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말은 지극히 정중했다.
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싸늘했다.
마루는 사신회의 간부들에게 끌려가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는 자신과 가족, 이웃과 주민들을 구하고 싶었다.
절대 사신회라는 틀에 갇혀 호갱이 되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열두 명이나 되는 저자들을 어떻게 이동시킵니까?”
이번에는 서부 2팀의 이희영이 물었다.
마루는 잠시 생각을 해보다가 마음의 결단을 내렸다.
“레벨 30이 넘은 사람은 손을 들어주세요.”
그의 말에 이대근과 네 개 팀의 팀장들이 전부 손을 들었다.
지원 팀의 김민정과 서진아, 한소신과 우성존이 나란히 손을 들었다.
“더 없습니까?”
“우리 가족 전부 레벨 30을 넘겼습니다.”
이대근의 말에 마루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아니 다들 언제 레벨을 이렇게 올렸지?’
모르긴 해도 아버지가 태인 형과 재용을 데리고 가족들의 레벨 업을 도와준 것 같았다.
“다들 열심히 하는 게 보기 좋군요. 레벨 50이 넘으면 레벨 업이 열 배로 어려워집니다. 그러니 모두 레벨 50이 될 수 있도록 잘 도와주세요.”
“알겠습니다.”
다들 한목소리로 대답하자 마루는 생각했던 바를 얘기했다.
“한 가정에 한 명씩, 레벨 30이 넘은 사람을 골라 임시로 정찰대를 조직하겠습니다. 과천대로는 좀비가 너무 많아서 매봉산을 타고 남하하겠습니다.”
“목적지가 어딥니까?”
이대근의 말에 마루는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수원에서 발생한 좀비들이 의왕시와 안양시를 거쳐 과천대로를 타고 강남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성남에서 발생한 좀비들도 고속도로를 타고 북상하고 있습니다.”
“…….”
“양쪽 루트로 가는 것은 좀비에게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매봉산을 타고 남하해서 백운호수로 갑니다.”
“백운호수요?”
“그쪽에 집을 하나 찾아서 이들을 옮겨놓고 빠져나오면 됩니다. 단 낮은 위험하니 밤에 갑시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다 밤에 가자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이 더 위험한 거 아닙니까?”
“좀비를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루는 강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사실 미니 맵을 켜고 가면 좀비와 부딪칠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 언제 떠날 생각이십니까?”
“저녁 먹고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도록 하죠.”
한소신과 우성존의 말에 긴급회의는 이걸로 끝이 났다.
해는 아직 지지 않았다.
좀비 사냥을 마치고 나서 뒤처리도 다 하지 않은 상태였다.
네 개 팀 팀장은 즉시 일어나 각자 맡고 있는 방벽으로 달려갔다.
방벽 앞에 쌓여있는 좀비들을 모아 불을 지를 생각이었다.
이제는 굳이 불을 지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전기가 끊긴 이후!
여러 가지 이유로 수도권 사방에서 화재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었다.
덕분에 좀비들도 충분히 학습이 됐는지 불이 나는 것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한소신!”
“네, 회장님.”
마루는 집으로 들어가려는 한소신을 붙잡았다.
그는 한소신을 한쪽으로 데려가 작게 속삭였다.
“혹시 너 영화 같은 거 다운로드해 놓은 거 있어?”
“네, 있는데요?”
“많아?”
“엄청 많지요. 종류도 다양하고요.”
“그럼 여기에다 복사 좀 해줘!”
마루는 한소신에게 테라바이트급 외장 SSD 스토리지 두 개를 내밀었다.
“어! 이거 최신형 포터블 SSD 스토리지네요.”
한소신은 단번에 그가 내민 외장 스토리지의 진가를 알아봤다.
“바로 해줄 수 있지?”
“물론이죠. 복사 걸어놓으면 되잖아요. 그런데 영화만 복사해 드려요?”
“알아서 다양하게 해줘!”
“알겠어요. 화끈한 것도 많으니까 실망하지 않으실 거예요.”
마루를 쳐다보며 한소신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그는 이거 괜한 짓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렌과 해모수의 아름다운(?) 문화생활을 위해 일정 부분은 감수하기로 했다.
“우성존!”
“네, 회장님.”
한소신을 보내고 이번에는 우성존을 불렀다.
“과천 공업사 박 사장님한테 가서 지게 열두 개만 만들어 달라고 그래.”
“지게요?”
“그래. 지게.”
“설마 이번에 추방하는 사람들을 지게로 들고 가려고 그래요?”
“응, 바로 그거야.”
