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그런데 나도 낚시를 좀 해볼 수 있겠는가?”
“예에! 그러십시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을까?
그는 소인방의 얼굴 가죽이 얼마나 두꺼운지 자신이 계산을 아주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해모수는 그냥 깨끗이 포기했다.
그리고 포기하니까 편했다.
“미끼 좀 달아주게.”
“예.”
“왜 이렇게 안 잡히지? 장소를 바꿔주게.”
“예.”
“다른 미끼로 바꿔주게.”
“예.”
“낚싯줄도 바꾸게.”
“예.”
소인방은 그를 아주 종처럼 부려먹었다.
처음에는 뒤통수를 후려 패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하는 짓이 뻔뻔해서 그렇지… 아주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이제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원하는 대로 다 해줬다.
돈을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약간의 수고만 해주면 됐다.
문제는 경사까지 가는 데 사흘이 아니라 무려 닷새가 걸렸다는 것이다.
[마루: 미안하다. 내가 계산을 잘못했어.] [그렌: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네.] [해모수: 괜찮아요. 나도 이제야 알게 됐는데요!]그동안 소인방에게 시달려서 그런지 해모수는 마루와 그렌이 한 실수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자와 계속 같이 지낸다면 아마 도(道)를 깨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닷새 동안 배를 타고 장강을 거슬러 온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왕지현과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았다.
낚시를 해서 잡은 물고기를 선원들과 같이 구워 먹었다.
인벤토리에서 고춧가루를 꺼내서 매운탕도 끓여 먹었다.
냄새에 취해 좀비처럼 다가온 병사들과 술을 꺼내 나눠 마신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달밤에 강상(江上)에서 왕지현과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흉내를 내보는 것도 유쾌한 추억이 되었다.
“경사다!”
드디어 장강(長江)을 거슬러 올라 경사에 도착했다.
길고 지루한, 그렇지만 나름 좋은 경험을 했던 시간이 지나갔다.
연락선은 유일하게 외곽성(外郭城)으로 둘러싸이지 않은 용강선창(龍江船艙)에 배를 댔다.
“소인방 부천호! 그런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오군도독부!”
소인방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단 한 마디였지만 무게감이 달랐다.
오군도독부는 명 태조 주원장이 중국을 통일한 뒤에 설치한 대도독부를 1380년에 전, 후, 좌, 우, 중의 다섯으로 나눠서 16개의 도지휘사사를 통솔, 관할하는 군정 기관이었다.
한 개의 성(省)을 총괄하는 도지휘사사에 들어가는 것도 살 떨리는 일이다.
하물며 성의 위소(衛所)를 통솔하는 도지휘사사들이 모조리 예속된, 병부 최고의 무력 기관을 가려고 하니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저희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겠죠?”
“왜 아니겠어. 그럼 내가 괜히 해모수 총기를 데려왔겠어?”
해모수는 그를 호종하는 병사들을 쳐다봤다.
역시 총기는 자신뿐이었다.
모르긴 해도 병사들은 오군도독부의 관문의 턱도 넘어서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하하, 너무 걱정하지 말게. 설마 우리가 죽으러 가겠는가?”
“그 말이 어째 더 무섭네요.”
연락선 안에서 닷새 동안 같이 있으면서 미운 정이라도 들었는지 두 사람은 이제 편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그래도 걸어가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게.”
“군용 마차는 처음 타보는군요.”
“이건 오직 전령과 특별히 급보를 올리는 자들만 이용할 수 있는 거라네.”
소인방은 손안에 동패 하나를 들고 흔들었다.
아마도 저게 군용 마차 이용권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정진문(定進門)을 통과해 경성(京城) 안으로 들어왔다.
한쪽에 대기 중인 군용 마차에 동패를 보여주고 탑승했다.
따가닥, 따가닥!
차르르륵, 차르르륵!
군용 이두마차가 경사의 대로를 빠르게 달려갔다.
마차 위에 꽂혀있는 전령의 표식에 성문 앞의 그 누구도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점점 황성(皇城)이 가까워지자 주변에 깔려있는 삼엄한 경비망이 느껴졌다.
이건 굳이 미니 맵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군도독부에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말에 소인방과 병사들, 해모수와 왕지현이 일제히 마차에서 내렸다.
“후우우!”
마차에서 내린 소인방 부천호는 크게 한 번 숨을 내쉬더니 오군도독부 정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디서 오셨소이까?”
