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지하 3층으로 내려가 석실 입구에 각각 철문을 달았다.
대물리, 대마법 방어진을 새긴 철문이라 어지간한 충격에도 잘 견딜 것이다.
특히 맨 안쪽 구석에 있는 석실은 더욱 신경을 썼다.
그 안에는 어젯밤 심혈을 기울여 새겨놓은 영구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었다.
앞으로 지하 3층 창고에는 마루가 보내주는 물건들만 따로 넣어둘 예정이다.
석실 안에다 보존 마법을 걸어놓으면 오랫동안 상하지 않고 보관할 수 있다.
아공간 반지 안에 담았던 물건들이 대부분 비워지자 그렌은 계단을 통해 1층으로 올라갔다.
메인 타워 밖으로 걸어 나가자 어느새 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들이 보였다.
그렌은 그것을 보고도 짜증을 내지 않고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발다 상단은 아주 작정을 하고 그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어떻게든 이번 일을 잘 덮어보려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협상을 하는 상대가 개인이 아니라 프릴 마탑이었다.
증거도 확실하고 협상을 해야 하는 대상도 아주 거물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그래도 어떻게든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보려고 블랙 타워에 엄청난 인력과 물자를 쏟아붓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렌은 아무 말이나 약속도 해주지 않았다.
그는 뒤에서 가만히 구경을 하고 있다가 최종적으로 떨어질 과실만 챙길 생각이었다.
당연히 지금 떨어지는 것은 떡고물에 불과했다.
그렌은 메인 타워의 지하 1층 창고로 몇 번이나 왕복을 했다.
그러자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짐마차의 행렬도 마침내 끝이 났다.
메인 타워 앞에 서서 그는 블랙 타워가 변하는 과정을 살펴봤다.
일류 석공과 목수들이 수십 명의 인부를 부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그들을 보조하는 백여 명의 노예들도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제만 해도 텅 비어있던 블랙 타워와 메인 타워!
하루 만에 실속으로 가득 찬 그럴싸한 장소, 아니 거점으로 변해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모든 공사가 마무리됐다.
인테리어 자체를 까다롭게 요청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는 할 일이 없었다.
석공과 목수들, 인부와 노예들이 그에게 다가와서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쿵!
노예들이 블랙 타워의 성문인 철문을 닫았다.
그제야 야엘이 그에게 다가왔다.
“어때?”
“뭐가요?”
“노예들을 부려보니까 어떠냐고?”
“말을 잘 들어서 좋아요.”
자신도 노예였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그녀는 별말 하지 않았다.
노예상인을 통해 사들인 모리스 출신 노예는 모두 스무 명이었다.
남자 노예가 열여섯에 여자 노예가 넷이다.
남자들은 전부 노예병으로 팔린 것이고 여자들은 젊은 성노예였다.
야엘은 그 사실이 무척 신경 쓰였다.
혹시라도 그렌이 성노예를 탐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젊은 여자 노예들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야엘은 자신이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지 몰랐다.
스스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노예였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자존감이 무척 낮았다.
“모두 모여라!”
그렌이 노예들을 향해 외쳤다.
그러자 다들 서둘러 그의 앞으로 뛰어왔다.
“줄을 세워라!”
“예, 마스터.”
야엘은 그렌의 명령을 받아 노예병들을 줄 세웠다.
그들은 명령을 받는 것에 익숙한지 금세 오와 열을 잘 지었다.
사실 이들은 모리스 왕국과 카시오페라 왕국 사이의 전쟁에서 생긴 노예들이 아니다.
모리스 왕국 내에서 일어난 영지전에서 패한 병사들이 에티오까지 팔려온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카시오페라 왕국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난 카시오페라 왕국의 자작이자 5서클의 고위 마법사인 그렌이다.”
귀족이라는 말보다 마법사라는 말이 그들에게는 훨씬 충격으로 다가왔다.
“난 인체 실험을 할 생각이 없다. 당연히 너희들을 고문하거나 피를 뽑을 생각도 없다.”
그렌의 말에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래도 수틀리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나와 야엘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성심껏 섬겨야 할 것이다.”
노예들은 그렌의 말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대놓고 말해버리면 기운이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구든지 열심히 훈련을 받고 블랙 타워를 지킬 수 있을 정도의 정예 병사가 되어 10년을 봉사한다면 자유를 주겠다.”
