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사실 복건성까지 가는 게 문제지 복건에서 동번, 즉 타이완까지 바다를 건너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다고 했다.
“기왕 하시는 김에 연해주(沿海州)와 아이누섬(북해도) 그리고 사할린까지 보내도록 하죠.”
“연해주라면 여진족이 산다는 동북방의 동토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김만덕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먼 곳까지 가서 뭘 얻을 수 있다는 건지…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이누섬과 사할린은 어딥니까?”
“연해주 동쪽 바다 건너에 있는 섬입니다. 현재 두 섬 모두 텅 비어있습니다.”
그래도 연해주에 대한 소문은 들어본 모양이었다.
하지만 북해도와 사할린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너무 춥지 않습니까?”
“그래도 여름에는 농사를 짓고 살 만합니다.”
“그렇습니까?”
“네.”
김만덕의 질문에 해모수는 당당하게 얘기했다.
마루를 통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지역이다.
이미 역사적으로도 검증이 끝난 곳이었다.
당장은 모르지만 일단 잡아두면 나중에 잭팟을 터트릴 수 있는 곳이었다.
“요동에 있는 여진족은 모르지만 연해주에 사는 여진족과는 상거래를 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부터 알아보세요. 잘하면 고려의 영토만 한 거대한 땅을 거저먹을 수도 있습니다.”
“거기의 땅이 그렇게 넓습니까?”
“넓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광활합니다. 위쪽으로 가면 바다같이 넓은 호수가 하나 있는데 농사가 그렇게 잘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할린과 아이누섬(북해도)도 면적을 합치면 아마 고려 땅만 할 겁니다.”
이 시대는 땅이 최고의 가치였다.
고려만 한 영토라면 탐이 날 만도 했다.
추운 게 문제긴 한데, 해모수는 사람이 살 수 있다고 했다.
한번 잘 알아볼 필요성은 있었다.
“연해주는 당장 가서 여진족과 상거래를 뚫어야 합니다. 너무 늦으면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있긴 있었다.
아예 청나라가 들어설 근간을 허물어 버리기 위해서다.
대신 여진족을 흡수 및 복속시키고 용병으로 삼아서 길을 들여볼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작은 상거래부터 시작해서 차츰 거점을 만들어 봅시다. 나중에는 성을 지어 근거지를 세운 뒤 영역과 세력을 확대하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한번 제대로 알아보겠습니다.”
김만득은 해모수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의욕을 불태웠다.
땅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부족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지금 형님들이 처한 상황은 어떻습니까?”
이제는 형들이 궁금해졌다.
물론 자신도 얼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때론 다른 사람의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성도 있다.
“특별한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산백호소와 영율백호소 모두 고려 유민들을 규합하고 회유하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두 백호소는 이미 주군의 형님들께서 장악하고 계십니다.”
듣기 좋은 소리였다.
하지만 그래 봐야 300명도 되지 않는 병력이었다.
두 백호소가 100퍼센트 고려의 유민으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대해 볼 것은 역시 새로 들어설 천호소인 심산소뿐이었다.
해모수는 김만덕과 조금 더 얘기를 나눈 뒤 주루를 나섰다.
여진 삼총사도 기다리면서 한잔했는지 불콰한 얼굴로 그의 뒤를 따랐다.
해모수와 왕지현은 여진 삼총사와 함께 느긋하게 말을 몰았다.
영성에서 성산포구까지는 그리 먼 길이 아니었다.
일부러 천천히 말을 몰았건만 금세 성산포구에 다다랐다.
“먼저 들어가라!”
“네, 해 총기!”
여진 삼총사는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들은 왕지현을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성산포구로 들어갔다.
해모수는 왕지현과 같이 바람 부는 언덕에 나란히 섰다.
달빛 아래 차가운 바람을 맞자 살짝 멜랑꼴리한 생각이 들었다.
허나 그녀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꼿꼿이 그의 옆에 서있었다.
“계속 내 옆에 있어줄 거지?”
“제가 상공을 떠나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왕지현은 해모수의 질문에 질문으로 답을 줬다.
그녀가 슬쩍 손을 뻗어 그의 손에 깍지를 꼈다.
해모수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자리 잡았다.