정문 입구에 오군도독부의 경비대장이 나타났다.
얼마나 체격이 좋은지 흡사 장비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숭명사소 부천호 소인방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소?”
“정기 보고를 드리러 왔습니다.”
정5품의 부천호가 일개 경비대장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위상의 차이가 크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패를 보이고 들어가시오.”
“고맙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소인방 부천호는 다행이다 싶은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얼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잠깐!”
그러나 역시 쉽지는 않았다.
“이들은 뭐요?”
“제 부관입니다.”
“일단 병사들은 저쪽에 가서 기다려!”
경비대장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병사들이 한쪽으로 물러가자 그는 해모수를 쳐다봤다.
“직위가 총기인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장비 같은 경비대장은 해모수의 옷차림을 보고 그의 직위를 바로 알아차렸다.
“부천호가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게.”
“네에?”
해모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즉시 소인방이 다가왔다.
하지만 말도 꺼내보기 전에 입이 막히고 말았다.
“요즘 황상의 심기가 불편하시니 내 말대로 하시게!”
“아!”
황제를 입에 올리자 소인방 부천호는 감히 더 이상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졸지에 해모수는 병사들과 함께 오군도독부의 문지방도 넘어보지 못하고 찌그러져야 했다.
그들은 멍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서 소인방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여기서 기다리지 말고 건너편으로 가면 쉼터가 있으니 거기서 기다리시오.”
비 맞은 개 꼴보다 더 처량하게 있자 보다 못한 경비 하나가 다가와 슬쩍 언질을 했다.
병사들은 반색을 하며 좋아했다.
해모수도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어디서 많이 본, 아주 낯이 익은 자가 오군도독부 안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니 저자는…….”
일순 해모수의 몸이 흡사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굳어버렸다.
당당한 체구에 날렵한 인상!
그리고 검은 안대를 한 독안의 중년인!
“황해루(黃海樓)의 총관 서갈봉!”
그의 몸에서 순간적으로 강한 살기가 터져 나왔다.
자신을 능욕하고 죽였던 원수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죽임을 당하면서도 놈의 눈깔 한 짝을 파서 씹어 먹기까지 했으니 도저히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왕지현은 해모수가 중얼거리는 살기 찬 목소리에 놀랐다.
즉시 그의 앞을 몸으로 가로막았다.
[마루: 해모수! 정신 차려!] [그렌: 일단 뒤로 물러나. 원수는 나중에 조용한 데서 갚아!]마루와 그렌도 대경실색했다.
그 바람에 주변의 공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던 해모수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뿌드득!
그는 부서져라 이를 갈았다.
당장이라도 주먹으로 때려죽이고만 싶었다.
하지만 여기는 명나라의 최고 무력 기관인 오군도독부 정문 앞이다.
여기서 살인을 저지른다면 아마 평생 범죄자로 쫓기며 살아야 할 것이다.
“상공! 진정하세요.”
“후우우우!”
해모수는 길게 심호흡을 하며 결국 몸을 돌렸다.
하지만 나중에 추적할 수 있도록 미니 맵을 켜고 서갈봉을 마크해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런 기능이 있다는 것은 마루가 미니 맵을 가지고 놀면서 여러 기능을 시험해 보다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미니 맵은 이 밖에도 여러 가지 편리하고 좋은 기능이 많았다.
“어이! 거기!”
그때 뒤에서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루: 저 새끼가 뒈지려고 환장을 했나!] [그렌: 아니 그냥 지나가지 왜 부르고 지랄이야!]마루와 그렌이 동시에 화를 내듯 외쳤다.
왕지현이 작게 그에게 속삭였다.
“저자가 철릭을 입고 있어요.”
“철릭이라면?”
“아무래도 금의위 같아요.”
금의위(錦衣衛)는 금의친군도지휘사사(錦衣親軍都指揮使司)의 약자다. 명 황제의 친위 군사 기구로 중앙집권 통치를 강화하는 첨병으로 사용됐다.
당시 사법기관이었던 삼법사(三法司), 즉 형부(刑部), 도찰원(都察院), 대리사(大理寺)를 거치지 않고 직접 감찰, 체포, 신문, 행형, 처결 등을 관장했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둘러 공신을 비롯한 신하들에게 공포와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해모수는 기가 막혔다.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렸기에 일개 주루의 총관이 금의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멈추라는 소리 못 들었어?”
