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출항!”
“닻을 올려라!”
“노를 저어라!”
출항을 명하자 복창하는 소리가 널리 퍼져나갔다.
닻이 올라가고 노를 저었다.
스쿠너(schooner)와 비슷한 모양으로 개조된 정찰선!
성산일호는 성산포구를 떠나 서서히 바다로 나아갔다.
“돛을 올려라! 방향은 정남이다.”
“돛을 올려라!”
“남쪽으로 배를 돌려라!”
해모수는 선수에 서서 끝없이 펼쳐진 바다의 푸른 물결을 쳐다봤다.
답답한 가슴이 시원해지고 속이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혹시 내 체질이 뱃놈은 아니겠지?’
그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향긋한 체향이 느껴졌다.
이제는 굳이 보지 않아도 옆에 누가 왔는지 알 수 있었다.
해모수와 왕지현은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섰다.
그리고 그저 바다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원한 해풍이 불어왔다.
그들의 옷자락을 마구 흔들며 장난을 치고 갔다.
“목적지가 장강(長江: 양자강) 입구라고 들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성산포구에서 장강의 입구까지 정찰을 하고 그곳에 있는 천호소, 숭명사소(崇明沙所)에다 정찰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임무를 받았소.”
“이번에는 좀 긴 여행이 되겠군요.”
“당신과 함께라면 그리 지루하지는 않을 것 같소.”
그의 말에 감동을 받았는지 왕지현의 눈가에 예쁜 웃음이 지어졌다.
얼굴 가리개만 치운다면 아마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듯 환하게 웃은 걸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마루: 드디어 내가 남경(南京)을 다 가보는구나.] [해모수: 비행기도 있는데 왜 여행을 안 갔어요?] [마루: 그러게 말이다.]마루는 차마 돈이 없어서 못 갔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렌: 남경이 아니라 경사(京師)라고 불린다고 하지 않았어?] [마루: 맞아요. 전에는 남경이라고 불렀는데 명나라의 수도가 되면서 경사라고 불렸어요.] [해모수: 나중에 북경으로 천도를 하고 나서 다시 남경으로 환원된다고 했죠.] [마루: 오! 기억하고 있었네.] [해모수: 당연하죠. 여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잖아요.]해모수의 말은 지극히 당연한 소리였다.
[그렌: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이점을 가지고 있는 거야.] [해모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마루: 그렇지만 꼭 역사대로 흘러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럼 한민족에게는 너무 비극적인 일들이 많이 생길 테니까.] [그렌: 그러다가 잘못되면 타임 패러독스(Time Paradox)가 생길 수 있어. 마루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단 말이야.] [해모수: 정말요?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어요?]그렌의 말은 해모수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마루가 즉시 고개를 흔들었다.
[마루: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만약 나비효과가 있었다면 벌써 내가 살고 있는 현대에 뭔가 분명히 징조가 생겼을 거예요. 시간 역설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렌: 그럼 혹시 마루와 해모수의 세계는 패럴렐 월드(Parallel World)라는 말이야?] [마루: 네, 평행 우주일 가능성이 높아요.]마루는 상당히 자신감 있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마루와 해모수가 살고 있는 우주가 평행 우주라면, 해모수가 뭔 짓을 해도 마루에게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없었다.
[해모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사적인 인물의 삶을 변화시키는 거예요.] [마루: 그렇지. 이를테면 명나라 황제 주원장을 죽여보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거야.] [그렌: 워워! 진정들 해. 그건 너무 위험한 발상이야. 황궁의 근처에 가기도 전에 아마 참살당할 거야.]그렌이 두 손을 마구 흔들며 반대했다.
해모수가 그 모습에 신난다고 웃어댔다.
[해모수: 푸하하하! 누가 황제를 죽인대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요.] [마루: 하하하! 맞아요. 그런 기회가 온다면 모를까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죠.] [그렌: 아! 그런 거야! 나만 바보 된 거야!] [해모수: 어? 또 삐지려고 그러신다.] [그렌: 삐지긴 누가 삐진다고 그래? 내가 여자냐?] [마루: 그건 남녀 차별적인 발언이에요. 여자만 삐지라는 법이 어디 있어요?] [그렌: 아니! 이 녀석들이…….]그렌이 화가 난 척을 하자 다시 마루와 해모수가 파안대소를 했다.
가끔 이렇게 그렌을 놀리는 게 참 재미있다.
실은 그렌도 두 사람이 장난을 치는 것을 알고 받아주고 있는 것이다.