우성존은 그에게 엄지를 내밀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런 생각은 못 해봤네요. 확실히 형의 말대로 하면 움직이기는 편하겠어요.”
“최대한 빨리해 줘!”
“알겠어요.”
“그리고 남은 수도 파이프 어디다 뒀어?”
“수녀회 우물에다 연결하고 남은 거요?”
“맞아. 그거.”
“건넛집 지하실 창고에 넣어놓지 않았어요?”
“그래? 알았어. 고맙다.”
“천만에요.”
마루는 즉시 건넛집 지하실로 내려갔다.
우성존이 말한 대로 설치하고 남은 수도 파이프가 한가득 있었다.
그는 길지 않은 것만 골라서 공유 인벤토리에 쓸어 담았다.
설치에 필요한 공구도 한 세트 넣어뒀다.
이미 LED TV와 노트북, 소형 변압기 등은 챙겨놓은 상태였다.
마음 같아서는 초대형 LED TV를 보내주고 싶었지만… 크기의 한계가 있어서 그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뒷집에 있던, 아무도 쓰지 않는 적당한 크기의 LED TV를 담았다.
마루는 지하실을 나와 밖으로 나갔다.
대망 슈퍼로 들어가기 전에 하늘을 쳐다봤다.
달무리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링의 모양을 한 보랏빛 파편들!
아무리 봐도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조만간 뭔가 사달이 나도 단단히 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휴우!”
마루는 길게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대망 슈퍼로 들어갔다.
안채로 가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슈퍼로 들어갔다.
그는 먼저 그렌과 해모수에게 보낼 물건들을 꼼꼼히 챙겼다.
그리고 마을에서 추방시킬 놈들을 위해 식량과 식수도 넉넉히 담았다.
“오빠! 저녁 식사 하세요.”
안채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진아가 소리쳤다.
“알았어. 금방 갈게.”
“일은 나중에 하고 빨리 오세요. 다들 기다린단 말이에요.”
마루는 좀 더 챙겨주려다 이것도 놈들의 복이려니 싶었다.
바로 몸을 돌려 안채로 들어갔다.
민정이 다가와 얼른 팔짱을 꼈다.
그녀의 눈빛은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여인의 그것이었다.
그는 민정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녀와의 관계는 이미 양가 부모님까지 공인한 사이였다.
그래서 둘이 붙어있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진아도 이제는 포기했는지 별 반응이 없었다.
“어서 와라!”
“어머니!”
어머니 김영희가 웃는 낯으로 마루를 반겼다.
그는 먼저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고 나왔다.
거실을 살펴보니 서현 누나와 매형 그리고 사장어른을 비롯해 온가족이 모여있었다.
비록 가족은 아니지만 한소신과 우성존 그리고 진아와 할머니도 옆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다란 상에는 온갖 맛있는 음식들이 잘 차려져 있었다.
이게 모두 전기를 생산해 내고 있는 태양광발전 설비 때문이었다.
마루는 그렌이 만들어 줄 마나 발전 설비에 큰 기대감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지구의 문명을 한 단계 끌어올릴, 위대한 마법의 첫 활용이라 역사에 기록될지도 모른다.
“얼른 밥 먹자.”
“네.”
김영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들 숟가락을 들었다.
좀 이른 저녁 식사이긴 했다.
하지만 해가 떨어지면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마루는 즐겁게 저녁 식사를 했다.
그런데 점점 채소와 과일을 보기가 힘들어지고 있었다.
“텃밭이라도 가꿔야 하나…….”
이대근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마루는 매일 해모수를 통해 싱싱한 무공해 과일과 채소를 들여오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공유 인벤토리를 통해 서로 옮겨야 할 물건이 태산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 여유가 생긴다면 그때는 가족들을 위해 조금씩이나마 챙겨올 수 있을 것이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다들 대망 슈퍼 앞으로 모여들었다.
오늘 마을에서 추방될 열두 명의 주민을 지게에 지고 떠날 명단이 결정됐다.
마루는 당연히 포함됐고 가족을 대표해 이재용이 나섰다.
지원 팀에서 한소신과 우성존, 민정과 진아가 합류했다.
동서남북 네 개 팀의 팀장들도 모두 참가했다.
나머지 두 명은 서부 2팀의 이상재와 북부 4팀에서 정인보가 차출됐다.
사람들은 각각 창과 활로 무장을 하고 지게를 지었다.
“다들 모인 것 같으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마루가 신호를 보내자 열두 명의 정찰 팀은 즉시 마을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사신회를 적대하는 열두 명의 마을 사람들을 가둬놓은 지하실로 들어갔다.
