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Y-Trinity RAW novel - Chapter 211
211화
[그렌: 마루! 너 제정신이야?] [마루: 일단 가능성만 타진해 본 거예요. 사람 일이라는 게 모르잖아요.] [그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 금의위가 된 서갈봉 때문에 눈이 돌아가 있는 해모수 앞에서 기름을 끼얹으면 어쩌자는 거야?] [마루: …….]그렌의 책망에 마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해모수: 그런데 황성 안의 궁성에 붉은 점들이 점점 많아지는데요. 경사 곳곳에 있던 붉은 점들도 죄다 궁성으로 향하고 있어요.] [마루: 확실히 오늘이 무슨 날인가 보다. 분명히 공신 하나를 고문하고 때려잡고 있을 거야.] [그렌: 서갈봉은 어디에 있어?] [해모수: 음, 이놈도 지금 황성으로 향하고 있어요. 어! 갑자기 방향을 돌려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그것도 한두 놈이 아니에요.]해모수는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봤다.
하늘은 어느새 석양으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별채 앞에 마차 한 대가 섰다.
마차의 주위를 금의위의 교위들이 수십 명이나 둘러싸고 있었다.
별채의 대청에는 거한 잔칫상이 차려졌다.
귀빈을 맞을 준비가 한창이었다.
목욕을 하던 왕지현은 어느새 방 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그를 바라보고 방긋 웃었다.
“아!”
해모수는 입을 딱 벌렸다.
그녀가 엄청 예쁘고 아름답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하늘한 궁장을 잘 차려입으니 정말 천상의 선녀가 내려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때요? 잘 어울려요?”
“응, 정말 아름답구려!”
“오늘은 제게 맡겨주세요.”
왕지현은 뭔가 아주 작심을 한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모(毛) 지휘사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별채 대청으로 뫼셔라!”
별채의 시녀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곧이어 서슬 시퍼런 금의위 교위들이 별채 대청 사방을 철통같이 둘러쌌다.
저벅, 저벅, 저벅!
창문 틈으로 대청으로 들어가는 망포(蟒袍) 입은 자를 엿봤다.
망포는 금의위의 최고급 관리나 입을 수 있는 관복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중년의 사내!
허나 그가 바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금의위의 수반이었다.
오늘의 주인공이 등장하자 곧 대청의 문이 닫히며 금의위 교위들이 주변을 통제했다.
“왕 공자와 왕 소저를 모셔오라는 분부를 받잡고 왔습니다.”
문밖에서 시비들이 몰려와 다급히 외쳤다.
해모수는 빠르게 옷을 벗고 철릭으로 갈아입었다.
왕지현과 눈을 한번 마주친 그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르륵!
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뒤에서 따라오며 슬쩍 어깨를 툭 쳤다.
그 작은 몸짓에도 해모수는 크나큰 위로를 받았다.
시비들은 급히 왕지현의 얼굴에 망사를 덮었다.
보일 듯 말 듯 한 망사!
이상하게도 더욱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게 만들었다.
대청 안으로 들어가기 전!
해모수는 살벌한 눈빛의 금의위 교위들에 의해 몸수색을 받았다.
온몸을 샅샅이 뒤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나 무기는 전부 인벤토리에 넣어뒀다.
그러니 전혀 걸릴 리가 없었다.
왕지현과 한 번 더 눈을 마주치고 대청으로 들어갔다.
대청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한 사람만 상석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는 작은 잔에 물인지 술인지 모를 것을 따라 홀짝이고 있었다.
거대한 탁자 위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가득했다.
한쪽에는 그렇게 구하기 힘들다는 명주(銘酒)들도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하지만 모 지휘사는 그런 것들은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가까이 오라!”
“예.”
해모수는 적당한 거리로 다가간 후,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왕지현이 옷깃을 스치며 그를 지나쳤다.
“호(好)!”
놀랍게도 모 지휘사는 그녀를 보자마자 감탄성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왕지현이 자신의 스타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 태도를 보였다.
미소가 넘치는 얼굴로 모 지휘사의 앞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난 금의위의 지휘사 모양(毛驤)이라고 한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해소영입니다.”
해모수는 그녀의 말에 속으로 뜨끔했다.
아니 언제부터 왕지현이 자신의 막내 여동생이 됐단 말인가!
