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
2화
“너도 이해가 안 가지? 이 고대 마법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그동안 쓰레기 취급을 받아왔는데 말이야. 하지만 나한테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어. 그것은 바로 이 고대 마법서를 해석할 수 있는 특별한 비법이 내게 있다는 거지.”
점점 힘이 빠진다.
눈이 감겨온다.
눕고 싶다.
쉬고 싶다.
이대로 눈을 감는다면… 다시는 이 험한 세상에서 더 이상 고통을 받고 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렌, 이제 갈 시간이 됐다.”
“트…웨인!”
“그래, 나 트웨인이야. 앞으로 대마법사가 될 귀하신 몸이지. 무하하하하!”
트웨인은 뭐가 그리 좋은지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순간 비위가 확 상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나를 죽이고, 저렇게 좋다고 웃고 있는 꼴이라니…….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트웨인!”
“왜? 죽기 전에 할 말이라도 있어?”
트웨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래 봐야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온 것뿐이지만.
그래도 이제 팔만 뻗으면 닿을 거리다.
“아디오스(A Dios)!”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진 죽음의 모래가 트웨인의 머리를 덮쳤다.
“크아아아악!”
‘죽음의 모래’가 괜히 죽음의 모래가 아니었군.
입고 있는 로브와 고대 마법서는 조금도 손상을 받지 않았다.
녹고 있는 것은 오직 쥐새끼 같은 트웨인의 머리통뿐이다.
“홀홀홀!”
절로 웃음이 나왔다.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나를 죽인 원수에게 이렇게 바로 복수를 할 수 있다니…….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통쾌했다.
아!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난 죽었구나.
아니 죽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시야가 검게 물들어 갔다.
죽음이 찾아온다.
그렇다. 이제 난 이렇게 죽는 것이다.
온몸이 축 늘어졌다.
툭!
팔이 힘없이 차가운 방바닥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나 ‘그렌’은 서른세 살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 * *
칠흑같이 어둡고 고요한 공간!
얼핏 보면 끝이 안 보이는 차가운 무저갱이다.
달리 보니 어머니의 포근한 자궁 같기도 하다.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이런 곳에 와있다.
“여긴 어디지?”
‘내가 지금 말을 했던가?’
육체가 없는데 어떻게 말을 하지?
그냥 생각이겠지.
하지만 분명히 말을 한 것처럼 느껴진다.
“몸을 움직여 볼까?”
이번에도 생각을 한 것 같은데 말이 들려온다.
몸을 움직인다고 생각하자… 마치 누군가 뒤에서 미는 것처럼 앞으로 쭉 미끄러진다.
허나 일정 거리 이상 앞으로 더 나아갈 수가 없다.
자신이 가려는 방향에 뭔가가 진행을 가로막고 있다.
“여긴 어디지? 왜 막혔지? 난 죽었는데……. 죽었다면 천국이나 지옥에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정말 이상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
시간이 흘렀다.
아주 많이 흐른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시계가 없으니 알 도리가 없다.
무료하다.
심심하다.
지긋지긋하다.
이제는 아예 조금씩 외로워지기까지 한다.
혼자 있는 게 이렇게 괴로운 일이라니…….
이곳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혼자 있어야 되는 걸까?
팟! 파앗!
그때였다.
이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에 빛이 들어온 것은…….
두 개의 희미한 빛이 생겨났다.
가만히 살펴보니 자신의 몸에도 같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저 빛은 자신과 같은 영혼일 것이다.
여태까지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왠지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마루는 천천히 두 개의 빛을 향해 다가갔다.
그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두 개의 빛은 더욱 밝아졌다.
아니,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빛도 덩달아 강해지고 있었다.
무슨 공명(共鳴)이라도 하는 건가?
신기하게도 자신의 의식과 생각까지 더욱 또렷해진다.
분명 이들과 자신은 뭔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오른쪽에서 빛을 내고 있는 영혼을 바라봤다.
무슨 알 속에 들어가서 잠이라도 자고 있는지, 빛나기만 하고 전혀 반짝이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 왼쪽에 있는 영혼을 봤다.
오른쪽에서 빛을 내고 있는 영혼처럼 흰색이 아니다.
조금씩 회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아니, 이제는 점점 검게 변해간다.
분명히 뭔가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다.
검은색의 영혼이라니!
절대 좋은 징조가 아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이제는 손을 대면 바로 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다.
역시 가까이에서 보니 사람의 얼굴이 참 또렷하게 잘 보인다.
십 대 후반의 꽃미남.