지하실 앞에는 날카로운 창을 들고 있는 네 명의 회원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수고 많으십니다.”
“천만에요.”
마루의 말에 보초를 서고 있는 회원들이 미소를 지었다.
누구든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호의를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을 열고 한 명씩 데리고 나오세요.”
“네.”
보초들은 단단히 잠가둔 지하실 문을 열었다.
그런 후, 밧줄로 단단히 결박된 사람들을 한 명씩 들고 나왔다.
강도 짓을 마루에게 걸린 시점 이후!
사신회를 적대하는 세력은 모두 일망타진됐다.
그들은 모조리 밧줄에 포박된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잘못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우릴 어디로 데려가는 겁니까?”
“설마 죽이려는 것은 아니죠?”
그들은 두려운 눈빛과 떨리는 목소리로 한마디씩 했다.
마루는 한소신과 우성존을 보고 말했다.
“가다가 시끄럽게 떠들면 곤란하니까 양말 물리고 테이프로 입을 봉해!”
“예.”
“네.”
한소신과 우성존은 미리 준비해 둔 테이프를 꺼냈다.
“아니 왜 이러는 겁니까? 잘못했다고요.”
“다시는 안 그럴 테니까 제발 집에서 조용히 살게 해줘요.”
“이거 아니지. 너희가 이러는 것은 법을 어……. 읍!”
겁을 먹었는지 잠잠하던 사람들까지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소신과 우성존이 다가가자 곧 조용해졌다.
그들이 신고 있던 양말을 벗기고 입에 물린 후 테이프로 봉해버리니 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다.
“계속 시끄럽게 하거나 몸부림을 칠 경우! 뒤통수를 쳐서 기절시켜!”
마루는 더 이상 반항의 여지를 없앴다.
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차가운 말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얌전해졌다.
계속 쓸데없는 반항을 하면 진짜로 모두 기절시켜서 옮기려고 했다.
“저기 못 쓰는 천으로 눈도 가립시다.”
“예, 회장님.”
보초들도 그의 명령에 동참했다.
입을 막고 눈을 가리자 더는 문제가 없었다.
마루는 여전히 차가운 말투로 모두 들을 수 있게 말했다.
“너희들은 나와 우리의 가족을 대적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어렵게 모은 식량과 물자를 도둑질하려고 했다. 거기에다 집단으로 사찰 집사님을 구타까지 했어. 이건 강도 짓이야. 지금같이 식량이 귀한 상황에서는 당장 죽여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
“하지만 너희들 중 아이가 두 명이 있고 청소년도 세 명이나 있는 것을 참작해서 마을에서 추방하는 벌을 내리겠다. 절대 우리 마을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마라! 만약 다시 보게 된다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즉시 죽임을 당하게 될 거야.”
그제야 이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게 되었다.
그들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일부는 크게 후회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입이 막혀서 제대로 울지도 못했다.
다만 서럽게 오열을 하고 있는 듯 몸을 떨어댈 뿐이었다.
마루는 어린아이들과 소년, 소녀들이 불쌍했다.
부모가 지은 죄로 인해 마을에서 추방당해야 하니 속으로는 많이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공권력이 없는 세상에서 범죄를 저질렀는데 당장 처벌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한 명씩 지게에 묶고 출발합시다.”
“예, 회장님.”
마루의 말에 다들 한 명씩 지게에 실었다.
보초들이 도와주자 금방이었다.
레벨 30을 넘었으니 최소한 보너스 스탯을 29개 이상 올린 사람들이다.
지게에 사람 하나 싣고 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는 강도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자를 골라 지게에 실었다.
도중에 떨어지지 않도록 밧줄로 꽁꽁 묶었다.
“출발!”
모든 준비가 끝나자 마루가 출발을 외쳤다.
그들은 마루의 뒤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도중에 과천 공업사 박 사장을 보자 그는 정중하게 부탁했다.
“즉시 동쪽에 철제 방벽 좀 세워주세요.”
“알겠습니다.”
“지원 팀을 보내 도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밤이긴 하지만 동쪽은 좀비가 잘 나오지 않는 곳이다.
지원 팀이 경계를 서고 플래시를 이용하면 충분히 짧은 시간 안에 공사를 마칠 수 있을 것이다.
“한소신!”
“네, 무전을 쳐놓을게요.”
한소신은 마루의 뜻을 곧바로 알아먹고 대답했다.
그는 걸어가면서 지원 팀에 연락을 취했다.
팀원들에게 모두 과천 공업사 박 사장에게 가서 전력으로 도와주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