달빛이 부서지듯 파도 위로 쏟아져 내렸다.
밤바람에 놀란 바다는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울어댔다.
미녀의 고운 삼단 머리가 풀어지며 향긋한 체향이 풍겼다.
따뜻한 온기가 가슴을 잔잔히 적시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 * *
“등주(登州)가 보입니다.”
성산일호의 견시수가 위에서 크게 소리쳤다.
해모수는 굳이 오러를 사용하지 않아도 등주부(登州府)에 가까워지는 게 보였다.
“속도를 줄이고 입항한다.”
“속도를 줄여라! 돛을 하나씩 내려라!”
“입항을 준비하라!”
그의 명령은 복창이란 형태로 순식간에 전 대원에게 전달됐다.
“이제 등주의 봉래(蓬萊)에만 봉서(封書)를 전달하면 이 짓도 끝이군요.”
옆에 서있는 홍유의 말에 해모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하루는 쉬어도 된다고 했으니 도착하면 신나게 먹고 마시고 푹 쉬어.”
“예, 해 총기!”
성산포구에서 등주부까지 성산일호를 타고 쉬지 않고 달려왔다.
갑작스럽게 전달된 출동 명령서와 훈령!
덕분에 그들은 어제부터 하루 종일 정찰선을 움직여야만 했다.
그것도 성산위, 위해위, 기산소 등 각 위소(衛所)에 가서 봉서를 전달하면서 말이다.
아무래도 상부에서 정찰함대의 기동성을 시험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항구로 들어간다.”
“돛을 내려라!”
“속도를 줄여!”
“좌측으로 붙어!”
이제는 홍유와 강조도 제법이다.
하도 주변 해역을 빨빨거리고 돌아다녀서 성산일호를 제 몸처럼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선착장에 뱃전이 닿자 이물과 고물에서 동시에 밧줄이 날아갔다.
곧이어 대원들이 우르르 몰려가 긴 나무판자를 내렸다.
“홍유는 먼저 봉래로 가서 봉서를 전해라!”
“예, 해 총기!”
해모수의 명령에 홍유가 먼저 출발했다.
그는 강조를 보며 말했다.
“이번에는 강조가 배를 지킨다.”
“알겠습니다.”
“반나절이 지나면 교대시켜 줄 테니 좀 참아!”
“문제없습니다.”
강조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마음은 섭섭하겠지만 겉으로는 밝게 웃었다.
해모수는 그의 어깨를 한번 두드려 주고는 여진 삼총사를 쳐다봤다.
“퉁그란은 창고로 가서 보급품을 받아와!”
“바토르는 우리가 묵을 막사를 배정받도록 해!”
“차하루는 대원들이 푸짐하게 먹고 마실 수 있는 주루를 찾아봐!”
그의 명령에 여진 삼총사는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다섯 명의 소기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성산일호는 정신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해모수는 잠시 그들을 쳐다보다가 왕지현과 함께 배에서 내렸다.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봉래에 있는 해동무관으로 갈 것이오.”
“예.”
그의 말에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부두를 빠져나갔다.
봉래 시가지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인파가 나타났을까!
과연 등주부 최고의 성읍인 봉래다웠다.
해동무관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로를 따라 걷다가 광장 앞 관청 사거리를 만나자 우회전했다.
그러자 바로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해동무관의 모습은 웅장했다.
대문도 컸고 담도 높았다.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입구에서 장정들이 막아섰다.
“잠깐! 뉘십니까? 여기는 어찌 오셨습니까?”
해동무관의 도복을 입고 있는 자들은 일단 날카로웠지만 정중하기도 했다.
살펴보니 하나같이 눈이 부리부리하고 체격들이 좋았다.
“해모수가 관주를 보러 왔다고 전해주시오!”
“해모수라면 혹시 태사부?”
“설마!”
그들은 해모수를 알고 있었다.
그것도 태사부(太師父)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 쉽게 믿지를 못하는 모양이었다.
해모수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을 쳐다보면서 기다렸다.
잠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쑥덕이더니 한 명이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갑옷을 입고 허리에 환도까지 차고 있는 군의 장교이다 보니 그냥 무시하기엔 몹시 찝찝했던 모양이다.