아이돌이라도 되는지 참 잘생긴 녀석이다.
그런데 영혼도 잘생긴 영혼이 존재하나?
설마!
천국에 가도 평범한 얼굴 때문에 차별받는 건 아니겠지?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어리고 잘생기기까지 한 영혼이… 괴로운 인상을 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뭔가 굉장히 분노하고, 아파하고 있는 것 같다.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지?
자신처럼 힘들고, 괴롭고, 화가 나는 일이라도 있어서 그런 걸까?
이제는 칠흑같이 어두운, 검은색에 가깝게 변해가고 있다.
더 이상 내버려 뒀다간 안 될 것 같다.
당장 깨워야겠다는 생각에 마루는 손을 내밀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으헉!”
순간, 별과 달이 쏟아져 내린다.
은하수가, 우주가 통째로 쏟아져 내리고 있다.
눈앞에 파도처럼 밀려드는 셀 수 없이 많은 은하들!
그의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타원형의 은하의 뒤로 검붉은 은하가 통과한다.
다음에는 묘한 비대칭형의 은하가 빠져들 것같이 흘러온다.
먹물처럼 어두운, 빛조차 빨아들이는 기이한 공간!
급기야 블랙홀까지 뚫고 나간다.
이어지는 것은 눈 가득히 찬란한 은하수의 물결.
뒤이어 타원형의 거대한 은하가 다가왔다.
그리고…….
사파이어처럼 푸른 행성 하나가 급격한 속도로 확대된다.
자신은 지금 저 행성을 향해 빛의 속도로 날아가고 있다.
“으허어어어어!”
행성을 뚫어버릴 듯 쏘아지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이 튀어나온다.
번쩍!
결국 뭔가와 충돌한 그의 눈에 별이 번쩍거리기 시작한다.
아니다. 가만히 보니 이것은 별이 반짝이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양에 엄청난 속도로…….
그렇다.
지금 그의 눈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이 무지막지하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추운 겨울, 엄마의 품속에서 울고 있는 갓 태어난 아기가 보인다.
강보에 싸인 아기가 엄마의 등 위에서 얼어붙은 강을 보고 있다.
마을에서 쫓겨난 아이가 산으로 들로 노루처럼 싸돌아다닌다.
바다를 향해 조각배를 띄우고 있는 사내의 등이 무척이나 넓고 애처롭다.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소년들이 병사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고 있다.
주루(酒樓) 앞에서 따뜻한 손을 놓고 돌아서는 여인의 모습이 눈 시리게 처량하다.
누군가에게 강제로 몹쓸 짓을 당하며 울부짖는 소년의 입가에 피가 흐르고 있다.
무자비한 폭력에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는 소년의 고통과 아픔이 마치 내 것인 양 느껴진다.
“아아아!”
너무도 안타까운 기억의 편린들.
마루는 깊게 탄식했다.
어찌 한 인간의 삶이 이리도 서글프고 애절할 수 있단 말인가?
마루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가만히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신기하게도 그가 한 번씩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마다… 검게 변했던 영혼이 마치 탈색이라도 되듯 변해갔다.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지 않은데…….
어느새 영혼의 색깔은 회색을 넘어 점차 하얗게 변해갔다.
아니 원래의 색깔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잘생긴 어린 영혼이 마침내 눈을 떴다.
자신을 바라보며 짓는 싱그러운 미소.
마루도 그를 보며 같이 미소를 지어줬다.
“누구세요?”
“나? 난 마루야. 넌?”
“전 해모수예요.”
분명히 두 사람의 입술이 열린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멀쩡히 공간을 울리고 있었다.
“여긴 어디죠?”
“사실은… 나도 잘 몰라.”
“지옥은 아닌가 보네요?”
“그렇지? 내가 봐도 지옥은 아닌 것 같아. 하지만 천국도 아니야.”
“여기가 어디든지 내가 살던 지옥 같은 곳이 아닌 건 확실하군요.”
“아! 그, 그렇겠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저리는 해모수의 말.
마루는 자신도 모르게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을 차린 해모수의 모습이 허공에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루는 자신의 모습도 저렇게 허공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생각됐다.
“저건 뭐예요?”
“아직 확인해 보지 않았어. 아마 우리와 같은 영혼일 거야.”
마루의 말에 해모수의 몸이 앞으로 쭉 나아갔다.
그를 따라 마루의 몸도 앞으로 미끄러졌다.
“아저씨네?”
“그렇구나. 아저씨구나.”
번쩍!
