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저놈은 그냥 역사라도 시켜달라고 부탁하든가, 아니면 위소의 백호 정도 시켜서 내치면 되겠어. 괜히 시끄럽게 굴면 조용히 죽여서 묻어버리는 방법도 있고.’
찰나지간 서갈봉의 눈가에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왕지현의 날카로운 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해모수: 어떡하죠?] [마루: 왕지현에게 무슨 생각이 있는 것 같아.] [그렌: 그래. 잠깐 상황을 지켜보자. 지혜로운 여인이니 허튼짓을 하지는 않을 거야.]해모수는 그녀가 서갈봉에게 눈웃음을 치는 게 너무 싫었다.
아니 저 원수 놈과 말을 섞고 있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루와 그렌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았다.
가만 보면 왕지현의 행동이 평상시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녀가 자신보다 더 고수였다.
위험한 순간이 오면, 최소한 서갈봉 한 놈의 멱을 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소. 나를 따라가면 반드시 금의위의 장령, 아니 천무를 꼭 만나게 해주겠소.”
“좋아요. 따라가겠어요. 단 반드시 오라버니와 같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약속하지 않는다면 전 이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겠어요.”
서갈봉은 왕지현의 단호한 눈을 보고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자 왕지현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리개를 슬쩍 옆으로 치웠다.
“오오!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그녀는 곧바로 다시 가리개로 얼굴을 가렸다.
서갈봉은 왕지현의 얼굴을 더 보고 싶은 욕망이 불끈 치솟는 것을 간신히 참아야 했다.
“나는 서갈봉 교위요. 소저의 이름은 무엇이오?”
“저는 왕옥환(王玉環)이에요. 오라버니는 왕융기(王隆基)라고 합니다.”
“왕옥환! 참 좋은 이름이구려. 좋소! 원하는 대로 해주겠소.”
서갈봉은 짐짓 감탄했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왕옥환은 성만 바꾸면 양귀비의 본명이다.
당연히 융기는 당(唐) 현종의 본명인 이융기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지식이 일천한 서갈봉은 그런 사실을 바로 깨닫지 못했다.
아니 그는 지금 그럴 틈조차 없었다.
‘작전 변경이다. 이 정도의 미모라면 천무에게 드리는 것은 너무 아깝다. 나도 이번에 천무가 한번 되어보자. 그러려면 역시 금의위를 이끄는 지휘사에게 직접 넘기는 게 최고야.’
왕지현의 미모를 확인한 그의 가슴속에서 야망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마음 한편으론 당장이라도 그녀를 범하고, 마구 짓밟아 버리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러나 더 찬란하게 빛날 자신의 미래를 위해 타오르는 욕구를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저벅, 저벅, 저벅!
해모수와 왕지현은 서갈봉의 뒤를 따라갔다.
얼마 걷지 않아 으리으리한 대저택 앞에 도착했다.
금의위가 소유한 안가 중 하나로 보였다.
저택의 총관으로 보이는 자가 나타나 정중히 인사를 했다.
“서 교위님! 어서 오십시오.”
서갈봉은 그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더니 은근하게 말했다.
“손 총관, 여기 두 분을 별채로 안내하게!”
“예에? 별채로 말입니까?”
“오늘 아주 귀한 손님을 모시고 올 거야.”
“아! 네.”
손 총관은 서갈봉과 눈을 마주치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특히 이 소저를 잘 모셔야 해.”
“잘 알겠습니다. 시녀들에게 일러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
척 하면 척이었다.
두 사람은 한두 번 이런 짓을 해본 게 아니었는지 능숙하게 해모수와 왕지현을 별채로 이끌었다.
마루와 그렌은 해모수 대신 이를 박박 갈았다.
해모수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묵묵히 참고 있을 따름이었다.
“잠시 여기서 쉬고 계시오. 내 이따 다시 오겠소.”
“예,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녀는 서갈봉에게 눈웃음을 치며 살짝 무릎을 숙였다.
그 모습에 서갈봉은 자꾸 입맛을 다시더니 물러갔다.
손 총관은 즉시 시녀들을 불러서 목욕물을 준비시켰다.
“두 분은?”
“여긴 제 누이입니다.”
“그러시군요.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내 누이는 왕옥환, 난 왕융기라 하오.”