웃고 떠들며 장난을 치는 시간이 잠시 흘러 지나갔다.
해모수는 미니 맵의 지도를 확대했다.
마치 위성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순식간에 성산일호가 조그만 점이 되어버렸다.
[해모수: 이거 거리가 꽤 되네요.] [마루: 성산포구에서 장강 입구까지 직선거리로 627킬로미터야.] [그렌: 하지만 직선으로는 갈 수 없잖아.] [해모수: 갈 수야 있지만… 아무도 그렇게 바다를 가로질러 항해하지는 않죠. 물론 저야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지만요.] [마루: 그럼 분명히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그렌: 이미 이상하게 보고 있지 않을까?] [해모수: 하하하, 맞아요. 금강역사라느니 금강신이라고 저를 부르잖아요.]확실히 명성은 올라갈지 모르지만… 해모수 본인에게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마루: 해안선을 타고 가면 900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야. 스쿠너의 평균속도가 5km/h니까 180시간 동안 항해를 해야 해!] [그렌: 하루 24시간으로 나누면 정확히 7.5일이군. 외로운 항해가 되겠어.] [해모수: 그렇진 않을 거예요. 저길 보세요.]해모수가 손을 들어 전면을 가리켰다.
성산일호를 향해 두 척의 배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마루: 아! 저거 오늘 합류하기로 한 해이호(海二號)와 해삼호(海三號)로구나.] [해모수: 맞아요. 앞으로 해동연합의 함대를 이끌 모체이기도 하고요.]자랑스러워하는 해모수의 면전에 그렌은 대뜸 노파심을 드러냈다.
어딜 가나 돈을 밝히는 사람은 있다.
그런데 이 시대의 한족들은 유난히 돈을 많이 밝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부정부패가 팽배한 사회였다.
[그렌: 당장은 그게 해모수에게 도움이 될 거야. 정말 원칙을 칼같이 세웠다면 지금처럼 해모수가 마음껏 돌아다니지도 못했을 거야.] [마루: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그들이 대화를 하는 사이!
성산일호와 아주 흡사하게 개조된 배 두 척이 바로 옆으로 다가왔다.
“배를 멈춰라!”
“배를 멈추랍신다!”
“돛을 내려라!”
해모수의 명령에 홍유가 크게 복창했다.
성산일호가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
이윽고 완전히 멈추자 해모수는 홍유를 쳐다봤다.
홍유는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먹고 크게 외쳤다.
“닻을 내려라!”
“닻을 내려라!”
정답을 맞힌 홍유의 어깨를 해모수는 가볍게 한 번 두드렸다.
배가 멈추자 개조선 두 척도 곧바로 양쪽으로 다가와 멈췄다.
즉시 양쪽으로 발판이 연결되고 함장과 함대원들이 넘어왔다.
두 선장은 해모수를 보자 일행을 대표하여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함대장님을 뵙습니다.”
“함대장님을 뵈옵니다.”
해모수는 그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들이야말로 앞으로 해동연합의 함대를 이끌 핵심 대원들이었다.
“해이호 선장 두인보입니다.”
“해삼호 선장 위지백입니다.”
“반갑소. 해모수요.”
해모수는 이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눈을 마주쳤다.
일단 김만덕과 합의하에 배 이름을 가칭 해이호와 해삼호로 지었다.
남들의 눈이 있어, 겉으로는 선장이고 선원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엄연히 해동연합의 함대, 즉 해동함대의 함장과 함대원들이다.
“남경까지 같이 갈 상선의 선장님과 선원들이다. 앞으로 같이 항해를 하면서 서로 돕도록 하라!”
“예, 해 총기.”
성산일호의 대원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홍유와 강조 그리고 여진 삼총사는 이미 해모수로부터 언질을 받았다.
그리고 일부 핵심 대원 몇 명도 내막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산일호 전 대원이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직까진, 이미 회유됐거나 믿을 수 있는 대원들에게만 사정을 공개하고 있었다.
“퉁그란은 남고 바토르는 해이호로, 차하루는 해삼호로 건너가라!”
“예, 해 총기.”
“예, 해 총기.”
바토르와 차하루는 두말없이 각각 해이호와 해삼호로 넘어갔다.
그들은 앞으로 성산일호, 암묵적으로는 해일호와 소통을 하는 창구가 될 것이다.
“성산일호에 남을 자는 이들이 전부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머지 선원들은 모두 바다를 항해하는 데 익숙합니다.”
