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아무래도 미지의 남경을 간다는 생각에 조금 멜랑꼴리해진 모양이었다.
해모수는 그동안 용감하고 대범한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그의 나이 이제 겨우 열아홉 살에 불과했다.
현대 같으면 아직도 부모님의 보호 아래 학교를 다니고 있을 나이인 것이다.
기운을 차린 해모수는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의 얼굴이 환해지자 덩달아 왕지현과 대원들의 모습도 밝아졌다.
그제야 해모수는 자신이 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지 깨달았다.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라고 했어. 내가 약해지면 우리 모두가 약해진다. 앞으로는 더욱 냉철해져야 한다.’
그는 작은 깨달음을 얻고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성산함대는 순항을 계속했다.
도중에 상선 몇 척을 만난 것을 제외하고 특별한 일 없이 훈련을 계속했다.
기상도 좋아서 비 한 번 맞지 않았다.
덕분에 갈수록 함대 운용이 능숙해지고 빨라졌다.
그렇게 일주일을 내리 달리며 열심히 가상 전투 훈련을 했다.
멀리 양주부(揚州府)가 보였다.
양주부와 소주부(蘇州府) 사이로 장강의 물이 흘러나온다.
그들은 이제 목표에 거의 도착했다.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다들 수고했어. 숭명사소까지만 가면 우리의 임무는 끝이야.”
홍조와 해모수가 서로를 향해 축하 인사를 했다.
옆에 있던 강유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정찰 보고서를 쓴 사람은 전데요!”
“어! 강유도 수고했어.”
해모수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강유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고생했으면 뭔가 나오는 게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뭐 말이야? 술이라도 사줘?”
“그걸 꼭 제 입으로 말해야 합니까?”
강유가 떼를 쓰자 해모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말하지 않는 것을 내가 무슨 재주로 알아? 너 혹시 달거리하냐?”
“네에? 그게 무슨 막말이십니까? 남들이 들을까 두렵습니다.”
“앞으로 그냥 하던 대로 해! 괜히 머리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도 강남 미녀들과 술 한잔하게 해주십시오.”
“미친 거 아냐? 여기 술값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그렇게 비쌉니까?”
“차라리 저기 선원에게 물어봐! 그게 더 빠르겠다.”
솔직히 해모수도 잘 몰랐다.
난생처음 오는 곳이니 알 턱이 없었다.
사내놈들만 득실거리는 곳이라 여자와 술 얘기가 나오자 분위기가 금세 방실방실해졌다.
그동안 고생한 것도 있고 하니 해모수는 그냥 내버려 뒀다.
왕지현이 그 틈에 다가와 슬쩍 눈웃음을 쳤다.
“왕 사부! 고생했소.”
“제가 뭐 고생한 게 있나요? 함장실 차지하고 잠만 잘 잤는데요.”
왕지현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자 해모수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대가 옆에 있어준 것만 해도 든든했소. 이번에 기회가 되면 항주라도 한번 가봅시다.”
“같이 물놀이라도 가시게요?”
“왜 아니겠소.”
“좋아요. 그럼 술은 제가 사지요.”
“얼마든지.”
왕지현에게만은 한없이 관대해지는 해모수였다.
강유가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아마 거품을 물고 달려들어 따졌으리라.
뭐 그래 봤자 고함 한번 치면 끽소리도 못 할 위인이긴 했다.
[마루: 더 가기 전에 이쯤에서 헤어져야 할 것 같다.] [그렌: 맞아. 괜히 문정이라도 걸리면 골치 아프다.] [해모수: 예.]해모수는 마루와 그렌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곧바로 홍유와 강조를 불러 배를 세웠다.
그리고 해이호와 해삼호로 선원들을 넘겨줬다.
물론 두 배에 가있었던 바토르와 차하루도 다시 돌아왔다.
“저희는 해문(海門) 항구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기별을 주십시오.”
“알겠소! 다들 수고 많았소.”
“함대장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두인보와 위지백은 해모수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떠나갔다.
그 뒤를 성산일호가 천천히 따라갔다.
해이호와 해삼호는 해문을 향해 육지를 따라 서쪽으로 갔다.
성산일호는 해문의 남쪽 아래에 있는 숭명사소로 다가갔다.
그때 소형 쾌속선 두 척이 빠르게 다가왔다.
그들은 성산일호를 잠깐 살피더니 바로 배를 돌렸다.
