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조무락은 스승으로부터 배운 비전의 검술을 마음껏 사용했다.
아니 죽을힘을 다해 펼치고 있었다.
현란한 그의 검술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그런데 전혀 맞지를 않았다.
심지어는 그녀의 옷깃조차 벨 수 없었다.
‘초고수다!’
조무락의 안목이 강제로 한 단계 상승했다.
“이게 전부냐?”
“크흠.”
왕지현의 물음에 그는 감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가지.”
휘익, 퍽! 휙, 퍼벅! 휘익, 퍼버버벅…….
컥, 켁, 크악, 아악, 억, 으아악…….
휘두르면 휘두르는 대로 다 맞았다.
한 방에 기절시킬 수 있었지만… 나름 열심히 설쳐줘서 예의상 몇 번 더 때려줬다.
진검이었다면 그냥 단칼에 목을 베었을 것이다.
빠각! 풀썩!
결국 중화무관 최고의 고수라는 조무락이 무너졌다.
목검에 정수리를 맞고는 그대로 기절해 버린 것이다.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그의 팔다리는 깨끗하게 부러져 있었다.
최소한 3개월에서 6개월 동안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나을 수 있게끔 힘 조절을 한 것이다.
“전원 공격! 전부 다 쓸어버려라!”
“와아아아!”
해모수가 무조건 돌격 명령을 내렸다.
해동무관의 제자들과 관도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갔다.
임상욱 관주가 그들보다 딱 한 발 앞서나갔다.
여극강 관주를 향해 분노의 주먹을 휘둘렀다.
“빨리 끝냅시다.”
해모수가 왕지현을 보고 한 말이다.
“예.”
왕지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중화무관의 관도들을 향해 비호처럼 달려갔다.
따다닥, 따다닥, 딱딱딱, 딱딱딱…….
누가 들으면 딱따구리가 나타난 줄 알 것이다.
그녀는 양 떼 속에 섞인 호랑이처럼 좌충우돌했다.
흥이 난 해모수도 난전에 끼어들었다.
빡, 퍽, 퍼벅, 퍼버벅, 빠각, 우둑, 우드득…….
손에 목검을 들지 않은 관계로 그는 온몸을 무기로 썼다.
주먹을 뻗어 중화무관의 관도의 아구통을 날렸다.
턱이 부러지며 뇌가 흔들리자 상대는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뒤에서 달려드는 놈을 향해 돌려차기를 했다.
덜컥! 턱이 걸리자 역시 턱이 돌아가며 그 자리에 꼬꾸라졌다.
벼락같이 한 무리의 중앙으로 뛰어들었다.
팔꿈치를 들어 한 놈의 턱을 쳤다.
이어 팔을 쭉 뻗어 잽을 날리듯 옆에 있는 놈의 목을 쳤다.
연속기가 적중하자 턱이 부서지고 목에 충격을 받았다.
둘 다 사이좋게 바로 뻗어버렸다.
정면에서 세 놈이 흉악하게 달려들었다.
빠르게 로우 킥, 미들 킥, 하이 킥을 날려줬다.
종아리가 부러지고 옆구리가 터져나가고 턱이 깨져버렸다.
세 놈은 기괴한 모양으로 쓰러지며 땅바닥과 입을 맞췄다.
이 모든 해모수의 움직임은 마치 물 흘러가듯 극히 자연스러웠다.
마치 애들 싸움에 종합 격투기 챔피언이 뛰어든 것 같은 분위기였다.
100 대 300.
숫자만 봐서는 절대 100이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당백의 전사들은 순식간에 300을 잡아먹었다.
특히 해모수와 왕지현은 물 만난 고기처럼 눈부시게 숫자를 줄여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100을 상대하는 300은 금세 200이 됐다.
그리고 200은 다시 100으로 줄어들었다.
그때부터는 거의 일방적인 매타작이었다.
채 일각이 지나기도 전에 바닥에는 300여 명에 달하는 중화무관의 관도들, 그리고 플러스알파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여기서 플러스알파는 산동의 유지 서진평이 동원한 중소무관연합의 관도들이었다.
“이럴 수가! 이건 현실이 아니야.”
한쪽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팔다리에 골절상을 입은 여극강 관주가 땅을 치며 통곡을 했다.
정신력이 모자란 놈인지 금세 현실도피를 하고 말았다.
그의 옆으로 대자로 뻗은 요전서 총관의 몸이 눈에 띄게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와아아아!”
“이겼다.”
해동무관의 제자들과 관도들이 일제히 승리의 함성을 터트렸다.
“태사부! 천세!”