“잘됐군요. 그럼 일단 일자진으로 남하하면서 손발을 맞춰봅시다.”
“알겠습니다.”
“무장은 어떻게 했습니까?”
“철물점에서 납품받아 배에 잘 숨겨놓았습니다. 전투가 시작되면 바로 배치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습니다.”
두인보와 위지백은 매형이 운영하는 철물점에서 성산일호가 사용하는 무기와 각종 장비를 넘겨받았다.
창, 칼, 방패, 개량궁, 개량 쇠뇌, 산탄포, 강노, 연노, 유탄(榴彈), 화전(火箭) 등 성산일호의 무장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다만 K6 중기관총과 K4 고속 유탄 기관총은 공개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한동안 대놓고 공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LAW72 대전차 화기는 아예 혼자만 쓸 생각이었다.
해전이 발생하면 해모수는 왕지현과 같이 K6 중기관총과 K4 고속 유탄 기관총을 가지고 전투를 벌일 것이다.
그것도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게 만든 드럼통형 벙커 안에서 말이다.
성산일호를 잘 살펴보면 전과는 다른 구조물이 있었다.
선수와 선미에 나무로 만들어 놓은 회전포탑이나 터렛 역할을 하는 커다란 드럼통이 두 개!
이것이 바로 전투 시에 K6 중기관총과 K4 고속 유탄 기관총을 장착할 회전 거치대이자 철판이 들어간 벙커였다.
겉은 나무지만 안은 마루에게 조달받은 철판으로 보강했다.
아무리 화살이 난무하고 화전이 쏟아져도 이 안에만 들어가 있으면 어지간해서는 죽을 일이 없을 것이다.
“항해하는 동안 가상의 적과 전투하는 훈련을 계속할 것입니다.”
“김 집사님에게 이미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저 함대장님의 지시에 따를 뿐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선원들을 배치하시고 곧바로 항행을 시작하겠습니다.”
“네, 함대장님.”
“예, 함대장님.”
두인보와 이지백은 대원들에게 뭔가 당부를 하고 각각 해이호와 해삼호로 넘어갔다.
“출발!”
“출발!”
해모수의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성산함대(해동연합함대)는 즉시 닻을 올렸다.
곧이어 돛이 하나둘씩 펴지고 이어 남하를 시작했다.
바람을 잘 받아서 그런지 금방 속도가 올라갔다.
“홍유! 강조!”
“네, 함장님.”
“예… 하, 함장님.”
그새 두인보와 이지백이 하는 말을 듣고 배웠나 보다.
함장님이라고 부르는 홍유를 보고 간신히 따라 하는 강조!
해모수는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가면서 각종 진형을 연습해 봐!”
“일자진과 장사진(종렬진), 사선진과 삼각진을 시험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해! 아니 전권을 줄 테니까 할 수 있는 거 다 해봐!”
“예, 함장님.”
이때부터 성산일호 대원들은 모두 해모수를 함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홍유와 강조는 돌아가면서 성산함대를 굴리기 시작했다.
배가 빠르게 가다가 서기를 반복했다.
앞으로 갔다가 옆으로 갔다가 정신없이 돌기도 했다.
해모수는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마루: 저렇게 깃발로만 해도 잘 움직이네.] [해모수: 다들 열심히 연습했거든요.] [마루: 이대로만 간다면 며칠 지나지 않아서 금세 익숙해지겠다.] [그렌: 그래도 역시 실전 한 번보다는 못할 거야.] [해모수: 그것보다 화력이 모자라지나 않을까 걱정이에요.] [마루: K6 중기관총, K4 고속 유탄 기관총, LAW72 대전차 로켓으로 무장했는데도 화력이 달린다고?] [해모수: 제 말은 왜구의 함대가 적지 않아서 하는 말이에요.] [그렌: 그럼 튀어야지. 뭐 하러 싸워?]사실 그렌의 말이 정답이었다.
하지만 해모수의 말은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해모수: 그게 내 마음대로 되면 좋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할 때도 있잖아요.] [마루: 그렇겠지. 그때는 렌 화약으로 만든 고폭탄, 수류탄, 소이탄, 백린탄, 황린탄 할 것 없이 전부 다 사용해!] [그렌: 맞다. 그것도 인벤토리에 넣어뒀을 거 아냐.] [마루: 최악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어. 다 버리고 왕지현만 데리고 도망쳐! 살아있으면 다시 시작하는 거는 어렵지 않아. 우리가 도와줄게.] [해모수: 네, 알겠습니다.]해모수의 목소리가 다시 씩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