도대체 그녀는 무슨 짓을 하려고 그의 여동생의 이름을 도용하고 있을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왕 씨라고 들었는데…….”
“아무리 서 교위가 금의위라고는 하나 어찌 오늘 처음 본 외간 남자에게 함부로 이름을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
“이런! 놈이 한 방 먹었군. 껄껄껄!”
모양은 그녀의 말에 오히려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시선을 뒤로 하여 해모수를 쳐다봤다.
“저자가 네 오라비냐?”
“그러하옵니다. 이름은 해모수입니다. 현재 총기로서 군문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총기라! 어린 나이에 진급이 빠르구나.”
“그만큼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해모수는 고개를 숙인 채,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미니 맵을 살폈다.
대청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미 대들보에 네 명, 지붕에는 여섯 명이나 숨어있었다.
만약 미니 맵 없이 함부로 움직였다면 큰 낭패를 볼 뻔했다.
[마루: 이것들이 어디서 본 것은 있어가지고 살수(殺手) 흉내를 내네.] [그렌: 그래 봤자 해모수나 왕지현에겐 상대도 안 되는 놈들이야.] [해모수: 확실히 대단해 보이진 않네요.] [마루: 이들보다 네가 더 고수라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어지간한 놈들은 이들의 흔적도 찾지 못할 거야. 전문적으로 침투와 암살 훈련을 받은 자들이 분명해.]해모수가 마루와 그렌과 열띤 논의를 하고 있는 사이!
왕지현과 모 지휘사도 상당한 의견 절충을 보고 있었다.
“요구 조건이 조금은 과한 듯싶구나.”
“저는 아직 남자를 모르는 청백지신입니다. 제 몸과 마음을 가져갈 주인이 그 가치를 모른다면 어찌 함께 동고동락을 할 수 있겠사옵니까?”
금의위의 총책임자인 모양은 왕지현의 청백지신이라는 말에 애가 닳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이렇게 눈에 확 띄는 미녀를 만나보지 못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인세의 미색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이게 웬 횡재인가!
공신 한 명도 때려잡고 절색의 미녀도 손에 들어오게 생겼다.
거액의 뇌물을 먹이고 금의위에 어찌어찌해서 들어온 무능한 서 교위!
하도 경국지색이라 자신하기에, 혹시나 해서 궁성으로 가는 길에 잠깐 들러봤다.
그런데 만약 놈의 말을 무시했더라면 아마 천추의 한이 되었을 것이다.
“혹시 제가 오늘 어디에 있었는지 들으셨습니까?”
“오군도독부 앞에서 만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습니다. 제가 오군도독부와 인연을 맺는다면 제 오라비 한 명 건사하지 못하겠습니까?”
“끄응.”
천하의 모양도 미녀 앞에서 용을 쓰는 재주는 없었다.
망사 안에서 반짝이는 눈빛만 봐도 몸이 찌르르 떨렸다.
청아한 목소리만 들어도 귀가 간질간질 기분이 좋아졌다.
굴곡진 몸매에 피부는 또 어찌나 고운지…….
혹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아닐까 순간적으로 의심이 들었다.
만약 오군도독부의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 놈들이 그녀를 봤다면… 아마 환장을 하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오군도독부와 인연을 맺는다면 천호소의 정천호 자리쯤은 금방 꿰어 찰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위는 몰라도 천무의 직위는 좀 심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것도 금의위의 부속기관인 북진무사 아래에 있는 다섯 개 위소 중 하나를 맡겨달라고 하다니…….
모양이 고민에 빠지자 왕지현은 새로운 제안을 했다.
“그렇게 부담이 되시면 제 오라비를 딱 세 달만 천무로 삼아보소서. 겉보기에는 어려 보이나 지혜가 충만하고 무예가 뛰어난 장군감이옵니다.”
“그으래? 만약 일을 잘해내지 못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그때 가서 무르자고 울어봤자 바뀌는 것은 없을 텐데…….”
그녀의 말에 모양은 혹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내대장부의 말이 천금의 무게가 있듯 여인에게도 지조가 있습니다. 어찌 한 입으로 두말을 하오리까? 능력이 떨어진다면 평생 교위로 삼아 소나 말처럼 부리소서!”
“푸하하하! 오히려 네가 대장부의 기질을 가지고 있구나. 내 직접 너의 미색을 보지 못했더라면 필시 사내가 하는 말이라 여겼을 것이야.”