“백발 마녀! 천세!”
그런데 어째 마지막에서 삑사리가 났다.
“백발 마녀?”
“흥!”
해모수는 깜짝 놀랐고 왕지현은 삐져버렸다.
기껏 열심히 목검을 휘둘러 줬더니… 자신의 흑역사나 마찬가지인 왕년의 별명을 끄집어냈다.
그것도 사랑하는 상공 앞에서 말이다.
그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확! 삐뚤어질 테다.’
왕지현의 눈에 서서히 살기가 어렸다.
그러자 백발 마녀를 외치던 철없는 관도들의 입이 금세 합죽이가 됐다.
“은, 은발 선녀! 천세!”
“은발 선녀! 천세!”
누군가 재치 있게 은발 선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구호는 금세 백발 마녀에서 은발 선녀로 바뀌었다.
가히 카메하메하급 태세 전환이었다.
살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사내로서 참으로 굴욕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백발 마녀를 백발 마녀라고 부르지 못하는 이 참담한 심정!
그러나 누구 하나 그녀 앞에서 감히 따지고 드는 놈이 없었다.
“은발 선녀라…….”
“뭐 나쁘지 않네요.”
왕지현은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해모수는 이런 그녀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만질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해동무관은 빠르게 중화무관을 접수했다.
패한 중화무관의 현판은 곧바로 내려져 반으로 뚝 분질러졌다.
아마 나중에 좋은 땔감으로 쓰일 것이다.
승자는 전리품을 챙겼고 패자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이후 그들의 모습은 봉래, 아니 등주부에서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일대의 중소무관들도 곡소리가 났다.
나름 무관의 정예들을 내보냈는데 반병신이 되어 돌아왔으니… 앞으로 어떻게 무관을 운영할지 이만저만 고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에 앞서 해동무관과 척을 진 것에 대한 피의 보복부터 걱정해야 했다.
결국 중소무관들은 솔직히 이실직고를 하고 거액의 위자료와 합의금을 내고 말았다.
그로 인해 모든 일의 시작이자 발단이 된 산동의 유지 서진평의 존재가 드러났다.
“서진평이란 놈을 어떻게 할까요?”
임상욱 관주는 조심스럽게 차를 따르며 물었다.
해모수는 대청 상석에 앉아 찻잔을 돌렸다.
잠시 생각해 보다 이내 마음을 정했다.
“일단 그자의 뒤를 한번 캐보세요. 정보가 모이면 어찌할지 결정합시다.”
“예, 알겠습니다.”
일단 용서는 없었다.
원한도 없는데 목에 칼을 디밀었으니… 이쪽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해야만 한다.
문제는 대놓고 정면으로 부딪칠 것인가, 아니면 은밀히 제거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뒤탈이 있을 것 같으면 전혀 다른 방법도 고려할 것이다.
해모수와 왕지현은 임상욱에게 뒤처리를 맡기고 해동무관을 빠져나왔다.
그들은 대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성산일호로 돌아갔다.
* * *
카시오페라 왕국 수도 에티오.
깜빡깜빡!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마법 수정구가 아까부터 깜빡이고 있었다.
“마스터, 프릴 마탑에서 연락이 왔어요.”
야엘이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렌은 창가에 앉아 눈을 감고 사색을 즐기다가 깨어났다.
“프릴 마탑이 아니라 프릴 마탑 에티오 지점장이군.”
뭐가 다른지 모르지만 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법 수정구를 앞으로 가져오더니 마나를 약간 흘려 넣었다.
뿌옇게 탁한 빛을 내던 마법 수정구가 즉시 유리처럼 깨끗하게 변했다.
이어 안에서 사람의 상이 하나 맺혔다.
―그렌 님, 저 피라미 지점장입니다.
예상대로 마법 수정구에서 피라미가 나타났다.
자신의 직책인 지점장을 말하는 것을 보면 뭔가 공적인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오?”
그렌은 마법사답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피라미는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오히려 밝게 웃었다.
자신도 마법사라서 가끔 마법 수정구가 얼마나 귀찮은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렌 님이 장원이나 영지를 구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벌써 소문이 돈 모양이로군.”
그는 굳이 숨기려 들지 않았다.
혹시 장원을 소개해 주려나 하고 일말의 기대를 가져봤다.
하지만 피라미의 입에서 전혀 뜻밖의 말이 나왔다.
―장원을 구하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냥 말만 듣고 덜컥 샀다가 나중에 가보면 전혀 상황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거래를 하고 계약을 맺고 직접 가서 실사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 절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용건이 뭐요?”