이미 성산일호가 입항할 계획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그냥 한번 와서 보고 가는 정도였다.
“부두에 배를 대라!”
“부두에 배를 대라!”
복창 소리가 들리고 성산일호는 천천히 뱃전을 부두에 댔다.
배가 완전히 멈추자 밧줄을 던져 계류 시설에 잘 묶고 배를 고정시켰다.
대원들이 나무 발판을 아래로 내리자 곧 해모수와 왕지현, 홍조와 강유가 배에서 내려갔다.
여진 삼총사도 뒤따라 내리며 아쉬운 눈빛을 보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들 셋은 성산일호에 남아있으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금방 돌아올 테니 대원들과 술 한잔할 곳을 찾아봐!”
“예, 함장님.”
퉁그란이 대표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몸을 돌리자 홍조와 강유가 좌우로, 왕지현이 뒤로 갔다.
자연스럽게 해모수를 호위하는 대형을 이룬 것이다.
“가자!”
그는 천호소의 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하늘은 맑았지만 습기가 많아 무더웠다.
미래에 토사가 쌓여 섬이 된 숭명도(崇明島)는 아직 없었다.
다만 원래의 위치보다 조금 위에 작은 섬처럼 숭명사소가 존재했다.
장강의 입구를 틀어막듯 떡 버티고 서있는 지정학적 위치만으로 이 천호소의 가치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래서 그런지 부두에 정박해 있는 군선(軍船)이 꽤 많았다.
섬 좌우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배들도 상당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산동에서 왔소.”
관문 경비병의 말에 홍유가 즉시 대답했다.
그는 해모수에게 총기의 명패를 받아 보여줬다.
다른 사람들도 보여달라고 해서 홍유와 강조도 소기의 명패를 보여줬다.
하지만 왕지현은 일반 병사인데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고 하자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았다.
숭명사소 관문을 통과해 천호소 본관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어렵지 않게 담당자를 찾아 성산일호의 정찰 보고서를 제출했다.
덤으로 숭명사소의 아래쪽에 있는 소주부에 입항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받아뒀다.
기간은 최대 열흘이었다.
덕분에 그들은 강남 최대의 색향으로 유명한 소주(蘇州)를 구경할 수 있게 됐다.
“이거 원래 주는 거예요? 아니면 우리가 운이 좋은 거예요?”
홍유가 입꼬리가 귀에 걸릴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나도 몰라. 처음이잖아.”
“일단 소주부의 항구로 이동부터 하죠.”
“그러자.”
강조의 말에 만장일치로 찬성을 했다.
평생을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서 살다가 죽는 게 이들의 운명이다.
그런데 말로만 듣던 유명한 도시에 들어갈 수 있게 되자 그들은 크게 흥분했다.
종종걸음으로 부두로 돌아가며 그들은 서둘러 출항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호사다마였을까?
숭명사소의 부천호가 지나가다 성산일호 바로 앞에서 해모수를 불렀다.
“거기 총기!”
“예, 부르셨습니까?”
종5품의 부천호(富千戶)!
부연대장급이 부르자 소대장급인 총기는 총알같이 튀어가야 했다.
“여기 오늘 들어왔지?”
“네, 그렇습니다.”
“바쁘지 않으면 나 좀 도와주게.”
“예에?”
해모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계급이 낮아도 엄연히 소속이 달랐다.
하지만 부천호는 막무가내였다.
“난 숭명사소의 소인방 부천호다. 경사(京師: 남경)에 들어갈 일이 있으니 나 좀 따라와서 도와달란 말이다.”
“일개 총기가 경사에 들어가서 뭘 도와드릴 수 있겠습니까?”
“내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야.”
해모수는 어떻게 하든 괜한 일에 끼어들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소인방 부천호는 그의 사정을 조금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눈이 있으면 주위를 둘러보게. 다들 작전을 나가서 총기 이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어. 부천호가 경사에 들어가는데 일반 병사를 호위로 대동하고 갈 수는 없잖아.”
“호위 말씀이십니까?”
이제야 소인방 부천호가 왜 자신을 불렀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자식은 자신의 체면을 차리기 위해 총기를 병풍처럼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소주에 한 달이라도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해 줄 테니 잔말 말고 나를 따라오게.”
“제 부관도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뭐 그 정도야 괜찮겠지.”
해모수는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곧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소인방은 홍유와 강조를 힐끗 쳐다봤다.
하지만 해모수가 말한 부관은 사실 왕지현이었다.