“와아아아!”
그의 폭탄선언에 노예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세상에 누가 사유재산을 자유롭게 풀어준단 말인가!
그들은 일말의 희망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기다렸다가 소음이 줄어들자 그렌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일단 정예 병사가 되면 노예가 아니라 일반 병사로 대우를 해주고 매달 급료도 지급할 것이다.”
“와아아아!”
다시 한번 환호성이 터졌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그렌은 당근과 채찍 전술을 구사했다.
“네 명이 한 조를 이룬다. 인원이 총 열여섯 명이니 네 개의 조가 될 것이다. 각 조의 이름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로 한다. 네 개의 조는 블랙 타워 동서남북의 성벽을 수비한다.”
“…….”
“각 조의 조장은 정예 병사 중 가장 강하고 뛰어난 자가 될 것이다. 조장은 10년의 봉사 기간을 2년 단축시켜 주겠다. 조장은 정예 병사가 받는 급료의 두 배를 받게 되고 혼자 지낼 수 있는 독방을 내어줄 것이다. 또한 매달 한 번씩 여자 노예들과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선택권도 부여할 것이다.”
“우와!”
남자 노예들은 점점 욕심에 눈이 멀어갔다.
다들 젊고 건강한 사내들이었다.
당연히 예쁜 여자 노예와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누구든지 조장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나와 야엘이 세운 기준을 넘어서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여자 노예가 모자라지나 않을까 헛된 걱정은 하지 마라! 앞으로 노예는 계속 보충될 것이다.”
“…….”
다들 합리적인 그렌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공을 세운 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상을 받게 될 것이다. 봉사 기간을 단축시켜 준다거나 현금을 받을 수도 있다. 난 절대 인색한 사람이 아니다. 반대로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떤 벌을 받게 될 것인지는 기대해도 좋다.”
꿀꺽!
남자 노예들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절대로 죄를 짓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몬스터와 합체되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괴물이 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여자 노예들은 모두 내 앞으로 오라!”
후다다닥!
그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자 노예 네 명이 그의 앞에 나란히 섰다.
“오늘부터 너희들의 이름은 에바, 벨라, 신디, 다나다.”
넷은 속으로 자신의 새로운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외우려고 노력했다.
“이전의 일들은 모두 잊어라! 이제부터 너희는 여기 야엘과 함께한다. 생사여탈권이 그녀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섬기는 데 한 치도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네, 주인님.”
네 명의 여자 노예들은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야엘!”
“네, 마스터!”
“일단 딱 죽지 않을 만큼만 굴려! 그리고 최대한 빨리 정예병을 만들어 봐!”
“예스, 마이 로드!”
그렌은 야엘에게 노예들에 대한 전권을 넘겨줬다.
이제 이들을 죽이든 살리든 모두 그녀가 하기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기사다.
남녀 노예 합쳐서 스무 명밖에 되지 않으니 알아서 잘할 것이다.
그는 벌써부터 눈에 힘을 주고 있는 야엘을 내버려 두고 메인 타워로 들어갔다.
일은 혼자 다 하는 게 아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나눠주면 된다.
간만에 자유로운 몸이 된 그는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그때부터 그렌은 아티팩트 제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역시 가장은 돈을 벌어야 한다.
* * *
“우아아아아아!”
두 팔을 벌리며 길게 기지개를 켰다.
우두둑, 우둑!
온몸에서 마치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끝났다.”
그렌은 퀭한 눈을 하고는 밝게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전혀 감도 오지 않았다.
대충 하루는 지났으려나?
확실히 메인 타워 지하 2층에 연구소 겸 마법 공방을 차린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프릴 마탑이 발주한 아티팩트들을 한 번에 끊지 않고 제작할 수 있었다.
덤으로 자신이 쓸 것과 몇 가지 테스트용 아티팩트도 만들어 봤다.
이제는 침대에 가서 잠을 자든가, 좀 놀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노는 꼴을 보지 못하는 인간들도 있었다.
[마루: 블랙 타워 안팎에 각종 방어 마법진을 설치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해모수: 메인 타워에도 설치한다고 했잖아요.] [그렌: 아! 그렇지.]그렌은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사실 프릴 마탑이 발주한 아티팩트 제작보다 이게 더 급한 일이었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먼저 지하 3층으로 갔다.
영구 텔레포트 마법진에 주인 인식을 새기고 암호를 걸어놓았다.