해모수가 아저씨라고 부른 영혼이 돌연 눈을 번쩍 떴다.
그가 눈을 뜨자, 역시 마루와 해모수처럼 허공에 둥둥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금발에 푸른 눈.
멀대처럼 키가 큰 아저씨가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셋은 그렇게 처음으로 서로에게 인사를 했다.
“그렌입니다.”
“마루예요. 이마루.”
“전 해모수예요.”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통성명을 했다.
“여긴 어디죠?”
“저도 잘 몰라요.”
그렌의 물음에 마루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옆의 해모수가 마루처럼 좌우로 도리질을 했다.
그렌이 고개를 돌리더니 뒤를 향해 날아갔다.
뭔가에 막히자 방향을 살짝 돌려 왼쪽으로 날아갔다.
다시 막히자 이번에는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갔다.
역시 막히자 이제는 마루와 해모수에게 돌아왔다.
“어떤 막이나 결계 같은 것에 의해 막힌 것을 보니 이곳은 아공간(亞空間, Demi-plane)이네요.”
“네?”
“아공간이 뭐예요?”
그렌은 두 사람의 물음에 순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실은 나도 그것을 잘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이 뛰어난 게 아닙니다.”
“그럼 아는 만큼만 설명해 주세요.”
마루의 말에 그렌은 용기를 냈다.
“그러죠. 아공간은 차원 사이의 왜곡되고 비틀린 시공간의 틈새라고 보시면 됩니다.”
“굉장히 어려운 말이네요. 하지만 대충 알 것도 같아요. 독립된 차원의 일정 공간을 얘기하시는 거죠?”
“네, 맞아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시죠?”
“그건 온라인 게임을 많이 하면 저절로 알 수 있어요.”
그렌은 마루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문의 눈빛을 발했다.
“온라인 게임이 뭐예요?”
“온라인 게임?”
해모수도 옆에서 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루는 도저히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웃어버렸다.
대신 자신이 경험한 것을 가르쳐 줬다.
“제가 여기 해모수의 어깨에 손을 댄 순간 해모수의 기억을 좀 읽은 것 같아요. 제 어깨에 손을 대면 온라인 게임이 뭔지 알게 될지도 몰라요.”
“어깨에 손을 대면 상대방의 기억을 읽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정말이에요?”
그렌과 해모수는 깜짝 놀랐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얘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들은 육체가 죽고 영혼만 남은 상태란 것을 인지한 것이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지 다들 눈을 빛냈다.
“어깨를 한번 만져봐도 될까요?”
“좋아요. 그럼 난 해모수의 어깨를 만지면 되겠네요.”
“그럼 전 마루 형의 어깨를 만질게요.”
“좋습니다. 하나 둘 셋 하면 우리 동시에 어깨를 만져봐요?”
“좋아요.”
“네, 그렇게 해요.”
셋은 바로 의기투합하더니 새로운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하나, 둘, 셋!”
마루가 숫자를 센 후, 그렌의 어깨에 손을 댔다.
바로 자신의 어깨에 해모수의 손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억!”
“으헉!”
“으아아아!”
세 개의 각기 다른 비명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동시에 그들의 몸에서 일제히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은 놀랍게도 아공간 전체를 환하게 밝히더니 주변을 황금빛으로 물들여 갔다.
서로의 어깨에 손을 대고 있는 마루와 해모수 그리고 그렌.
아쉽게도 그들은 전혀 이런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우주를 가로지르고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기억들.
서로의 기억을 읽느라 이들은 조금도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예쁜 아가의 모습이 보인다.
흔들의자에 누워 농사를 짓는 남녀를 바라보고 있다.
봄이 되어 나무껍질을 벗기는 아이의 손길이 거칠기만 하다.
공부를 하고 있는 소녀의 뒷모습을 몰래 훔쳐보는 키 큰 소년.
눈물을 흘리는 중년 남녀를 향해 손짓하는 소년의 손이 로브의 노인의 손에 잡혀있다.
연구실에서 열심히 청소를 하는 청년이 뭔가를 열심히 외우고 있다.
병에 걸려 죽은 노인을 땅에 묻고 있는 청년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세상을 다 가진 듯 포효하는 젊은이가 거대한 탑 앞에 서있다.
서고를 닦으며 책 정리를 하는 사내가 품속에 오래된 고서(古書) 하나를 넣고 있다.
단검에 찔린 사내가 상대에게 검은 모래를 뿌리며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
“아!”
마루는 해모수 때와는 달리 차분하게 그렌의 기억을 읽을 수 있었다.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