“저기 저 배 보이지? 일각 뒤에 출발할 거니까… 준비를 단단히 하고 깨끗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와!”
“예, 부천호!”
소인방은 자신이 할 말만 다 하고 바로 떠나갔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뭘 어떻게 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지. 내가 부천호의 명령을 거부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강조의 물음에 해모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는 품속에서 돈주머니 하나를 꺼내줬다.
“기왕 왔으니 소주로 가서 놀고 있어. 경사에 들렀다가 소주로 갈게.”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그래.”
해모수는 곧바로 몸을 돌려 소인방 부천호가 말했던 배로 향했다.
왕지현이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경사로 향하는 연락선을 타기 전!
병사들의 검문이 있었다.
“경사로 들어가는 자는 무기를 지녀서는 안 됩니다.”
“보다시피 전혀 없소.”
해모수와 왕지현이 두 팔을 좌우로 벌리고 한 바퀴 돌았다.
“그럼 편안한 뱃길 되십시오.”
병사들에게까지 이미 두 사람이 호구 잡혔다고 소문이 났는지 다들 불쌍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뒤늦게 그걸 눈치챈 해모수가 분통을 터트렸다.
하지만 왕지현이 가볍게 등을 두드리자 꾹 참았다.
소인방 부천호가 잠깐 얼굴을 비치더니 눈인사를 했다.
그러곤 낮잠이라도 자려는지 선실로 들어가 밥 먹을 때까지 아예 나오질 않았다.
[해모수: 어째 이거 잘못 걸린 느낌이 드네요.] [마루: 숭명에서 경사까지 300킬로미터의 뱃길이야. 시간당 5킬로미터를 간다고 쳐도 60시간, 2.5일이 걸려.] [그렌: 대충 가는 데 사흘, 오는 데 사흘은 잡아야겠군.] [해모수: 젠장! 그럼 소주까지 가면 일주일 이상을 그냥 날려야 하네요.]그제야 병사들이 왜 자신을 그런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는지 충분히 이해가 됐다.
[해모수: 그냥 이 새끼 물에 처박고 튈까요?] [마루: 이미 어디 소속에 어떤 정찰선을 타고 왔는지 다 알고 있을 거야. 후환이 두렵지 않다면 마음대로 해.] [그렌: 그냥 조용히 갔다 와라.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왕지현과 뱃놀이 즐긴다고 생각해. 그리고 경사에 간다는 것은 명나라의 수도에 가는 거잖아. 맛있는 것도 먹고 사고 싶은 것도 실컷 사고 놀아!]마루와 그렌의 말을 듣고는 해모수의 얼굴이 좀 펴졌다.
[해모수: 듣고 보니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네요.] [마루: 하하하! 놀고먹을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기분이 좀 풀리는 모양이구나.] [그렌: 역시 놀 때는 맛집과 쇼핑이지.] [마루: 그래도 사흘 동안 가만히 있으면 지루하니까 낚시라도 해라!]해모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왕지현을 갑판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둘은 열심히 사흘 동안 배에서 무엇을 할지 의논했다.
그러는 사이!
연락선은 장강의 도도한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강바람을 맞자 좀 시원해졌다.
하늘은 맑았고 구름은 높았다.
기온이 좀 높긴 해도 강물 위를 거슬러 올라가니 참을 만했다.
첫날은 선실을 배정받고 푹 쉬었다.
문을 잘 잠그고 나서 왕지현을 꼭 끌어안고 잠을 잤다.
방음이 전혀 안 되는 곳이라 사랑을 나눌 수 없었다.
대신 손으로 부드러운 그녀의 굴곡을 어루만지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했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그러다 지겨워져서 밖으로 나왔다.
인벤토리에서 쓰다가 버릴 만한 허접한 낚싯대 두 개를 꺼냈다.
해모수와 왕지현은 뱃전으로 가서 낚시를 시작했다.
얼마나 고기들이 많은지 미끼를 넣는 즉시 낚싯줄이 탱탱해졌다.
“걸렸다.”
“우와! 왜 우리는 이걸 생각 못 했지?”
“재미있겠다.”
옆에서 구경하는 자들이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못 들은 척 무시하고 열심히 물고기를 낚았다.
신나게 손맛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뒤를 돌아보니 소인방 부천호가 서있었다.
해모수는 대놓고 원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흠칫한 그는 뻔뻔스럽게 말했다.
“크흠, 젊은 나이에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게.”
“예, 그렇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