“왕 공자와 왕 소저셨군요. 저는 이 저택의 총관입니다. 그냥 손 총관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사람을 많이 상대해 본 자라 아주 혀가 매끄럽게 움직였다.
그는 잠시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나서 밖으로 사라졌다.
해모수가 왕지현에게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마루의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마루: 일단 미니 맵부터 확인해!] [그렌: 주변에 누가 없는지 살펴봐!]해모수는 즉시 미니 맵을 쳐다봤다.
방문과 창문 틈으로 바깥도 살펴봤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그는 왕지현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요?”
“상공! 우리는 이미 호랑이의 등에 올라탔어요.”
“기호지세라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소.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려는 것이오?”
“서갈봉이라는 자가 상공께서 말하신 그 원수 맞죠?”
그녀의 말을 듣자 해모수는 왕지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렇소.”
“저도 상공께서 원수를 갚는 일에 한 팔 거들고 싶어요.”
“그럼 조용한 데로 가서 죽여버리면 그만이지 않소. 왜 이런 수모를 자초하시오?”
“그게 가능했다면 벌써 그렇게 했을 겁니다. 당장은 우리의 존재를 감춰야만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동안 우리를 본 사람들을 다 죽여야 해요.”
그녀의 말은 지극히 타당한 얘기였다.
아직까지 서갈봉을 제거할 좋은 기회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 오늘 저녁에 왕지현은 낯선 사내의 수청을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해모수의 생각을 훤히 읽고 있었다.
왕지현은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러곤 격정적으로 해모수의 품 안으로 깊이 안겨 들었다.
“상공! 너무 걱정 마세요. 우려하시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예요.”
“아아!”
“제가 잘 담판을 지을 테니 절 믿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왕지현은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나는 당신을 믿소.”
해모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다.
그렇다고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
[해모수: 이런 상황을 만든 나 자신을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어요.] [마루: 해모수! 흥분하지 말고 냉정을 찾아!] [그렌: 그래. 마루 말이 맞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어. 일단은 왕지현의 말대로 지켜보고 넌 너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돼!]그렌의 말에 뭔가 충격을 먹었는지 해모수는 잠시 멍하니 그대로 서있었다.
“목욕물이 준비가 됐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왕지현은 그의 품에서 벗어나며 대답을 했다.
“네, 들어오세요.”
시비들이 문을 열고 우르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해모수와 왕지현에게 일제히 인사를 올리더니 곧 옆의 문을 차례로 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통로가 만들어지며 끝에 커다란 욕조가 있는 목욕탕이 나타났다.
누가 설계를 했는지 참으로 묘한 별채의 구조였다.
시비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두 분께서 입을 옷을 준비했습니다.”
시비 하나가 서갈봉이 입은 것과 똑같은 철릭을 건넸다.
뭔가 뜻이 있는 것 같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비에게 그 뜻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저를 따라오세요.”
나머지 시비들이 왕지현을 포위한 후, 그녀를 끌고 가듯 우르르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가장 어린 시비 하나가 살짝 웃으면서 통로의 문을 닫았다.
그 뒤로 문이 계속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해모수는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왕지현이 들어간 목욕탕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그가 오러까지 써서 집중하자 마치 그녀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욕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일목요연하게 전달됐다.
“어머 정말 아름다우세요.”
“세상에 어쩜 이렇게 피부가 고울까!”
“천상의 신녀라고 해도 믿겠어요.”
“몸이 너무 깨끗해서 씻을 곳이 없어요.”
“가슴이 정말 잘 익은 천도복숭아처럼 크고 예뻐요.”
“엉덩이는 사과처럼 탱탱하니 사내들이 보면 환장을 하겠어요.”
“월궁의 항아님도 이렇게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고 있진 않을 거예요.”
“혹시 날개를 잃은 천사는 아니시죠!”
목욕을 하는 건지, 수다를 떠는 건지…….
시비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던 해모수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그는 얼른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미니 맵을 살폈다.
저택의 안에 서갈봉은 없었다.
하지만 금의위로 의심되는 자들이 몇 명 대기하고 있었다.
[마루: 혹시 모르니까 금의위를 적으로 설정해 놔!] [그렌: 아예 일반인을 제외하고 전부 적으로 설정하는 게 어때?] [해모수: 그럼 너무 많지 않을까요?]해모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렌의 말을 따라서 해봤다.