모양은 왕지현의 기개를 높이 샀다.
“좋다. 세 달은 능력을 가늠하기에 너무 짧으니 반년만 지켜보기로 하자. 그러나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그 뒤는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올라서지 못하면 끝인 게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오늘 밤 저는 모양 지휘사님의 소실이 될 것이옵니다.”
“좋다. 약속대로 그에게 즉시 천무 자리를 내어주도록 하지.”
모양은 그녀의 제안을 쉽게 생각했다.
금의위의 일은 군문의 일과는 다르다.
한번 맡기면 큰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 어지간해서는 쫓겨나지 않는 게 군(軍)의 행사다.
하지만 금의위에서는 아무리 천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실수 한 번이면 당장 교위나 역사로 강등당할 수도 있다.
잘못되면 백의종군은 예사였고 즉결 처분하는 경우까지 빈번했다.
그만큼 권력투쟁과 암투가 치열한 곳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살얼음을 걷는 듯한 긴장감을 이겨내고 이전투구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그나마 자리를 보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은 이 여인을 내 여자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녀의 오라비에게 잠시 천무의 자리를 내어주고 환심을 사두자. 정말 능력이 뛰어나다면 그대로 두고 영 변변치 못하다면 그때 가서 교위로 강등시켜도 될 것이다. 반년이면 능히 쌀을 끓여서 밥으로 만들 수 있을 시간이다. 그때 가서 감히 내 뜻을 거역하지는 못할 것이다.’
모양의 계획은 나름 합리적이었다.
자신은 금의위의 총책임자인 지휘사다.
천무 자리 하나 잠시 내준다고 한들 누가 뭐라고 딴지를 걸 사람도 없다.
황상이 나중에 알고서 물어본다면 능력 검증의 차원이라고 변명하면 그만이다.
“여봐라!”
모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청의 문이 열렸다.
밖에서 대기 중인 천무 한 명이 쏜살같이 다가왔다.
“예, 부르셨습니까?”
그는 모양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장 천무! 오늘부로 이자를 천무에 삼을 것이다. 천무의 패를 만들고 금의위의 인장도 내주어라. 보옥(寶玉) 위지휘사사(衛指揮使司)를 맡길 것이니 즉시 조치하도록 하라!”
“예, 알겠습니다.”
장 천무라 불린 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대답은 시원시원했다.
하지만 모양은 크게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내 말은 지금 당장 시행하라는 말이다.”
“충!”
장 천무는 모양의 서늘한 시선에 크게 놀랐다.
그는 허둥지둥 무릎걸음으로 물러났다.
적당히 거리가 벌어지자 급히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참새처럼 생긴 교위 한 명을 데려왔다.
그러고는 모양과 왕지현 그리고 해모수가 보는 자리에서 지시를 내렸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천무의 패에 해모수라는 이름이 즉석에서 새겨줬다.
금의위 인장 하나가 나오고, 천무로 임명한다는 임명장에 지휘사의 직인이 찍혔다.
해모수에게 보옥위(寶玉衛)의 전권을 맡긴다는 명령서도 두 장 작성됐다.
당연히 모양 지휘사의 직인이 들어갔다.
공식적인 명령서가 만들어지자…….
“이 명령서를 즉시 보옥위로 보내라!”
“충!”
모양은 즉시 명령을 내렸다.
장 천무는 군말 없이 교위 하나를 불렀다.
명령서 한 장을 주고 경사 남쪽의 보옥산에 있는 보옥위로 보내버렸다.
나머지 한 장은 천무의 패 옆에 살짝 내려놓았다.
해모수는 어리둥절해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모든 일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빠르게 일어났다.
그는 졸지에 금의위의 천무가 됐다.
지휘사 아래, 최고위 직위인 천무가 된 것이다.
게다가 지방과 수도의 각 요충지에 5,600여 명의 군사를 배치 및 통괄하는 기관인 위지휘사사 한 곳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게 됐다.
위지휘사사 아래에는 다섯 개의 천호소가 소속되어 있었다.
보옥위 하나만으로도 그는 이미 엄청난 권력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의 맹점이 있었다.
바로 왕지현이 모양의 소실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해모수는 그녀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궁금했다.
앞으로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하는지 말이다.
“해모수는 이리 오라!”
“충!”
그는 다른 금의위를 흉내 내며 무릎걸음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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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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