그렌의 목소리가 살짝 날카로워졌다.
피라미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했다.
―장원이 이 정도면 영지는 어떻겠습니까? 절대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닙니다.
“으음.”
그도 어렴풋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에티오에 거점을 하나 마련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거점? 무슨 뜻이오?”
―말 그대로 수도 에티오에 저택을 구입하라는 말입니다.
“나도 그러고 싶긴 한데 쓸데없이 집값이 너무 비싸서 말이오.”
피라미는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카시오페라 왕국의 수도이자 상업의 중심지이다 보니 부동산값이 너무 올라간 면이 없지 않지요.
그렌은 자신도 모르게 피라미를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마법사들은 효율을 중시하니 굳이 저택을 살 필요는 없지요. 그래서 제가 괜찮은 매물을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좋은 매물이 있는가 보군.”
―네, 그렇습니다. 집도 저택도 아닙니다. 하지만 조용한 위치에 충분한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소?”
그제야 그렌이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괜찮으시다면 지금 한번 보시겠습니까?
“좋소.”
피라미의 제안을 그는 단번에 수락했다.
안 그래도 여관 생활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아무리 특실에 있다고 해봤자 답답한 방에 불과했다.
하루 이틀이면 모르지만 계속 이렇게 사는 것은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견습 마법사 한 명을 보내겠습니다. 마음의 결정을 하시면 제게 연락 주십시오.
“알았소.”
그렌은 흔쾌히 승낙했다.
마나를 끊자 마법 수정구는 금세 다시 뿌옇게 변했다.
“마스터, 집을, 아니 거점을 마련하시려고요?”
“응, 언제까지 여기서 마냥 죽치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건 그렇죠.”
야엘도 솔직히 점점 지겨워지고 있었다.
“장원이나 영지를 구한다고 해도 수도 에티오에 거점 하나 있으면 도움이 될 거야.”
“아무래도 자작이시니 에티오에 올 일이 많긴 하겠네요.”
그렌의 말에 그녀는 금세 설득당했다.
아니 야엘이 조금은 더 적극적이었다.
“우리 나갈 준비를 하자.”
“네, 마스터.”
두 사람은 새로운 거점 마련이라는 명제 아래 의기투합했다.
그들은 욕실로 들어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를 닦았다.
벽에 붙어있는 만 원짜리 거울이 두 사람의 모공까지 깨끗이 비춰주고 있었다.
그렌은 클렌징 로션으로 세안을 하고 아쿠아틱 로션을 발랐다.
야엘은 클렌징 로션으로 얼굴을 깨끗이 씻어낸 뒤 퍼스트 에센스를 발랐다.
스킨과 토너를 바른 다음 피부 속을 관리해 주는 일반 에센스를 발랐다.
유, 수분을 채워주는 로션을 바르고 이어 아이 크림과 립크림을 발랐다.
기초화장품이 피부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수분 막을 형성해 주는 수분 크림!
마지막으로 유분 막을 형성해 주는 영양 크림으로 기초화장 순서를 모두 끝마쳤다.
“흐음, 참 여자는 복잡하군.”
“헤헤!”
기초화장품 세트를 전해준 것은 그렌이다.
자신이 공유 인벤토리를 통해 받아서 건네줬는데도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하긴 뭐가 그리도 많고 복잡한지…….
사실 남자라면 보통 여자들이 기초화장만 하는 걸 봐도 질색을 한다.
야엘도 원래는 비누로 세수만 하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렌이 기초화장품 세트를 가져다주자 곧바로 자기 관리에 들어갔다.
마루를 통해 딱 한 번 기초화장 순서를 알려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틀리게 쓰는 법이 없다.
아무리 기사라고 해도 역시 야엘도 여자였던 것이다.
“커피 한잔할까?”
“네, 좋아요.”
그렌의 말에 야엘이 마법 주머니를 열었다.
아침에 한 잔씩 마시는 모닝커피!
이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예쁜 커피 잔 두 개를 꺼냈다.
주전자를 가져오자 그는 가볍게 원소 마법을 써서 물을 팔팔 끓였다.
야엘은 커피 잔에 커피믹스를 타고 주전자의 물을 부었다.
스푼으로 휙휙 젓자 향긋한 향기가 나는 모카골드가 완성됐다.
두 사람은 베란다로 가서 느긋하게 커피 맛을 즐겼다.
커피를 따로 타서 마시는 것은 너무 썼다.
하지만 달달한 커피믹스는 마약과도 같아 한번 마셔보니 도저히 끊을 수가 없었다.
야엘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짓자 그렌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