상황을 알아보자는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조만간 동번탐사대를 조직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