왕지현은 주변을 경계하며 해동무관 안을 쳐다봤다.
돌을 깔아 만든 중앙 대로 옆으로 각각 네 개씩, 여덟 개의 연무장이 보였다.
각 연무장에서는 수십 명의 장정들이 열심히 무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대충 보이는 것만 해도 수백 명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해모수를 쳐다봤다.
마침 그도 고개를 돌려 왕지현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치자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다다다다!
안에서 누군가 급히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쿠! 이게 누구십니까? 태사부님 아니십니까!”
“임 관주! 오랜만이오.”
해동무관의 임상욱 관주는 해모수를 보자 마치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본 것처럼 요란을 떨었다.
그 모습에 출입문을 지키던 장정들이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두 사람은 반갑게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오셨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일이 있어서 봉래에 온 김에 한번 들러봤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조만한 한번 초대하려고 했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고맙소!”
해모수는 임상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뒤를 왕지현이 조용히 따랐다.
중앙의 돌길을 걸으며 좌우로 고개를 돌려봤다.
밖에는 보는 것과는 달리 규모가 더 엄청났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준비해서 많은 관도를 모아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게 참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왕지현이 뒤에서 그의 등을 쿡 찔렀다.
살짝 뒤를 돌아보자 그녀는 임상욱 관주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때까지는 보이지 않던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임 관주, 혹시 다치셨습니까?”
“아! 이거요? 별거 아닙니다.”
순간 당황한 듯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리 봐도 별거 아닌 게 아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걷고 있었지만 분명히 다리를 미세하게 절고 있었다.
해모수는 일단 모른 척하고 대청으로 들었다.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임상욱의 안내로 그는 대청 중앙에 있는 커다란 원형 탁자 앞에 앉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보고서를 가져오겠습니다.”
양해를 구하고 임상욱이 내실로 들어갔다.
뒷모습을 보니 분명히 다친 게 확실했다.
“상공! 귀를 열어보세요.”
“귀를?”
왕지현이 검지로 자신의 귀를 가리키며 말했다.
해모수는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하고는 눈을 감았다.
정신을 집중시키자 주변의 소리가 하나씩 귀에 잡혔다.
“귀에 기운을 집중시키면 천 리 밖의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음.”
그녀의 말에 힌트를 얻은 그는 오러를 귀로 끌어 올렸다.
오러가 귀에 머물자 신기하게도 해동무관 전체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거리는 이미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수십, 아니 수백 미터 밖의 소리도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들을 수 있었다.
“신음 소리가 들린다.”
“맞습니다. 다친 사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분명히 누군가와 분쟁이 있었다는 말이군.”
“싸우지 않고 아프다면 병이 걸린 것이니 당연히 의원을 찾아갔겠지요.”
해모수는 번쩍 눈을 떴다.
누군가 대청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리자 임상욱 관주가 품에 한 아름 책을 가져오고 있었다.
그는 원탁 위에 책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차를 시켰으니 곧 가져올 겁니다. 혹시 식사는 하셨습니까?”
“지금 차나 밥이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크흠.”
임상욱은 벌써 뭔가를 느꼈는지 괜히 헛기침을 했다.
“상처를 보여주세요. 내게 가문에서 내려오는 특수한 비방이 있습니다.”
“사, 상처라니요.”
임상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해모수는 손가락으로 그의 왼쪽 다리를 가리켰다.
“어찌 아셨습니까?”
“그렇게 티 나게 절고 있는데 어찌 모를 수가 있단 말입니까?”
“으음, 이거 참 민망하군요.”
“무슨 일입니까?”
해모수가 단호한 목소리로 묻자 결국 임상욱이 입을 열었다.
“산동의 유지 한 명이 해동무관이 커지는 것에 자극을 받았는지 맞은편에 중화무관을 새롭게 열었습니다.”
“그래서 한바탕하셨습니까?”
“해동무관도 명색이 무관인데 일부러 찾아와서 시비를 거는 놈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다.
시비 걸러 온 놈을 곱게 보내면 더 큰 시비가 일어난다.
피를 흘리더라도 이런 놈들은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
“이겼습니까? 졌습니까?”
해모수의 어린아이 같은 말에 임상욱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