만약 세 번 이상 암호 입력이 틀릴 경우, 공간의 비틀림 속으로 텔레포트 시키도록 조치를 취했다.
각 창고의 문에도 대 물리 및 마법 방어진과 메가실드 마법진을 새겨 넣었다.
당연히 암호를 걸어놓았고 세 번 이상 틀리면 5서클의 광역 마법인 체인 라이트닝이 발동되게끔 만들어 놓았다.
지하 2층으로 올라갔다.
일단 곳곳에 알람 마법과 마법 수정구로 작동되는 녹화 마법을 걸어놓았다.
사방에 수면, 마비, 기절, 암흑 등 갖가지 상태 이상 마법과 광역 마법 트랩도 설치해 놓았다.
위아래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아이스 월과 블레이즈 마법진을 설치했다.
마나가 모자라면 최상급 마나석과 상급 마나석을 꺼내 보충했다.
지하 1층으로 올라가서는 주로 창고의 문을 손봤다.
대 물리 및 마법 방어진과 메가실드 마법진을 그려 넣고 역시 암호도 걸어놓았다.
각종 마법 트랩도 꼼꼼히 설치하고 알람과 녹화 마법도 달아뒀다.
1층에서 꼭대기까지!
계단과 벽에 각종 5서클 광역 마법들로 도배를 해버렸다.
에어 블래스트, 플레어, 그라비티, 라이트닝 필드 등.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광역 마법이었다.
이 모든 게 그의 의지 하나로 모두 발동될 수 있게끔 아주 세심하게 마법진을 새겨 넣었다.
메인 타워 안팎으로 대물리, 대마법 방어진과 메가실드 마법진도 그려 넣었다.
제대로 힘을 발동할 수 있도록 중급 마나석을 여러 개 사용했다.
아마 5서클 이하의 마법 공격은 전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메인 타워 출입구에도 암호를 걸어놓고 마법 트랩을 차례로 깔아놓았다.
누구든지 함부로 들어오려고 하는 순간!
아마 새까만 통구이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렌: 아이고, 힘들어 죽겠다.] [마루: 아티팩트 제작에 너무 기운을 뺐나 보네요.] [해모수: 그래도 집이 안전해야 편하게 잠을 자죠.] [그렌: 알았다. 알았어. 아직 일 끝난 거 알고 있다고…….]그렌은 괜히 삐진 척을 하며 밖으로 나갔다.
야엘이 허리에 두 팔을 올린 채 조교 노릇을 하고 있었다.
“동작 봐라! 누가 그따위로 움직이라고 했어? 알파조와 베타조는 성벽 위까지 다시 50번 왕복한다. 실시!”
“실시!”
후다다닥!
알파조와 베타조 총 여덟 명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성벽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향해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나머지 조원들이 킥킥대고 웃었다.
“누가 웃으라고 했지. 감마조와 델타조는 창 찌르기 100회를 시작한다. 실시!”
“실시!”
그러다 야엘에게 걸려서 무거운 창을 들고 허공에다 찌르기 100번을 해야 했다.
“여자들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에바, 벨라, 신디, 다나! 다시 일어나서 블랙 타워를 50바퀴 돈다. 실시!”
“실시!”
얼마나 뛰고 달렸는지 이미 옷이 땀으로 흠뻑 젖은 여자 노예들이다.
하지만 야엘은 여자라고 봐주는 법이 없었다.
일단 본인 스스로가 여자였다.
어렵게 기사가 되어 다른 기사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더 빨리 달려라! 할 수 있다. 예쁜 척 그만하고 당장 힘과 체력을 길러라!”
야엘은 이미 탈진한 상태로 간신히 뛰어가는 여자들을 향해 매섭게 소리쳤다.
“우웩!”
결국 한계를 이기지 못한 다나가 헛구역질을 하며 앞으로 쓰러졌다.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오늘 저녁밥은 없다. 또한 일주일 동안 화장실 청소를 시킬 것이다.”
블랙 타워 네 귀퉁이에 있는 네 개의 화장실!
로마의 목욕탕과 화장실처럼 기본적으로 물을 부어 씻어 내리는 수세식이다.
그렇다고 냄새가 나지 않거나 더럽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곳을 일주일 동안 청소를 하라는 말에 디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헛구역질을 계속했다.
어지간히 화장실 청소를 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