벌써부터 수많은 빨간 점으로 미니 맵이 새빨개졌다.
[마루: 일반 병사와 최하급 관리는 제외해도 될 거야.] [그렌: 그 정도만 해도 붉은색이 많이 빠지긴 하겠네.]일반 병사와 최하급 관리를 중립으로 풀었다.
그러자 미니 맵을 점령했던 빨간 점들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해모수: 차라리 적대 관계도 차등을 주면 좋지 않을까요?] [마루: 한번 해볼 만한 가치는 있겠다.]해모수는 황실과 금의위, 고관대작과 장군들을 전부 적대 관계로 설정했다.
그리고 고위 관리 이하 하급 관리까지 장교와 부사관급은 경계 대상으로 설정했다.
3분의 2 이상이 붉은 점에서 연한 주홍빛 점으로 변했다.
[해모수: 이게 정말 되네요.] [그렌: 그러게 말이야.] [마루: 서갈봉이 어디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그리고 저택 주변도 좀 둘러봐! 최악의 경우, 어디로 탈출하는 게 좋은지 알아야 하잖아.]마루의 제안에 해모수는 불꽃같은 의지를 불태웠다.
그는 미니 맵을 통해 저택 주변을 꼼꼼히 살펴봤다.
점점 주변으로 영역을 확대하며 나가자 경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듯했다.
서갈봉은 아직 경사에 있었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히 황성 근처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그렌: 붉은 점들이 궁성(宮城) 안에 빽빽하네요.] [해모수: 뭔 일이 있는 모양이에요.] [마루: 뭔 일은 개뿔! 명 황제가 또 건국 공신을 잡아서 고문을 하고 있겠지.]명 태조 주원장은 천하를 통일한 후, 건국 공신들을 하나씩 잡아 죽였다.
반란을 도모한다며 같은 무리로 몰아 죽인 사람이 오만 명이나 됐다.
그렇다고 공신과 신하들만 처형한 게 아니었다.
반역은 구족을 멸한다는 철칙으로 그들의 가족과 친척, 사돈의 팔촌까지 모조리 숙청해 아예 씨를 말려버렸다.
중국 역대 개국 황제 중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이가 바로 주원장이었다.
얼마나 잔인했는지 예를 하나 들자면…….
사람의 팔다리를 묶어놓고 예리한 칼로 살점을 얇게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회를 뜨는 것처럼 죽을 때까지 저며대는 형벌을 자행했다.
이런 말도 못 하게 잔인한 형벌들이 가장 성행했던 때가 바로 명나라 때였다.
물론 그의 아들인 영락제도 잔혹하기는 만만치 않았다.
비록 제 아비의 숫자에는 못 미치지만 1만 4천 명을 죽였다.
마루의 설명에 그렌과 해모수는 입을 딱 벌렸다.
[그렌: 명나라 황제는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었군.] [해모수: 사람을 고문해서 죽이는 것을 아주 즐겨하는 것 같네요.] [마루: 맞아. 그래서 혹자는 사이코패스일 거라고 하더군.]사이코패스이건 아니건, 사람을 그냥 죽이는 것도 아니고 잔인하게 고문하여 죽이는 자가 절대 정상일 리는 없었다.
[해모수: 열받는데 그냥 전부 죽여버릴까요?] [마루: 누구를 죽이자는 말이야?] [그렌: 설마 주원장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해모수는 주먹을 꼭 쥐었다.
[해모수: 황제고 금의위고 개나발이고… 전부 다 죽여버리고 싶어요.] [마루: 일단 미니 맵 좀 확인해 보자. 이 저택에서 황성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지?] [해모수: 2킬로미터쯤 되는 것 같은데요.] [마루: M72 LAW는 유효사거리 200미터 정도니까 패스! K6 중기관총의 유효사거리가 1,830미터, 최대사거리가 6,765미터야. K4 고속 유탄 기관총의 유효사거리는 400에서 1,500미터, 최대사거리가 2,212미터에 달하니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겠다. 이 정도면 장강에 배를 띄워놓고 쏴도 맞힐 수 있겠다.]확실히 경사에 있는 황성은 장강에서 너무 가까웠다.
직선거리로 5킬로미터도 되지 않았다.
마루의 설명에 그렌이 기겁을 하고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