모른 척하고 지나가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해모수와 왕지현은 몸을 돌리며 서갈봉을 쳐다봤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은 황제를 호위하는 친위부대, 금의위의 복장인 철릭이 분명했다.
“저 말씀이십니까?”
“그래. 여기 너 말고 누가 또 있어?”
서갈봉이 싸가지 없는 말투로 입을 놀렸다.
해모수가 주변을 살펴보니 정말 왕지현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치사하게도 병사들은 벌써 쉼터로 쌩하니 도망가 버린 상태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으음, 무척 낯익은 얼굴인데……. 혹시 우리 어디서 전에 만나지 않았어?”
“글쎄요. 저는 처음 뵙습니다만.”
서갈봉은 해모수의 얼굴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점도 있지만, 그동안 해모수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한 게 주원인이었다.
예전의 작고 위축된 소년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왜 얼굴을 가리고 있나?”
“나름 사정이 있습니다.”
서갈봉의 애꾸눈이 왕지현을 향하자 해모수가 급히 대답을 했다.
“어! 계집이잖아. 이거 좀 수상한데…….”
확실히 주루의 총관이었던 티를 냈다.
왕지현의 몸매만 보고도 금방 여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거기에다 한 명은 총기의 군복을 입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일반 병사다.
아무리 명나라 군대가 콩가루라고 해도 여자를 병사로 징집하지는 않는다.
“호오! 이거 미색이 보통이 아닌데……. 너희 무슨 사이야? 오군도독부 앞에 서있는 것을 보니 귀한 집의 금지옥엽과 연분이 나서 도망치는 것 같지는 않고. 혹시 미녀를 바치고 벼슬자리라도 하나 구하려는 건가?”
서갈봉은 혼자 아주 소설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또 은근히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해모수와 왕지현은 서로 마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라! 이거 아주 제대로 찍은 모양이네. 둘이 무슨 사이야?”
“제 누이입니다.”
“호올! 누이를 바치고 부귀영화를 얻겠다고……. 흐음, 모름지기 사내대장부라면 이런 단호한 면도 있어야지.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라는 말도 있잖아.”
“송구합니다.”
서갈봉의 말에 해모수는 그저 겸손한 척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개 같은 성정을 지녔어도 여자 보는 눈 하나만큼은 탁월한 놈이다.
서갈봉은 왕지현을 하나 남은 끈적끈적한 눈으로 전신을 핥듯이 훑었다.
그러더니 해모수에게 다가와 은근히 말했다.
“오군도독부는 지금 주워 먹을 게 없을 거야. 앞으로 벼락이 떨어질 예정이거든. 그러니까 차라리 나를 따라와! 내가 금의위의 장령을 만나게 해주지. 역사 정도라면 문제없을 테고 잘하면 나처럼 교위가 될 수도 있을 거야.”
해모수는 서갈봉과 말을 섞는 것조차 싫었다.
살기가 치밀어 올라 당장이라도 목을 분질러 버리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다행히 그런 모습은 금의위를 만나 겁을 먹은 사람들이 몸을 바르르 떠는 전형적인 패턴처럼 보였다.
서갈봉은 해모수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눈빛이 의문으로 변하려 할 때!
왕지현이 해모수를 대신해 전면에 나섰다.
“정말 금의위의 장령을 만나게 해주실 건가요?”
“뭐야? 목소리가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것 같잖아. 이거 빨리 얼굴을 보고 싶구먼.”
“아직 제게 대답을 하지 않으셨어요.”
해모수는 왕지현을 보고는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의 팔을 가만히 붙잡고 만류했다.
나름 무슨 생각이 있는 모양이었다.
둘이 살짝 실랑이를 하는 모습에 서갈봉의 의심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딱 봐도 누이라는 년의 미태가 절색이다. 장 천무(天武)에게 갖다 바치면 아주 좋아하시겠어.’
천무라면 금의위의 책임자인 지휘사(指揮使) 아래에 있는 고위 관리다.
이들의 아래로 1,500여 명의 교위(校尉)가 있다.
교위 아래로는 역사(力士)가 수천 명이나 된다.
이들 말고도 부속기관인 북진무사(北鎭撫司) 아래 다섯 개 위소까지 있었으니, 가히 금의위의 위세가 어떤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